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태훈의 검은 제노비아의 왕비에게서 받은 검이었다.
검의 날에는 미스릴이 소량 함유되어 있었다.
미스릴은 마법 회로의 고급 재료 중 하나로 마나의 전도체였다.
검신에서 푸른 스파크가 일어났다.
동시에 오러의 기운이 덧씌워지며 검의 길이가 들쑥날쑥거렸다.
“오러와 마법인가. 신기한 응용법이군.”
“엇!”
그리고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치솟자 두 성기사는 할 말을 잃은 듯 얼어버렸다.
“설마 신력……?”
“말도 안 되는! 세 능력을 전부 사용하다니!”
태훈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기운에 철퇴를 든 전사는 눈이 커지며 웃었다.
“재밌구만! 세 가지 기운을 모두 쓰는 왕자라니! 재밌겠어! 크하하하!”
철퇴를 든 성기사는 방패를 앞세우고 철퇴를 든 상태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에서 수분이 증발하여 나는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태훈은 그를 향해 마치 채찍을 휘두르듯이 검을 휘둘렀다.
오러와 마나가 섞인 전기 채찍이 날아오자 방패로 막았다.
동시에 방패가 터져 나가며 상쇄되지 못한 마나와 오러가 성기사의 장기에 타격을 주었다.
“쿨럭!”
한 움큼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고통을 모르는 듯 성기사는 그대로 태훈에게 쇄도했다.
그 순간 방패를 날려 버렸던 오러와 마나의 채찍이 방향을 틀어 그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칫!”
방패가 없는 그가 입술을 깨물며 등을 돌려 채찍을 쳐냈을 때 태훈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적의 뒤통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태훈은 주문을 외쳤다.
“라이트닝!”
3클래스 마법인 라이트닝은 지구로 치자면 220v가 넘는 전압을 가지고 있었다.
강한 전류가 뇌를 관통하자 성기사의 눈이 뒤집히며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가 철퇴를 손에서 떨어뜨렸을 때 다시 한번 거대한 검이 태훈에게 날아들었다.
“기세는 좋았소만 여기까지요!”
“라이트!”
섬광이 번쩍였고 성기사의 시력이 돌아왔을 때 그의 검은 바닥을 가르고 있었다.
“칫! 얕은 수를!”
거대한 검은 그대로 땅을 퍼내며 횡으로 태훈에게 날아들었다.
태훈의 몸을 절단 내기에 충분한 빠르기였다.
태훈은 가볍게 뛰어올라 검을 밟고 상대의 안면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
퍽!
거대한 검을 드느라 양손을 쓰던 성기사는 그대로 왼쪽 얼굴을 내어주었다.
“큭!”
턱밑에서 전해져 오는 울림에 몸을 휘청거리던 성기사는 다시 한번 태훈의 발길질에 가슴을 내주었다.
성기사의 가슴팍에 발자국이 생기며 수 미터를 날아 벽에 부딪혔다.
기사는 그대로 벽을 뚫고 내부에 처박혔다.
“쿨럭!”
한 움큼 피를 토하면서도 기사가 일어서자 이번엔 태훈이 먼저 쇄도해 들어갔다.
태훈이 다가오자 기사는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태훈은 자신의 검을 휘두르는 대신 발을 굴러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의 오른발이 기사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육탄전!?’
기사들의 싸움에서 육탄전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검이 부서지거나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렸을 때 말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기사는 마치 볼링공처럼 내부의 집기들을 부쉈다.
먼지가 일었고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헉…… 헉…….”
태훈도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었다.
마나와 신력 모두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오러를 장시간 이용한 탓에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뮤즈.”
“네, 주인님.”
헬름까지 착용한 뮤즈가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알지?”
“그럼요.”
“위급하면 불러.”
“걱정 마세요.”
뮤즈가 사라지고 나자 태훈은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신전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집정관은 턱을 쓰다듬었다.
“흠, 생각보다 빠르군. 며칠은 더 있어야 올 줄 알았는데.”
“카를로스 집정관. 생각은 있소? 아무래도 우리가 밀리는 것 같은데.”
“그건 나도 보고 있으니 압니다. 허나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안심하시오.”
집정관은 자신의 성기사를 믿고 있었다.
거기다 습격을 해온다면 양동을 해올 것이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부하에게서 후문에 제3왕자의 모습이 보인다는 보고를 듣고 그는 웃었다.
로텐바르나 메드니안 둘 중 하나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후문의 적 전력이 훨씬 약하다는 보고를 듣고는 성기사들 중 가장 강한 둘을 보냈다.
“메드니안만 잡으면 국왕도 포기할 거요.”
“그는 듀얼 적성자요. 호락호락 하진 않을 텐데.”
“그래 봤자 애송이지. 산전수전 겪은 고위 성기사 둘을 애송이가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소? 그 둘은 이단심문국 소속이오.”
이단심문국에는 단순한 조사 이외에도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있었다.
상대가 무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 나서는 성기사들.
참수자라고도 불리는 자들이었다.
다다다다-
그 때 복도에서 뛰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문을 열며 들어온 것은 젊은 신관이었다.
“벌써 끝났나?”
집정관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젊은 신관은 다급해 보였다.
“크…… 큰일 났습니다! 후문의 병력이 무너졌습니다!”
“뭐야?!”
“크흠!”
앉아 있던 공작이 콧소리와 신음이 섞인 기묘한 소리를 내었다.
잠시 공작 쪽을 바라본 집정관이 젊은 신관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두 눈을 부릅뜨고 낮은 목소리로 힘 있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거기엔 이단국 두 놈이 가 있는데!”
“모……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본관 근처까지 다다랐습니다.”
젊은 신관의 말대로 집정관이 있는 본관의 입구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익……!”
집정관은 손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책장으로 향했다.
