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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53화 (53/150)

53화

부사령관의 성화에 에버튼 백작은 결국 구조대에 합류했다.

‘이대로 가다간 화살받이로 죽는다.’

백작은 어떻게든 중간에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의 지리는 자신이 잘 아는 만큼 샛길 역시 잘 알았다.

백작은 말을 늦추려 했으나 뒤에서 따라오는 병사들에 의해 쉽지 않았다.

결국 백작은 각오를 다지고 품 안의 단검을 꺼냈다.

그러곤 자신이 앉아 있는 안장 밑으로 칼끝을 밀어 넣었다.

히이이이잉-!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며 소리를 지르자 부사령관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백작! 말을 진정시키시오!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할 셈이오!”

“어헛, 말이 통제가…… 안 됩니다!”

백작은 혼신의 연기를 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말이 벌에라도 쏘인 듯한 연기를 하며 말머리를 돌리는 데 성공한 백작은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을 쫒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이 있다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말을 따라올 정신 나간 병사는 없었다.

“후우, 따돌린 건가?”

낙마를 각오하고 한 행동.

결과적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백작은 스스로에게 만족해했다.

‘그럼 돌아가 볼까.’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을 요새 쪽으로 돌렸다.

매복해 있던 아무드군이 부사령관을 비롯해 주요 귀족들을 사살하거나 사로잡을 계획이었다.

그 인질을 바탕으로 연합군이 휘둘리게 되면 요새는 물론 전쟁의 양상이 바뀌게 될 수도 있었다.

백작은 가면을 통해 아무드와 밀약을 했다.

연합군의 최전방이 무너지고 제노비아가 수세에 몰릴 때 그는 수도에서 내란을 일으키기로 되어 있었다.

그 후 지금의 왕족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된다는 계획.

그것을 위해 수도 귀족 몇몇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자신이 실권을 쥐게 된다면 아무드군과 함께 카나리스로 진격.

카나리스를 필두로 대륙 남부 지방을 아무드, 세레니스와 나누어 먹는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건방진 왕족 놈들. 이번 기회에 몽땅 씨를 말려주마.”

그는 처음부터 잘나가는 귀족이 아니었다.

오래전 몰락했던 귀족에서 비루하게 자라났다.

그의 가문은 구멍가게와 다를 바 없는 조그마한 상단으로 시작하여 다시 정계로 복귀한 가문.

지금의 국왕은 자신의 가문을 탐탁지 여기지 않았을뿐더러 제대로 인정조차 해주지 않았다.

모든 귀족의 면전에서 핀잔과 모욕을 줄 때마다 그는 복수를 다짐해 왔다.

말을 몰던 백작은 문득 가던 길을 멈추었다.

“흠, 이대로 돌아가면 의심을 살 수 있으려나?”

보나마나 구조대 역시 대부분 궤멸할 텐데 자신이 멀쩡해선 체면이 살지 않았다.

그는 말에서 내려 땅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흙을 진탕 두르고 나서는 단검으로 자신의 옷 곳곳을 찢어 놓았다.

머리까지 헝클어놓으니 영락없는 노숙자 몰골이었다.

“아무드 놈들, 이번엔 실수하지 않겠지?”

애당초 도리아를 국왕 시해범으로 몰아넣어 전쟁을 일으키는 계획이 틀어진 것은 순전히 아무드의 실책이었다.

이번에 실수를 하게 된다면 자신의 입지가 굉장히 난처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나마 자신의 수하들이 공주들을 납치하는 데 성공해서 믿을 구석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보루였다.

“안 되겠다. 그놈들이 제대로 일하나 확인해야겠어.”

그는 아무드군이 매복해 있기로 했던 장소로 말을 돌렸다.

샛길과 지름길로 간다면 본대보다도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여유 부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는 말을 급히 몰았다.

잠시 후 도착한 백작이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언덕.

언덕 아래로는 구조대가 지나갈 길이 보였다.

“뭐야, 이놈들 어디 있는 거야?”

백작은 언덕에 숨어 있어야 할 아무드군이 보이지 않자 당황했다.

찾기가 쉬운 샛길은 아니었지만 백작은 친절히 지도에 표시까지 해주었었다.

행여 자신을 보고 숨어 있는 것인가 싶어 팔을 들며 불러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음?”

샛길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백작은 많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은 숲속으로 향해 있었기에 백작은 발자국을 따라 들어갔다.

