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공방에서 만들어진 집기로 공국 한켠에 제약 공장이 만들어졌다.
업체명은 레드크로스 제약으로 공국에 정식 등록되었다.
대표는 물론 크로이츠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고 총괄 책임자는 파케 영애가 맡았다.
제국에 있는 레드크로스 상단의 지부도 완공.
약초 재배를 위한 농장까지 완성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재배에 들어갔다.
카나리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종의 약초 재배가 시도되었다.
재배가 된 약초는 공국의 생산 시설로 이동될 예정이었다.
이를 호위할 호위대도 꾸려졌다.
당초 30명씩 3개 호위대로 구성될 예정이었지만 태훈의 요청으로 호위대는 50명씩 4개 호위대를 구성했다.
대륙을 통틀어 가장 큰 호위대를 구성하게 된 셈이었다.
재료 수급의 안정성과 앞으로 완성될 약의 운반에 신경을 많이 쓴 결과였다.
“호위대 인건비 지출로만 한 달에 대금화 400닢. 장비의 유지 보수와 식대까지 합한다면 500닢이 넘을 것 같습니다.”
“호위대의 식사와 숙박에는 돈을 아끼지 말도록 해.”
식대나 숙박뿐만이 아니었다.
급여 역시 다른 호위대보다도 적게는 10%.
많게는 30% 정도 높은 금액으로 책정되었다.
산업 스파이는 피할 수 없는 일.
태훈은 내부의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애를 썼다.
사무 일을 볼 사람들도 파격적인 대우로 고용했다.
“글렌 의원이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총원 17명입니다.”
태훈은 글렌 의원에게 인력을 요청했다.
자신도 상단의 업무는 초짜.
그것은 알과 홀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셈에 밝고 상단에서 경험 있는 인력을 요청한 것이다.
“좋아, 거의 준비가 되었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거? 네 연애 사업?”
알은 한숨을 내쉬었다.
꼬시기(?) 작전에 들어간 지 두 달.
진전은 민망할 정도로 제로에 가까웠다.
처음 저녁 식사에 응했던 것도 알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요하게 레드크로스 상단에 대한 질문 세례가 이어졌던 것.
계획대로라면 그녀와 알은 연인 관계가 되어 그녀를 통해 재무부와의 접점을 만들어야 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그녀는 하나의 라인이었으니까.”
이미 재무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도 레드크로스란 이름은 핫한 이슈였다.
아직 제대로 거래가 시작되지 않은 신생 상단이 가장 큰 규모의 호위대를 운영.
약초라는 특이 카테고리로 대규모 농장 건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간 막대한 자본까지 모두가 논의 대상이었다.
“이목은 충분히 끌었어.”
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두어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래도 계속 노력은 해봐. 높은 관리들이야 뇌물을 먹이면 편하지만 유리아 같은 타입이 오히려 복병이 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봐 왔던 태훈은 되레 유리아가 신경에 거슬렸다.
출세욕에 눈이 먼 건지는 모르지만 레드크로스 상단에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었다.
건수만 잡으면 출세하겠다는 야욕이 보일 정도였다.
“그럼 이건 포섭이 아니라 감시네요?”
“오, 이제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 반을 아는구나.”
“지금 왕자님이 더 윗선이랑 접촉 중이잖습니까. 이제 무시해도 될 만한데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소가 더 불안해. 많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동태는 알 필요가 있어.”
“알겠습니다.”
알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유리아라는 특이 사항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며칠 후, 태훈은 완공된 제국 지부의 축하 행사를 열었다.
지어진 지부는 총 4개 층.
1층은 석조로, 그 위층들은 목조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상단 거리 끝에 있는 자리였지만 다른 건물보다도 평수가 넓어 가장 웅장해 보였다.
행사 역시 화려하게 열었다.
다른 상단의 지부장들도 찾아오는 자리라 신경을 많이 썼다.
업계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청의 고위 관리직, 경비대의 대장들도 초청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인 크로이츠라고 합니다.”
“로만 상회에서 왔습니다.”
“폰다만 상회의 지부장입니다.”
인사를 끝낸 뒤에는 업계 사람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업계 사람들의 관심은 태훈이 취급하는 품목이었다.
“약초가 돈이 됩니까?”
