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집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우리도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마지막으로 알에게 시선이 모였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알이 입을 열었다.
“와…… 왕자님은 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조하긴 그도 마찬가지였다.
태훈이 집에 들어간 지 10분이 넘었을 때 그는 결심한 듯 말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울먹이는 표정으로 집 쪽으로 다가갈 때 중갑을 두른 태훈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알의 표정이 환해지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멀리 가라는 동작으로 손을 내저었고 알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왕자님?”
알을 무시한 태훈은 집 뒤편으로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갑옷을 벗으려 하자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투구를 벗은 그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후아, 역시나 산소통을 만들어야 했나.”
숨을 몰아쉰 태훈은 눈 위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보다 촌장을 데려와.”
다가온 촌장에게 태훈은 집 뒤쪽의 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촌장, 저 산에 뭐가 있지?”
“산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아, 오래된 폐광이 하나 있습니다.”
“폐광?”
태훈은 라이트 마법으로 벽난로를 비추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그을음인 줄 알았던 것들이 놀랍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을 비추면 빛을 피해서 안쪽으로 움직였고 계속해서 빛을 비추자 그것들이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집 뒤편으로 갔을 때 그들은 그늘 진 곳에 뭉쳐 있었고 빛을 다시 한번 비추자 응달을 통해 산속으로 도망쳤다.
태훈은 눈 덮인 산을 바라보았다.
‘확실해 그건 미생물이었어. 아니, 다른 무언가인가?’
그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단순한 미생물로 보기 어려웠다.
‘곰팡이? 박테리아? 어찌 됐든 간에 병의 원흉은 그거야.’
태훈은 원인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에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산속의 폐광과 관련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 당장 폐광에 가야겠어.”
“거긴 무슨 일로…….”
“잘하면 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왕자의 말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 누구도 그림자 병에 대한 치료법이나 원인을 찾아낸 적이 없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자세한 건 가봐야 알아. 아, 그리고 너희들은 오지 마.”
태훈은 방호복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확실하다면 몸의 점막이나 호흡기로 침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방호복이 없는 그들은 무방비일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먼 길을 이동한 뒤에 나타난 폐광.
태훈은 다시 한번 투구를 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트를 쓰며 어느 정도 들어가자 검은 얼룩들이 폐광 안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역시. 이것들은 살아 있어.”
확신에 찬 태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잠시 후 막다른 곳이 나타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검은 얼룩들은 작은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이 뒤에 뭐가 있는 거지?”
벽 뒤가 궁금했지만 마땅한 도구가 없는 터라 이리저리 살피기만 했다.
잠시 후 오래된 곡괭이를 발견한 태훈은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라이트 마법을 해제한 뒤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웨폰.”
그가 시동어를 외치자 한순간 빛이 곡괭이를 둘러쌌다.
동시에 얼룩들이 사라졌던 바위의 틈에서 얼룩들이 쏟아져 나왔다.
“뭣!”
당황하는 사이 얼룩들은 곡괭이들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한 곡괭이.
그리고 그 곡괭이에 둘러졌던 마법이 순식간에 소멸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그가 곡괭이를 손에서 놓자 마법이 사라졌고 검은 얼룩들은 곡괭이에서 떨어졌다.
‘설마 마나에 반응하는 건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에는 허공에 매직 애로우를 시전했다.
역시나 검은 얼룩들이 달라붙더니 마법은 사라졌다.
‘확실해, 이건 마나에 반응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태훈은 잠시 벽에서 떨어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나를 모으기 시작하자 검은 얼룩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체내에 있던 마나를 끌어모아 손 위로 집중시키자 요동치던 얼룩들이 이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로 모인 검은 얼룩들은 태훈의 키만큼 커졌다.
‘이건 곰팡이나 박테리아가 아니야. 다른 무언가다.’
검은 얼룩은 태훈의 손 위에 놓인 마나 구슬을 탐내는 듯 마치 액체 괴물처럼 마나 구슬에 관심을 보였다.
태훈이 자신이 가진 모든 마나를 모아 만든 구체를 검은 물체에게 내밀었다.
검은 물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마나 구슬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물체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거대한 늑대의 형상으로 변한 것.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마나로군.”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깜짝 놀랐다.
“방금 네가 말한 것인가?”
“호오,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듣는 건가? 그대는 적성자로군.”
“적성자? 그런 건 모르겠고 너는 대체 누구냐?”
“나는 어둠의 상급 정령인 다크니스다.”
“정령?”
자신을 정령이라고 하는 검은 늑대의 말에 태훈은 자신의 적성 중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렇군. 이게 정령인가.’
일렁이는 늑대에게 태훈은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묻겠다. 마을의 인간을 공격한 것은 너의 짓인가?”
정령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된 책이 왕실 서고에 존재했다.
그 책에 정령이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기에 태훈은 늑대를 추궁했다.
“그렇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었군.”
“정령이 어째서 인간을 공격하는 거지? 네 주인의 명령인가?”
