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삐익- 삐익-
사방에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단장님, 상단 지구에 사람이 깔렸답니다!”
“보내고 싶지만 사람이 없어.”
지각 울림 이후 수도는 경계 태세였다.
수도 방위군까지 총 동원되어 실종자 수색과 부상자 이송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체 저놈들은 뭐란 말인가.”
구호반을 맡고 있던 단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귀족 저택 단지와 상업 지구에서 싸움을 벌이는 집단.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단장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국이 망할 징조인가. 저런 괴이한 것들이 왜 지금 나타난 거지.”
“단장님, 의료원에서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수 없답니다.”
“그럼 빈집들이라도 써! 책임은 내가 진다!”
지진 이후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 중 일부는 수도를 벗어났다.
언제 다시 지진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덕분에 심심치 않게 빈집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잠겨 있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 부상자들을 눕혔다.
쿠구궁-
미약한 진동이 집을 강타했다.
후두둑-
지붕에서 흙과 먼지가 떨어졌다.
부상자를 운반해 온 구조반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대체 군인들은 뭘 하는 거야?”
사람들의 불평과는 다르게 군대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복구반에서 연락은?”
“현재 8할 정도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황실과 방위군에서도 싸움을 벌이는 존재들을 확인했다.
5황녀의 지휘 아래 황제를 비롯한 황실은 전부 대피했다.
군대를 투입해 싸움을 벌이는 자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싸움의 경과를 지켜보곤 자신들이 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구반에 마법사들을 더 보내!”
“가용 인력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더 보내려면 황실 마법사들을 보내야 합니다.”
“상관없다. 마법진의 복구를 최우선으로 하도록!”
5황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수도를 헤집고 다니는 자들을 막으려면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지진이 일어나며 수도를 보호하고 있던 대마법 방어진에 손상을 입었다.
그 결과 지금 싸움을 벌이는 자들이 난동을 부릴 수 있었던 것.
무력 개입을 할 수 없다면 마법진의 복구가 최우선 작업이었다.
황궁을 엄호하던 마법사들도 복구반에 투입되자 복구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황녀님, 복구가 모두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저놈들을 당장 땅에 처박아 버려!”
황녀에 외침에 마법사는 마법진 위에 마나석을 올려놓았다.
우웅-
황궁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대마법진의 시작점은 황궁.
황궁에서 시작된 빛은 큰 대로를 따라 퍼져 나갔다.
도시 곳곳의 랜드마크를 지나 퍼져나간 빛은 수도를 에워싸는 형식으로 번져 나갔다.
빛이 마법진의 형태를 만들자 밤하늘로 빛이 쏘아졌다.
쿵-
태훈은 전신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에 휘청였다.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내부에 있는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자 놀라며 다급히 땅으로 내려왔다.
적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땅으로 내려와 헐떡였다.
‘마법진이 복구가 된 건가.’
그는 도시에 들어오면서 부서진 건물들을 보았다.
그 덕에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아 플라잉 마법으로 도시에 진입할 수 있었다.
“크윽, 몸이 무거워.”
“마법을 그만둬. 결계가 다시 작동했다.”
“쳇.”
헤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헤라의 몸이 수축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으론 돌아가지 못하고 흉측함은 그대로였다.
“그럼 우리 친밀하게 몸으로 대화해 볼까?”
깍지를 끼고 관절을 꺾으며 헤라가 다가오자 태훈은 검을 겨누었다.
“멈춰라!”
그때 사방에서 병장기를 쥔 무리들이 다가왔다.
싸움을 지켜보다 마법진이 발동하자 진압을 하러 온 기사들과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집들이 부서지고 부상자가 나오는 것을 보며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살벌한 분위기가 주위를 감쌌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
모여든 자들은 수백에 달했고 전원 검과 활로 무장하고 있었다.
“포기해, 마법진이 발동한 이상 한계가 있어.”
태훈의 항복 권고에도 헤라는 웃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늘어났다고 기고만장해서는.”
