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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51화 (51/150)

51화

동이 터오자 하늘로 치솟았던 기구들은 수신호를 보고는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땅 위에 있는 시체들이 얼추 처리가 되었을 무렵 병사 하나가 병참 장교에게 다가갔다.

“보고드립니다. 적 사상자 3천 정도입니다.”

“흠, 나쁘지 않군.”

“하지만 마장기의 부품이 파손되었습니다.”

단일 물품 중에서는 가장 무거운 마장기의 부품.

미처 기구에 싣지 못한 것이 파손되었다.

검게 그을린 부품 옆에 시커먼 숯덩이를 본 장교가 물었다.

“적병인가?”

“적의 지휘관인 것 같습니다. 파놓았던 수로의 기름에 스스로 뛰어들더니 그대로 몸을 던졌습니다.”

“야만적인 놈들.”

“포로는 어떻게 할까요?”

“심문해.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

요새에선 간밤의 습격을 잘 막아냈다는 소식에 축제 분위기였다.

아무드의 기병 3천과 맞바꾼 연합군 전력은 보병과 기병을 합쳐 1천 정도에 불과했다.

“부품을 잃은 것은 아깝지만 기 싸움에선 우리의 승리입니다.”

“기구를 도입하길 아주 잘했군요. 저들의 잘난 기마병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공주님들의 소식은 없습니까?”

며칠 전 전방 요새에 전달된 서신 한 통.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자가 보내온 편지에는 지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두 공주의 도주로라 적혀 있었다.

안 그래도 아무드에 있는 공관으로부터 두 공주의 실종 소식을 들은 그들은 편지를 믿고 사람을 보냈다.

“편지의 내용이 사실대로라면 오늘 오후엔 접선하겠죠.”

“함정이지 않을까요?”

일부 사람들은 편지가 함정일 것이라 추측했다.

발신인이 불명인 것도 그렇지만 도주로가 꽤나 치밀했다.

이는 아무드의 지리나 경비 전력을 잘 안다는 말이었다.

“실력자들로 구조대를 만들어 보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설사 함정이라 해도 우리의 짐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도 공세로 나갈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 귀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유리한 방어 입장에서 성문을 열고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엇하러 나간단 말이오? 자리만 지키고 있음 저들의 손해가 쌓여갈 텐데?”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유리하니 공세로 나가도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공세로 나가자는 말은 제노비아의 귀족이 꺼낸 말이었다.

“이제 겨우 전쟁이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는 겁니까?”

“맞는 말입니다. 구태여 성문을 열 필욘 없습니다.”

카니리스의 귀족들은 손을 내저었다.

연합군 사령관인 홉킨스 자작도 만류에 동참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도 일리가 있으나 이제 싸움이 시작되었 뿐이오. 좀 더 상황을 지켜봅시다. 지금은 방어를 하며 공주님들의 신변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요.”

“크흠, 알겠습니다.”

제노비아의 귀족은 한 발 물러섰지만 표정은 떨떠름했다.

회의가 끝마치고 나서 한 귀족이 다른 귀족을 붙잡았다.

그러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곤 주위를 살폈다.

“무슨 일이오? 에버튼 백작.”

“이건 기회입니다.”

“기회? 무슨 기회?”

에버튼 백작은 회의에서 공세로 나가자고 주장했던 제노비아의 귀족이었다.

그가 붙잡은 것은 연합군의 참모 중 한 명이자 같은 제노비아의 귀족이었다.

“카나리스의 겁쟁이들은 싸울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어허, 말을 삼가시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줄리어스 백작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나선단 말이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어디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까? 우리 땅. 우리 영토입니다.”

“그래서?”

“카나리스 놈들은 자신들은 안전하니 방어에만 집중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다 여기가 밀리면 그땐 어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무드 놈들은 여길 뚫지 못할 것이오.”

“제국이 나선다면? 그땐 어쩔 겁니까?”

