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콰직-!
뮤즈는 가면의 안면을 향해 그대로 자신의 발을 꽂아 넣었다.
가면이 부서지며 피가 튀었고 흑마법사는 그대로 하늘과 마주했다.
콰드드득-
땅이 움푹 파이며 미끄러진 가면은 죽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의 등이 들썩였다.
“쳇, 안 죽었나.”
땅에 침을 뱉으며 뮤즈가 혀를 찼다.
“크으윽! 어째서 절대 보호막이!”
수정구의 보호막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자 가면은 당황한 듯 보였다.
뚝뚝-
가면이 벗겨진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드러난 얼굴은 늙은 노인의 것이었다.
손으로 피를 훔친 노인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와, 내 발차기를 맞고도 일어서다니 대단한데?”
뮤즈가 진심으로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짓자 노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분께 선택받은 나를 얕보면 곤란하지. 네놈들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괴롭히다 죽여주마!”
‘그분?’ 노인의 손아귀에 있던 수정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피해!”
태훈이 급하게 외쳤지만 뮤즈는 이미 자리를 박차고 이탈하고 있었다.
푸욱!
땅에서 뼈로 이루어진 창이 솟아났다.
태훈과 뮤즈가 착지하는 곳마다 창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노인은 지친 기색도 없이 계속해서 창을 만들어냈다.
‘젠장, 마나가 얼마나 많은 거야. 저 수정구의 힘인가?’
땅에 착지한 태훈은 솟아난 창들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검기에 썰려 나가는 창을 뒤로하고 노인에게로 쇄도해 들어갔다.
뮤즈도 그런 태훈의 보조를 맞추어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기를 두른 태훈의 검이 휘둘러졌다.
텅!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의 손목이 아릴 정도로 검이 튕겨져 나왔다.
“큭!”
노인의 주위로 구 모양의 물결이 요동쳤다.
마법사와 신관들로부터 받은 상위급 버프.
거기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한 자신의 검기까지.
족히 6클래스급의 보호막도 분쇄해 버릴 수 있는 그의 검이 맥을 못 추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뮤즈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베틀엑스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도 더 큰 무기를 한 손으로 휘둘렀다.
떵-!
태훈과는 다른 소리가 나며 도끼의 날이 보호막에 부딪혔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그녀의 도끼는 튕겨 나가지 않았다.
“으히히히!”
신이 난 듯한 뮤즈의 표정을 본 태훈은 뒷걸음질 쳤다.
반면 노인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어…… 어째서! 반발력이 생기지 않는 거지?!”
‘같은 기운이라는 건가?’ 뮤즈에겐 금속 팔의 기운도 섞여있다는 것을 아는 태훈은 잠시 둘을 지켜보았다.
슈욱-!
뮤즈의 다른 손에 똑같이 생긴 거대도끼가 생겨났다.
쾅!
“칫!”
또 다른 도끼가 방어막과 부딪히자 막이 부서졌고 노인은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벌어지자 노인이 대노하며 뮤즈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네 녀석, 대체 정체가 뭐냐?!”
“아름답고 고귀하신 뮤즈님이시다. 경배하거라.”
“어째서 신기와 상성이 같은 거지? 이건 마치 그분…….”
그때 태훈이 껴들었다.
“이봐, 대체 신기니 그분이니 그게 다 무슨 소리지?”
“흡…….”
노인은 아차 하는 듯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분이라는 게 혹시 베닝스라는 놈인가?”
“네놈이 어떻게 그분 이름을 아는 거냐?”
휘둥그레지는 노인의 눈을 본 태훈은 속으로 다짐했다.
‘이놈은 반드시 사로잡는다.’
태훈이 검을 고쳐 잡았다.
각오를 다진 건 태훈만이 아니었다.
“그분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상 절대 살려둘 수 없겠군.”