헤라가 갈고리 같은 손톱을 치켜들며 위협하자 홀든이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됐어, 여기까지다.”
“뭐? 이깟 놈들한테 설마 겁먹은 거야?”
“애당초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하는 게 아닐 텐데? 우리의 목적은 달성했다.”
“난 결판을 내야겠는데. 너부터 찢어줄까?”
헤라가 도발하자 홀든은 주박을 이용했다.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헤라가 휘청였다.
“이 자식…….”
“이탈한다.”
홀든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을 향해 던졌다.
펑-
삽시간에 퍼지는 연기.
밤인데 연기까지 퍼지자 순식간에 주변은 한치 앞도 보기 어려워졌다.
태훈은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급하게 검에 힘을 모아 휘둘렀다.
후웅-
풍압에 의해 연기가 사라졌지만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그는 진심으로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약을 먹었어야 했어!’
그는 자신의 안일함을 자책했다.
마법진이 가동되는 순간 항복 권유 대신 바닥에 때려눕혔어야 했다.
“당장 무기를 버려!”
연기가 사라지자 사라진 두 사람 대신 그를 잡겠다며 병사들과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때 달빛이 현장을 비추었고 태훈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를 알아본 몇몇 기사들이 다급히 검을 거두었다.
“공왕님 아니십니까?”
“공왕?”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수도를 쑥대밭 만든 무리 중 하나가 연합군 사령관으로 있는 공왕이라는 것에 당황했다.
“비켜!”
태훈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자들을 밀쳤다.
그러곤 황궁으로 향하는 길에 달려오는 마차와 마주했다.
“그대는 공왕이 아닌가?”
마차에서 얼굴을 내민 것은 5황녀였다.
마법진이 발동되는 것을 보고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제 아내는 어떻게 된 겁니까?”
“미안하군, 그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뮤즈를 수도에서 빼는 날 태훈은 개인적으로 황녀에게 서신을 보냈었다.
수도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그녀뿐이었기에.
“자네가 싸움을 벌인 건가?”
“적들은 도망쳤습니다. 황궁으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죠.”
황궁에 도착한 황녀는 태훈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위병으로 위장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오라버니의 반란에 동참했던 자들 중에 수도에 남은 자들이 있었던 모양이야. 소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잔당이 남았던 모양이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합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 수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가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하자 황녀의 눈썹이 씰룩였다.
하지만 다시 평온한 표정을 되찾았다.
“자네가 흥분할 만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여긴 황궁이고 난 황녀야. 예의를 지켜.”
“지금 격식을 따질 때입니까? 제 아내가 잡혀갔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과했어. 그리고 레이첼은 내 친구야. 전력을 다해서 찾고 있어.”
그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화를 삭이지 못한 듯하자 황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분을 가라앉혀. 자네가 휘젓는 바람에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다쳤어.”
“…….”
“적들과 싸웠다는 가정하에 자네 행동은 문제 삼지 않겠어. 하지만 연합군 사령관이 전선을 벗어난 건 문제야. 뭐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삼겠지만.”
“제가 연합군을 맡은 이유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게 무너졌는데 그게 대수…….”
“말을 가려서 하도록 해! 연합군이 애들 전쟁놀이 같아?!”
5황녀가 결국 성을 내고 말았다.
“두 제국과 다섯 개 왕국의 연합이야. 그게 무너지면 연합의 신뢰관계가 무너져! 거기다 신탁의 내용은 애들 장난인가!?”
5황녀의 돌발적인 모습에 태훈은 잠시 주춤했다.
황녀는 자신이 흥분한 것을 깨닫고는 다시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레이첼은 내 모든 것을 걸고 찾도록 하지.”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방금 보셨겠지만 적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경지에 있습니다.”
“지금 쓸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도 장기말은 있어.”
“믿어도 되겠습니까?”
“실패한다면 황궁 앞에 내 목을 달지. 그러니 자네는 자네 역할에 집중해 줘.”
파격적인 말에 태훈의 기세는 완전히 꺾여 버렸다.
여태껏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강인한 모습과 파격적인 말이었다.
