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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13화 (13/150)

13화

엘리우스 국왕에게는 총 4명의 왕비가 있었다.

그중 정실인 1왕비를 제외하고 후궁이었던 2왕비와 3왕비는 모두 병으로 사망했다.

태훈의 어머니가 되는 4왕비 역시 출산 직후 사망.

정실인 피나 왕비만이 두 아들을 두었고 나머지는 전부 딸을 출산했다.

메드니안이 출생 직후 가장 근심을 보인 인물은 피나 왕비였다.

출신 성분이 미천한 4왕비를 견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아들이 선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변수였다.

하지만 그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안심이었다.

하지만 태훈이 제노비아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마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림자 병의 원흉을 제거했다는 소문.

그리고 제노비아의 혼약이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과 막대한 식량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피나 왕비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냐.”

“메드니안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데스티노 공작이 말하는 일전이란 태훈과 피나 왕비가 아침에 왕성 입구에서 만난 날이었다.

“그럼 언제 움직이실 건가요? 이대로 있다간 메드니안에게 왕위를 빼앗길 겁니다.”

“국왕과 집정관이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어. 감시가 심하다.”

“그럼 더더욱 문제잖아요. 손을 써야 합니다.”

“그러다 총국이 당장 차관을 회수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약 100년 전 카나리스 왕국은 정책을 위해 주위에 막대한 빚을 졌다.

정책은 실패. 거기다 심한 가뭄까지 돌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자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때 교황 총국이 접촉해 오면서 빚을 갚아주는 대신 종교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했다.

사정상 총국을 받아 들였지만 총국과 앙숙지간인 상아탑과 밀접한 관계였던 왕실과 정계는 그들을 경계했다.

그런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던 중 상황이 반전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태훈의 존재.

총국은 더 막대한 영향력을 휘두르길 원했고 국왕은 태훈에게 세력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던 것.

총국과 국왕이 옹호하는 메드니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총국은 빌려준 자금을 당장 회수해 갈 수도 있었다.

“총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 되잖아요. 집정관과 담판을 지으세요.”

“정치에선 받는 게 있으면 내어주는 게 있어야 한다.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게 무엇이냐?”

“원석 채굴권을 거십시오.”

왕비의 말에 공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원석 채굴권은 왕실의 고유 권한이었으며 상아탑도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국왕이 채굴권을 포기할 것 같으냐?”

“차기 국왕으로 로텐바르가 즉위하면 상아탑의 지분을 총국에 주겠다고 하십시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상아탑과 등을 지려고?”

“그 천한 것의 아들이 왕이 되면 그땐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겁니다!”

왕비의 강경한 반응에 공작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왕비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공작가를 중심으로 귀족파를 형성.

왕실과 힘을 겨루고 있었고 피나 왕비가 정실로 들어가면서 왕실과의 관계가 원만해졌다.

왕세자인 로텐바르가 왕실과 정계의 접점인 상황에 태훈이 왕이 되면 많은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차기 국왕이 자신들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원석 채굴권의 지분과 다음 정권에서의 우대를 약속한다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네 뜻은 알았다. 그리고 다음부턴 사람을 보내라. 네가 직접 오는 건 삼가도록.”

“명심하세요. 반드시 총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국왕이나 상아탑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왕비가 돌아간 이후 데스티노 공작은 생각에 잠겼다.

왕비의 말대로 총국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하지만 카를로스 집정관은 수완이 뛰어났고 그와는 타협하기를 꺼렸다.

생각을 정리한 듯한 공작은 사람을 시켜 누군가를 불렀다.

잠시 후 도착한 사람은 검버섯이 핀 늙은 노인이었다.

자주색 로브를 입은 노인은 공작을 보자 반갑게 웃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말빈. 요즘도 일하나?”

“저야 현장에서는 손을 뗐지요.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것을 보니 상황이 좋지 않으신가봅니다.”

말빈이라 불린 노인은 히죽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황을 잘 아는군.”

“이 바닥에 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죠.”

“그럼 내가 뭘 부탁할지도 알겠군. 가능한가?”

“못 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국왕이나 총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건 자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헌데 현장에서 손을 뗐다면 맡길 사람이 있는가?”

“제 수제자들이 있습니다. 실력은 제가 보증하죠.”

“보증만으론 안 돼. 책임까지 질 자신이 있는가?”

공작의 묵직한 대답에 말빈은 손가락을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이 정도면 제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지요.”

“50닢인가?”

“500닢입니다. 그것도 세레니스 제국의 대금화로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위험부담이 크지요. 큭큭.”

공작은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말빈의 앞에 자루를 던지자 뭉툭한 금속 소리가 들렸다.

“선금으로 100닢을 주마. 성공하면 잔금을 주지.”

“공작님이야 워낙에 신용이 좋으시니 믿겠습니다. 하오면 언제로 좋을까요?”

“시일은 추후에 알려주지. 수제자라는 녀석들에게 준비나 단단히 시키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 * *

기구의 개발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원리는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큰 기구가 필요한지 몰랐던 만큼 다시 만드는 작업이 반복됐다.

첫 시제품이 만들어진 것은 개발착수로부터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왕을 비롯한 소수의 인원만이 시운전에 참석했다.

“이게 기구라는 것인가? 생각보다 상당히 크군.”

“뜨거운 공기를 모으기 위한 구체입니다. 크면 커질수록 더 높이 오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서 작동해 보도록.”

태훈이 스위치를 올리자 마법회로가 가동되며 미약한 마나가 흐르기 시작했다.

파밧-

불이 점화되자 늘어져 있던 기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열기로 가득 찬 구체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기사단장님 타시죠.”

