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52화 (52/150)

52화

분신이 검을 집어 들고 몸을 돌렸을 때 목에 무언가가 와닿았다.

태훈의 손에 들린 것은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

“내 단점. 그건 고지식하다는 거였어.”

태훈은 그동안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전생의 탓인지 자신은 틀에 박혀있었다.

일 더하기 일은 이.

틀에서 벗어난 방법과 수단은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변칙성이 없어 타인이 자신의 생각을 읽기 쉬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도 검이 아니면 공격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무기가 될 만한 건 충분했어.”

싸움박질 중에 많은 나무가 박살이 나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그 파편이었다.

‘틀에 박힌 생각과 정석만을 믿어선 발전할 수 없어.’

그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그때 분신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분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자 멈춰 있던 세계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풀과 나무의 냄새.

바람에 가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분신이 사라졌던 자리에 아뮬렛 형태의 장신구가 나타났다.

금테에 세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붉은 마나와 푸른 마나. 그리고 오리진을 뜻하는 건가?’

아뮬렛은 허공에서 빙빙 돌더니 이내 빛을 내며 커졌다.

2배 정도로 커진 아뮬렛에 손을 대자 아뮬렛이 사라졌고 태훈은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눈을 뜬 태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뮤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뮤즈의 얼굴.

그제야 자신이 폐수도원 지하실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태훈.

갑자기 뮤즈가 그의 입으로 자신의 입을 가져가자 태훈의 손이 뮤즈의 턱을 밀어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니, 주인님이 저를 그윽하게 쳐다보시니까 분위기에 그만…….”

“천장 본 거야, 인마. 그런 분위기는 네 머릿속에만 있는 거지.”

태훈은 상체를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물의 지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거기에 얼마나 있던 거지?”

“거기라뇨?”

“아, 물의 지니가 준 시련 때문에 다른 공간에 있었어. 내가 거기 얼마나 있던 거야?”

“주인님은 어디 가신 적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뮤즈는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물의 지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태훈은 정신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계속 쓰러진 태훈을 돌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과 수분.

태훈이 어디로 사라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고? 족히 이삼 일은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시간은 아낄 수 있었기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세 가지 기운을 운용해 보았다.

심호흡과 함께 체내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혈류와 함께 움직이는 기운은 점차 가속.

기존의 양보다 조금씩 더 체내에 쌓이기 시작했다.

“오오!”

급격히 늘어가는 기운에 태훈은 탄성을 질렀다.

뮤즈도 눈치챘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쉬이이익-

그의 몸에서 김 같은 것이 발생하며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오리진의 기운이 일정 모양을 이루고 있다가 퍼지며 몸 곳곳으로 흩어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다. 이것이 웨폰 마스터의 상급 경지인가?’

기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근육은 밀도가 높아지며 탄탄해졌고 뼈는 단단해졌다.

검을 들어 오러를 내뿜자 새빨간 붉은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부했던 대로 상급의 경지였다.

다음은 푸른 마나의 기운.

명치 부근에 모여 있던 푸른 덩어리는 척추 쪽으로 움직였다.

척추를 타고 흐르다가 이내 위쪽으로 올라간 기운은 그의 머리로 향했다.

머리를 가득 채우고 남은 기운은 다시 그의 명치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붉은 마나 역시 예전보다 크기가 커졌다.

심장 부근에 있던 기운은 다른 기운들과 달리 조용히 크기만 커졌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뮤즈가 검으로 변했을 때보다는 못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달라.’

태훈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뮤즈, 대련 한번 해보자.”

“여기서요? 무너질 것 같은데.”

“여기서 해보자고. 사방팔방으로 난사하는 것보다 힘 조절하며 집중하는 게 더 힘드니까 더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뮤즈가 움직였다.

여전히 빠른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예전엔 겨우 눈으로 좇던 것이 지금은 여유로웠다.

태훈이 검기를 두르며 쇄도해 들어가자 뮤즈가 자신의 낫을 꺼내 들었다.

까앙-!

그의 검을 받아낸 뮤즈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의 검이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까진 뮤즈가 우위에 있었다.

‘힘으로 안 된다면 스피드로!’

그는 신력으로 근력강화를 비롯한 모든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켰다.

거기에 모든 오리진을 어깨와 팔에 집중했다.

둘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지만 둘을 중심으로 풍압이 퍼져 나갔다.

깡-깡-깡-

쉬익-

검이 부딪힐 때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검기도 아닌 검풍만으로 바닥과 기둥, 천정에 칼자국들이 늘어났다.

‘조금 더! 한계까지 밀어붙여!’

태훈은 이를 악물고 팔을 휘둘렀다.

뮤즈의 얼굴에서 특유의 장난기 섞인 웃음이 사라졌다.

대신 진지함이 묻어나며 뮤즈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잘 막아내던 뮤즈가 한순간 뒷걸음을 한 발짝 내디뎠다.

“윈드 스트라이크!”

본래 윈드 스트라이크는 6클래스 공격마법으로 대단위 마법이었다.

축구장 만한 크기의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내리꽂히는 마법.

하지만 붕괴 위협이 있기에 태훈은 그것을 압축시켜 볼링공만 하게 쏘았다.

“다크 배리어!”

뮤즈가 마법으로 대응하며 막아냈지만 검은 막이 깨어지며 뮤즈가 뒤로 밀려났다.

펑-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에서 태훈의 검끝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뮤즈도 당황하지 않고 낫을 휘둘렀다.

리치에서 더 유리한 뮤즈가 연기를 갈랐지만 태훈은 내질렀던 검을 비틀어 낫을 막아냈다.

끼기긱-

낫과 부딪힌 검신에서 불꽃이 튀었다.

순식간에 뮤즈의 품 안으로 좁혀 들어간 태훈이 손을 뻗었다.