‘믿어도 되는 건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황녀가 쐐기를 박았다.
“난 자네 실력을 몰랐어. 하지만 오늘 밤 일로 알게 됐지. 연합군 30만 병력. 아니, 일곱 개 국가의 인간들이 이 연합에 달려 있어. 일반인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순 없을 거야.”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일로 제 마음도 무거워졌죠.”
그는 등을 돌렸다.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심에 찬 그녀의 말에 믿음이 갔다.
“돌아가 보겠습니다. 말을 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지.”
알약을 쓸 순 없었다.
언제 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
‘레이첼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싫지만 지금은 어느 한쪽도 등한시할 순 없어.’
모든 사람이 노력하고 있었다.
총국과 각국에서는 혈안이 되어 마법진을 찾는 중이었고 연합군은 전력 측정 불가의 적들과 대치 중이었다.
어느 한쪽이 무너진다면 레이첼은 물론이고 모두가 위험했다.
* * *
“발사!”
퉁퉁퉁-
발리스타에서 거대한 화살이 쏟아졌다.
협곡으로 들어오던 마장기가 화살을 방패로 쳐내었다.
날이 밝자 오그리아군은 공세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마장기가 앞장을 섰다.
알은 태훈이 부재라는 것을 아침이 되어서야 알았다.
필시 소식이 끊긴 제국.
아니, 아내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수도로 향했다고 생각했다.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알은 사령관이 수도를 직접 살피기 위해 자신에게 임시 위임을 하고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마장기 뒤쪽으로 적 보병들이 보입니다.”
“언데드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언데드들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연합군도 신경 쓸 곳이 줄어 통상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도 마장기를 내보내도록.”
협곡에서 양측의 마장기가 붙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마장기의 싸움에서 인간은 할 것이 없었다.
오그리아 제국의 마장기는 창을 사용했다.
리치는 유리했지만 좁은 협곡에서는 움직임에 제한을 받았다.
연합군 측의 마장기 한 대가 적의 마장기 한쪽 팔을 절단하자 환호가 튀어나왔다.
“밀어붙여라!”
“본때를 보여줘!”
기선제압에 성공한 연합군 측의 사기가 올랐다.
한쪽 팔을 잃은 마장기가 후퇴하며 적의 또 다른 공성병기가 등장했다.
“상대도 발리스타가 나왔습니다.”
“기병 준비해.”
연합군도 마장기를 후퇴시키며 기병을 준비했다.
발리스타가 앞세워져 있는 동안 기병이 적의 선봉을 스피드로 제압할 요량이었다.
오그리아군도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바로 발리스타를 빼며 기병을 앞세웠다.
“작전대로 유인한다.”
연합군의 기병과 오그리아의 기병이 협곡에서 만났다.
서로를 관통하며 수많은 기수들이 바닥에 굴렀다.
연합군은 차츰 밀리는 척 연기를 하다가 철수하기 시작.
그 뒤를 적의 기병이 뒤쫓았다.
“전차 준비!”
격납고에서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두 대의 전차.
한 대는 완성된 상태였고 다른 한 대는 아직 수동으로 탄을 장전해야 했다.
“발사!”
퉁퉁퉁퉁-
퉁- 퉁-
여섯 개의 나무통이 포물선을 그리며 기병에게 날아갔다.
적군도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투석기의 돌덩이가 아닌 나무통인 것을 알고는 웃었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폭발.
펑펑-
나무통이 폭발할 때마다 쇳조각들이 기수와 말에게 쏟아져 내렸다.
“커헉!”
히이이잉-
낙엽처럼 쓰러지는 기병들.
백명이 넘는 숫자가 일순간 쓰러지자 적의 기병들은 당황하며 말고삐를 잡았다.
“계속 쏟아부어!”
퉁퉁퉁퉁-
퉁-퉁-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강철비에 기병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돌진을 하자니 이미 숫자가 줄어 있었고 적의 기병들이 다시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다.
“철수! 철수!”
기병대장의 철수 명령에 오그리아 기병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