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허공으로 치솟았던 말과 병사들은 바닥을 굴렀다.
대부분의 기수들은 낙마하며 크게 다쳤다.
갑작스런 폭발과 피해로 기병들은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리의 폭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열 명 정도의 기병이 달려들었다.
떵-
떵-
검은 그림자가 휘두르는 무기에 맞은 말들은 그대로 강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열 명의 병사가 강에 처박혔고 그다음 돌진한 병력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날려 버리는 괴력이라니…….’
병사들을 이끌고 있던 기사는 병사들의 진격을 멈추었다.
그러곤 활을 가진 병사들을 시켜 화살을 날렸다.
끼기긱-
활시위가 당겨지고 수백 개의 화살이 남자에게 쏘아졌다.
그림자는 들고 있던 무기를 앞으로 내세웠다.
그러곤 힘차게 돌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태풍이라도 부는 듯한 소리와 바람이 주변을 압도했다.
화살들은 목표를 잃고 땅으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가 공격을 중단시켰다.
“보고받은 그 변태 용병 집단인가?”
아무드군이나 연합군 내에는 모두가 아는 소문이 있었다.
살생을 하지 않는 용병집단이 있다는 소문.
“보급품을 불태우고 병사들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용병 놈들이 있다는데 그중 하나인가?”
“…….”
“침묵은 긍정이지. 한번 만나보고 싶긴 했다. 얼마나 실력이 대단한 놈들인지 말이야.”
공격당한 병사들 중에 사망자는 없었다.
다만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신이 농락당한 것 같다는 환자들의 증언은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용병 놈들 주제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한번 상대해 보고 싶었지.”
“하지만 서둘러 진격하라는 명령이…….”
부하가 기사를 만류했다.
“유일한 통로를 막고 있잖아. 병사들이 나가떨어지는데 헛되이 병력을 낭비할 순 없다.”
기사는 웃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러곤 말의 짐에서 자신의 창을 꺼냈다.
“똑같은 무기로 상대를…….”
그때 구름이 걷히며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은 그림자를 비추었고 그 모습이 드러났다.
그림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창이 아닌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아무드군을 막아선 것은 태훈이었다.
‘모…… 몽둥이?’
영락없이 창이라 생각한 무기는 나무로 만든 몽둥이였다.
“내 이름은 알레드로 산젠! 아무드 왕국 산젠 자작 가문의 4남. 너에게 기사의 결투를 신청한다!”
기사는 격식에 맞춘 대결을 신청했다.
“무기를 들어라! 무기를 들지 않은 자를 공격할 순 없다!”
“…….”
태훈은 말없이 자세를 고쳐 잡고 몽둥이의 끝을 기사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오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거……. 건방진 놈!”
자신의 정중한 태도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사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역시 못 배워먹은 용병 놈들은 어쩔 수 없군. 말이 안 통한다면 실력으로 보여줘야지.”
기사는 자신의 창끝을 태훈에게 향하고 뛰기 시작했다.
태훈은 뒤로 물러서 다리 한 가운데로 움직였다.
“흥, 내 움직임을 묶어보겠다는 거라면 잘못 생각했다!”
기사는 상당히 빠른 연격으로 창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창끝이 태훈을 향해 날아들었다.
창끝은 아슬아슬하게 태훈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창끝이 닿을락 말락하자 기사는 스스로의 실력에 도취되어 갔다.
“우하하하! 피하기도 벅찬 것인가! 오금이 저려도 이미 늦었다!”
“아직 애송이로군.”
“엉?!”
침착한 상대의 목소리.
거기에 자신을 깔보는 듯한 말에 기사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천한 평민 주제에 감히 귀족을 비웃어?!”
“어린놈을 어리다고 한 것이 문제라면 더 할 말이 없군.”
태훈의 말대로 기사는 상당히 어렸다.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정신연령에선 태훈이 훨씬 위였다.
