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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68화 (68/150)

68화

“뮤즈!”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자연스레 그녀의 상처 쪽으로 눈길이 갔다.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흉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괜찮은 거야?”

“네, 이제 괜찮습니다.”

무미건조한 음색.

뮤즈는 허공을 응시한 채 대답했다.

이상함을 눈치챈 태훈은 물의 지니를 바라보았다.

“부상의 후유증이에요.”

“무슨 후유증이 이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잖아.”

태훈이 추궁하자 물의 지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정령은 감정이 없어요. 상급 이상은 되어야 감정이 생기죠.”

“뮤즈는 지니급 이상으로 알고 있는데?”

“말했잖아요. 부상 후유증이라고. 정령계에 오래 머물면서 감정이 무뎌진 거예요.”

정령계의 기운에 동화되며 감정이 사라졌다는 말에 태훈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뭔가 논리가 비약한데?”

“이……. 인간이면서 정령에 대해 다 안다는 것처럼 굴지 마세요. 그럼 가보겠어요.”

물의 지니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돌아가려 했다.

“잠깐! 그 마법진은 어떻게 됐어?”

“그건 마도 문명 시대의 마법진이에요. 일시적으로 마나의 흐름을 멈추는 마법진입니다.”

“그것뿐?”

“그것뿐이에요. 그럼 돌아가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말릴 틈도 없이 물의 지니는 돌아갔다.

남아 있는 뮤즈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 채였다.

“뮤즈, 정말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제 주인님이죠.”

“내 전생에 대해서도 알아?”

태훈은 진짜 뮤즈만이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았다.

뮤즈는 자신의 전생에 대한 기억 일부를 공유하고 있었다.

“전생에는 태훈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정령계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말한 적이 있어?”

“없습니다. 정령계에선 오직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문답으로는 확실한 뮤즈였다.

‘정말 후유증인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후유증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럼 전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뮤즈는 다시 정령 상태로 돌아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알이 의뢰하러 간 명단의 이름들에 기대를 걸어야 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그는 거리로 나가보려 했다.

유리아가 따라붙으며 경호에 나섰다.

말을 가져오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걷는 것을 고집했다.

태훈이 걷고 유리아는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의료원과 상회에 들러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할 일이 없으니까 심심하네.’

한가함을 느껴본 것이 오랜만이라 무료했다.

“유리아, 제국에서 재미난 곳은 없어?”

유리아는 투기장을 제안했다.

투기장에서는 두 종류의 볼거리가 존재했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대결.

또 다른 하나는 사람과 몬스터의 대결이었다.

투기장이 인기 있는 이유는 내기를 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경기가 있어?”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알아오겠습니다.”

“아니야, 그냥 가보자.”

둘은 투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가 있는지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지구의 경마장과 비슷했다.

투기권을 파는 판매소에 다녀온 유리아는 2경기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람 대 사람, 사람과 몬스터의 대결이 하나씩 있었다.

‘도박이라. 심심한데 한번 해볼까.’

태훈은 품 안을 뒤져보았다.

금화 몇 개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나왔다.

판매소에 가 보니 나무판으로 되어 있는 배당률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대 사람의 경기보다는 사람 대 몬스터와의 경기가 배당률이 높았다.

“너도 걸래?”

“저는 괜찮습니다.”

“돈 빌려줄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남작님의 경호만으로도 바쁩니다.”

싫으면 말아라라는 표정을 지은 그는 배당률이 높은 쪽에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걸었다.

판매소에 대금화와 소금화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태훈을 보더니 모두 숨죽여 웃었다.

“뭐야, 왜 다들 비웃는 건데?”

“배당률이 높다는 건 패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태훈의 차림새를 보고 멋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 돈낭비를 한다고 본 듯했다.

“어허, 도박은 어떻게 되는지 모를 것을.”

“들어가시죠. 귀족 전용 출입구는 이쪽입니다.”

태훈은 투기장의 VIP석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태훈 말고도 몇 명의 귀족들이 이미 와 있었다.

태훈이 자리에 앉자 유리아는 그의 뒤에 섰다.

“자, 경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경기는 창과 창의 대결! 5연승을 노리는 청코너!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 간의 대결이 먼저 시작되었다.

둘 다 창을 사용하고 있었고 태훈이 건 배당률이 높은 쪽이 5연승을 저지하는 쪽인 듯했다.

둘 다 리치가 긴 무기였기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의 간보기 끝에 홍코너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청코너 선수가 가볍게 피하고는 손목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로 상대의 발목을 걸었다.

넘어진 선수의 목에 창끝이 겨눠지자 사방에서 함성이 들렸다.

“죽여라!”

“죽여 버려!”

기본적으로 투기장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노예였다.

경기 중에 목숨을 잃는 것은 다반사.

하지만 노예들끼리는 승패가 분명히 나면 헤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만!”

심판이 소리치자 사람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나 지금 돈 잃은 거야?”

“네, 대금화 3닢, 소금화 2닢 잃으셨습니다.”

둘의 대화를 들은 귀족들이 태훈을 쳐다보았다.

소금화면 몰라도 대금화를 건다는 것은 귀족들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뭔가 긴박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경기가 좀 허무하네.”

“다들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습니다. 누구는 하루치 일급을 모두 걸었으니까요.”

“흠, 말에 가시가 있네. 나도 돈 아까운 줄 알아.”

시합에서 진 노예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사방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대부분 돌이었고 자신의 돈을 날린 노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다음 경기는 사람과 몬스터의 대결.

태훈은 사람에게 돈을 걸었고 배당률은 무려 70배.

배당률이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잠시 후 등장한 몬스터는 오크.

오크 중에서도 가장 크다는 레드 오크였다.