시운전에 동참하기로 한 기사단장이 올라타자 바구니가 땅에서 떨어졌다.

“줄을 풀도록.”

줄을 풀자 기구는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점점 멀어지는 기구를 보며 지상의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기구는 어느새 수십 미터를 솟아올랐다.

기사단장은 지나가는 새들을 바로 옆에서 보자 할 말을 잃었다.

“대…… 대단하군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까?”

“대략 500미란입니다. 그 이상은 아마 무리일 겁니다.”

“활의 사거리가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군요. 여기서 활을 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다만 중량 제한이란 게 있으니 감안해야 합니다. 원래 정찰 목적이니까요.”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까?”

태훈은 이번에는 페달을 밟았다.

바구니의 네 방향에는 마법회로가 달려 있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대단하군요. 그야말로 천의 공중 요새입니다.”

“바람이 심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기구는 띄울 수 없습니다. 그 점도 숙지하셔야 합니다.”

왕성 주위를 한 바퀴 돈 태훈은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다시 지상에 착륙했다.

사람들은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태훈도 자신이 만든 물건이 훌륭하게 작동하자 뿌듯해했다.

국왕은 나무로 된 바구니를 만져보며 기구를 둘러보았다.

“단가는 얼마이더냐?”

“세레니스 제국 대금화로 10닢에서 12닢 정도입니다. 제노비아에는 30닢이라고 말해두었습니다.”

“생산에는 얼마나 걸리지?”

“선체만 보면 한 대당 보름입니다. 하지만 제가 마법회로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한 달로 보시면 됩니다.”

“다른 마법사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기사단장의 물음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구에 들어가는 마법회로 중 경량화 마법회로를 빼면 전부 1클래스급 마법회로였다.

“충분합니다. 핵심적인 부분만 제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다른 마법사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태훈의 대답에 국왕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상아탑의 수련 마법사들을 고용하면 될 것 같군.”

“그럼 이걸 시제품으로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마지막 식량이 도착하면 같이 출발하겠습니다.”

국왕은 생산 라인이 갖추어 질 때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일 것을 당부했다.

열기구의 성공에 더불어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아넬리아의 건강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었다.

이제 바깥나들이도 가능해져 주위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태훈은 이것 역시 자신이 만든 약이라며 국왕에게 보고를 했다.

“이게 병을 낫게 해준다는 새로운 포션인 것이냐?”

“포션과는 사용처가 다릅니다. 기존의 포션은 외상에 특화되어 있고 이것은 질병에 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훈은 항생제라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병에 강한 내성을 강화시켜 준다는 말에 국왕은 내심 실망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만능은 아니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고 또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회복률이 나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태훈은 강하게 자신의 약을 어필했다.

그리고 약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실제로 아넬리아가 약의 효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 제정 상태를 감안했을 때 태훈이 요청하는 수준의 제정적 지원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기구를 통해 얻는 수입의 절반을 지원해 주십시오.”

태훈은 자신이 벌어온 수익의 절반을 요구했다.

“내무관, 이번에 기구를 통해 얻게 되는 수익이 어느 정도 되지?”

“제노비아에서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오는 금액과 10대를 발주한다 가정했을 때 대금화 3100닢 정도 됩니다.”

국왕은 흔쾌히 태훈의 말을 받아 들였다.

어차피 예상에도 없던 수입.

국왕은 제노비아에게서 받을 대금의 절반을 식량으로 받아오라는 말과 함께 제안을 수락했다.

며칠 후, 제노비아에서 계약금 500닢에 대한 마지막 물품이 도착했다.

국왕은 열기구의 존재를 공표하고 계약을 위한 대표단을 꾸려 태훈과 함께 제노비아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뜻밖의 인물이 국왕을 찾아왔다.

“집정관? 오늘은 부른 기억이 없는데?”

카를로스 집정관이 수십 명의 신관과 함께 궁을 찾은 것이다.

“폐하, 오늘은 찾아뵐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표정이 굳어져 있는 집정관을 보며 국왕은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했다.

“무슨 볼일로 찾아왔는가?”

“제가 듣기로 왕실에서 새로운 포션을 개발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포션? 아, 새로운 약 말인가? 집정관이 벌써 그 소식을 들었다니 놀랍구만.”

국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약의 양산을 위해 실무자들을 꾸려보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사실인가 보군요. 폐하, 저는 지금 무척이나 섭섭합니다.”

“섭섭하다?”

집정관의 말에 국왕이 되물었다.

“어찌 저희 신전에 이야기도 없이 새로운 포션을 만든다는 겁니까?”

“왕실에서 하는 일에 어찌 집정관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말이오?”

국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자 집정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포션은 신이 주신 은총. 신관들에게만 허락한 일입니다. 어찌 신관이 아닌 자가 포션을 만든단 말입니까. 이건 신성 모독입니다.”

“그건 집정관이 오해했군. 이번에 만드는 것은 일종의 약이오. 약초로 만든 것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지. 그대들이 만드는 포션과는 본질이 다르오.”

국왕이 집정관의 말을 부인했지만 집정관은 여전히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지금 신전의 포션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것 역시 신성 모독입니다.”

계속해서 신성 모독을 물고 늘어지자 국왕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실제로 세간에는 약초를 다루는 자들이 많은데 어찌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가? 집정관은 그런 그들이 전부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인가?”

최근 집정관과 원만한 관계를 넘어 협력하고 있던 국왕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집정관은 작정을 하고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문제가 큽니다. 폐하. 이것은 중앙 총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4대 신전을 어우르는 교황 총국까지 언급하자 국왕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집정관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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