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기습은 새벽에 이루어졌다.
태훈이 이끄는 호송대 병력은 적의 후방을 맡았다.
제국 기사단이 속한 병력은 적의 정면으로 나아갔다.
적의 거점은 이층으로 된 건축물이었다.
“목조건물이군.”
부기사단장이 지시하자 일반 병사들이 불화살을 준비했다.
슈욱-
퍼버벅-
불화살이 목저 건물에 부딪히자 금세 불길이 치솟았다.
“굴에서 뛰쳐나온 토끼들마냥 튀어나오겠지.”
부단장의 말대로 곧이어 몇 명이 튀어나왔다.
태훈도 먼발치에서 그것을 보았다.
‘가면을 쓰지 않았다. 뭐 하는 놈들이지?’
공작과 독대하기 전 오라의 변화가 있던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이 낌새를 느끼고 조직에 보고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태훈은 수인들 몇을 시켜 공국에 돌아온 순간부터 감시를 시켰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튀어나온 이들이 루메드가 말했던 조작원일 가능성이 있었다.
기사들이 튀어나온 자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검격에 쓰러졌다.
몇몇은 그 모습을 보고는 무릎을 꿇으며 손을 들었다.
‘뭔가 이상한데. 이렇게 쉽게 끝날 리 없어.’
태훈은 긴장을 풀지 않고 타들어가는 건물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건물이 쓰러져도 나타나는 이들은 없었다.
뼈대밖에 남지 않게 되자 부단장이 말을 타고 태훈에게 다가왔다.
“너무 싱겁군. 이 정도 일에 우리가 나설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합니다. 적들은 이 정도가 아니에요.”
“자세한 건 저놈들을 통해서 물으면 되는 것 아닌가.”
부단장이 지시하자 병사들이 사로잡은 자들을 끌고 왔다.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내팽개쳐진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제국 기사다. 너희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저……. 저희들은 사냥꾼입니다.”
사냥꾼이란 말에 태훈이 앞으로 나섰다.
“저 집은 너희들 건가?”
“아, 아닙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가끔 날이 저물고 마을까지 가기 힘들면 머무는 곳입니다.”
“거짓을 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까?”
부단장이 윽박지르자 병사 하나가 그들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자신의 턱 밑에 퍼런 날이 들이밀어지자 사냥꾼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저……. 정말입니다. 저희는 근방에 있는 마을의 사냥꾼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증언해 줄 것입니다!”
절박함이 묻어 나오는 말이 거짓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부단장은 어쩔 것이냐는 눈으로 태훈을 바라보았다.
‘오라는 거짓이 아니야. 설마 루메드가 거짓 정보를?’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루메드는 반나절 떨어진 공국에 있었다.
태훈은 부단장에게 근방을 수색해 줄 것을 부탁했다.
“부탁은 들어주겠지만 별다른 소득이 있을 것이라 보이진 않는군.”
“병사들을 시켜 이자들의 신분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단장은 병사들을 시켜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그들이 말한 마을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기사들과 병사들.
상회의 호송대는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나온다면 여러모로 낭팬데.’
잘못된 정보였다고 끝내기엔 공작에게 밑질 것이 뻔했다.
태훈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돌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태훈은 불타 버린 집으로 들어갔다.
군데군데 불씨가 살아 있었다.
검으로 해를 뒤집으며 살펴보던 그는 삐걱거리는 바닥을 발견했다.
‘그렇지. 뭔가 있을 줄 알았어.’
탁자가 있던 자리였는지 타다만 탁자 다리를 치우고 자세히 살폈다.
틈을 발견한 그는 검집을 박아 넣어 지렛대로 삼았다.
끼긱-
판자가 들어 올려지며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은 성인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마법으로 밑을 비추니 10여 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태훈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가 진짜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통로가 좁아 한 번에 한 명씩 내려가야 합니다.”
“그대는 여기 있도록. 여기부턴 우리 일이다.”
