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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69화 (69/150)

69화

올리버의 말에 태훈은 피식 웃음이 났다.

‘대금화 350닢에 내가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기를 친 것은 맞았으나 물증도 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에 웃음이 났다.

적어도 자신의 소문을 들었으면 바스테리온 공작이나 오일 경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도 뒤에 누군가가 있나?’

태훈은 올리버를 잠시 빤히 처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물건.

그의 손에 껴진 반지의 문양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유리아도 그것을 보았는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남작님, 저건…….’

‘나도 봤어.’

반지에 새겨진 것은 황가의 문양이었다.

애시당초 황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황가의 문양을 사용하는 것은 사형감이었다.

문제는 제국의 귀족이기도 한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그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반지를 눈치챈 것을 알았는지 올리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승자의 웃음이었다.

“어떻게 제 말이 이해가 되셨는지?”

“음, 몬스터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구경을 했다는 것으로 이 전표는 돌려드리죠.”

들키지도 않은 짓을 인정하기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사정도 모르고 싸움을 걸 수는 없는 일.

올리버도 귀족의 자존심까지는 뭉개기 싫었는지 물러섰다.

“음, 제가 비약이 너무 심했나 봅니다. 투기장을 운영하다 보면 날이 설 때가 있어서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구경하러 와도 되겠죠?”

“그럼요, 투기장은 모두에게나 열려 있는 축제의 장소입니다.”

투기장을 나왔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퉤!”

투기장을 향해 침을 뱉은 태훈은 턱을 쓸어내렸다.

“뒷배가 황제라 이건가?”

“일전에 재무부에 속해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리아는 재무부에서 세금 담당 업무를 맡았을 때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하이디 상회의 회계 담당자가 제3왕자의 기사와 함께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럼 뒷배가 황제가 아니라 3왕자?”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암암리에 제3왕자가 불법적인 일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고리대금, 불법 도박장, 밀수…….”

“그냥 불법적인 건 다 한다는 말이네.”

유리아는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재무부에서도 알면서 눈감아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재산이 상당하겠네. 하이디 상회의 주인이 저 올리버란 사람이야?”

“등록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금은 3왕자에게 들어가겠죠.”

“저놈은 바지 사장이라 이건가.”

3왕자를 상대로 싸움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분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뭔가 골탕 좀 먹이고 싶은데. 적어도 대금화 350닢 값은 갚아주고 싶어.’

워낙 불법적인 일을 많이 한다 들었으니 앙갚음할 방법은 많았다.

다만 지금까지 뒤를 봐준 여러 기관과의 커넥션 때문에 까발린다 하더라도 덮어질 게 뻔했다.

‘빼도 박도 못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긴데.’

고민을 하며 걷는 동안 태훈의 앞으로 수레가 지나갔다.

쇠창살로 된 우리 안에는 노예로 보이는 자들이 갇혀 이송되고 있었다.

그중에는 오크와 사투를 벌였던 청년도 있었다.

“유리아, 저놈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봐.”

“부녀자 연쇄 살인범입니다.”

“부녀자?”

“네, 그것도 귀족 부녀자만 골라서 범죄를 일으킨 놈이죠.”

“배짱 좋네. 평민일 거 아냐.”

살인범이라는 이야기에 태훈도 청년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청년은 매우 지친 듯 보였지만 눈매만은 살아 있었다.

‘생긴 건 살인자랑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하긴 전생에서도 허우대 멀쩡한 놈이 범인인 경우도 많았지.’

그러다 청년이 잡힌 과정이 궁금해졌다.

유리아에게 물어보니 마지막 사건일 때 귀족 부녀자가 살아남아 치안대에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여자는 운이 좋은 건가?”

“발견 당시 죽기 직전이었답니다. 신전에서 간신히 살렸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름 알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치안대에 가보면 자료를 열람할 수 있을 텐데 알아볼까요?”

태훈은 그길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혼자 저택으로 돌아오자 알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까지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아아, 투기장에.”

태훈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다 듣고 난 알이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지었다.

“지가 왕자 심복이면 답니까? 제가 가서 손 좀 봐주고 올까요?”

“복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뭔가 제대로 건수를 잡으면 돼. 그보다 상회 일을 보고하러 온 거야?”

알은 태훈에게 몇 가지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 결재를 한 뒤 태훈은 뮤즈를 불러냈다.

“어? 돌아왔군요?”

알은 뮤즈가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휴양을 갔다고 알고 있었다.

“칠칠맞게 칼이나 맞고 다니고.”

“이번에는 내가 방심한 일.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역시나 건조한 대답.

알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두 눈을 끔뻑였다.

“이 녀석 왜 이럽니까? 평소 같았으면 제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을 녀석이.”

“부상 후유증이래. 나도 자세히는 모르니까 물어보지 마.”

알은 뮤즈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리아도 이 녀석 봤습니까?”

“아니, 자존심 강한 녀석이라 감춰둔 기사가 있다고 하면 충격 먹을걸. 그냥 모르는 척해.”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알은 저택에 마련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뮤즈도 볼일이 없다면 대기하겠다며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아가 돌아왔다.

손에는 뭔가를 기록한 종이가 들려 있었다.

“알아봤어?”

“마지막 피해자는 번즈 남작가의 두 번째 첩이었습니다.”

“유부녀를 건든 거야?”

“네, 아무튼 발견 당시 다른 피해자들처럼 팔과 다리의 관절이 부숴지고 힘줄이 잘린 상태였습니다.”

그 말에 태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녀자 살해범이라 해서 성추행이나 성폭행 뒤 간단하게 살해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른 피해자들처럼? 그럼 그 전의 피해자들도 그랬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발견 당시 시체였고 모두 관절과 힘줄에 상해 흔적이 있었습니다.”

