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어차피 신전이 대는 자금을 메꿀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잖아.’
신전에서 파는 포션은 애초에 서민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물건.
그리고 의료원에서는 그런 약을 처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거기다 신전의 포션이 커버하지 못하는 병의 약이었기에 제국이 총국이 크게 충돌할 일은 없었다.
“흠, 근데 그 정도는 내 선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허권이란 건 굉장히 비쌉니다. 적어도…….”
“적어도?”
“대금화 십만 닢은…….”
“시……. 십만?”
금액을 들은 오일경이 화들짝 놀랐다.
“물론 초기 자금은 비쌉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만큼 벌어들일 수 있고 약의 판매 금액은 제국 쪽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자금 회수에는 문제가 없는 건가?”
“신전의 포션으로는 효과가 없는 분야의 약으로 구입하게 해드리죠. 그렇다면 온전히 제국의 것이 됩니다.”
“흠, 하지만 대금화 십만 닢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임을 아는 오일 경의 시름은 깊어졌다.
거기에 태훈은 쐐기를 박았다.
“구입하신다 하면 주주들에게 이야기하여 가격을 낮춰보겠습니다. 그리고 공국에 가서 세레니스 제국에게만 자금 제한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오일 경은 가문과 상의해 보겠다며 서둘러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태훈의 표정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그러곤 자신의 지하실로 향했다.
거기엔 루메드가 벽과 연결된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으며 원래의 얼굴을 온데간데없었다.
태훈은 상의를 벗어 던지며 그에게 다가갔다.
“마저 하자고.”
알에게서 공국의 비밀 공방 폭발에 대한 전말을 전해들은 태훈은 화가 폭발했다.
태훈은 신력을 사용해 그를 회복시켰다.
그러곤 마치 샌드백을 치듯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구타가 끝나면 화염 마법으로 그의 피부를 지지고 후벼 팠다.
“크푸풉. 그런다고 입을 열지는 않습니다.”
구타로 인해 이가 모두 부러진 루메드는 피를 머금고 말했다.
“내가 바라던 바야. 내가 지금 굉장히 열이 받았거든? 한 3일 정도는 네가 버텨줬으면 좋겠어.”
태훈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제국 상회로 돌아온 지 이틀째.
그동안 쉬지 않고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루메드 또한 독하게 그의 주먹을 견뎌내고 있었다.
한참 그를 두들기고 있던 그는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그와 마주 앉았다.
“큭, 끝났습니까?”
“어, 주먹질은 끝났고 지금부터는 기대하는 게 좋아.”
태훈은 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본 루메드의 입가가 씰룩였다.
“어때? 너한테 배운 건데.”
“크크크큭. 왕자라는 고귀함은 어디 간 거죠?”
“그건 내 무덤에 같이 묻었어. 듣자 하니 첩 자리에서 쫓겨났다는데?”
그 말에 루메드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럼 그녀는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걸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철컹-
루메드가 몸부림치자 쇠사슬이 요동쳤다.
“이런 비열한…….”
“네놈이 시작한 일이야. 인질은 네가 먼저 이용했고 네놈들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들이 다쳤다.”
“…….”
“이렇게 된 거 최소한의 희생을 치러서라도 알아야겠다.”
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루메드가 말한 제국의 귀족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일 년 전 저택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
루메드가 입을 다물자 태훈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애초의 그의 복수는 아내와 아이에서 비롯된 것.
그중 아내는 살아 있으니 협상의 도구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보였다.
“이번에 내가 거래를 하지. 모든 걸 불면 네놈과 아내가 제국을 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 거기다 덤으로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지.”
“그런다고 죽은 아이의 복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수를 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아이는 다시 만들 수 있지. 살아가면서 죽은 아이의 명복이라도 빌어주는 게 나을걸.”
“…….”
“한 시간 주지. 어차피 넌 입을 안 열 것 같으니 한 시간 뒤엔 사이좋게 아내랑 저승 구경하게 해줄게.”
태훈은 지하실의 문으로 다가갔다.
그가 문고리에 손을 대려는 순간 루메드가 백기를 들었다.
“말하겠습니다. 약속은 지키는 겁니까?”
“나는 두말하지 않아. 모든 걸 이야기해. 그리고 나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게 해주지.”
