109화
오그리아군이 퇴각하자 검은 무리가 나타났다.
“드디어 나왔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나타난 언데드는 불과 열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일반 좀비나 구울이 아닌 말을 타고 있는 개체였다.
“저건 데스나이트입니다.”
알의 뒤에 있던 신관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데스나이트?”
“오리진을 다루는 기사 중에서도 상급의 기사들을 제물로 한 언데드입니다.”
“고작해야 수십입니다. 기마대가 짓밟아 버리겠습니다.”
기마병 다수가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건 안 됩니다. 일반 병사나 기사들로는 상대할 수 없소!”
“아무드의 기병은 대륙 최강! 우리를 내보내 주시오. 이기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소!”
아무드의 기병대장은 알에게 가슴을 두드리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알은 고민됐다.
수호기사는 모든 적을 대비해 공부하기 마련.
그들이 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겪어보질 않았다.
아무드의 기병은 대륙에서 둘째라면 서럽다는 전력이었다.
‘수백이 수십을 이겨낼 정도일까? 구태여 전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데.’
구울과 좀비까지는 어느 정도 계산이 가능한 전력이지만 데스나이트는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우리가 가겠소. 인간은 저 녀석들을 당해내지 못해.”
뒤를 돌아보니 루세프가 있었다.
“난 어제 저 녀석 중 한 놈과 겨뤄본 적이 있소. 인간은 감당할 수 없어.”
“어허, 어디서 새치기를 하려고! 공이 탐나거든 다른 곳에서 알아봐! 적은 기병이야!”
아무드의 기병단장은 루세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피지컬이 한 수 위인 루세프는 그런 그를 밀치며 앞으로 나섰다.
“적의 실력도 가늠하지 못하면 죽어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말을 허비할 필요는 없지.”
“뭐, 뭐라고? 이놈이 어디서 감히!”
기병 단장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루세프의 멱살을 잡았다.
루세프가 멱살을 잡은 손을 잡고 힘을 주자 단장은 무릎을 꿇었다.
“이런 주제에 내가 일대일 승부를 보지 못한 자들을 상대하겠다고?”
“크윽! 이…… 이놈…….”
루세프는 단장을 다시 밀치며 알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맡겨주시오.”
“좋습니다. 단 무리는 하지 마시오.”
“가자.”
루세프의 뒤를 30여 명의 드래고니안들이 따랐다.
그가 성벽에서 뛰어내리자 나머지들도 뛰어내렸다.
그들은 날개를 펼치며 활강으로 검은 무리에게 다가갔다.
“흥, 적은 기병이야. 말발굽에 짓밟힐 테지.”
단장은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그를 비웃었다.
적의 코앞까지 활강한 드래고니안 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냈다.
검과 창 등.
저마다의 특색 있는 무기를 쥐고 있었고 적들은 정갈한 판금 갑옷을 두르고 검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 맨 앞에 있는 놈. 네놈이 어제 나와 싸운 놈이지?”
루세프는 들고 있던 검으로 맨 앞의 기수를 가리켰다.
“면갑에 나 있는 자국이 틀림없군. 어제의 결판을 내자.”
“…….”
루세프가 움직이자 뒤에 있던 자들도 부채꼴로 흩어졌다.
설산에서 사냥감을 사냥하던 포위 대형이었다.
휘릭-
몇몇이 추가 달린 쇠사슬을 던졌다.
낮게 날아간 쇠사슬은 말의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기병을 상대할 땐 둘을 상대해야 했다.
말 또한 전투훈련을 겪었다는 가정하에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발차기와 육탄 공격은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할 수 있었다.
촤르륵-
쇠사슬을 멋지게 말들의 다리를 옭아맸다.
푸르륵-
발에 감긴 것이 귀찮은 듯, 힘을 주자 쇠사슬들이 부서졌다.
‘보통 말이 아니군.’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은 흑마였고 일반 말에 비해 덩치도 컸다.
