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91화 (91/150)

91화

제국 수도의 한 저택.

자치령으로 떠나기 전 지냈던 저택이었다.

집무실이었던 곳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헤이링 왕자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차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 옆에는 그를 호위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태훈의 옆에는 알과 유리아가 지키고 있었다.

‘수호 무사라고 했던가. 영락없는 동양복식이군.’

지구의 아시아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복식.

거기다 무사라는 호칭을 들은 태훈은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차가 좋군요. 돌아갈 때 꼭 가져가야겠어요.”

“선물로 챙겨 드리죠. 그건 그렇고 제 지분을 요구하신다고 하셨던데.”

“음, 요구라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 어디까지나 서로가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으니 거래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네요.”

헤이링 황자는 나이에 맞지 않는 대화술을 가지고 있었다.

태훈은 알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당히 놀랐다.

증기기관과 석유로 추정되는 물건.

“저에게도 한번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훈이 관심을 보이자 헤이링 황자는 가지고 온 상자를 꺼냈다.

물건이 눈앞에 나타나자 태훈은 유심히 살폈다.

축소판인 만큼 낼 수 있는 힘이 크지 않았고 물건을 이루는 금속 또한 가벼운 소재였다.

‘축소판이긴 하지만 확실히 증기 기관이다. 안에 든 것도 석유가 맞는 것 같은데.’

석유는 부싯돌의 불꽃으로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기계를 살펴보니 원료가 들어 있는 통에 촉매제로 보이는 가루가 있었다.

‘이건 화약이군. 여기 화약은 품질이 낮아서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이곳에도 화약은 있었다.

하지만 그 순도가 낮은 저품질 이었기에 화기에 적용시키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불을 붙이기 위한 촉매제로는 충분했다.

태훈이 기구를 유심히 살피자 헤이링 황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눈에 알아보시는 것 같군요.”

“원리는 이해했습니다. 얀 제국의 기술은 놀랍군요.”

“원리를 아셨다니 이 장치의 위대함을 잘 아시겠군요.”

태훈도 증기기관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편리한 마법 회로라는 것이 존재했다.

거기다 석탄이 없고 품질 낮은 화약.

일반 땔깜을 사용해 고화력을 낼 수 없었으니 증기기관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얀 제국에서 석유를 발견하고 시추까지 성공한 것.

다른 곳을 더 조사해 보면 석유는 있을 가능성이 많았지만 기술이 없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해 시추까지 한 건가?’

태훈은 문득 얀 제국에 대해 무한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단한 기술을 가지셨군요. 얀 제국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태훈의 말에 헤이링 왕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미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는데 굳이 저희 상회를 원하시는 이유가…….”

“저희는 약이란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세히는 모르나 약이라는 것은 연금술에 기초한 물건이 아닌가요? 필시 상회에 실력 좋은 연금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연금사는 있었다.

파케 영애가 상회의 메인 연금사였지만 모든 지식은 태훈에게 있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황자는 태훈이 단순한 상회의 지배인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저희는 레드크로스 상회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의 기술과 레드크로스 상회의 기술. 이 두 곳의 지식과 기술이 합쳐진다면 천하제패도 문제는 아니겠죠.”

“말씀은 감사하나 상회의 설립 취지는 대중을 위한 것입니다. 얀 제국이 제 지분을 가져가게 되면 독점 우려를 지울 수가 없군요.”

“많은 국가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죠. 그런 상황에 많은 국가들이 대가도 없이 운명을 걸고 신탁에 뛰어들까요? 거기다 저희가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읊는 황자를 본 태훈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녀석 혼자서 생각해 낸 것인가? 아니면…….’

태훈은 옆의 두 무사를 유심히 살폈다.

전쟁을 각오하라는 신탁이었고 그것을 위해 모이는 수뇌부들의 회의.

그런 자리에 10살 남짓한 아이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자가 아닌 다른 책략가가 있던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책사 정도의 인물이 충분히 예상되었다.

‘이 자리에는 나오지 않은 것인가.’

태훈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가로 제 지분을 내놓았습니다. 다른 국가들도 제 제안에 솔깃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장 코앞이 겨울입니다. 돈보다는 먹고 살 문제를 걱정하는 국가도 있죠.”

카나리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태훈은 알에게 로텐바르의 말을 전해 듣고 굉장히 실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텐바르가 자신을 압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그는 얀 제국 이외에 식량이 넉넉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여유가 있다는 곳은 없었다.

“얀 제국은 신탁보다는 국익이 우선인가 봅니다.”

“저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아주세요. 비단 저희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 않을까요?”

물론 태훈도 그것을 대비해 알에게 거래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다만 얀 제국이 카나리스를 압박하면서 톱니바퀴가 어긋나 버렸다.

“그럼 지분을 넘기면 뭘 해주실 겁니까?”

“모든 국가에 지분에 걸맞는 금전적 보상을 해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편성될 연합군에 20만의 병력을 약속드리죠.”

“20만?”

통 큰 제안에 태훈은 솔깃했다.

20만의 병력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단순한 국력을 자랑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신탁의 내용이 정말 위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꽤나 파격적인 제안이군요.”

“신탁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래가 없는 것 아닌가요. 저희도 사안의 중대성은 인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실리는 확실히 챙기겠다는 거군요.”

헤이링 황자는 말없이 웃었다.

사실 태훈으로서도 그렇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지분을 내어주고 그에 걸맞는 상회를 다시 세우면 되었다.

지금은 금전적 여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약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은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거래를 하도록 하죠.”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다행이네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셨어요.”