기사의 창끝이 매섭게 태훈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왔다.
태훈의 나무 막대 끝이 창끝을 막아내자 기사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자신은 창이고 상대는 나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 있게 힘으로 밀어붙였다.
창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나무를 쪼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무는 갈라지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어린 기사는 당황했다.
이상함을 느낀 어린 기사는 한 발 물러섰다.
‘단순한 용병은 아니군. 보고받은 대로 실력자 놈들인 건가.’
처음 전장에 나온 그는 전과가 필요했다.
상대가 아군의 보급과 작전을 훼방 놓았던 적임을 알자 자신의 커리어를 올릴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상대가 생각보다 강하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기다 그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 지체하다간 무슨 책임을 질지 몰라.’
기사에게서 오리진의 기운이 느껴지자 태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 나이에 웨폰 마스터의 반열에 발을 들였다고?’
제일 아래 단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 어린 나이에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흔치 않았다.
‘아무드 왕국은 전투의 민족이라더니 맞나 보군.’
상대는 창끝을 내리고는 자세를 취했다.
단거리 달리기의 출발선에 선 듯한 자세를 취한 기사의 몸에서 오리진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오리진의 기운은 창과 다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돌진형인가? 정면 돌파할 셈이군.’
태훈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리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기사는 자신이 오리진을 다루기 시작하자 상대가 눈치를 채고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흥!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쿵-
기사의 몸이 새총을 쏜 듯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태훈의 지척까지 다가온 기사는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태훈은 그의 창끝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기사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방향을 바꿔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군.”
턱-
태훈은 상대의 흉갑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손목의 스냅만으로 기사의 가슴을 때렸다.
펑-!
수류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바람이 일었다.
수면도 둘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물결이 일었다.
마치 큐대로 친 당구공처럼 기사의 몸은 수면과 나란히 날아갔다.
물수제비를 뜬 것처럼 수면과 몇 번 부딪힌 기사는 강 한가운데서 물에 빠졌다.
태훈은 들고 있던 몽둥이로 다리를 내려치며 말했다.
“이 다리를 건너겠다면 덤벼라. 다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그의 말이 끝나자 몇 명의 병사가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나머지는 그대로 뒤로 돌아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기절한 기사가 물가로 끌려나와 말에 실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지자 태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장비도 이런 기분이었나.”
적의 기병은 천 명이 넘었었다.
매복해 있던 적을 급습한 적은 있었지만 대군과 이렇게 마주 서보긴 처음이었던 터라 태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상대가 바보여서 다행이었어.”
적들이 한 번에 달려들었다면 더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상대는 호기에 가득 찬 어린 상대였다.
그때 뮤즈가 강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도 태훈처럼 가면에 검은 옷을 입은 상태였다.
“수고했어.”
“우우, 팬티까지 다 젖었어요.”
그녀는 강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강에 빠지는 적을 끌어내 강둑에 버려두고 오는 길이었다.
“어쩔 수 없어. 갑옷이 무거워서 강에 빠지면 가라앉을 수밖에 없거든.”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작정이에요? 요새가 무너졌잖아요.”
“음, 이런 식으로 밀어붙일 줄은 몰랐어. 꽤나 절박했었나 봐.”
사실 태훈은 그동안 전장의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규모의 국지전만이 이루어지고 보급도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정전이나 휴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무드 본진 내에서 비밀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던 투석기를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거기다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용병들의 공격에도 적잖이 놀랐다.
‘손실은 많더라도 이제 물밀듯이 내려올 텐데.’
연합군의 최전방 방어선에 있는 최고의 수비 지역은 방금 무너진 요새였다.
애초에 요새를 하나 더 건설하려 했지만 제노비아는 그 비용으로 태훈이 개발했던 기구를 사는 데 투입했다.
조금 전 빼앗긴 요새 다음으로는 연합군의 병참기지가 있었다.