“정보를 조사하던 부하 하나가 실종되었습니다. 저도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대는 일개 상인이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어진다.”
“발목은 붙잡지 않겠습니다. 제 몸은 제가 지킵니다.”
“짐이 된다 생각하면 그대는 없는 사람이라 치겠다.”
부단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누가 짐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결국 태훈은 맨 뒤에 온다는 조건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건물 4층 정도 되는 높이의 지하 구멍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길이 나타났다.
역시나 성인 남성 하나 정도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
사람들은 일렬로 앞으로 나아갔다.
맨 앞은 기사들이 있었고 그 뒤로 병사들과 마법사가 뒤따랐다.
길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몇 번인가 꺾어서야 그들은 조금 더 큰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계단이 있었다.
“쉿-”
이미 방에 도착해 있던 부단장이 입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계단 밑으로 돌아다니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저놈들인가?”
“맞습니다.”
부단장은 부하들에게 당부하기 시작했다.
“전투 공간이 넓지는 않다. 지하라곤 생각도 못 한 일. 마법사들은 대형 마법을 삼가고 기사들의 보조를 맡아라.”
모두가 인지하자 부단장이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가자!”
우아아아!
병력이 함성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뒤따라 내려간 태훈은 계단 아래에 도착하고 나서 잠시 멈칫했다.
계단 아래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신전 형태의 건축물이 있었다.
‘지하에 이런 공간이?’
병사들도 잠시 놀란 듯했지만 금세 전열을 가다듬었다.
병력을 발견한 가면들의 반응은 빨랐다.
저마다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다가오는 기사와 병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신기가 아니야. 루메드도 실행인은 소수라 했으니 강한 놈들이 아니군.’
가면들이 가진 무기가 평범하다는 것을 안 태훈은 그들을 지나쳤다.
몇몇 가면이 그를 막아섰지만 태훈은 그들을 간단하게 때려눕혔다.
‘신전 안에 있는 건가.’
금세 신전 앞에 도착한 태훈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몇 발짝 가지 못해 태훈은 한 사람을 맞닥뜨렸다.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몸이 드러나 있는 나시 형태의 가죽 튜닉을 입은 사내였다.
가면을 쓰고 있었고 양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두 자루 모두 신기다.’
신기를 두 개나 가지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는 당황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태훈이었다.
신기를 가진 상대로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구레드르가 준 검을 내려치자 적은 검을 교차하며 그의 검을 막아냈다.
검기가 튀며 묵직함이 손목에 전해져 왔다.
기세를 몰아 태훈은 연격을 몇 번 더 날렸다.
상대는 검을 흘리기도 하며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곤 잠시 떨어졌다.
태훈이 다가가려 하면 공격하지 않고 물러났다.
“뭐 하자는 거냐? 싸울 마음이 있나?”
“잠시 생각을 좀 했지. 여기까지 들어온 놈이 누굴까 하고.”
“궁금하면 네놈 이름부터 말해. 예의라곤 못 배운 놈인가?”
“전직 용병이라. 예의 따윈 모른다.”
‘용병?’ 그러자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네놈이 베닝스인가?”
“호, 나를 아는 자인가?”
“오냐, 네놈을 찾고 있었다!”
태훈은 그의 신분을 확인하자 전력으로 파고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몸놀림이었지만 검이 닿기 전 베닝스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베닝스는 어느새 태훈의 뒤로 돌아와 있었다.
“난 널 모르는데. 넌 누구지?”
“홀든은 어딨어!?”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가면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베닝스를 보며 태훈은 이를 갈았다.
‘지금 여유를 부리는 건가?’
그런 생각에 검을 쥔 그의 손이 바르르 떨었다.
“홀든을 찾는걸 보니 네가 바로 그 왕자로구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지만 태훈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군. 이제 궁금한 게 해결이 됐어.”
“그렇다면 제대로 싸워!”
“기고만장하군.”