헤이링 황자는 손을 내밀었다.

태훈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헤이링 황자가 돌아간 뒤에도 태훈은 저택에 남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른 사람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태훈은 그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입니다.”

로텐바르는 헤이링 황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알은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안 놀라시는군요.”

“알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

“믿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형님이 중간에 끼어들 줄은 몰랐습니다.”

회의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리아가 어깨를 들썩였다.

형님이란 단어에 놀란 듯 알을 쳐다보았다.

알은 유리아에게 잠자코 있으라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국왕이란 자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구나.”

“형님 성격은 제가 잘 알죠. 이해는 하지만 섭섭함은 어쩔 수 없군요.”

“이야기는 잘 풀린 것 같구나.”

“상회는 제 손을 떠났습니다. 조만간 공식적으로 상회의 대표는 바뀔 겁니다.”

“대표는 그 아이가 되는 것인가?”

“아마도요. 오늘 형님을 부른 것은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태훈은 로텐바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로텐바르가 그것을 받아 드니 서류 한 장이었다.

“어디에 쓰려고?”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벌인 짓이 있으니 싫다고는 하지 않으시겠죠.”

“그냥 줄 수는 없다.”

“물론.”

태훈이 손짓하자 알과 유리아가 방 한쪽에 있던 상자들을 가져왔다.

20리터짜리 생수통이 들어갈 만한 큰 상자.

로텐바르가 열자 대금화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부족하면 말씀하시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볼일은 그것뿐인가?”

“언젠가는 알게 될 때가 있겠지만 그때까진 누님에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로텐바르는 사람을 불러 상자를 옮기게 했다.

문을 나서려던 로텐바르는 잠시 멈추어 섰다.

“돌아올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다.”

덜컥-

모두가 나가자 저택에는 태훈과 알, 유리아만이 남았다.

“카나리스의 왕족이셨습니까?”

“그래서 뭐 바뀌어?”

“아닙니다. 그냥 물어본 것뿐이었습니다.”

유리아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알, 나는 이대로 돌아간다. 내일 반드시 결의를 받아내.”

“알겠습니다.”

태훈은 보스완 백작가에 들러 레이첼의 안부를 확인했다.

번즈 남작가와 탈론에게도 들러 일의 진행 상황을 알렸다.

번즈 남작가는 사설로 고용한 용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거기에 황실 수호 기사단도 있었다.

태훈은 황실에서 나온 기사를 향해 주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태훈은 황궁 근처에서 상대를 만날 수 있었다.

태훈의 마차 옆으로 다른 마차가 붙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이군. 제부.”

“제부?”

“레이첼의 남편이면 그렇게 불러도 되지.”

그녀는 5황녀인 피리아였다.

둘은 마차의 창문을 걷었다.

“이야기는 들었어. 네 녀석도 남자 구실은 하는구나.”

“감사합니다. 그보다 3황자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 말에 피리아는 잠시 낙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말한 것이 사실이더군.”

“움직임이 있었군요.”

태훈은 결혼식에 찾아왔던 그녀를 따로 불러냈었다.

그러곤 3황자와 관련된 일련의 정보들을 전했다.

황자와 황녀들끼리의 알력 다툼은 늘 있는 일.

그것은 생존과도 관련이 있었다.

앞뒤가 들어맞는 이야기와 3황자에 대한 공공연한 소문들을 알고 있었기에 수긍은 하는 듯했다.

그리고 부탁한 것이 3황자의 동태를 살피는 것과 증거를 모아달라는 것.

“그럼 3황자를 공식적으로 잡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유감이지만 그건 불가능해. 그녀석의 돈을 안 받아먹은 관리가 없어.”

“황제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버님이 집안싸움을 용납할 것 같나?”

“그럼 제가 공작에게 3황자에 대해서 알리면 일이 수월…….”

“그건 참아줘.”

피리아가 반대를 하자 태훈이 어째서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외적으로 집안 망신이 되는 것은 안 될 일이지.”

“촌각을 다투는 일입니다. 자칫하다가 놈들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모든 국가가 전력으로 소탕을…….”

“나도 눈과 귀가 있어서 그런 것쯤은 알아. 하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너도 그렇게 믿고 나한테 이야기해 준 것 아냐?”

“제 기우였나 보군요. 황녀님을 믿습니다.”

“너는 그 녀석이나 신경 써줘.”

“안 그래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아내를 잘 부탁합니다.”

“볼일은 그것뿐인가?”

“번즈 남작가에 대해서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조심하십시오.”

“내일?”

“내일 신탁에서 결의가 있을 겁니다. 적들이 국가를 초월하는 연합군 결성을 잠자코 지켜보지는 않겠죠.”

“녀석이 움직인다면 내일이라는 건가?”

황녀가 말하는 그 녀석이라는 것은 3황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전 지금 바로 돌아갑니다. 수도는 맡겨도 되겠습니까? 전력이 필요하다면…….”

“그 녀석을 싫어하는 건 나 말고도 있으니 그런 걱정은 넣어둬.”

“좋습니다. 그럼 이만.”

태훈의 마차가 먼저 출발했다.

그러면서 뮤즈를 불렀다.

“뮤즈, 보스완 백작가를 지켜.”

“지키라는 것은 누굴?”

“내 아내. 최우선 보호 대상이다.”

보스완 백작가는 철통 같은 경비 중이었다.

바스테리온 공작과 대신관이 기사들을 파견하고 있어 황궁만큼이나 경비가 삼엄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했던 대로 내일이 고비였기에 태훈은 뮤즈를 남겨두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