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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48화 (48/150)

48화

“먼저 질문. 그대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태훈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렇다.”

“호오, 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다라. 흥미롭군요.”

“그럼 내 질문이다. 네놈들의 정체는 뭐냐?”

“우리들은 스스로를 사신이라고 부릅니다.”

“베닝스라는 자가 배후냐?”

“베닝스? 그는 중간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나저나 질문은 하나씩이라고 했는데요.”

“…….”

“제 차례죠. 당신은 어째서 신기를 다룰 수 있는 거죠?”

“그건 나도 몰라.”

“질문에 답이 되질 않는군요. 더 이야기하고 싶으나 불청객들이 옵니다.”

그의 말대로 등 뒤에서 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당신을 꽤 흥미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번 붙어볼 테냐?”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애당초 제 목적을 이루었으니까요. 당신과의 만남은 보너스였습니다.”

“잠깐, 홀든을 만났나?”

“우리 사신들은 전부 각기 행동. 다른 사신과 만났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처음 듣습니다.”

가면은 발치에 있던 것을 발로 차서 태훈의 품 쪽으로 날렸다.

무심결에 그것을 받아 든 태훈을 향해 가면은 허리를 숙였다.

“당신은 제 관찰 대상입니다. 부디 다른 사신에게 죽지 마시길.”

그 순간 가면은 홀연히 사라졌다.

자세히 보니 쓰러져 있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뿔싸!’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국왕의 방이라는 것을 안 태훈은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동시에 문이 열리며 아무드의 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헉! 폐하!”

그제야 일이 단단히 꼬였다는 것을 안 태훈은 재빨리 창문을 향해 뛰었다.

쨍그랑-

그대로 창문을 뚫은 태훈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급히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 본 기사들은 아연실색했다.

까마득한 높이를 보고 차마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쫓아라! 국왕폐하의 시해범을 놓쳐선 안 돼!”

발칵 뒤집힌 왕궁.

태훈은 욕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부리나케 달렸다.

맞서 싸워도 질 리는 없지만 지금은 일을 키워선 안 됐다.

‘젠장, 함정에 걸려들었어.’

가면의 사내에 정신이 팔린 자신을 책망하며 태훈은 한달음에 성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째서 국왕을 죽인 거지? 이번 전쟁에 가면도 관여되어 있는 건가?’

의문과 잡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 때 성벽이 나타났다.

단숨에 벽을 뛰어넘은 그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는 것과 숙소의 문이 열린 것은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오일 경? 벌써 무도회가 끝난 건가요?”

태훈은 천연덕스럽게 말했지만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언제 돌아왔나?”

“좀 됐습니다. 무슨 일이신데 그렇게 헐레벌떡 난리이십니까?”

“음, 일이 터졌어.”

“그럼 계획이 성공한 겁니까?”

“아니, 원래 계획하고는 좀 다르게 흘러갔네. 아무튼 자네는 언제 돌아왔나?”

“도중에 머리가 아파서 일찍 왔습니다. 아무래도 병이 완쾌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럼 어쨌든 자넨 일이 터졌을 때 왕궁에 없었던 거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나올 때 무도회는 문제가 없었는데요.”

“그럼 됐네. 나를 따라오게.”

태훈은 긴장한 표정으로 옷을 걸치고 오일 경을 따라나섰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

단둘이 있는 마차 안에서 오일 경은 사정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국왕의 시해범은 누가 되는 겁니까?”

“지금 그 궁리 중이야. 젠장, 모처럼 짜놓은 판이 엉망이 되어버렸어.”

오일 경은 왕자의 독살 실패와 국왕의 시해 사건이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든 증거는 만들어내야지. 그건 어렵지 않아. 어차피 목격자도 아무드의 기사들이니.”

“그럼 제노비아가 희생양인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어야겠지. 하지만 국왕이 죽었을 때 웬만한 인물들은 전부 무도회장에 모여 있었단 말이야.”

시해범을 제노비아의 누군가로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꽤나 힘들어 보였다.

다시 돌아온 왕궁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현장에선 이미 제노비아 쪽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한 제노비아나 카나리스 측은 도리아와 아넬리아를 자국의 대사관으로 보낸 후였다.