책장의 책들을 손으로 쓸어내리자 나무 상자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몇 개의 종이 뭉치를 챙긴 뒤 공작에게 다가갔다.
“일어서시오.”
“길은 있습니까?”
“걱정 마시고 따라오시오. 너도 날 따라와.”
“네…… 넵!”
집정관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가 향한 곳은 지하.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여니 퀴퀴한 냄새와 함께 물소리가 들렸다.
“지하수로군. 이리 가면 어디가 나옵니까?”
“도시 밖이오. 이렇게 된 이상 북쪽으로 가야 하오.”
“북쪽? 제노비아?”
“국경을 넘긴 힘들 것이오. 북쪽에 은신처가 있으니 따라 오시오. 음?”
집정관은 맨 뒤에서 따라와야 할 젊은 신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왔던 길을 살폈다.
“뒤에서 따라오던 녀석은 어딨소?”
“아까 그 젊은 신관? 따라오던 것 같던데.”
잠시 기다려도 신관이 나타나지 않자 집정관은 문을 닫아버리고는 열쇠를 수로에 던져 버렸다.
벽에 걸려 있던 횃불을 들고 앞장 서서 걷던 집정관은 세 갈래 길이 나오자 멈추었다.
“음? 길이 세 개였던가?”
집정관이 망설이자 공작이 앞으로 나섰다.
“뭐가 문제요?”
“길이 세 갈래 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
“여기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입니까?”
“부임하던 첫해 때요. 내가 여길 내려올 일이 뭐가 있겠소.”
한참을 고민하던 집정관은 잠시 갈라지자고 제의했다.
“내 기억으로 오직 길 하나만이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소. 나머지 길을 막혀 있다고 들은 것 같소.”
“설마 날 버리고 갈 계획이오?”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 무슨 소리! 당신을 데리고 가야…… 관둡시다.”
집정관은 떠밀 듯 횃불을 공작에게 넘겼다.
그러곤 자신의 손 위에는 자그마한 빛의 구슬을 만들었다.
둘은 막다른 길이 나오면 돌아오기로 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도 다른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 사람이 간 길을 따라가기로 정했다.
가운데 길을 놔두고 둘은 양쪽 끝에 있는 길로 들어갔다.
“젠장, 내가 하수도를 걷고 있다니.”
집정관은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내려온 명령은 아무드와 제노비아의 전쟁 발발까지 공작을 보호할 것.
왕세자가 병력을 끌고 올 것을 예상하여 이단심문국 소속의 성기사까지 요청해 놓았던 것이다.
거기다 국왕이 아끼는 3왕자가 직접 후문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는 내심 기뻐했다.
그를 붙잡아두면 왕세자나 국왕이 쉽게 손을 뻗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드르륵-
드르륵-
“음?”
맞은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집정관의 발이 멈추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는 가까워졌다.
거칠게 땅에 끌리는 소리가 수로 안을 울리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검은 흑기사를 본 집정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놈은 인간이 아니로구나?”
“오, 눈치가 제법이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정관의 표정이 구겨졌다.
“보아하니 왕세자가 보낸 것 같은데. 혼자인가?”
“응, 아직 싱글이야. 하지만 임자는 있으니까 신경 끄셔.”
“싱글? 임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집정관은 주머니 속에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었다.
“보아히니 계집 같은데. 내가 누군 줄은 아나?”
“우리 주인님을 괴롭히는 못된 늙은이지.”
“입이 거칠군. 하지만 곧 후회할 거다.”
그가 주머니에서 빼낸 손에는 작은 원석이 박힌 팬던트가 들려 있었다.
“오거라, 나의 수호자여.”
그의 손에 있던 팬던트가 빛났다.
빛이 사라지고 난 후엔 팬던트와 같은 은빛의 갑옷을 입은 골렘이 서 있었다.
고위 신관 모두가 수호의 룬이 새겨진 팬던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팬던트에서 소환된 것은 실버 나이트라 불리는 골렘.
쉽게 볼 수 없는 만큼 골렘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집정관은 헬름 안의 얼굴이 일그러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빌어라. 그리고 네가 들어온 출구까지 안내를 해준다면 그냥 넘어가 주지.”
“이 늙은 놈이 뭐라는 거야. 허수아비 하나 세워놓고 아주 기고만장 하네?”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에 카를로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이마의 혈관이 튀어나왔다.
“느…… 늙은 놈? 이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그가 손가락으로 뮤즈를 가리키자 골렘이 몸이 쏘아져 나갔다.
뮤즈는 들고 있던 낫을 한 손으로 고쳐 들고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골렘의 검이 뮤즈를 내려치는 순간, 그녀는 카를로스의 코앞에 나타났다.
골렘이 자신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로 등을 돌렸지만 이내 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뉘며 바닥을 뒹굴었다.
“고…… 골렘이!?”
덥석-
뮤즈는 낫을 들고 있지 않던 한 손으로 카를로스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곤 카를로스의 안면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콧등이 무너진 카를로스는 눈동자가 뒤집히며 그녀의 손에 들린 채 정신을 잃었다.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종이 뭉치와 양피지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쳇, 시시해.”
집정관을 어깨에 들쳐 멘 뮤즈는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 그가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간 다른 길에 있던 공작은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있는 하얀 블라우스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 말빈…….”
“내 제자들의 복수요.”
말빈은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마주쳤다.
“당신도 자신이 곱게 죽을 거란 생각은 안 했잖소.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고 계시오.”
“이…… 이놈이…….”
서걱-
공작의 경동맥이 잘려 나가며 피가 솟구쳤다.
그가 앞으로 쓰러지자 붉은 피가 흘러나와 수로로 흘러들어 갔다.
말빈은 공작의 피가 식는 걸 지켜보다 이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