이번엔 베닝스가 공격을 해왔다.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온 검날을 보고 태훈은 흠칫 놀라며 검을 들었다.
깡-
하지만 상대는 검이 두 자루였기에 비어 있는 공간으로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몸을 꺾으며 검을 피했지만 검끝이 그의 옆구리를 살짝 긁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격.
손놀림은 보이지 않고 파공음만 들릴 정도의 쾌검이었다.
‘눈으로 좆지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게 전부야. 뭐가 이렇게 빠르지’
흉내 낼 마음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검격에 태훈은 바삐 움직였다.
막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것을 안 태훈은 시동어를 외쳤다.
“그래비티.”
워낙 빠른 몸놀림인 탓에 타깃 형식이 아닌 전방위 형태의 마법을 펼쳤다.
쿠웅-
순간 주변 공기들이 무거워졌다.
바쁘게 움직이던 베닝스도 휘청거리며 느려졌다.
“마법인가.”
“그래비티.”
다시 한번 마법을 발동하자 베닝스는 아예 멈추었다.
“호오, 이중 마법이라. 들었던 것과는 달리 고위 클래스군.”
“아직 놀라긴 이르지. 그래비티.”
쿠웅-
삼중 중력 마법.
중력이 2배씩 세 번.
“크흠.”
베닝스가 들고 있던 검끝이 땅으로 향했다.
8G의 압박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내 움직임을 막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래선 서로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누구 마음대로 끝내려고.”
태훈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번 입술을 움직였다.
“그래비티.”
쿠웅-
16G의 엄청난 중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크윽!”
“큽!”
둘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숨조차 쉬기 힘든 환경이었다.
신전 밖에서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방어구를 걸친 기사와 병사들은 모두 쓰러져 거북이처럼 버둥거렸다.
마법사들은 허약한 체질 탓에 실신했다.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크크크, 재밌군, 재밌어!”
갑자기 베닝스가 웃기 시작했다.
“4중 마법이라. 대단한 경지로군.”
“성장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말해라, 홀든은 어디 있나.”
“겨우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발목까지 잡은 주제에 마치 이긴 것처럼 구는군.”
“실제로 이겼으니까.”
그는 이번엔 신력을 사용했다.
4중 스트랭스.
푸른 마나와 붉은 마나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지만 그는 중력을 무마시킬 정도의 근력을 얻었다.
아무렇지 않게 걷는 것을 본 베닝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신력까지 쓰는 건가. 이건 예상 못 했군.”
“물어볼 게 많으니까 이쯤에서 항복해 주면 좋겠는데.”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구만.”
베닝스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겨워 보이는 몸짓으로 이내 허리를 세운 베닝스는 검을 치켜들려 올렸다.
“쉽게 포기해서야 근성이 없지.”
“그래?”
마음 같아선 한번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홀든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기에 꾸욱 참았다.
태훈은 그에게 다가가 주먹을 날렸다.
그대로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진 베닝스는 다시 일어섰다.
“크하하, 주먹은 솜방망이구만. 계집애 같은 주먹은 누굴 닮은 건가.”
입에서 피가 흘렀지만 베닝스는 여유롭게 웃었다.
태훈은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수……. 숨이…….”
주변은 아직도 16G라는 중력이 적용되고 있었다.
밖에서는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물론 오리진까지 다룰 줄 아는 기사들까지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말해, 홀든은 지금 어딨어!”
“크큭, 왕자라는 놈이 밖에 있는 놈들을 모두 죽일 셈인가?”
“나에겐 홀든이 더 중요해. 내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네놈 몸의 뼈를 모두 아작 낼 수 있어.”
“크크, 카나리스의 왕자여, 이곳이 어디인지 잊으면 안 되지.”
베닝스는 어느새 벽으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벽에 있던 촛대를 잡고 있었다.
태훈이 재빨리 검으로 그의 팔을 잘라 버렸지만 이미 촛대는 돌아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