“제노비아와 카나리스의 관계자들은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아무도 이곳을 떠날 수 없소.”

“우리 측은 이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관계가 있고 없고는 우리가 밝혀낼 일이오. 그리고 국왕 폐하가 시해되셨는데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겠지?”

그 말에 카나리스와 제노비아의 귀족들은 입을 닫았다.

아무드 측은 증거를 만들어낼 때까지 시간을 끌 셈으로 보였다.

“크로이츠 의원.”

오일 경이 정중하게 그를 불렀다.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리며 움직이자는 몸짓을 보였다.

그가 태훈을 이끌고 이동한 곳에는 아무드의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드의 재무대신이 태훈을 비롯한 제국의 상단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일 경이 험악한 분위기의 왕궁으로 태훈을 끌고 온 까닭은 거래를 위해서였다.

‘국왕이 살해당했는데 어떻게 슬퍼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시해 사건 당일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드 측에선 일을 진행시키려는 모습 이외엔 아무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한쪽에선 책임 소재를 놓고 날 선 공방이 왔다 갔다 했지만 태훈이 있는 방은 평온한 분위기였다.

일은 경매로 진행되었다.

식량의 납입가를 최저로 제출하면 그 상단이 식량을 납품하는 경매식이었다.

“지배인님. 저희 차례입니다.”

“음, 그래.”

상황이 상황인 만큼 태훈은 낙찰에 신경 쓰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동행한 직원이 태훈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일을 도왔다.

레드크로스 상회가 납품 허가를 받은 품목은 치료약.

치료약에 대해선 경쟁 상대가 없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태훈은 상황이 신경 쓰여 가만히 있질 못했다.

자신 때문에 전쟁의 빌미가 제공되었고 그 희생자는 제노비아와 카나리스였다.

‘오일 경 말대로 아무드는 어떻게든 증거를 만들어낼 거야. 그렇다면 붙잡혀 있는 도리아와 아넬리아는…….’

전쟁이 터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거기에 지금 시해범 축출을 한다는 명목으로 붙잡혀 있는 아넬리아와 도리아는 볼모인 셈이었다.

“오일 경, 그럼 저희는 내일 돌아가는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소? 괜히 불똥이 튈 수 있으니 말이오.”

다른 상단들은 빨리 아무드를 뜨고 싶어 했다.

오일 경도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듯 순순히 다음 날 떠나자고 했다.

‘시간이 없어.’

태훈은 둘의 구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드의 수도에 입성할 때부터 길을 봐두었다.

수도의 지리를 외우고 왕궁에 드나드는 동안 내부 구조를 익혔다.

자신이 왕자의 독살을 막지 못할 경우 범인으로 몰릴 인물을 빼내기 위한 작전을 위해서였다.

숙소로 돌아온 태훈은 자신의 상단 인원들을 준비시켰다.

그러곤 수인족 몇 명을 불렀다.

“너희들 이름이 뭐냐?”

“벤슨.”

“칼조.”

수인족 둘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너희들이 가장 강하다며? 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그냥 명령만 내리면 될 것을 새삼스레 뭘 부탁한다는 거지.”

“내 일에 능동적인 인물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선 너희들의 협조가 필요하지.”

“흥, 그게 가당키나 한가.”

수인족의 목에는 특수한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계약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만들고 위해를 가할 수 없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성심성의껏 날 도운다면 그 목걸이를 풀어주지.”

“댁이 무슨 수로? 이건 아무나 풀 수 있는 게 아닌데.”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협조적이었다.

태훈은 둘에게 다가가 목걸이를 만졌다.

그러자 붉은 보석이 푸른 보석으로 바뀌며 목걸이의 잠금쇠가 풀렸다.

“말보단 행동이지. 나를 돕지 않는다면 다시 채우겠어.”

“…….”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풀려 버린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고위 신관과 고위 마법사 두 명이 같이 풀어야 할 목걸이가 바로 풀린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이 정도의 실력자가 우리 도움을 왜 필요로 하는 거지?”

“혼자선 불가능하니까. 지금부터 너희는 수도 외곽으로 향해라.”

태훈은 지도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수도 외곽의 한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에 있다가 합류하게 되는 인간들을 국경 밖까지 데려다주면 돼.”