“살려줄 생각도 없었잖아. 네놈한테는 묻고 싶은 게 많으니 얌전히 잡혀라. 그리고 우리 영토에서 벌인 짓에 대한 죗값도 달게 받아야 할 거다.”
태훈이 눈빛을 보내자 뮤즈가 다시 달려들었다.
커다란 베틀엑스를 두 개나 든 뮤즈는 압도적이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도끼를 마치 파리채 휘두르듯 했다.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풍압이 사방의 나무를 휘청하게 만들었다.
노인은 방어를 하며 기회를 엿보는 듯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보였다.
“칫, 어쩔 수 없군.”
혀를 찬 노인은 뮤즈와 거리를 상당히 벌렸다.
그러곤 뭐라고 중얼거리자 수정구에서 빛이 났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그때 상아탑의 마법사와 신관을 대동한 병력들이 도착했다.
진지 근처의 언데드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싶자 태훈을 돕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번쩍-
일순간 모두가 손으로 눈으로 가렸다.
빛이 사라졌을 때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검은 불꽃에 불타는 듯한 형상을 한 인물이 서 있었다.
“크크크크. 기분이 아주 끝내주는군.”
노인의 목소리는 전보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메아리처럼 약한 울림을 동반하고 있었다.
정령 같은 모습에 긴장하고 있을 때 노인이 손을 들었다.
핑- 핑-
손 주위로 보랏빛 구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벌레들부터 죽어라.”
구체들이 일행들에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캐스팅 없이!?”
“프…… 프로텍트……!”
마법사와 신관들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이었다.
태훈이 몸을 날려 구체를 가로막아 섰다.
‘빠르다!’
구체가 빠르긴 했지만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추어가 던지는 야구공 정도의 속도.
그는 구체들을 분쇄하려는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텅-
하지만 반발력과 함께 구체는 소멸되지 않고 튕겨 나갔다.
펑- 펑-
튕겨져 나간 구체들은 사방에 부딪히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왕자님, 검이!”
다급한 목소리에 태훈은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쳐다보았다.
마법이 걸린 검이 오염이라도 된 것처럼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본능적으로 검을 버리자 이내 검은 완전히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그러곤 주위의 땅을 물들이더니 이내 부식되며 사라졌다.
‘저건 미스릴로 만든 검인데.’
제노비아의 왕비가 준 미스릴 검이 사라지는 것을 본 태훈은 적잖이 당황했다.
“크크크, 이제 검이 없어졌으니 어쩌실 텐가.”
“뮤즈.”
“넵!”
태훈의 뒤에서 튀어 오른 뮤즈가 접근하자 노인은 물러났다.
“천방지축 망나니 같은 년이군. 그만 좀 뛰어다녀라.”
노인의 손에서 이번엔 보랏빛 채찍이 생겨났다.
그것을 휘두르자 채찍은 늘어나며 뮤즈에게 날아갔다.
뮤즈가 피했지만 채찍은 방향을 바꾸며 마치 뱀처럼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엇!?”
채찍이 뮤즈의 발목에 휘감겼다.
휙-
훙-
노인이 팔을 휘두르자 뮤즈의 신체가 허공을 가르며 반대편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쿵-! 쿵-!
여기저기 처박히며 먼지가 일었다.
“라이트 애로우!”
“홀리 해머!”
그 틈을 타 마법사들과 신관들이 합심하여 노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그 신기라는 건 신기로만 대항이 가능한 건가?’
신기라는 수정구가 사라지고 모습이 변한 것으로 보아 노인은 수정구와 융합을 한 것 같았다.
지금껏 자신이 약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던 태훈은 자존심이 구겨졌다.
쾅쾅쾅-!
마법과 신력이 쉬지 않고 노인에게 작렬했다.
방어막에 신경을 쓰는 노인이 방심한 틈을 타 뮤즈가 공중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서걱-
뮤즈가 자신의 발목을 휘감던 채찍을 베어내며 땅에 착지했다.