“몇몇 약초가 비싸긴 합니다만 약이란 것 자체가 굉장히 불편한 품목인데.”
“저희는 유통기한이 긴 약을 팔 겁니다. 물론 상품의 질에도 변함이 없죠.”
약의 재료는 유기화합물이다.
보편적 보존 방법이나 보존 용기로는 통기한이 짧았다.
보관 용기, 보관 기술, 물건의 운반 등을 생각하면 상품성이 낮았다.
“호오, 그럼 단가가 비싸지 않나요?”
“저희는 최소 마진으로 많이 파는 것이 슬로건입니다. 전 대륙에 파는 것이 목적이죠.”
“만약 유통에 힘이 필요하다면 저희에게 연락 주십시오.”
업계인들은 태훈의 말에 큰 호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약초라는 소재는 그만큼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업계 특성상 언제 무엇이 돈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기에 눈도장을 찍으려 한 것.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유통에는 관심이 있다고 표현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관리들이 남았나.’
태훈은 의료원을 열 생각이었다.
그 부분에서 총국과의 충돌은 뻔한 일이었다.
카나리스에 있었을 때 왕자였던 자신의 신분에도 총국과의 충돌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관리들이나 귀족들과의 커넥션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 시키는 대로 했지?”
“네, 그렇습니다.”
알은 태훈의 지시로 유리아도 초대했다.
얼마 후 유리아는 자신의 상관들로 보이는 남자 둘과 찾아왔다.
‘오른쪽이 재무국장인 오일 경이고 왼쪽이 직속상관인 페리어튼인가?’
재무국장인 오일 경은 귀족이었다.
그의 부친은 조폐국장이며 자작가문의 수장이기도 했다.
딱 봐도 그의 차림은 부잣집 자제의 티가 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누추한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니네. 그렇게 열렬한 초대를 해주었는데 당연히 와봐야지.”
오일 경의 입가에는 웃음이 만개하고 있었다.
초대장과 함께 보낸 선물들에 만족한 듯 보였다.
“보내 드린 개업 선물은 마음에 잘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개업 선물은 내가 보내야 하는데 참…….”
“아닙니다. 앞으로 신세를 져야하는 입장은 저인데요.”
“지배인도 공국의 의원이라 들었소. 말 편히 하시오.”
공국의 의원은 제국에서는 백작과 자작 사이 정도의 직급이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어디 자작님께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도자기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공방에는 납을 녹이고 은을 추출하기 위한 가마가 즐비했다.
그중 몇 개를 개조하여 도자기를 만들어보였다.
오일 경은 도자기가 언급되자 태훈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 도자기란 것 말이오. 혹시 좀 더 구할 수 있겠소?”
대륙에는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공예법이 전무했다.
깨지기 쉽지만 아름다운 형태와 자태를 뽐내는 도자기에 오일 경은 매료된 듯 보였다.
“아, 사실 그건 저희의 차기 상품입니다. 아직 개발 중이라 시제품을 보내 드린 것입니다.”
“아, 그렇소? 그것 참 아쉽군!”
오일 경은 탄식하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뱃살이 출렁일 정도로 격한 몸짓까지 보였다.
“혹시 그 도자기는 드워프가 만든 것이오?”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아직 이종족을 고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소? 인건비가 적게 들 텐데?”
이종족은 대부분 노예.
물론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상단에서 쓰는 이종족은 노예인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많이 고용해야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라에서 세금을 더 징수할 것 아닙니까.”
“허어, 그런 고결한 뜻이! 크로이츠 의원은 다른 상인들과는 격이 다르구만!”
오일 경은 진심으로 탄복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라가 부강해야 국민이 잘 사는 것 아닙니까.”
“어허, 공국 의원답지 않은 말이군. 왜 하필 공국에 터를 잡은 거요?”
“사업을 하기엔 공국이 편합니다. 절차에 필요한 서류도 그렇고 사업에 특화된 나라니까요.”
“으흠, 그건 부정할 수 없군. 우리 제국이 부강하긴 하지만 그런 면으로는 좀 고지식하지.”
마치 자신은 아닌 것마냥 혀를 차는 오일 경의 모습에 태훈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부분이 조금 걸립니다. 이제 곧 의료원을 준비하려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망설여지는군요.”
“의료원? 그게 뭐요?”
태훈은 의료원의 개념을 설명했다.