태훈은 둘로 하여금 아넬리아와 도리아의 길잡이를 맡길 생각이었다.

“몇 명이나?”

“인간 여자 둘. 경우에 따라선 인원이 조금 더 늘 수 있어.”

“우리에게 부탁하는 건 산길로 유도하라는 것 아닌가?”

“인간 여자가 우리를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불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들어. 쉬운 일이었으면 부탁도 하지 않았어.”

“우리가 배신이라도 한다면 어쩌려는 거지?”

“그건 너희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지. 다른 수인들이 불쌍하지 않다면 말이야.”

그 말에 수인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족은 달라도 멸시받고 핍박받는 수인족.

그렇기에 부족을 떠나 남다른 종족 사랑을 알고 있는 터였다.

태훈은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뮤즈, 아넬리아는 너한테 맡길게.’

‘걱정 마세요. 아넬리아 님은 제가 책임질게요.’

태훈은 도리아 쪽을 맡을 생각이었다.

수인들이 지도를 들고 사라지자 태훈도 채비를 했다.

내일 떠나는 사람처럼 모든 짐을 꾸리고 상단을 정리하는 모습은 평범했다.

‘곧 해가 뜬다. 서둘러야 해.’

태훈은 제노비아 왕국의 공관으로 향했다.

가면의 인물이 중간에 껴든다면 그로서는 난감한 상황.

하지만 믿음직하게 일을 맡길 실력자는 뮤즈 하나뿐이었다.

‘놈의 목적이 전쟁이라면 이미 목적은 달성한 거잖아? 지금은 운을 바라볼 수밖에.’

공관에 다다른 태훈은 기척을 살폈다.

공관 주위에는 아무드의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넬리아가 있는 카나리스 공관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속전속결로 바깥의 병력을 기절시킨 태훈은 벽을 넘었다.

그러곤 준비해 온 가면을 썼다.

도리아의 것으로 보이는 기운을 느끼며 찾아간 방의 입구에는 제노비아의 기사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협조를 구한다면 일이 수월해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작은 실랑이도 시간이 아까운 터라 태훈은 준비해 간 수면향을 피웠다.

자신이 만든 수면향은 불면증을 없애기 위한 심신안정용이었지만 거기에 신력이 들어간 주문이 더해졌다.

“조용한 수면.”

주문을 외자 병사들이 먼저 고개를 떨구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기사들은 정신을 붙잡아봤지만 어느새 다가온 태훈에 의해 기절당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녀 한 명과 함께 도리아가 보였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에 보는 옛 연인이었으나 감상에 젖을 틈은 없었다.

깜짝 놀라는 하녀가 단검을 움켜쥐었지만 태훈은 조용히 손가락을 가로저었다.

“탈출시켜 주겠소. 따라오시오.”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탈출시킨다면서 왜 우리 병사들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오. 동이 트기 전에 가야 하오. 서두르시오.”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따라나설 그녀가 아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태훈은 애가 탔다.

결국 도리아의 뒷목을 가볍게 쳐서 쓰러진 그녀를 들쳐 멨다.

“고…… 공주님을 납치해서 어쩌려는 것이냐.”

하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태훈은 시계를 흘겨보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제노비아의 공주를 탈출시키기 위해 온 사람이다.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지만 네가 시간을 끌면 공주가 탈출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해.”

그러고는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걸어 나갔다.

‘쉽진 않군.’

태훈 정도면 여자 하나쯤은 가볍게 들쳐 메고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의 여자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

도리아 역시 상당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신력까지 걸고 나서야 간신히 벽을 넘은 태훈은 바로 외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동이 터오기 시작할 때쯤엔 한적한 성벽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뮤즈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아넬리아로 보이는 인물이 들쳐 메어져 있었다.

“워낙 궁금해하시는 게 많으셔서 별수 없이 그만…….”

상상이 가는 장면이었다.

“추적자는?”

“없습니다. 힘들어 보이시는데 바꿀까요?”

공관의 벽과는 차원이 다른 성벽의 높이를 본 태훈은 아넬리아와 바꿨다.

‘그새 많이 건강해지셨군.’

예전과 달리 한층 무거워진 아넬리아의 무게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성벽을 넘은 둘은 수인들이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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