“이, 이게 뭐야?”

잠시 후 발견한 아무드군은 처참했다.

아무드군 병사들과 기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으으으…….”

가까운 발치에 있던 병사가 신음을 하기에 백작은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병사는 고통이 큰 듯 정신이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높은 신분을 가진 자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갔다.

그도 살아는 있었지만 턱뼈가 부서졌는지 하관이 뒤틀려 있었다.

“난 제노비아의 에버튼 백작이다! 네가 매복조인가?”

“어으으으…….”

피와 침을 흘리며 기사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이야? 왜 여기서 이 지랄을 하고 있냔 말이냐!”

“어으으으…….”

하관이 박살 난 기사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정보를 얻을 수 없자 백작은 얼굴이 멀쩡한 다른 기사를 찾았다.

바로 근처에서 찾은 기사는 얼굴은 멀쩡했지만 팔과 다리가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네가 말해봐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습격을 받았소.”

“꼴을 보면 알아. 누가, 왜, 어떻게 습격을 했냔 말이다!”

“몇 놈이 우릴 꾀어냈소. 부대 절반을 시켜 잡으려 했지만 부상자만 늘어나서 모두가 달려들었다가 이 꼴이 난거요.”

“몇 놈이 이 많은 숫자를 쓰러뜨렸다고?”

“그렇소. 우리 200명이 손도 써보지 못했소.”

“그놈들 얼굴은 봤나? 연합군 복장을 하고 있었나?”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소. 옷은 평범한 가죽 갑옷을 입은 용병 차림이었소.”

‘용병?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우리 쪽 용병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 소리가 났다.

급히 언덕 쪽으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내려다보니 구조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매복병들이 저들을 덮쳐야 했다.

‘야단났군. 이대로 구조대를 보내도 문제인데.’

구조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술책일 뿐 백작이 저들을 이끈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떤 놈들이지? 가면이라면 내가 아는 놈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사이 구조대의 소리가 가까이 들려오자 백작은 주위를 살폈다.

죽은 아무드 병사의 소지품이라도 주워간 다음 철수하는 적을 봤다고 둘러댈 참이었다.

그러던 중 백작은 주위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죽은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

사지가 멀쩡한 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은 병사도 없었던 것이다.

‘이 무슨 변태 같은 행위인가. 전투 불능만 만들어놓고 도망갔다고?’

희한한 광경이었지만 지체할 여유는 없었다.

“검 좀 빌려야겠다. 알아서 들키지 않고 돌아가! 이 문제는 나중에 따지겠어.”

백작은 기사의 검을 들고는 자신의 말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곤 말에 올라 구조대보다 조금 앞질러 갔다.

그는 구조대가 오는 방향으로 말을 몰며 반갑게 맞이했다.

“오, 부사령관!”

“에버튼 백작?”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오자 부사령관을 비롯해 모두가 놀랐다.

“어째서 백작이 그쪽에서 오는 것이오?”

“말을 진정시키고 지름길로 왔습니다. 그보다 이것 보시오.”

백작은 사람들 앞에 검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한눈에 그것이 아무드 기사의 검임을 알아보았다.

백작은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사람들 앞에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철수하는 아무드군을 보았다?”

“그렇소. 철수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늦은 듯합니다.”

“공주님들은 보았소?”

“보지 못했습니다. 잡히셨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으음!”

부사령관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백작은 얼른 다음 변명을 늘어놓았다.

“호위대가 아무드군을 보고 도망쳤을 수도 있습니다.”

행여 연합군이 아무드군에게 두 공주의 교환 교섭이라도 하는 날엔 큰일.

어디까지나 두 공주의 납치는 그 누구와도 꾸민 일이 아닌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백작은 진땀을 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호위대와 연락이 닿소?”

“요새로 돌아가면 다시 전서구를 띄우겠습니다.”

“그냥 돌아갈 순 없소. 이 일대 수색이라도 해야겠소.”

그 말에 백작은 다시 진땀을 뺐다.

사지가 멀쩡한 놈이 하나 없는 아무드군이 벌써 자리를 치우고 돌아갔을 리 만무했다.

“호위대가 피신했을 법한 장소를 압니다. 그쪽으로 가보죠.”

다행히 부사령관은 백작이 안내하는 곳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백작은 자신의 계획이 또 틀어지자 입술을 깨물었다.