무엇보다 기수에게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이 말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기병과 보병의 싸움에서 우세한 쪽은 당연 기병이다.
하지만 달리는 것이 아닌 멈춘 상태였고 드래고니안의 체격이 커 말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다.’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한 드래고니안 하나가 기수 한 명의 뒤에서 달려들었다.
그러자 말이 뒷발을 들어 드래고니안을 향해 내질렀다.
쾅-
뒷발은 맞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허공에 생긴 파공음이 둔탁하게 들릴 정도였다.
‘뒷발에만 맞아도 골로 가겠는데.’
말의 위력을 본 드래고니안들은 뒤에서 달려드는 것을 포기했다.
그때까지도 루셰프는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 있는 기수와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루셰프의 손에는 검 대신 거대한 해머가 들려 있었다.
부족원들이 다른 데스나이트들의 시선을 분산시키자 거대한 헤머가 높게 쳐들렸다.
쾅-
데스나이트가 서 있던 자리에 해머가 꽂히며 먼지가 풀풀 일었다.
기수가 한 발 물러난 것이다.
“호오, 이건 피하는 건가?”
전날 자신의 양손검을 한 손으로 받아냈던 적이 피한 것을 보자 루세프는 실소를 머금었다.
급조한 해머에는 푸른빛이 맴돌고 있었다.
“넌 살아생전 기사였다지? 따라와라. 어제의 승부를 내자.”
“…….”
루세프가 등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기수는 잠시 기다렸다가 이내 그를 뒤따랐다.
따라가려는 데스나이트들의 앞을 부족원들이 막았다.
“어허, 대장끼리의 승부에 껴들어서 되나.”
“죽더니 눈치가 없는 건가?”
부족원들은 적들을 비꼬며 사냥 대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둘은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루세프가 둘러보니 데스나이트들 뒤로 오그리아군의 기병과 보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뒤에서는 연합군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래고니안과 데스나이트들의 싸움이 오늘의 승패를 좌지우지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다.”
루셰프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양손으로 휘어잡은 해머가 좀 전과는 다른 속도로 내려쳐졌다.
쾅-
기수의 검과 부딪힌 해머에서 푸르스름한 불꽃이 튀었다.
상대는 양손.
어제와는 달랐다.
전날 적과 싸운 직후 루세프는 다시 전선에서 같은 상대를 만날 것이라 확신했다.
아침에 되었을 때 루세프는 구레드르를 찾았다.
“뭐? 다시 말해봐.”
“무게는 300키란(kg)정도. 길이는 내 몸 정도 되었으면 하는데.”
루세프가 주문하는 무기 설명을 듣던 구레드르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무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만들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네놈 몸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
“150키란 정도 될 텐데.”
“몸무게의 두 배에 네놈 몸길이면 2미란(m)이 넘는다. 그런 검을 만든다 한들 네놈이 쓸 수 있을 것 같나?”
구레드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최대한 빨리 만들어줄 수 있나?”
“무리다. 그 정도 크기면 설계 도안부터 다시 해야 해. 무게 중심이며 소재까지 일반 검과는 다르다고.”
“드워프들의 솜씨는 최강이라 들었다. 가능할 것이라 보는데.”
“최강이지. 그런데 쓸 수 없는 무기를 만드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어!”
구레드르는 루세프를 상대하지 않았다.
당장 전차 하나를 더 완성시켜야 하는 일도 벅찼다.
루세프는 고집불통은 아니었기에 구레드르의 거절에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가진 검으로는 적을 상대하기에 부족했다.
뒤돌아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기계였다.
전차에 들어가는 금속을 제련할 때 쓰는 기계로 거대한 금속을 담금질 할 때 쓰는 기계였다.
몇 개의 거대한 망치가 교차로 움직이며 달구어진 금속을 때리고 있었다.
꼭 검의 형태일 필요는 없었다.
“저걸 쓸 수 있을까?”