“제국이 직접 나선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줄리어스는 깜짝 놀랐다.

제국이 직접적으로 이 전쟁에 끼어들 명분은 없었다.

지금도 아무드에 물자를 대주곤 있지만 명실히 물자 거래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는 입장이었다.

“아무드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제국은 그 많은 전쟁 대금을 어디서 받겠습니까?”

“그거야 아무드가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 않소.”

그러자 에버튼은 답답하다는 듯 격조했다.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제국이 나서겠죠. 모르시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아무드가 패한다면…….”

“패한다면?”

“제국은 카나리스와 손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뭐요? 그 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줄리어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백작, 너무 앞서 나갔소.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온단 말이오?”

“제국은 이득만 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전쟁에서 아무드가 이기든 지든 사실은 관심 없을 겁니다. 그저 이득만 있으면 되죠.”

“그런데 그게 어찌 카나리스로 연결이 된단 말이오?”

“제 정보로는 제국과 총국이 날 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 판국에 제국이 상아탑과도 적대하겠습니까?”

열변을 토하던 백작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만약 아무드가 지면 아무드와 함께 우리까지 싸잡아 먹으려 들 겁니다. 카나리스는 그걸 빌미로 평화조약이라도 맺겠죠.”

“어허, 백작.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군. 난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줄리어스는 급히 자리를 떴다.

종종걸음으로 부리나케 사라지는 줄리어스를 보며 에버튼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술병의 마개를 따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인물을 보고 놀랐다.

“젠장, 깜짝 놀랐네. 인기척 좀 하고 다니면 안 되나?”

백작을 찾아온 인물은 가면을 쓴 자였다.

태훈이 아무드의 왕궁에서 본 국왕을 암살한 장본인이었다.

“어떻게 됐지?”

“오늘 말 꺼낸 참이야.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털썩-

백작은 소파에 거의 반쯤 드러누운 채 잔에 술을 따랐다.

“넉살좋게 늘어져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이야. 뭐가 그리 급해?”

“그분께서는 일을 빨리 진행하고 싶어 하신다. 농땡이 부릴 시간 따위는 없어.”

태훈과 대화했을 때와는 달리 가면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그래도 특유의 차분함은 그대로였다.

“정치는 빵 굽는 것과 비슷해. 시간을 들이고 적절한 때가 오길 기다려야 하는 법이야.”

“네놈에게 시킨 것은 정치가 아니라 내부의 교란이야. 어쭙잖은 귀족 행세를 하는 것을 보니 과거는 잊었나 보지?”

과거 이야기를 꺼내 들자 백작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미천했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

“닥쳐, 애당초 약속을 어긴 건 너잖아. 도리아를 범인으로 몰아가기로 한 건 그쪽이었어!”

“누가 됐든 상관없지 않나? 네놈이 바라는 건 현 왕족의 몰락이었고 결과적으로 전쟁은 터졌다.”

“흥, 내 계획은 틀어졌다고!”

백작은 도리아가 범인으로 지목되길 원했다.

전쟁이 터지고 현 왕족의 책임을 물어 내부에서 세력을 다지려고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심증만 있을 뿐 그 누구도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았다.

지금 가면이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든 국지전을 끝내고 전면전으로 나서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분께서 삼 일의 말미를 주셨다. 어떻게든 양쪽의 싸움을 제대로 붙여.”

“너는 제국편도 아니라면서 왜 전쟁을 붙이려는 거지? 이 전쟁이 너나 그분이라는 녀석한테 이득이 뭐야?”

“그것까진 네가 알 필요는 없다. 명심해라. 3일이다.”

그 말을 끝으로 가면은 모습을 감추었다.

백작은 가면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이켰다.

‘마음에 들진 않아도 시키는 건 해야지. 그게 조건이었으니. 그리고 놈들 말을 안 들었다간 나도 그 꼴이 날 거야.’

