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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92화 (92/150)

92화

태훈이 시급히 자치령으로 돌아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동이 터올 무렵 도착한 그는 쉴 틈도 없이 공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드워프들이 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어, 왔나.”

“얼마나 진척됐죠?”

“직접 보게.”

구레드르는 자신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물체를 보여주었다.

“얼추 외형은 완성된 것 같군요.”

“안쪽은 자네가 작업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봐뒀네.”

“수고하셨습니다.”

태훈은 구레드르에게 잠시 보자는 식으로 눈짓을 보였다.

그는 망치를 내려놓고 그를 따라 한적한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인가?”

“설계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계를 바꾸다니?”

태훈은 마차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석유가 나온 이상 가격이 높은 마나석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연료 체계를 이용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그럼 저건?”

“저것도 사용해야죠. 힘들게 만든 건데.”

물론 석유를 바로 쓸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석유를 정제해 최적의 연료 형태로 만드는 과정도 필요했다.

다행히 태훈에겐 증류로 원유를 나눌 수 있다는 기초지식이 있었다.

“새로운 연료 체계라는 게 뭔가?”

“내연기관이라는 겁니다. 열을 이용하는 건데 증기기관이라고도 하죠.”

“열? 그런 게 저 무거운 걸 움직여?”

“나중에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단 저 녀석 완성에 신경 써주세요.”

구레드르를 뒤로하고 태훈은 파케 영애를 찾아갔다.

그녀에게 상회 이야기를 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그쪽에서 메인 연금사를 원할 거야.”

“그건 왕자님이잖아요.”

“그쪽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어. 만약 상회가 넘어가게 되면 파케가 연기를 좀 해줘야겠어.”

“제가요?”

“시간만 끌어주면 돼. 그리고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라.”

태훈은 증기기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다 듣고 난 파케 영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 있긴 했어요. 얀 제국은 연금술을 국가적으로 지원한다고요. 그게 사실일 줄은…….”

“더 성장할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만약 지내기 불편하다면 언제든 빼내줄게.”

“왕자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그건 알아줘. 나랑 있을 때 보고들은…… ”

“걱정 마세요. 제 몸무게의 절반은 입 무게인 걸요.”

파케는 걱정 말라며 웃었다.

태훈은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가지가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다.

‘북쪽의 겨울은 혹독해. 이번 겨울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돼.’

그때 창가로 흰 것이 보였다.

그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 * *

오그리아 제국은 선전포고를 한 뒤 국경을 봉쇄했다.

오그리아가 국경을 봉쇄하자 오그리아를 통해 타국과 교류를 하던 두 왕국은 자연스레 같이 국경이 막혔다.

오그리아의 영토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헬렌 왕국와 유바 왕국은 오그리아가 겨울이 끝나는 대로 진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오그리아에선 한겨울에 병력을 지원하라 명령했다.

“10만?!”

헬렌 왕국의 국왕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습니다. 황제는 이달 말까지 병력을 파견하라 했습니다.”

오그리아의 사신은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국왕 옆에 있던 장군이 국왕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폐하, 10만이면 귀족들의 영지군을 동원해도 무리입니다. 이건 징병까지 해야 하는 숫자입니다.”

“으음…….”

국왕은 신음을 흘렸다.

이번 전쟁이 나라의 국운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10만이라니. 우리에겐 너무 버겁다.”

“그 말은 새 황제에 대한 항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까?”

“항명이라니. 현실적인 숫자를 말하라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오그리아의 운명을 걸고 하는 전쟁입니다. 헬렌 왕국은 다른 노선을 걷겠다는 겁니까?”

“곧 겨울이다. 어찌 지금 당장 10만이나 되는 군대를 동원하라는 것인가?”

“봄이 되면 진격을 할 터인데 그 전에 합을 맞춰보자는 것이 황제 폐하의 의견입니다.”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맞추려면 당장 봄에 일할 자들이 없다.”

봄이면 농사를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오그리아 제국이 말하는 숫자를 맞추다 보면 일손이 부족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자원은 적에게서 탈취하면 그만입니다. 설마 패전을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사절은 물러서지 않았다.

국왕이 옆에 있던 신하에게 난감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신하가 대신 나섰다.

“10만은 무리다. 당장 전쟁을 할 것도 아니고 순차적으로 수를 맞추겠다.”

“정녕 그것이 헬렌의 공식적인 답입니까? 유바 왕국과는 비교가 되는군요.”

“유바? 그들은 승낙했단 말인가?”

“그들은 10만의 군대를 약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2만의 추가 병력을 약속했습니다.”

유바 왕국은 헬렌 왕국 말고도 오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었다.

“12만이라니. 남자라면 모두 동원하겠다는 것인가?”

“유바는 현명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오그리아가 두 제국을 제패하는 날 그 충심은 보답받을 것입니다.”

“으음…….”

이번엔 신하가 신음을 흘렸다.

헬렌과 유바는 서로에게만 으르렁 대던 사이였다.

오그리아가 자신들을 감싸는 형국으로 국토가 펼쳐져 있었기에 달리 적이 없던 것이다.

그랬기에 서로의 전력을 잘 알고 있었다.

12만의 병력은 싸울 수 있는 연령대의 모든 남자를 긁어모았다고 할 수 있는 숫자였다.

“폐하, 유바에게 군비 준비로 밀리게 되면 추후에 저희 쪽이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고 끌어모은 것이겠지. 하지만 12만이라니…….”

국왕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우리도 12만의 군사를 준비하지.”

“폐하?!”