구례드르는 루세프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가 이내 짜증이 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놈인가. 저거 하나에 500키란이 넘어.”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구레드르는 이내 웃었다.
“뭐, 좋아. 네놈이 저걸 들 수 있다면 주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구례드르는 루세프에게 길을 내주었다.
볼트와 너트를 풀어 망치의 고정 장치를 풀었다.
쿠웅-
바닥과 닿은 자리가 움푹 파였다.
루세프는 망치로 다가가 움켜쥐었다.
“흐읍!”
그의 근육들이 꿈틀댔고 부풀어 올랐다.
스으윽-
그러자 손쉽게 들어 올려지는 거대한 망치.
망치를 어깨에 걸치자 구레드르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거 가져가도 되겠나?”
“어? 응. 뭐 약속이니까.”
구레드르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쓰고 가져다 놓겠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본 구레드르는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기다려. 그걸 그대로 쓰겠다는 거야?”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몇 명의 드워프를 불렀다.
“가서 남는 강철 좀 가져와.”
부하들이 강철 주괴를 가져오자 구레드르는 담금질을 시작했다.
그러곤 손잡이를 만들었다.
그냥 쓰게 되면 미끄러지거나 자칫 놓칠 수 있었기에 그립은 중요했다.
‘흠, 급조한 것치곤 잘 만들어졌군.’
루세프의 해머는 연달아 기수를 몰아쳤다.
그때마다 적은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무게가 무게인지라 주춤주춤 물러섰다.
히이잉-
주인의 불리함을 느꼈는지 흑마가 앞발을 들어 그를 찍어누르려 했다.
“어딜.”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루세프가 말머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쾅-
머리를 가격당한 흑마는 잠시 기우뚱했다.
그러자 기수는 고삐를 죄며 말을 물렸다.
잠시 거리를 두더니 이내 기수는 말에서 내렸다.
말 위보다는 땅이 충격을 흡수하기에 좋았다.
“드디어 고귀한 몸이 말에서 내렸는가.”
“…….”
데스나이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들고 있던 검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해머와 검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두 무기가 부딪힐 때마다 파공음과 충격파 때문에 지면 위의 흙들이 날렸다.
리치와 무게.
파괴력은 해머가 한 수 위였다.
데스나이트가 일방적인 수비에 몰리자 그것을 지켜보는 연합군의 사기는 덩달아 올라갔다.
“천하의 데스나이트도 전설의 종족 앞에선 무의미한가.”
고위 간부들은 둘의 싸움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드의 기병 단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아내는 데스나이트를 보며 자신들이 상대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해머의 타임 로스는 통상적인 무게에 비해 길었다.
자유자재로 다루긴 하고 있었지만 한번 휘두를 때마다 루세프의 몸이 같이 휘청이고 있었다.
그 순간 데스나이트의 검이 파고들었다.
왼쪽 어깨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적의 검을 보고 루세프는 한 손을 놓았다.
급히 몸을 틀어 검끝을 피했지만 한 손으로 해머를 들 수는 없었다.
쿵-
해머의 머리가 바닥에 닿자 기수는 그것을 밟고 뛰어올랐다.
지이익-
검끝에서 피가 튀었다.
기수가 내리친 검이 루세프의 가죽 아머를 찢었고 피가 튄 것이다.
상처는 깊지 않아 보였지만 먼저 피를 보인 것은 루세프 쪽이었다.
“아!”
구경하는 사람들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음…….”
나지막한 신음.
상처에서 오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상처에서 퍼져오는 다른 아픔이 있었다.
검에 스친 상처 주위 혈관들이 검붉게 부풀어 올랐다.
‘이건 독이 아니군.’
가슴팍에 난 상처가 욱씬거렸지만 루세프는 적이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루세프는 눈앞에 다가온 적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쾅-
그의 이마는 단단한 비늘이 있었고 이것은 과거 드래곤의 비늘이라 불렸던 것.
엄청난 소리와 함께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찌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