“괜찮아?”
“예, 저 신기라는 게 상당히 귀찮네요.”
“하지만 너도 신기의 힘이 있잖아. 거기다 정령들의 힘도 있는데 더 유리한 것 아니야?”
빛과 어둠의 정령의 힘까지 있는 뮤즈.
상대는 흑마법과 신기의 조합이니 뮤즈가 더 압도적이어야 했다.
“저놈의 신기가 네 힘보다 강한 건가?”
“변신하기 전에는 동급이었어요. 대체 어디서 힘이 차이가 나는 거지? 칫.”
뮤즈도 답답한지 혀를 찼다.
태훈은 뮤즈가 들고 있던 커다란 도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법사와 신관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뮤즈, 혹시 무기화할 수 있겠어?”
“네?”
“그 도끼처럼 너 자신을 무기로 만들 수 있겠냐고.”
뮤즈의 본래 모습 중 하나는 금속 팔이었다.
태훈의 말을 이해한 뮤즈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음, 해보진 않았는데.”
“그럼 이번에 해봐. 놈을 상대하려면 아무래도 같은 성질인 네가 필요해.”
“해볼게요.”
그녀가 눈을 감자 손에서 무기가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프리즘같이 때로는 흰색으로, 때로는 검은빛으로 바뀌더니 이내 무지갯빛으로 바뀌었다.
“음?!”
낌새를 눈치챘는지 노인의 관심이 뮤즈에게 쏠렸다.
“어째서 저 녀석에게서 신기의 힘이 느껴지지?”
노인은 뮤즈가 자신의 보호막을 부수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렇군. 저 녀석이 신기를 가지고 있던 것인가?”
노인의 몸이 붕 뜨더니 이내 뮤즈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무방비인 그녀를 지키기 위해 태훈이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기가 없는 그는 육탄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간격을 유지하며 주먹을 날리는 그의 움직임은 지구의 그것이었다.
‘몸 관리 한다고 복싱을 좀 배워두길 다행이네. 고작 반년 했지만.’
어설픈 움직임이었지만 신체 강화 상태에서의 그는 매우 빨랐다.
치고 빠지는 그가 짜증이 났는지 노인이 자신을 중심으로 마나를 폭발시켰다.
퍼엉-!
“큭!”
급격한 마나의 폭발과 풍압으로 가까이 있던 그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됐어요!”
뮤즈의 목소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손에서 묵직함을 느꼈다.
* * *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아탑의 마법사나 고위 신관들이 합심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자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대체 왕자님은 저자와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인가?”
“저자는 누굽니까? 왕자님과 구면인 것이오?”
“그럴 리가. 리치를 조종하는 흑마법사와 왕자님이 아는 사이일 리가 없잖소!”
상아탑의 마법사가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그보다 저런 흑마법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 정도면 대마법사에 견주는 실력 아니오?”
“그런 상대와 맞싸우는 왕자님은? 듀얼 속성에 우리의 가호를 드리긴 했지만 이건 그 차원을 넘는 수준이오.”
사방이 박살 나 폐허가 된 풍경을 둘러본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긴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소.”
고위 신관이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하자 알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감히 왕자님을 두고 도망치겠다는 겁니까?”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군대를 도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오!”
사실 알 역시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 엄두 내지 못하고 있었다.
‘왕자님…….’
그는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태훈을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몸을 튼 태훈은 바로 노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검인가? 제일 익숙한 무기군.’
그의 손에는 검신의 색이 계속해서 바뀌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을 내밀자 노인이 내뿜는 마나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신기를 다루다니?!”
서걱-
자신의 모든 힘을 담아 검을 휘두르자 노인의 팔이 잘려 나갔다.
보호막과 함께 베어버린 것이다.
“크윽!”
떨어져 나간 팔은 이내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노인은 다시 떨어지며 잘린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복구가 안 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신기군. 네놈, 설마 선택받은 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