반면 상대는 평범한 인간.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겪었는지 온몸에 흉터 자국이 가득했다.

“저 남자는 아마 죽겠지?”

“아마도요. 하지만 저자는 죽어도 쌉니다.”

“음? 왜? 저 남자에 대해 알아?”

“작년에 연쇄 살인범으로 체포된 자입니다. 지금까지 용케 살아남았군요.”

“그래?”

태훈은 호기심이 생겼다.

사람들의 야유도 전 경기보다 심했다.

하지만 청년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실력이 좋은가? 여태껏 살아남은걸 보면.”

태훈의 질문에 옆에 있던 귀족이 귀띔해 주었다.

“저놈은 몬스터와의 경기가 처음일세. 뭐 여기서 끝인 거지.”

“아, 그런가요? 그럼 다들 몬스터에게 걸었겠군요.”

“아마 그럴걸. 그러다 보니 배당률이 좋지 않아. 자네도 보지 않았는가?”

실제로 몬스터의 배당률은 1.01배.

몬스터가 이겨 배당을 받는다 하더라도 수수료를 떼면 실상 남는 것이 없었다.

옆자리의 귀족이 사람들은 청년의 죽음을 보기 위해 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시작!”

경기가 시작되자 오크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청년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아무래도 오크가 지치길 기다리는 듯했으나 먼저 지치는 쪽은 뻔했다.

시간이 5분 정도 흐르자 남자의 몸놀림이 둔해졌다.

‘흐음, 뭐 돈이나 벌어볼까?’

태훈은 슬그머니 바닥에서 손톱만한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그러곤 중지와 엄지를 맞대며 딱밤을 때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스트랭스, 스트랭스, 스트랭스.’

태훈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신력을 모두 다해 손가락의 근력을 올렸다.

“우워억!”

오크가 청년에게 돌진하자 그의 중지가 튀어나갔다.

쐐액-

돌멩이는 그대로 경기장에 있는 오크에게로 날아갔다.

빠악!

야구공을 치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났으나 관중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

무릎에 맞은 오크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오크가 넘어지자 청년은 들고 있던 검을 내질렀다.

푸욱-

“크어어억!”

오크의 눈에 검이 박히며 괴성을 질렀다.

노예는 멈추지 않고 검을 더 밀어 넣고는 검을 돌려 버렸다.

푸쉭-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오크의 괴성이 멈췄다.

널부러진 오크의 시체를 보며 관중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 인간 승리!”

심판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깃발을 올렸다.

“사기다!”

“짜고 치는 것이냐! 올리버 나와!”

투기장을 운영하는 조직의 수장 이름을 외치며 사람들을 야유를 퍼부었다.

“뭐야, 몬스터가 졌네?”

“그……. 그러게 말입니다.”

유리아도 넋이 나간 듯 말을 더듬었다.

바로 뒤에 있던 그녀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도 태훈이 한 일을 알 리 만무했다.

“나 얼마 걸었었지?”

“대금화 5닢…….”

“대금화 5닢?!”

옆에 있던 다른 귀족들이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 대금화 3닢 이상을 잃었다고 했을 때 비웃던 사람들이었다.

“음,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태훈은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떠났다.

귀족들은 그런 그를 부러운 듯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판매대로 향한 태훈은 전표를 내밀었다.

전표를 확인한 직원은 깜짝 놀라며 전표와 태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천히 가져와요. 남는 건 시간뿐이니까.”

태훈은 콧노래를 부르며 판매대 앞을 서성였다.

그가 내민 전표를 봤던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를 둘러쌌다.

유리아가 태훈이 귀족임을 알리며 물러서라 하자 순식간에 원이 그려졌다.

잠시 후.

세 남자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약삭빠른 듯한 생김새의 남자.

그리고 그 뒤로 힘 좀 쓰는 듯한 거구의 남자가 둘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하이디 상회의 사람입니다.”

하이디 상회는 투기장을 관리, 운영하는 상회였다.

“돈 주머니는 어딨습니까? 아, 전표로 줍니까?”

“전해 듣기로 귀족이시라 들었습니다. 성함과 작위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다.”

“크로이츠 남작님이시다.”

태훈 대신 유리아가 대답했다.

“아, 들은 적 있습니다. 레드크로스 상회의 총지배인이시죠.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돈은?”

태훈이 손을 내밀자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그 건으로 저희 지배인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아니, 돈만 주면 끝날 것을 번거롭게 왜?”

“워낙 큰돈이라 잠시 확인이 필요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잠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한눈에 척 봐도 양아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름 영향력 있는 상회 주인이자 귀족인 나한테 시비를 걸진 않겠지.’

태훈은 그렇게 하자며 남자를 따라나섰다.

안내 받은 곳은 투기장 안에 있는 방.

방 안에는 남자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상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올리버라고 합니다.”

“크로이츠 남작이요. 나를 보자고 했다던데.”

“그렇습니다. 일단 여기 앉아주시지요.”

마련된 의자에 앉자 올리버는 웃으며 말했다.

“들은 바로는 인간에 배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소. 대금화 5닢. 배당금은 350닢이겠군.”

“상당히 큰 금액이죠. 헌데 투기장 안에서 부정행위는 금지라는 걸 모르십니까?”

그 말에 태훈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걸 봤다고? 웬만한 경지가 아니고서야 그걸 봤을 리 없을 텐데?’

하지만 태훈은 짐짓 모른 척했다.

기세에서 말릴 수는 없었다.

“지금 나더러 부정행위를 했다는 건가?”

“누가 보아도 그 살인마가 이길 수 없는 경기입니다. 어떻게 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지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배당금을 챙기는 내가 뭔가를 했다 이 말인가?”

이야기인즉슨 정황과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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