루메드가 고개를 떨구자 태훈은 웃음을 지었다.
태훈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궁금한 게 뭡니까?”
“너희들의 목적은 뭐야?”
“상부에서 지시한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건 알아. 그 계약서의 내용을 아나?”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언어요.”
“넌 날 처음 봤을 때 전생에 대해 언급했지. 전생에 대해 뭘 아나?”
“계약서에 사인한 사람들 중에 가끔 전생의 기억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소.”
그의 대답에 따르면 그들은 하수인으로 포인트에 대해서 모르는 게 확실했다.
“너희들은 총 몇 명이냐?”
“우리는 점조직으로 움직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실행인’이라고 칭하는데 우리들은 서로를 모르는 것이 룰입니다.”
“결국 총원은 모른다는 거군. 베닝스에 대해 말해봐.”
“그는 우리들 실행인들을 통솔하는 잡니다. 우리들은 그로부터 명령을 받죠.”
“네가 말하는 그분이라는 게 베닝스는 아닌 걸로 아는데. 그분이라는 놈은 누구야?”
“정체는 나도 모릅니다. 처음 조직에 가담할 때 그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전지전능함을 믿게 되죠.”
“뭘 보고 믿는 거야?”
“그는 자신의 전생을 모두 보여줍니다.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죠. 그리고 자신은 대의를 위해 움직인다며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합니다.”
루메드는 그가 많은 기적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 죽어가던 자를 멀쩡하게 돌려놓는다는 것.
마법을 쓰면서 검기도 다루는 등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전생을 보여주고 모든 능력을 사용한다면 나랑 같은 놈인가?’
자신처럼 저승에서 비밀루트를 통해 환생한 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애초에 포인트에 대해서 알고 그걸 모으는 놈이라면 기억을 갖고 환생한 놈이었다.
‘포인트를 모으는 목적은 천국을 가려는 이유뿐일 텐데 여태껏 저승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가?’
태훈이 가면의 조직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다고 해도 저승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신기에 대해 아는 게 뭐야?”
“신기는 소수의 인원에게만 주어집니다. 충성을 제대로 보인 자들에게만 부여되죠. 그분에게 직접 수여받습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내 일행이 네놈들 조직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아는 바가 있나?”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게 룰이라고 했잖습니까. 간혹 임무 때문에 마주치거나 소식을 듣는 경우는 있지만 새로운 동료 이야기는 모릅니다.”
“마지막이다. 네놈들 본거지가 어디야.”
루메드는 지도를 부탁했다.
태훈이 지도를 가져오자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네놈들 본거지인가?”
“본거지라고 할 것까진 없습니다. 말했다시피 점조직이고 내가 속한 무리는 간혹 이곳에 모입니다.”
궁금한 걸 모두 물었지만 뚜렷한 정보는 없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정보는 그분이라는 녀석의 정체였지만 정보가 없었다.
“나한테 말하지 않은 정보가 있나?”
“우리는 실행인이지만 ‘조작원’이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로 귀족들이고 그들은 각 국가의 여론을 조장하는 일을 맡습니다.”
“이번 전쟁은 왜 일으킨 거야?”
“베닝스는 전쟁을 일으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국가가 휘말리게 하라고 했죠.”
“아무드는 시작이라는 거군. 얼마나 더 많은 국가가 전쟁 준비 중이지?”
“모든 국가요.”
“뭐?”
태훈은 자신이 잘못 들은 듯싶었다.
재차 질문하자 루메드는 다시 한번 모든 나라라고 대답했다.
“네놈들은 세계 대전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그래서 얻는 게 뭐야?”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거기까지 들은 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저하게 역할 분담이 있다는 것과 어디에나 손을 뻗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큰 소득이 없었다.
“약속은 지키십시오.”
“네놈이 알려준 장소를 가보고 결정하지.”
태훈은 지하실을 나왔다.
알이 그를 보고 다가와 물었다.
“뭘 좀 알아내셨습니까?”
“그 흑마법사보다는 알아냈지.”
“홀든 경에 대해서는요?”
알도 비밀 공방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디 있는지는 대강 알았어. 이제 거길 가봐야지.”