* * *

태훈과 뮤즈가 매복해 있던 아무드 군을 전투불능으로 만든 지 하루가 지났다.

처음 매복조를 발견한 것은 운이 좋았다.

전선이 교착상태라고 들은 태훈은 뮤즈와 함께 전선 근처에 근거지를 만들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숲에 숨어 있는 아무드군을 보고 첫 전투를 벌인 것.

가면과 함께 용병으로 보이게끔 가죽 방어구를 두르고 아무드군과 전투를 벌였다.

군대는 둘의 몸놀림조차 제대로 좆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나무가 많기에 짧은 몽둥이를 들고 움직였다.

검기를 두른 태훈의 나무 막대는 쇠파이프보다 더한 흉기였다.

뮤즈는 마치 살풀이라도 하듯 깔깔대며 숲을 누볐다.

“히이익! 마녀다!”

“미친 마녀다! 이 숲엔 미친 마녀가 산다!”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적.

깔깔대며 웃는 적이 자신들을 죽이지도 않고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디다 대고 마녀라는 거야!”

“히이익!”

병사들은 하나둘 쓰러져가거나 빛이 들지 않는 숲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렇게 적들을 손봐준 다음의 뮤즈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웠다.

“내가 적당히 하랬잖아.”

“죽이진 않았잖아요.”

“그렇다고 사지를 다 분질러놓으면 어떻게 해?”

“주인님, 잘 생각해 보세요. 적당히 손봐주면 금방 회복해서 다시 전쟁에 참여할 거 아니에요. 그럴 바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침대 신세를 지게 해주는 게 좋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느낀 태훈은 지도를 펼쳤다.

“다음은 여기. 여길 치면 돼.”

“여기는 연합군 진영 아니에요? 왜 아군을 쳐요?”

태훈이 가리킨 곳은 아무드의 진영이 아닌 전선 남쪽.

연합군의 진영이 있는 곳이었다.

“너무 아무드 쪽 피해만 줘선 곤란해. 아무드가 불리해지면 제국을 어떻게든 전선으로 불러올 거야. 거기다 연합군이 진격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건 아니야.”

연합군의 전력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드 쪽에게만 일방적인 피해만 주었다가는 자칫 연합군이 북진할 수 있었다.

“아군이 이기면 좋은 거 아니에요?”

“난 더 이상 카나리스의 왕자가 아니야. 그냥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은 중립자일 뿐이지.”

“헤에, 누가 들으면 섭섭해하겠네요.”

“누구?”

“주인님 주위 사람들이죠. 전부 카나리스 사람들이잖아요.”

“……됐어. 준비나 해.”

태훈은 가면을 쓰고는 동굴을 나섰다.

임시로 마련한 거처는 작은 동굴이었다.

태훈이 노린 곳은 얼마 전 아무드 군이 공격했다 실패한 후방의 병참기지였다.

둘은 빠른 속도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흡사 축지법을 쓰는 듯 숲의 짐승들도 그들을 보기 힘들었다.

“그나저나 다시 나타날까요?”

“나타날 거야. 이 전쟁이 그들이 바라는 전쟁이라면.”

태훈은 전선이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가면이 나타날 것이라 확신했다.

“이번에 나타나면 생포해야 돼. 잡아서 이 전쟁에서 노리는 게 뭔지. 그리고 그놈들의 정보를 확실하게 캐내야 돼.”

“정보를 캐내는 건 홀든이 알아내기로 하지 않았어요?”

“연락조차 없잖아. 마냥 기다릴 순 없어.”

태훈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공국과 제국에 있는 알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홀든의 소식을 물었지만 여전히 그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상황이 이쯤 되자 홀든의 실력을 믿었던 태훈도 생각하는 노선을 달리해야만 했다.

일이 생겼다면 홀든을 도와야 했다.

“그 가면 놈을 붙잡아서 물어보면 되겠네요.”

“그렇지. 그놈들 소굴을 알아낸다고 하고 가셨으니 그놈은 장군님 소식을 알고 있을 거야.”

둘이 대화를 하는 사이 그들 앞에 목책으로 둘러싸인 병참기지가 나타났다.

백주대낮에 적이 습격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연합군의 경비는 느슨했다.

둘과 마주치는 병사들과 기사들은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정신을 잃었다.

손쉽게 병참기지 곳곳에 불을 지른 태훈과 뮤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병참기지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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