백작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곤 종이에 뭔가를 적은 뒤 새장 속의 새 다리에 달았다.

밖에 있던 자신의 부하들에게 전서구를 날린 것이다.

전서구는 들판과 숲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그러곤 접경지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무리로 다가갔다.

전서구가 날아들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전서구? 요새에서 온 건가?”

“아, 그렇습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연합군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전서구의 편지를 읽은 기사는 편지를 자신의 품 안에 넣었다.

“본진에서 뭐라는 건가?”

“별것 아닙니다. 함정에 대비하라는 당부의 말이었습니다.”

“아니길 바라야지.”

그들은 두 공주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나온 정예병들이었다.

잠시 후, 숲속에서 그림자가 나타나자 병력들은 긴장하며 검을 꺼냈다.

“수인족?”

수인들과 함께 두 공주의 모습을 확인한 병력들은 탄성을 질렀다.

“오오, 무사하셨군요!”

“그 편지는 사실이었군.”

병사들은 아넬리아와 도리아의 상태를 파악했다.

리더로 보이는 기사가 수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은 누가 보냈지?”

“내 주인이오. 이 두 여자를 넘겨주라는 명령을 받았소.”

“두 여자가 아니라 두 공주님이시다. 그대들의 주인은 누구인지 밝혀라.”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말라 했소. 볼일이 끝났으니 우린 이만 가겠소.”

두 수인이 등을 돌렸다.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자신들의 목적은 두 공주.

그리고 적의 진영이 가까운 탓에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수인들이 사라지자 제노비아 기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음?”

가슴에서 시큰함을 느낀 카나리스의 기사의 상체가 고꾸라졌다.

동시에 카나리스의 병력들은 제노비아의 병력에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절명했다.

“어떻게 하죠?”

부하가 묻자 제노비아의 기사는 두 공주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벌벌 떠는 두 공주를 향해 기사가 말했다.

“아무드의 짓으로 꾸며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죽은 카나리스의 병사들 중 몇 명에게 제노비아의 군복을 입혔다.

그러고는 시신을 훼손하여 사방에 뿌렸다.

“피 냄새를 맡고 몬스터들이 금방 몰려올 겁니다.”

“좋아, 우린 지시대로 움직인다.”

그들은 두 공주를 포박한 채 자리를 떴다.

그들이 향한 곳은 본진이 있는 요새 쪽이 아닌 다른 방향이었다.

* * *

챙- 챙-

흙빛이 드리워진 세계.

곳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산속.

거기엔 태훈과 그의 분신이 검을 맞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이러고 있던 거지.’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검을 휘두른 지 얼마나 지났는지 체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푸른 마나나 붉은 마나는 물론 오리진도 사용할 수 없었다.

순전히 체력과 기본기를 바탕으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태훈은 싸움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심할 정도로 수준 낮은 싸움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던 상대방은 가뿐히 받아 넘긴다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싸움.

상대는 자신의 수를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없어진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어. 수를 생각해 내야 해.’

몸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전략이나 전술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보자. 이건 나와의 싸움이야. 내 약점이 곧 저놈의 약점이잖아?’

생각의 전환을 한 태훈은 잠시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두면 분신도 공격해 오지 않았다.

‘내 단점…… 내 단점이 뭐지?’

곰곰이 생각하던 태훈은 이내 자신의 손에 쥔 검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분신을 바라보았다.

‘해볼까?’

생각을 굳힌 듯 태훈은 검을 쥐고 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분신도 같이 달려들었고 태훈은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다.

까앙-

분신이 검을 올려치며 대응하자 큰 반발력으로 인해 서로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태훈의 발차기가 뻗어져 나가며 분신의 손목을 찼다.

자신도 분신에게 손목을 걷어차였다.

휘리릭-

서로의 검이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갈랐다.

몇 번 반복되었던 싸움의 형태.

분신은 자신의 검을 줍기 위해 급히 등을 돌려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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