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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9화 (9/150)

9화

사절단이 준비를 마쳤을 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12월 중순이었다.

태훈을 포함하여 기사와 하인들을 포함한 사절단의 인원은 30명.

마차로 총 10대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외무대신인 라블로 자작의 심복인 데로이 남작이 태훈의 수행원을 겸했다.

50세 초반의 데로이 남작은 외무부의 차관격인 인사로 금발에 단발을 한 차분한 인상의 남자였다.

“왕자님, 수도를 벗어났습니다.”

눈발이 날리는 언덕에 다다르자 남작이 말했다.

남작의 말에 태훈이 마차의 커튼을 젖혔다.

‘당분간 안녕이군.’

설렘 가득한, 처음 떠나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수도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절단 일행은 한 무리의 병사들과 마주쳤다.

20명 남짓한 기병들의 맨 앞에 있던 장교가 마차로 다가왔다.

“수도 중앙군의 발덴이라고 합니다. 왕자 전하를 루데이아나 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발덴 경, 만나서 반가워. 추운데 고생하네.”

“아닙니다, 전하.”

“아, 하나 말해둘 게 있는데 루데이아나 영지 말고 포드 영지로 가도록 해.”

“예?”

발덴은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이 받은 명령은 루데이아나 영지로 가 북부 중앙군에게 왕자의 신병을 인도하는 경로였다.

“전하, 죄송하지만 현재 그곳은 격리 조치 중인 영지입니다. 전염병이…….”

“알고 있어. 어쨌거나 이 사절단의 리더는 나잖아.”

“하오나 그런 위험한 곳에 왕자님을 모실 수는…….”

발덴은 싫어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굳이 안전한 길을 놔두고 위험한 지역으로 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에잇, 시끄럽네. 어차피 발덴은 북부군에게 나를 인도하려 하는 거잖아. 그럼 어디서 인도하든 상관없을 거 아냐.”

“왕자님, 어째서 경로를 바꾸는 것 입니까?”

남작도 난색을 표하며 발덴의 편을 들었다.

“그림자 병을 조사하러 간다. 아버님의 명령이다.”

“폐하가요? 그런 명령은 듣지 못했습니다.”

남작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명령이 있었다면 분명 자신에게도 언질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떠나기 직전에 내리신 명령이야.”

“폐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어째서 왕자님을…….”

“뭐야,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태훈이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내가 당신들한테 한가롭게 거짓말 하는 것처럼 보여?”

“그…… 그런 것이 아니오라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아서…….”

“돌아가서 당신들이 내 말을 못 믿어서 돌아왔다고 할까? 이 혼약이 무효가 되면 다 당신들 탓이라는 거 알아둬.”

발덴은 진땀을 흘렸다.

그러면서 남작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결정하라는 듯한 눈초리였다.

두 사람 모두 책임을 질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북부군에게 전갈을 넣어야겠습니다. 전령을 보내도 될까요?”

“그렇게 해.”

결국 발덴은 목적지를 수정했다.

전령을 먼저 보내 루데이아나에서 기다리고 있을 북부군의 병력을 포드 영지로 보내도록 했다.

남작은 발덴에게 다가가 추가적인 주문을 넣었다.

“이보게 발덴 경. 포드령에 있는 신전들에 연락해서 신관들도 동행하라 이르게. 왕자님께 변고라도 생기면 큰일이야.”

“알겠습니다, 남작님.”

본래 왕족의 이동에는 교황 총국의 고위 신관이 동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훈의 요구로 신관이 따라붙지 않게 되었는데 대신 많은 양의 포션을 싣고 있었다.

일주일 후 사절단은 포드 영지의 경계인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북부 중앙군에게 사절단을 맡긴 발덴은 귀환했다.

“북부 사령부의 프린스턴입니다. 소식 받고 이렇게 모시러 왔습니다.”

프린스턴이란 사내는 30대 중반의 젊은 기사였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건장한 사내였다.

“데로이 남작이네.”

“저, 죄송하지만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3왕자님은 어째서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

“폐하의 명령으로 그림자 병을 조사하러 오신 거라곤 하지만 내 직감으로는 호기심이 동하신 모양인 것 같군.”

“일단 신관 둘을 데리고 왔습니다. 남작께서 왕자님을 맡아주십시오.”

“노력하겠네.”

사절단은 커다란 캠프로 안내받았다.

포드 영지를 격리하는 북부군이 머무르는 베이스 캠프였다.

짐을 풀자마자 태훈은 상황 보고라는 명목으로 담당자들을 불러 모았다.

“상황에 대해 말해봐.”

“현재 두 마을이 격리 상황에 있습니다. 마을에서 필요한 물자는 수레를 운반하여 마을 길목에 놓아두고 있으며 각각의 마을에 병력 2백을 배치했습니다.”

“이 두 마을은 예년에도 발병했던 기록이 있나?”

“그렇습니다. 그중에 다칸소 마을은 지난 10년간 항상 발병해 왔던 마을입니다.”

프린스턴이 마을 지도를 펼쳐놓고 상세히 설명했다.

10년 연속 개근상을 탔다는 그의 말에 태훈은 지도를 꼼꼼히 살폈다.

포드 영지는 한때 많은 양의 원석을 채굴하는 광산 지역이었다.

원석을 두고 제노비아 왕국과 국지전을 벌일 정도였지만 20여 년 전부터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실제로 지도에는 수많은 광산들이 표기가 되어 있었다.

