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병사들은 이번 출병에 관해 제대로 된 사정을 듣지 못했다.
와중에 황녀가 범인으로 3황자를 지목하자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꼼짝없이 반란군으로 몰리는 거 아냐?”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되어 있던 고위 장교는 소수.
장교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장군, 병사들의 동요가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어서 명령을!”
“뒤에 있는 놈들부터 잡는다!”
사령관은 숫자가 적은 평지에 있는 적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병사들이 뒤로 돌아섰을 때 성벽 위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뜻을 앞에두고 서로 싸우려 하다니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서부군이 돌아보니 성벽 위에 대신관이 서 있었다.
일반인에게 대신관은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대신관은 황제와 비슷한 계층의 사람이었다.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신탁을 앞두고 반역이라니!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싸움을 멈추어라!”
신력을 통해 퍼져 나가는 대신관의 목소리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반역이라는 건 우릴 두고 하는 말인가?”
“그……. 그런 것 같은데?”
서부군은 웅성거렸다.
대신관마저 자신들을 가리키며 반역이라 일컬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카앙- 카앙-
무기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쇳소리를 내었다.
병사들이 무기들을 버리자 서부군 장교들은 당황했다.
“이놈들! 무슨 짓이냐! 당장 무기를 들어라! 반역자 무리들에게 속지 말아라!”
장교들은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 광경을 보던 사령관과 부관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3황자가 정말 실패했나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잡히면 사형이다!”
사령관이 말을 돌리자 뒤이어 그 부관들이 따랐다.
지휘관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자 자신들이 쿠데타에 참여했다는 것을 안 병사들은 안색이 파래졌다.
몇몇 병사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도망치기도 했다.
수도 방위군은 문을 열고 나가 공국에서 온 병력과 함께 서부군을 장악했다.
대열에서 이탈한 자들이 추격조와 몸싸움을 하긴 했으나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황녀는 대신관에게 다가갔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큰 희생없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입니다.”
대신관은 발표 직후 바스테리온 공작을 제외한 세레니스 귀족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알아본 결과 쿠데타의 조짐이 보였고 오그리아의 일이 떠올랐다.
바로 수소문하여 서문까지 즉시 도달한 것이다.
대신관은 이번 일이 황족과의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반란 주모자는 누굽니까?”
“3황자입니다.”
“잡았나요?”
“애석하지만 놓친 것 같습니다.”
“흠, 오그리아에 이어서 이곳까지.”
대신관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총국으로 돌아갔다.
황제는 3황자에 대한 보고를 들었지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처리하라는 말만 남겼을 뿐.
?
대신관 발표 직후.
연합 사령부가 조직되었다.
병력은 세레니스가 15만, 오그리아는 황자가 말한 대로 20만의 병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다른 왕국들은 도합 20만의 병력이 연합 사령부에 동원하기로 했다.
2제국 5왕국의 연합.
55만의 병력과 15대의 마장기.
천 명이 넘는 마법사와 신관.
규모만으로 보았을 때 연합군의 전력은 오그리아의 수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럼 총사령관의 선출 문제이오만.”
“흠…….”
사람들은 전부 눈치를 보았다.
어마어마한 병력을 주무를 수 있는 자리라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전쟁 후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제였다.
“병력 면으로나 동원되는 물자량을 본다면 당연히 본국의 인물이 총사령관직을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탁이 내려온 곳은 이곳이오. 그리고 드래고니안이 따르는 자 역시 제국 사람이고. 당연히 우리 쪽에서…….”
“과거 세레니스 제국의 사람이었지 지금은 독립을 하지 않았나요?”
얀 제국도 태훈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확보한 듯했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자 대신관이 의견을 내었다.
“크로이츠 공왕에게 맡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크로이츠 영지가 오그리아와 제일 가까운 지역이고 그곳은 요새화되어 있습니다.”
“크로이츠 공국…….”
하지만 반대도 있었다.
얀 제국편을 드는 왕국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이유인 즉슨 영토라곤 손바닥만 하고 지위가 낮다는 이유였다.
거기에 세레니스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곳이니 얀 제국 진영 측에서 반대에 나선 것.
하지만 헤이링 황자는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그 결정에 다른 왕국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관이 크로이츠의 이름을 연합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올리는 것으로 회의는 종결되었다.
* * *
오그리아 제국의 북쪽으로 거대한 무리가 나타났다.
망을 보던 병사는 미리 연락을 받은 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관문을 열었다.
증원을 온 헬렌과 유바의 군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큭! 이게 무슨 냄새야!”
썩는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제국 병사들은 코를 틀어막으며 물러섰다.
관문으로 들어오는 병사가 늘어날수록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참다못한 기사 하나가 관문을 지나던 기사 복장의 어깨를 잡았다.
“어이,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똥밭에서 구르다 온 건가?”
덜컥-
상대 기사의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일반적인 각도로 젖혀진 것이 아니라 뼈가 빠진 것 같은 각도였다.
고개를 돌린 상대의 얼굴을 본 기사는 화들짝 놀랐다.
피골이 상접하고 까맣게 된 피부.
그리고 초점없는 동공.
“어……. 언…….”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한 기사가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어허, 거기까지.”
“당신은…….”
기사의 팔을 잡아 검을 뽑지 못하게 만든 자가 있었다.