아픈 자들을 진료한다는 말에 오일 경은 신전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한 듯했다.
“신전과는 다릅니다. 솔직히 서민들이 신전을 어떻게 찾아갑니까. 그런 그들을 적은 돈에 치료하는 거죠.”
“그게 돈이 되겠소?”
“무시하지 못합니다. 1인당 지불하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아도 백성의 1할도 이용하지 못하는 신전입니다. 나머지 인원의 푼돈이 모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으흠…….”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듯한 그의 표정에 태훈은 적어도 신전만큼의 수입은 예상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정말인가?”
“적게 잡은 것이 그 정도입니다. 제 고향에는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죠.”
“그게 무슨 뜻이지?”
“먼지라도 모으고 모은다면 산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오일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페리어튼에게 물었다.
“이봐, 제국법에 의료원을 경영하는 데 문제가 되는 법이 있나?”
“글쎄요, 지방 마을에 사람을 진료하는 약초꾼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전문적인 업소 형태는 예시가 없어서.”
“크로이츠 의원이 의료원을 경영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소. 문제가 있다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세수가 늘어나면 좋은 일 아닌가.”
“아이고,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법 쪽 문제보다는 다른 문제가 좀…….”
“문제? 속 시원히 말을 해보게. 내가 힘닿는 곳까지 도와주지.”
태훈은 총국에 대한 문제를 슬며시 꺼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오일 경은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자기들과는 다른 소비층에서 일을 한다는데 문제를 제기한다는 말인가? 잠깐, 설마 벌써 견제를?”
“아닙니다. 다만 대륙 남쪽에서 들은 소문이 있어서.”
“소문?”
“카나리스라는 나라의 왕자가 약을 전문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총국에서 방해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내전까지 갔다는데 의료원을 연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태훈은 걱정하는 듯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오일 경은 이번에도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였다.
“흥, 총국 놈들은 걱정하지 말게. 정당한 사업을 방해하는 놈들은 내가 용서하지 않아.”
요새 제국과 총국은 서로에게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시작은 공국에서 시작한 검은 돈의 검열.
명목은 탈세와 세금 징수 및 비자금 추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제국과 총국의 돈의 흐름이 막히게 되었다.
총국은 납세를 차일피일 미루니 제국은 불만이 쌓이는 상황.
그사이 자금에 허덕이는 제국 귀족들의 상단에 자금을 대출하거나 융통해 주는 것이 공국이었다.
총국은 주머니 사정이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런 공국의 독주를 막을 수 없었다.
물론 공국이 총국에게 납부하는 금액의 일부는 태훈이 만든 위폐였다.
“그래주신다면 저야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말게. 정당한 사업은 언제라도 환영이야. 물론 세금만 잘 내면 말이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아예 인력을 저희에게 파견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인력?”
“총국이 어떤 딴지를 걸어올지도 모르고 그때마다 매번 오일 경을 찾아가는 것도 실례지 않습니까. 세금 징수도 확실하게 관리하실 겸 인력을 하나 파견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야 좋지만 그래도 공국의 상단인데 우리 인력을 파견하면 공국에서 껄끄러워하지 않을까?”
태훈은 자신이 총 책임자인데 뭘 걱정하느냐며 오일 경을 달랬다.
기분이 좋아진 오일 경은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금세 취기가 올랐다.
태훈은 그를 한적한 자리로 안내했다.
태훈이 오일 경을 데리고 간 사이 유리아와 페리어튼은 알이 담당했다.
단둘이 된 태훈은 그의 비위를 맞추어주었다.
“좋아, 좋아. 크로이츠 의원은 장사 수완이 아주 뛰어나군. 그 정도면 조만간 제국 귀족도 될 수 있겠어.”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보다 물어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음? 뭔가?”
“조만간 전쟁이 일어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왕자 신분이었을 당시 글렌 의원으로부터 제국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쟁 물자를 비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제국이 제노비아와 카나리스를 노리는 아무드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나?”
“장사치들이야 그런 쪽엔 눈치가 빠르죠. 작년 곡물 가격 폭등 때 돈 소문입니다.”
“음음, 하긴 상인들이야 조심만 한다면 전쟁이 큰돈이 되긴 하지.”
오일 경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훈이 재차 묻자 오일 경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