“이 광산들은 전부 폐광인가?”

“그렇습니다.”

“그럼 인구도 적겠군?”

“현재 다칸소 마을의 인구는 500명 남짓입니다. 한때 3천 명이 넘기도 한 큰 마을이었지만 첫 그림자 병이 도진 후에 많이 줄었습니다.”

“혹시 주위에 공동묘지나 몬스터 서식지가 있나?”

“그런 내용은 보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용을 정리받은 태훈은 다른 사람들을 물리고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간이침대에 누운 그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공동묘지가 없으니 시신의 부패로 생기는 병원균은 아닌 것 같고. 몬스터의 서식지도 없으니 몬스터가 옮기는 것도 아닌데, 설마 가축이 옮기는 건가?’

가축 전염병이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가축의 피해는 보고된 적이 없었기에 이마저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상황.

다음 날이 되자 태훈은 다칸소 마을로 갈 준비를 지시했다.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태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칸소 마을의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물자를 받기 위해 마을 진입로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다 왕자가 직접 왔다는 말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촌장인가?”

“네, 그렇습니다. 왕자 전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와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폐하의 명령으로 상황을 직접 살피러 왔다. 안내하게.”

“아…… 알겠습니다.”

태훈은 촌장을 따라나섰다.

따라가는 기사들과 신관들은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약한 눈발이 날리는 마을은 고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사절단의 행차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촌장, 환자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지? 숫자는?”

“17명 중에 12명은 어제 소각 처분을 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 집에 모아놨습니다.”

실제로 마을 안에서 뭔가가 타는 듯한 냄새가 풍겼다.

촌장은 첫 번째 발병자가 생긴 집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발병자가 있던 옆집은 불에 탔는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집과 함께 태우나?”

“그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잘못된 건가요?”

“아니야, 잘했네. 프린스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인가?”

“네, 그렇습니다. 발병자가 생기면 한곳에 모아놓고 상태가 심해지면 소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환자를 보고 싶다.”

그러자 프린스턴과 남작이 굳은 얼굴로 태훈에게 다가왔다.

“전하, 그것만은 안 됩니다. 자칫 전하의 몸에 전염병이 옮기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맞습니다. 왕자님은 지금 혼약을 위해 사절로 외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본래 목적을 기억해 주십시오.”

“여기까지 왔으면 환자 상태를 봐야지. 그냥 돌아갈 거면 뭐 하러 이 마을까지 왔겠어.”

“하오나 왕자님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폐하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걱정 말게. 다 준비해 왔으니까.”

태훈은 마차에서 내려 커다란 짐꾸러미를 하나 내렸다.

그도 목숨이 여럿은 아니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그가 꺼낸 것은 그가 고안해 낸 방호복이었다.

세밀한 기술은 없었기에 그가 만든 것은 심해 잠수복처럼 생긴 갑옷 같은 형태였다.

“이게 뭐 하는 물건입니까?”

“방호복이라는 거다. 내가 원석과 마법회로를 이용해서 만든 거지.”

태훈은 방호복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갑옷의 이음새와 틈새는 두꺼운 가죽으로 덮었고 투구는 유리를 대어 시야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딸린 배낭.

그 안에는 원석과 마법회로가 들어 있었고 정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연기를 피워놓은 밀폐된 곳에 들어가 보기도 하여 성능은 확인했었다.

“이게 전염병을 막아준다는 겁니까?”

“이론상으로는.”

태훈은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연실색했지만 그 누구도 태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저기, 왕자님. 아무리 옆을 지키는 것이 제 사명이긴 하나 이번에는 좀…….”

“알아. 방호복도 하나밖에 없으니 여기서 기다려.”

“그……그럴까요? 하하…….”

마치 처음 달에 발을 딛는 인간처럼 태훈은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다가갔다.

끼익-

문을 열자 낡은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집 여기저기에 모포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여기가 서민들의 집인가.’

벽난로와 식탁, 그리고 집기들이 놓여 있는 20평도 안 되는 단출한 구조의 집이었다.

문이 열리며 냉기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모포를 여미다가 태훈을 보았다.

“누…… 누구요?”

“환자들을 보러 왔다. 모포를 걷어보도록.”

“신관이십니까?”

“나라에서 파견 나왔다. 상태를 볼 수 있게 모포를 걷어봐.”

사람들은 주섬주섬 모포를 걷었다.

방 안에 있던 것은 성인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

그리고 어린아이 두 명이었다.

옷을 걷어보라 하자 한 남자가 상의를 벗었다.

얼굴과 몸의 왼쪽이 그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단단한 숯을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픈가?”

“아니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상태를 말해보게.”

“온몸에 힘이 없습니다. 뭘 먹어도 나아지지 않고 검은 반점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의 일부에서 검은 반점이 발견.

시간이 흐를수록 반점이 커지며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한다.

뭘 먹어도 몸이 말라가며 호흡곤란이 찾아오고 나중에는 숨만 쉴 수 있게 되는 그런 병이었다.

태훈은 다시한번 남자의 몸을 세밀하게 살폈다.

‘피부가 무르지 않고 딱딱해. 진물도 나지 않아.’

태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질병들과 비교해 보았다.

자신이 맡았던 약의 개발과 관련된 증상과 비교해 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병명을 집어내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최초의 발병자가 나온 집이었다면 무언가 감염원으로 생각될 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그을음으로 가득한 벽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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