수도에서 온 귀족.
뚱뚱한 그는 가느다란 콧수염을 만지며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들은 우리 편이다. 괜히 검을 뽑았다가 적으로 오인당하지 않게해.”
“언데드들을 통과시킬 순 없습니다!”
“우리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적의를 드러내는 순간 바로 자네에게 달려들 걸세.”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상대가 언데드임을 알자 물러섰다.
언데드 군단은 아무 말 없이 걷는데 열중이었다.
“설명을 해주십시오!”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죽음의 군대. 그야말로 최고의 병사지.”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어째서 헬렌 왕국과 유바 왕국 병사들이 언데드화 되었냔 말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을 바쳤네.”
“바치다니. 자진해서 언데드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제국 기사들과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자진해서 언데드가 되었다는 말을 믿기 힘들었다.
“잘 생각해 보게. 이 전쟁에서 패하면 다음은 없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들은 고귀한 길을 택한 것이지.”
“이게 고귀한 길이라고요?”
기사는 다시 한번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언데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도…….”
“으음, 아니야. 헬렌 놈들과 유바 놈들은 우리에 비해 열등하지. 그런 그들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
잠시 후.
말을 탄 자 중에서 특이한 차림을 한 자가 관문을 통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드를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였다.
그를 본 백작은 반갑게 달려갔다.
“어서 오시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22만.”
“22만 명입니까? 훌륭한 숫자군요.”
“미처 회수하지 못한 녀석들이 있었다.”
백작은 후드의 인물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동부 전선까지 통과는 문제 없을 것이오.”
그 말에 후드의 인물은 별 대답 없이 다시 말을 몰았다.
후드가 떠나자 기사가 다가와 누구냐며 물었다.
“흑마법사다. 이 언데들을 통솔하고 있지.”
“흑마법사? 이 많은 숫자를 저 한 명이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그만한 실력자다.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나 다름없어.”
백작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22만의 언데드 군단은 수많은 관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지나쳤다.
파견 나온 귀족들이 그들의 통행을 보증했다.
수도와 가까워지며 일반 시민들도 그들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마을에 있던 신전 측의 성기사와 신관들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성기사의 자랑힌 순백의 플레이트 갑옷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신관들은 무표정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수도를 돌아 동부 전선으로 향했다.
오그리아 동부 전선에는 중앙군이 두 곳에 진지를 마련하고 지방 영지군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22만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나는 악취와 병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언데드 군단을 멀찍이 배치시켰다.
언데드 군단이 도착한지 며칠 뒤.
수도 방면에서 또 한 무리의 군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소수였다.
하지만 그 정체를 본 순간 사람들을 경악했다.
대부분 그들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했다.
그 모습을 본 후드의 인물은 비웃었다.
“신에게 기도라.”
소수의 무리를 끌고 있떤 다른 후드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수고했다. 헤라 님은?”
“수도에서 황제와 만나고 계십니다.”
“우리는 헤라 님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시기는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22만의 언데드 군단과 15만의 오그리아 제국군은 얼어붙은 땅을 깨가며 요새를 지었다.
“공작님, 질문이 있습니다. 대체 저건 뭡니까?”
귀족 중 하나가 후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그리아 제국군이 전초기지와 요새를 만들고 있는 동안 언데드군은 탑을 만들고 있었다.
“나도 모른다. 황제 폐하도 저들이 하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 하셨어.”
“그리고 그 헤라라는 여자는 대체 뭐하는 자입니까? 왜 그런 자가 총사령관직을.”
헤라라는 여성이 도착한 뒤로 총사령관이 바뀌었다.
지휘를 하고 있던 공작은 부사령관으로 밀려났다.
공작을 비롯해 오그리아 제국의 귀족들은 그들을 불청객 취급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명령으로 참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내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미 돌이킬 수 없잖습니까.”
공작은 쿠데타 세력 중 하나였다.
부패한 황족을 밀어내고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의지하에 쿠데타에 가담했었다.
하지만 국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세금을 줄인다던 약속은 전쟁이 끝난 뒤로 미루어졌다.
황제만 바뀌었을 뿐 나라가 바뀐 것은 없었다.
거기에 언데드까지 끼어드니 공작으로서는 찜찜한 마음만 들었다.
“총사령관님 들어오십니다.”
막사 밖의 병사 목소리에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막을 젖히고 들어온 것은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진 여성.
검은 새의 깃털로 만든 두꺼운 코트가 머리와 대조적이었다.
“공작, 출병 준비를 하라.”
“그게 무슨 소리오?”
헤라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귀가 먹었어? 출병 준비를 하라고.”
“지금? 이 겨울에 전투는 무리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공작은 완강히 반대했다.
군인 출신인 그는 이 겨울에 전투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사들의 몸은 움츠러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병력이 열세인 쪽은 자멸하는 행위였다.
“선두는 언데드 군단이 앞장설 것이니 그런건 걱정 안 해도 돼.”
“그게 문제가 아니오. 이 눈보라에선 국경까지 가다가 쓰러지는 병사가 태반일 것이오.”
‘후, 참자. 그분도 말썽은 일으키지 말라고 하셨어.’ 헤라는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에 경멸스런 눈빛을 보였다.
“나약하군. 그렇다면 눈보라가 그치는 대로 출발할 터이니 언제든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