태훈의 손이 자신의 배를 향하자 뮤즈는 마법에 대비했다.

그의 손은 느렸고 영락없이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툭-

슬쩍 갖다댄 듯한 태훈의 손.

손바닥이 뮤즈의 배에 닿았다.

그의 손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뮤즈였다.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완력으로 태훈은 뮤즈를 밀쳐냈다.

“뭣?!”

짧은 탄성을 지르며 그녀의 몸이 떠올랐다.

콰콰콰쾅-

그대로 그녀는 몇 개의 기둥과 부딪혔고 기둥들이 무너졌다.

다행히 지하는 무너지지 않았고 피어오르는 먼지 바닥에서 뮤즈가 몸을 일으켰다.

쿨럭-

뮤즈가 거친 기침을 토해내자 태훈이 당황하며 뛰어왔다.

“미안! 괜찮아?!”

“때려놓고 미안하다구요? 대체 방금 건 뭐였어요?”

“전생에 경이라고 불리던 건데 예전엔 안 됐는데 지금은 되네.”

태훈은 전과는 다르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세 가지 기운을 손바닥으로 모았다.

합쳐진 기운은 뮤즈에게서 느껴졌던 오묘한 기운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장풍을 쏘듯이 밀어내었던 것.

합쳐진 기운은 그의 손바닥과 뮤즈의 신체 사이에서 폭발하듯 사라졌다.

태훈의 설명에 뮤즈가 갸웃했다.

“세 기운을 합쳐요?”

“응, 그랬더니 그 신기란 것과 비슷한 기운이 만들어지더라고.”

“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네가 신기를 흡수하면서 비슷한 기운이라 못 느낀 거 아닐까?”

하지만 태훈도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제어를 벗어나자마자 기운이 폭발한 것.

‘왜 폭발한 거지? 내가 제어했을 땐 안정적이었는데.’

태훈은 다시 한번 자신의 손에 세 기운을 합쳤다.

“느껴져?”

“아뇨, 아무것도요.”

“그래?”

태훈은 그 기운을 허공으로 방출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공기가 터져나가듯 작은 폭발과 함께 기운이 흩어졌다.

‘세 기운은 인공적으로 융합시켜놓을 수 없는 건가? 내 제어를 벗어나자마자 흩어져 버리네.’

그러자 더욱 신기라는 것에 궁금증이 생겼다.

“다음번에 신기라는 걸 얻게 되면 조사 좀 해봐야겠어. 물의 지니에게 넘겨주기 전에 말이야.”

“그보다 주인님, 예전보다 강해지긴 했네요.”

“응, 대략 7클래스 능력이랑 예전에 카를로스 집정관 정도의 능력을 얻은 것 같아.”

태훈은 자신의 상태에 상당히 만족했다.

그가 도달한 경지는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7클래스는 대륙에 3명에 존재했다.

상아탑의 수장.

그리고 론 제국의 수석 마법사.

마지막 한 명은 오래전에 행방불명된 인물이었다.

그리고 집정관 정도의 신력은 고위급 신관의 경지로, 숨만 붙어 있다면 치명상의 상처도 회복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붉은색 검기.

웨폰 마스터의 상급 경지로 그다음 경지는 마지막 단계인 그랜드 마스터뿐이었다.

전 대륙을 통틀어 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았다.

‘완전히 치트 캐릭이네. 하긴 내가 지불한 포인트가 얼만데.’

이제야 포인트를 투자한 빛을 보는가 싶었다.

하지만 거금을 주고 산 능력은 아직 한계치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그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뮤즈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본래 일주일간의 훈련 기간이었으나 지금은 그 시간을 번 셈이 되었다.

“전쟁을 막으러 가야지.”

“오, 그럼 날뛰어도 된다는 건가요?”

흥분한 뮤즈의 코에서 김이 새어 나왔다.

카나리스에서 총국과의 결전 이후 이렇다 할 전투가 없었던 탓인지 뮤즈는 흥분했다.

“날뛰어도 좋아. 하지만 내 신조알지?”

“의미 없는 살생, 피할 수 있는 살생은 피해라.”

“그것만 기억하면 됐어.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후방 교란이니까.”

태훈은 짐을 챙겼다.

공방으로 돌아오니 파케 영애는 잊고 간 것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일이 잘 해결됐다고만 해둔 태훈은 전장으로 향했다.

* * *

남방연합군의 요새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둘러라!”

“빨리빨리 움직여!”

요새 안에 있던 모든 기병들이 허겁지겁 준비하고 있었다.

“에버튼 백작은 어딨나!”

요새의 부사령관이 외치자 잠시 후 기사들이 에버튼 백작을 찾아왔다.

백작의 차림을 본 부사령관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뭐가 말이오?”

“당장 준비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오!”

“준비라니. 설마 나도 같이 가야하는 것이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백작의 부하가 전갈을 보냈으니 같이 가셔야지.”

“나는 그저 위치만 알려 드리면 될 것 같소만.”

백작은 찔끔하면서 한 발 물러서려 했다.

20분 전쯤.

백작은 자신의 부하에게 전서구를 받았다.

문제없이 일이 진행되었다는 전갈에 백작은 사령관을 찾았다.

그의 방에서 목을 가다듬은 백작은 사령관의 문을 벌컥 열며 연기를 시작했다.

두 공주를 마중 나갔던 병력이 공주를 발견했으나 적에게 발각되어 쫓기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것.

그 결과 급하게 구조 병력을 꾸리는 중이었다.

“어서 움직이시오! 이곳 지리를 아는 자가 필요하오!”

“끄응…….”

부사령관의 말에 백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영지가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백작이 미루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알려준 위치에는 아무드 군이 매복해 있었다.

아무드군이 매의 눈을 가지지 않는 한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