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26화 (26/150)

26화

해가 지기 시작한 초저녁.

수도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다.

수도 방위군의 병력이 궁정 기사단과 함께 공작가에 들이닥쳤다.

3왕자 살해미수사건의 용의자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군대가 들이닥치자 공작은 자신의 기사단과 사병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저지했다.

공작의 병사들이 모두 쓰러진 후 병사들은 지하로 통하는 비밀 계단을 찾아냈다.

“대장님, 후문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공작이 중앙로 쪽으로 도망치고 있답니다.”

“당장 쫓아라! 공작이 신전으로 들어가면 방법이 없다!”

공작이 도주처로 신전을 택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던 병사들은 사력을 다해 공작을 쫓았다.

하지만 공작은 팔에 부상을 입으면서도 중앙 신전으로 피신에 성공.

신전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들과 병력을 마주한 군대는 추적을 그만두어야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로텐바르는 직접 신전으로 향했다.

왕세자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집정관이 그를 마중했다.

“왕세자께서 직접 이곳으로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공작을 내놓으시오. 그는 왕족시해사건과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있소.”

“죄송하지만 주님의 품으로 찾아오신 분을 내쫓을 수는 없습니다.”

카를로스 집정관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웃자 로텐바르는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에게도 공모 혐의와 증거 인멸 혐의가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았군. 당신도 참고인으로 같이 가줘야겠소만.”

“전하의 의중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법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정식으로 상부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집정관의 말에 로텐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네. 조만간 둘 다 데리러 다시 오도록 하지.”

“조심히 가십시오.”

왕세자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총국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공작이 신전으로 몸을 피신했다는 소식은 궁전에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이단 재판을 위한 감시 인력도 신전으로 귀환.

태훈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후 로텐바르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공작과 연관된 귀족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반역과 암살이라는 명목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는 시끄러웠다.

공작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총국을 앞세워 수도 귀족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총국은 왕국에 융자해 준 막대한 자금을 볼모로 로텐바르에게 대항했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왕은 회의를 소집했다.

소집된 인원은 국왕과 로텐바르. 그리고 계승 서열 2위인 로벤투스와 태훈이었다.

“다들 상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겠느냐.”

“공작이 총국에게 제안했던 채굴권은 형님이 총국에게 반기를 든 순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총국이 이렇게까지 공작을 위해 나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태훈은 집정관의 생각이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융자금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써가며 공작을 지킬 만한 이유가 없어 보였다.

“총국이 밑지는 장사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로벤투스, 넌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 없느냐.”

“가둬두시기 전에 직접 물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는 들은 게 없습니다.”

둘째 왕자의 말대로 피나 왕비는 감금되었다.

로텐바르가 직접 그녀를 가둔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직접 잡아들이는 왕세자의 모습에 태훈은 그의 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로벤투스는 그런 형의 행보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었다.

로텐바르는 그런 그의 불만을 이해한 듯 입을 열었다.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불만이 있으면 듣고 가지.”

“어째서 어머님까지 가두신 겁니까?”

2왕자는 참고 있던 불만을 터뜨리듯 말했다.

“공작과 함께 메드니안의 암살을 주도한 정황이 있다.”

“저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증인이라는 암살자와 증거가 어머님이 공범이라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로벤투스는 태훈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 인간하고도 교류는 없었지.’

둘째인 로벤투스는 로텐바르의 마른 체형 버전이었다.

“나는 정황이라고 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위해 공작을 심문할 예정이고.”

“가벼이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주위에서 형님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다. 나라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배제할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요? 지금 사사로운 감정이라고 하셨습니까?”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의 로벤투스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의 분노는 로텐바르에서 국왕으로 향했다.

“이 문제들은 전부 아버님이 저 녀석을 왕위로 올리려고 한 탓입니다.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키우고 있는 겁니다.”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왕세자가 버릇이 없다며 로벤투스를 나무랐지만 국왕은 별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군. 거북해.’

태훈은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로벤투스의 투정은 계속되었다.

잠자코 듣던 태훈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로벤투스 형님, 공사는 구별하시죠. 지금은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입니다.”

“이 천한 녀석이, 감히 누굴 가르쳐 드는 것이야!”

짝!

로벤투스의 몸이 옆으로 휘청였다.

태훈은 살짝 놀라 엉덩이를 들썩였고 로텐바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로벤투스의 뺨을 때린 국왕의 주름진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다니! 어서 사과하지 못할까!”

잠시 어안이 벙벙한 로벤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모든 게 아버님 탓입니다! 저 천민의 자식을 감싸고도시니 일이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이…… 이놈이…….”

국왕의 오로라가 붉은색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이 집안은 글러먹었어.’

태훈은 국왕과 로벤투스를 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로벤투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그의 시선은 국왕을 향했다.

‘둘의 기분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다만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해.’

선안을 가졌다는 이유로 태훈에게 매달리고 있는 국왕의 심리를 태훈은 알고 있었다.

“아버님이 그렇게 아끼는 녀석과 잘 해결해 보십시오.”

“로벤투스!”

로텐바르가 고함을 쳤지만 둘째 왕자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적이 감돌기를 수 분.

국왕의 한숨과 로텐바르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아무튼 이 사태는 빨리 수습해야 합니다. 방치했다가는 귀족들이 나뉠 겁니다. 넌 무슨 방법이 없느냐?”

“원인부터 해결해야죠. 총국이 기고만장한 이유가 있잖습니까.”

태훈은 총국에게 진 빚의 액수를 물었다.

“대금화 600만 닢이다.”

“그중 얼마를 갚은 상태죠?”