“나의 주인은 수백 년 전에 잠에 들었다. 마지막에 그런 명령은 받은 기억은 없군.”
“그럼 어째서 마을의 인간을 공격하는 거지? 무슨 목적이야?”
“내 주인이 되는 자가 잠들면서 내가 남겨졌다. 나를 돌려보내는 것을 잊은 거지. 마나를 얻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늑대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어둠의 정령들이 지상계에 남겨졌다는 것.
정령계로 돌아가지 못한 정령들은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 방법이 마나가 풍부한 원석에 달라붙어 마나를 공급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인간들이 그 원석을 마구잡이로 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마나를 공급받을 원석이 없어져서 밖으로 나왔다는 건가? 그러다 인간에게서 마나를 흡수했고?”
“다른 계절에야 짐승이나 몬스터로부터 마나를 흡수했지만 겨울엔 사람 이외에 살아 있는 종족이 별로 없다.”
“너 때문에 수십 년간 사람이 얼마나 죽은 줄 알아?”
“미안한 일이군. 하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인간이 죽을 정도로 마나를 빼앗지는 않는다.”
“무슨 소리야, 죽은 사람이 몇인데.”
“내 분신들이 상황을 지켜봐서 안다. 인간들은 문제가 심각해지면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인간이 죽을 정도로 마나를 빼앗지는 않아.”
“그럼 병으로 착각해서 지레짐작으로 사람들을 처리했다는 건가?”
“그것이 인간들이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늑대의 말에 태훈은 섬뜩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림자 병은 시간이 지나면 낫는 병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인간이 심각한 전염병으로 오인하고 상태가 심각해진 인간을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말이었다.
“좋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결국 원인은 너잖아.”
“그것 또한 우문이다. 애당초 너희가 원석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너희에게 해를 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큭…….”
늑대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기에 태훈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늑대의 모습은 많이 희미해져 갔다.
“오랜만에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오해는 풀렸으면 좋겠군.”
“뭐야, 어딜 가려는 거야?”
“나는 상급 정령이다. 네가 준 마나로는 오래 현신할 수 없어.”
“그럼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가?”
“가서 전해라, 마나를 취할 뿐 죽는 병은 아니라고.”
그 말을 끝으로 늑대는 홀연히 사라졌다.
두둥-!
엄청난 고통이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이게 마나 고갈인가…….”
책에서만 보았을 뿐 한번도 마나 고갈을 겪어보지 못한 태훈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여러 조각으로 분열된 검은 얼룩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혼자 남겨진 태훈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의 정령 또한 악의가 아닌 살기 위한 방도였다.
그것을 오인한 사람들이 멋대로 해석해서 죽지 않을 사람을 죽게 만든 것에 대한 충격이 컸다.
밖으로 나온 태훈은 산을 내려오며 생각에 잠겼다.
‘정령과 대화했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데.’
태훈은 기사의 소질과 마법사의 소질을 모두 갖고 있는 이른바 천재형 인간이었다.
소질을 두 가지 이상 태어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신력을 배운 것도 감추고 있었는데 정령의 적성을 까발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면서 괜히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없게 만들어야겠군.’
태훈은 그날 저녁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병에 걸린 사람이 사망한 것을 본 적이 있냐는 그의 질문에 사람들은 잠시 정적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태워 죽였단 말인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병이 중한 사람을 오래 놔둔다면 그건 전염병을 키우는 것밖에 안 됩니다.”
“혼자 숨쉬기도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죽었을 사람들이었죠.”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답.
그들의 대답에 태훈은 맥이 빠졌다.
수십 년간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
더욱이 국내뿐만이 아니라 모든 왕국에 죽음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포함한다면 적지 않은 숫자일 것이다.
참사의 원인이 결국 인간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이 병은 죽는 병이 아니야. 겨울이 지나가면 전부 낫는 병이다.”
“네?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탄광 안에서 병의 원흉이 되는 것을 찾았다. 사람들은 병이 아니라 마나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어.”
“마나를 빼앗는다고요? 그것이 뭡니까?”
이번에는 신관들이 질색하면서 물었다.
태훈은 그것이 마족의 소행이며 자신이 그것을 처리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마족이라는 것이 어느 세상을 막론하고 악의 존재였기에 떠넘기기에는 충분했다.
“왕자님이 마족을 처리하셨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하급 마족이었어. 힘들긴 했지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 병은 없는 것입니까?”
“처리했다고는 하나 그 기운은 남아 있어.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봄이 되면 낫는 병이니 다른 곳에도 전하게.”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모든 것이 마족의 소행이었다는 것도 깜짝 놀랄 만한 일.
그런데 그 마족을 왕자가 혼자서 처리했다는 말이 쉽게 수긍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덤덤하게 말하는 것 또한 거짓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믿어야 할지 말지를 눈치 보기 바빴다.
왕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것은 영웅으로 불릴 만한 업적이었다.
사람들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태훈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해결은 되었다고 말했지만 실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령은 그냥 그렇게 둘 수는 없어.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하는데.’
고심을 하던 태훈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 다시 한번 폐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