신하가 놀랐으나 국왕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새 황제에게 그렇게 전하게.”

“현명한 결단입니다. 황제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대의 주인에게 우리의 결의를 꼭 전하도록.”

사신이 물러가자 신하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12만의 군사를 보내게 되면 나라가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그건 유바 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서로 장기 말이 없으면 지켜볼 수밖에 없을 터. 오그리아가 이기는 쪽에 우리는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다.”

“예, 폐하…….”

?

함박눈이 펑펑 흩날리는 날.

헬렌 왕국과 유바 왕국의 총합 24만의 군사가 오그리아 제국으로 향했다.

“어우, 추워. 이런 우라질 놈들은 뭔 한 겨울에 훈련을 한다고.”

“입 닫아라. 체온 새어 나간다.”

“유바 놈들. 사타구니가 얼어붙어 다 떨어져 버려라.”

“네놈 사타구니나 챙겨.”

양국 군대는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동하고 있었다.

다만 눈발이 거세어 서로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장군님, 눈발이 더 거세어집니다. 곧 해도 질 텐데 다시 내려갔다가 아침 일찍 다시 오르는 게.......”

부관 하나가 상관에게 요청했다.

“그건 안 돼. 유바 놈들보다 먼저 제국에 도착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정상에는 한밤중에 도착하게 됩니다. 거기선 쉴 곳이 없습니다.”

“안 자고 걸으면 된다. 방한 준비는 철저히 하지 않았나.”

“방한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아무도 이 겨울에 산을 오른 적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한겨울의 산은 악마보다도 악랄하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눈까지 내려선…….”

부관들의 말대로 그 누구도 눈이 오는 산을 오른 적이 없었다.

북쪽 지방의 산이라 한밤중의 산 공기는 칼에 베이는 것보다도 아렸다.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할 때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어!”

“…….”

오그리아 제국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큰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지방 출신의 부관이나 병사들은 걱정이 앞섰지만 장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음?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무슨 소리? 바람 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집에 두고 온 네놈 마누라가 바람피는 소리?”

“이 미친놈들아, 잘 들어보라고.”

병사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잠시 후 한 병사가 말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메아리 방향을 보니까 저쪽인데?”

“저쪽은 유바 놈들이 있는 능선 아니야?”

발이 얼어붙지 않게 계속 걸으면서 사람들은 반대편 능선을 바라보았다.

메아리 소리는 점차 커졌다.

그리고 그 메아리 소리가 비명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소리는 모든 군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유바 진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같습니다.”

“설마 눈사태?”

부관들은 겁먹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외길이라 눈사태를 만나면 꼼짝없이 벼랑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아니야. 아직 그 정도로 높이 올라오진 않았어.”

“그럼 이게 무슨 소리야? 왜 비명을 지르는 건데?”

대열이 멈추고 소란스러워졌다.

그 순간 곳곳에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습이다!”

“뭐? 적!?”

병사들은 병장기를 꺼내어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사방은 온통 새하얀 색.

눈보라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았다.

“크왁!”

“으악!”

눈보라 속에서 무언가가 그들을 덮쳤다.

검은 그림자를 본 병사들은 그것들이 늑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언데드! 언데드다!”

병사들은 상대가 언데드임을 알고 병장기로 맞서기 시작했다.

대열 전 구간에서 칼부림이 일었다.

“아니, 왜 이런 곳에 언데드가 있는 건가!”

“놈들은 단순한 언데드가 아닙니다. 구울입니다!”

“구, 구울?!”

좀비보다도 빠르고 상대를 하위 언데드인 좀비로 만들 수 있는 구울은 쉽게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그들에겐 신관이 없었다.

당연히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는 전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으악!”

“밀지 마! 떨어진다고1”

외길의 폭은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이었다.

왼쪽에서 밀려오는 언데드를 상대하느라 진열이 밀리자 오른쪽에 있던 병사들 일부가 벼랑으로 내몰렸다.

“크억!”

“젠장, 손이 얼어붙었어!”

추위에 몸이 얼어붙은 병사들은 몸놀림이 느렸다.

거기에 방한에 단단히 준비하라고 한 만큼 옷이 두터워 몸놀림이 둔했다.

삽시간에 언데드와 아군이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건 매복입니다!”

“멍청한 놈! 언데드가 매복 따윌 할 리가 없잖나!”

장군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검을 빼 들었다.

피부가 말라비틀어진 언데드들이 초점 없는 눈으로 달려들었다.

서걱-

실력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이 구울의 몸을 베어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들의 대다수 무기들은 평범한 무구들.

미스릴이 들어가 있는 무구는 극 소수였고 오리진을 다루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머리가 잘리지 않은 구울들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상황은 유바 진영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이 더 먼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악조건이었다.

힘에 부친 유바군 진영의 장군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에잇, 마법사들은 공격 마법을 써라!”

“안 됩니다! 그랬다간 눈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부관의 충고에도 장군은 눈앞까지 구울들이 달려들자 눈이 뒤집혔다.

마법사들이 파이어 볼을 난사하자 먼 곳에서 달려오던 구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쿠구구구구-

부관의 충고대로 높은 지대의 눈들이 파공음을 맞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들과 싸우고 있는 병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미약한 땅의 진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새하얀 눈덩이들이 유바군을 덮쳤다.

헬렌군은 다행히 마법을 난사하지는 않았지만 병사들 태반이 구울에게 죽음을 당했다.

설상가상 바로 좀비로 변해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을 공격했다.

결국 병사의 1할은 낭떠러지로 떨어졌고 남은 병사들은 전부 구울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24만의 병력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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