“혼자서 갈 생각은 마십시오. 지금 뮤즈도 없지 않습니까.”
“물론이야. 지금까지 당하기만 했는데 이번엔 선제공격이다.”
태훈은 이를 갈았다.
다친 사람도 많았고 홀든도 빼앗겼기에 분노는 최고조였다.
적 아지트의 위치도 그렇거니와 준비를 위해선 공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오일 경이 찾아왔다.
‘벌써 의논이 끝난 건가?’
“타게. 나와 갈 곳이 있네.”
오일 경은 자신의 마차에 동승할 것을 요구했다.
태훈이 마차에 탑승하니 마차가 움직였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제국 의사당이네. 우리 가문을 비롯해서 주요 가문들의 수장이 자넬 보고 싶어 해.”
“특허권 관련입니까?”
“음, 그것도 있지.”
‘그것도 있지?’ 의사당에 도착한 태훈은 몇몇 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오일 경의 아버지도 있었고 공작가와 자작가의 수장들도 있었다.
처음 제국에 들어왔을 때 보고 받았던 정보들과 일치했기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크로이츠 의원입니다.”
“어서오게. 오일 경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네만 약에 대한 권리를 팔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오일 경에게는 대금화 십만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크로이츠 의원이 제시한 금액은 너무 크네. 그 주주들이라는 자들에게 이야기해서 금액을 감할 수 있는가?”
“회의를 열어봐야 합니다.”
“그 주주들이란 사람들이 누구인가?”
태훈은 자신과 대화를 하는 자가 화아제 다음으로 권력을 가진 바스테리온 공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주를 알려줄 순 없지. 압박을 가할 게 분명해.’
단순히 이번 거래만이 아니라 상회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알려줄 순 없는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협약으로 인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 텐데. 그래도 말할 수 없는 것인가?”
“공작님을 얕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이끄는 상회를 세 국가 이상의 왕족과 귀족들이 참여하고 있는 복합적인 구조입니다. 어느 한 곳의 의견을 따를 순 없기 때문입니다.”
“흠.”
공작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뭐 알았다. 그래서 금액을 낮출 수 있는가?”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주주들과의 협약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가?”
“최소 두 달은 필요합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야 하기 때문이죠.”
“늦다. 한 달 안으로 해결할 수 없나?”
잠시 생각하던 태훈은 다른 안을 제시했다.
약은 상회 공동의 것.
하지만 자신이 가진 지분은 자신의 것이었다.
“제가 상회의 절반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 일부를 구입하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그 말은 그대가 말하는 주주가 되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주주가 되시면 상회가 벌어들이는 이익을 나눠가지 실 수 있죠.”
태훈의 말에 귀족들이 다시 수군거렸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고 주주의 개념이 생소했기 때문.
결국 잠시 시간을 내달라며 귀족들은 자리를 비웠다.
30여 분 후 다시 등장한 공작이 물었다.
“그 주주가 되는 건 빨리 해결할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제 권리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그대의 권리를 얼마나 팔 것이지?”
“제가 가진 것은 절반. 그중 2할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의 1할인가?”
“네, 맞습니다.”
“가격은?”
“백만 골드입니다.”
“배…… 백만?!”
“이런 사기꾼!”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태훈은 그들을 진정시켰다.
“상회가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에 대한 1할의 권리입니다. 참고로 저희 상회의 세수는 잘 아실 텐데요. 장기간 생각하시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물론 1할의 권리에 대한 대금화 백만은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창기 제노비아나 카나리스, 공국에게서 투자 받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사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전쟁 특수라는 환경도 거들었다.
“저희는 아직 소수의 국가에서만 활동 중입니다. 전 대륙으로 활동을 넓혔을 때의 가치를 생각한 가격입니다.”
태훈의 설명을 들은 귀족들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비교 대상으로 총국이 있었고 그들이 전대륙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은 상당한 것.
‘레드크로스 상회가 총국 정도만 커져도……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 것인가.’
바스테리온 공작은 심사숙고했다.
물론 태훈도 생각이 있어 이런 제의를 던진 것이었다.
‘제국이 주주로 들어오면 내 활동의 제약이 없어진다. 제국도 투자한 돈이 있는데 스스로 목을 조르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