“뭐야, 그 자식 변태야?”

태훈을 혀를 내둘렀다.

옴짝달싹못하는 여자를 보고 흥분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오싹해졌다.

“그놈은 뭐 하던 녀석이야?”

“치안대에서 근무하던 병사였습니다. 사건이 있던 날 밤 근무조였는데 피해자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말 끊지 말고 계속 이야기해.”

“물증이 나왔는데도 계속 범행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근데 왜 처형하지 않고 노예가 돼서 투기장에 있대?”

유리아는 사형을 구형받은 자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고 했다.

그대로 사형당해 죽든지.

아니면 투기장에서 100승을 거두어 죄를 면제받을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고 했다.

청년은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100승이라…… 그 녀석은 지금까지 몇 승했대?”

“지금까지 인간을 상대로 20전 전승. 몬스터를 상대로 한 것은 오늘 첫 승이라고 합니다.”

“호오, 전승이라…….”

태훈은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족속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상대로 전승을 할 정도의 병사라면 실력이 좋은 것.

병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출샛길이 있던 것인데 성벽 때문에 신세를 망친 것이다.

유리아를 돌려보낸 태훈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태훈은 의료원에 입원한 귀족들에게 약을 처방하고 난 뒤 다시 마을을 거닐었다.

그러다 투기장 앞을 지나게 되었고 선수 목록에서 어제와 같은 이름을 발견했다.

“저기 탈론이라고 적혀 있는 놈이 그놈이지?”

“네, 맞습니다.”

“오늘은 인간이랑 싸우네. 심심한데 구경이나 하자.”

투기장으로 들어가던 태훈은 올리버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이고, 오늘도 찾아주셨군요.”

“오늘은 구경만 합니다. 돈 안 걸었어요.”

“하하, 누가 들으면 제가 돈이라도 뺏은 줄 알겠습니다.”

태훈은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인사를 건네고 입장했다.

귀족석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으니 이내 탈론이란 자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검을 들고 있었고 들은 대로 실력은 괜찮았다.

배당률도 2배를 넘지 않아 실력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실력을 좋은 데 썼으면 좋았을 것을.’

혀를 차는 사이 경기가 끝났다.

돌아서 귀빈석을 나오려는 찰나 그의 시야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올리버였고 탈론에게 진 노예에게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그러곤 탈론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는 사라졌다.

“유리아, 투기장에서 싸우는 노예들은 다 하이디 상회 소유물인가?”

“네, 그렇습니다.”

“탈론 녀석도?”

“범죄를 저질러 투기장 노예가 된 자들은 아닙니다. 일종의 위탁을 받은 거죠. 소유는 국가입니다.”

“그래?”

태훈은 그가 경기가 끝나면 치안대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태훈은 올리버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그가 탈론을 보고 입술을 깨물 때 올리버의 오라는 증오였다.

“혹시 올리버 가족이 탈론에게 당한 적 있어?”

“연관 있어 보이는 여성은 피해자 목록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훈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유리아, 치안대로 가자.”

“무슨 문제라도…….”

“그 탈론이란 놈 어디에 갇혀 있지? 치안대에 아는 사람 있어?”

유리아는 자신이 아는 치안대의 지인을 소개했다.

그 지인에게 얼마 정도의 돈을 쥐어준 그는 치안대의 지하 감옥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독대만 가능하다고 하자 태훈은 혼자서 탈론을 만났다.

그리고 10여 분 뒤 감옥을 나온 태훈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응, 재밌는 이야기. 이번에 할아버지 이름을 걸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네? 남작님 조부님께서는 어떤 분이길래…….”

유리아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태훈을 데리고 이번에는 기록 보관소를 찾아갔다.

거기서 탈론의 사건 파일들을 찾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이 없었다.

“증거물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물증이 확실한 터라 증거는 필요 없다고.”

기록 보관소의 관리자는 탈론이 살인에 썼던 무기가 없어졌다고 했다.

기록에는 당시 체포당할 시 탈론이 가지고 있던 검에서 혈흔이 발견되었다고 되어 있었다.

“그럼 그 검은 무슨 검이야?”

“일반적인 롱소드입니다. 위병들이 차고 다니는 평범한 거요.”

“그래?”

태훈은 이번엔 신전을 찾아갔다.

귀족 집안의 사체는 신전에서 거두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신전과 크로이츠라는 인물은 좋은 관계가 아니었기에 유리아를 보냈다.

신전에 들어갔다 나온 유리아는 태훈이 시킨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달했다.

“호오, 이거 아주 재밌어지네.”

“뭐가 재밌다는 겁니까?”

“너도 탈론 실력 오늘 봤지? 어땠어?”

“실력은 좋아 보였습니다. 정확히 급소만을 노렸죠.”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태훈이 유리아에게 시킨 것은 살해된 여성들의 시체 상태였다.

관절의 파괴.

힘줄의 절단.

상처에 대한 신관의 소견은 난잡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실력이 좋은 놈이 초보자 마냥 상처를 난잡하게 냈을까?”

“상처를 내면서 좋아하는 변태는 아니었을까요?”

“그 녀석은 감옥에서 자신은 누명을 썼다고 말했어.”

탈론은 태훈에게 자신은 함정에 빠졌다고 말했다.

당시 연쇄 살인 때문에 위병들은 모두 흩어져서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비명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여자가 바닥을 기고 있었고 복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유리아가 물었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있었습니다.”

“롱소드에 묻은 핏자국? 그건 증거가 못 돼. DNA라도 나오면 모를까.”

“디……. 그게 뭡니까?”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피해자의 증언입니다.”

“하긴 그게 제일 결정적이긴 하지. 그럼 물어보러 가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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