하지만 토사와 목책으로 만들어진 임시 기지라 방어 거점으로 삼을 순 없었다.
결국 연합군은 전선을 뒤로 물러야 했다.
반면 평야를 손에 넣은 아무드군은 중요 길목을 확보하면서 어디로든 진군할 수 있게 되었다.
“연합군은 몇몇 영지를 버릴 거야. 중요 지점만 방어하겠지.”
“숫자는 비슷하지 않아요? 다시 거점을 만들고 반격하면 충분할 텐데요.”
“이번 싸움으로 수세에 몰린 건 연합군이야. 단순히 병력의 숫자만으로 판가름할 순 없어.”
“그럼 저흰 이제부터 아무드군만 방해하면 되는 거네요.”
태훈과 뮤즈는 연합군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방해공작을 펼쳤다.
하루에도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며 아무드군의 병력을 격퇴하거나 함정을 파놓았다.
덕분에 아무드군은 기동성을 살린 최단 시간 돌파 전략에 큰 차질을 빚었다.
태훈이 기사를 상대했던 다리를 공략하는 데만 3일이라는 시간을 낭비했다.
그사이 연합군은 병참기지와 함께 후방으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젠장! 대체 그 가면 쓴 놈들은 누구냐!”
아무드군의 사령관은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요새를 격파했지만 그가 바라는 성과는 그 이상이었다.
거기다 막대한 예산과 병력의 희생도 컸다.
사령관은 태훈과 뮤즈를 아직도 규모가 제법 되는 용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대를 여럿 조성하여 토벌하려 했지만 각개 격파만 당할 뿐이었다.
“고작 용병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최선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놈들 중에는 마법사도 있는 것 같아서…….”
“우리 마법사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인가? 당장 그놈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장교가 나가자 사령관은 한 귀족을 불렀다.
“불란 자작. 연합군의 첩자에게 서신을 띄우게. 우릴 방해하는 용병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라고 해.”
사령관은 자신들을 방해하는 자들이 연합군이 고용한 용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그쪽도 모른다고 합니다.”
전쟁이 터지면 용병들은 생존이 높은 쪽을 선택한다.
물론 용병 고용에 가장 큰 요인은 보수지만 대다수의 용병은 이길 수 있는 쪽에 붙기 마련.
이번 전쟁에 제국이 아무드를 지원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용병들의 대부분은 아무드 쪽을 택했다.
연합군도 용병을 고용하긴 했으나 그 숫자는 미미했다.
“고용했던 용병들이 한정적이라 조사를 해봤지만 단독으로 움직인 용병들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를 공격하는 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인가?”
“아마도 제노비아의 민병대가 아닐까요?”
“상대했던 녀석들이 놈들은 소수라고 했다. 심지어 혼자인 경우도 있었는데 고작 평민 놈들의 소규모 부대에 우리 병력들이 전부 깨졌다고?”
“그……. 그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게 사실이어도 문제야! 다른 국가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어!”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주겠다! 일주일 안에 그놈들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내 앞으로 끌고 와!”
분노한 사령관의 외침에 불란 자작은 황급히 막사를 나왔다.
“난리 났군. 후우…….”
불란 자작은 난감했다.
이미 백방으로 게릴라들에 대한 정보 수집과 토벌을 시도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질 수는 없었다.
자작은 전서구를 통해 적 내부의 첩자에게 서신을 보냈다.
서신을 받은 에버튼 백작도 얼굴이 구겨졌다.
서신에는 게릴라들에 대한 명확한 신상 정보를 보내라고 적혀 있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엔 약속했던 것들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제기랄. 지들이 무능한 걸 왜 나보고…….”
백작은 편지를 찢어버렸다.
공주 구출이라는 명목으로 주요 지휘관을 사지로 보내줬지만 아무드군은 실패했다.
거기다 지금은 자신들의 후방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임을 자기한테 잘못을 떠넘기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내키진 않지만 그 녀석 도움을 받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