“그게 남은 금액이다. 원래 액수는 천만 닢이었지.”

“이율은 얼마나 됩니까?”

“연간 남은 원금의 2할이다.”

“음…….”

생각보다 쎈 이율에 태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돈을 마련할 곳은…… 당연히 없겠죠?”

“그런 거액이 갑자기 나올 리가 없잖느냐.”

상아탑이나 제노비아에 부탁을 해볼 만한 금액도 아니었다.

“음, 역시 그 수밖에 없으려나.”

“좋은 방법이라도 있느냐?”

국왕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채무를 지게 된 원흉을 이용해 볼 생각입니다.”

“원흉? 설마 연금술을 말하는 것이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왕국이 많은 빚을 지게 된 이유.

그것은 약 70년 전에 유행했던 연금술 때문이었다.

그 당시 연금술은 대륙을 지배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서로가 앞다투어 육성하는 학문이었다.

덕분에 강철을 비롯한 많은 금속의 발견을 가져왔고 식량의 생산량이나 자원의 채굴량이 올라갔다.

황금기는 몇 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몇 년간 풍부한 작황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대기근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연금술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계를 드러낸 토지를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토지를 살리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금과 원석을 만들겠다는 무리한 투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 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무리한 투자로 인한 뒷감당을 져야 했다.

실제로 작은 왕국 하나는 파산에 이르러 제국에게 흡수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카나리스 역시 그런 위기에 봉착했고 그 위기를 넘기고자 총국에게 막대한 빚을 진 것이다.

태훈의 말에 국왕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사기 학문에 대체 뭘 기대한단 말이냐?”

“설마 연금술로 금이나 원석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냐? 지금은 그쪽으로 투자할 여력이 없다.”

국왕과 로텐바르는 딱 잘라 말하며 거절했다.

‘주식으로 망한 사람이 주식해서 돈 갚겠다고 하면 돈 빌려줄 곳은 없겠지.’

하지만 그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투자금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부탁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연금술에 관한 모든 자료를 보고 싶습니다.”

연금술은 사기 학문으로 낙인찍힌 뒤 전량 폐기된 학문이었다.

관련 학자들은 사기죄를 물어 추방을 당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관련 문헌 또한 전량 폐기되었던 것이다.

태훈은 한때 나라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진 정보들이 전량 폐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강철이나 마장기에 들어가는 주요 금속은 그 시대 때 만들어진 기술이다. 전부 사라졌을 리 없어.’

“대체 그것을 어디다 쓰려는 것이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식이나 기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냐?”

“연금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모든 나라가 이미 검증을 마쳤을 터인데 그중에 놓친 기술이 있다고?”

“형님, 연금술이라는 것이 꼭 금이나 원석 같은 고가의 물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드는 약도 일종의 연금술이라 보시면 됩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차라리 네가 말하는 그 약을 대량생산해 내면 어떻겠느냐. 충분히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약초나 재료들을 수급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계절에 재료의 대량 확보는 무리입니다.”

태훈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둘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미 한번 데인 학문에 의지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폐광의 모든 권한과 연금술에 관한 정보를 모아만 주시면 됩니다.”

“폐광? 그건 왜 필요한 것이냐?”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네 말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에만 의지하기엔 불안하다. 대안도 내놓아보거라.”

“대안도 있습니다. 지금 채굴하고 있는 원석 광산을 매각하시죠.”

“뭐라고?”

왕국 수입의 절반에 해당하는 원석의 채굴권을 양도하자는 말에 국왕은 깜짝 놀랐다.

“어차피 채굴량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 된다! 원석은 이 나라, 나아가 이 나라 왕실의 상징이다. 그것을 대체 누구에게 팔라는 것이냐?”

“아버님 말이 맞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원석의 채굴은 정치적으로도 복잡한 문제다.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왕세자의 말대로 채굴권은 단순한 수입원이 아니었다.

군세를 좌지우지하는 마장기의 필수 재료인 만큼 국가 간의 외교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제노비아도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선택한 배경이 있었다.

태훈은 광산을 팔 생각이 아니었다.

둘로 하여금 최후의 방법만이 남아있으니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이었다.

“지금 저희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입니까? 자칫하면 나라가 분열하고 총국이 공작을 앞세워 이 나라를 쥐고 흔들 겁니다. 저보다 좋은 의견이 있다면 말해보십시오.”

“하지만…….”

“제가 연금술을 이용해 확실히 자금을 마련해 낼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제 목을 걸겠습니다.”

자신의 목까지 걸겠다는 말까지 나오자 국왕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자코 보고 있던 로텐바르가 쐐기를 박았다.

“메드니안의 말을 믿어보도록 하죠. 아버님.”

“로텐바르. 넌 그런 도박은 하지 않는 성격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메드니안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닙니까?”

로텐바르는 태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계약금 명목으로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 식량을 가져온 것.

약이나 기구의 발명 등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그의 기량을 예로 들었다.

“메드니안의 말대로 마지막은 광산을 팔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으음.......”

로텐바르의 설득은 국왕을 움직였다.

왕세자의 말대로 메드니안이 만들어낸 ‘실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로텐바르가 메드니안을 인정했다는 점이 국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적으로 대할 줄 알았던 로텐바르가 메드니안을 인정한 것인가.’

갈등을 겪을 것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 컸던 것이다.

국왕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자 로텐바르가 말했다.

“메드니안, 분명 너는 자금은 필요 없다고 했다. 폐광의 권리들과 연금술에 대한 정보면 되느냐.”

“그렇습니다.”

“네 목을 걸고 약속했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네 목을 치겠다.”

“좋습니다.”

태훈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