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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5화 (5/150)

5화

카나리스 왕국의 왕궁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한 남자가 알현실로 들어오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 왕자님이라 하옵니다.”

“그래?”

엘리우스 국왕은 신하의 보고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세 번째 왕자의 출산.

태훈을 제외하고도 이미 5명의 자식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감흥이 크지 않았다.

“폐하,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뭔가?”

“왕자님께서 선조의 징표를 타고 나셨습니다.”

“선…… 뭣이라!?”

순간 방이 떠나가라 외친 국왕은 벌떡 일어섰다.

“그게 정말이냐?”

“네, 제가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축하드리옵니다, 폐하!”

“오오, 드디어 이 나라에 다시 서광이 비추려 하는 것인가!”

그렇게 말한 국왕은 환하게 웃다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기쁨도 잠시, 상황을 인지한 국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왕비는?”

“조금…… 힘드실 듯합니다.”

이번엔 신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가……. 신관에게 일러 최선을 다하라 하게.”

국왕은 말끝을 흐렸다.

출산 후 산모의 사망률은 높은 편.

국왕에게는 방금 출산을 한 왕비를 포함해 4명의 왕비가 있었지만 1왕비를 제외하곤 전부 사망했다.

신관은 최선을 다해 왕비의 회복에 힘을 썼다.

엄청난 고가의 포션, 6시간 교대로 신관을 바꾸어가며 신력을 쏟아붓는 진료.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모는 왕자를 출산한 지 열흘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다른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태훈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아니지, 많은 포인트를 쌓고 가셨길.’ 태훈은 의술이 한참이나 뒤떨어진 이곳에서 산모의 사망도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이유도 있었음을 알았다.

‘설마 이곳의 미의 기준은 지구와 정반대인 건가?’ 자신을 돌보는 시녀를 비롯해 자신을 보러 오는 귀족가의 부인이나 영애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고도비만이었던 것.

그 어디에도 호리호리한 몸매를 볼 수 없었고 전부 엄청난 거구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의 중세도 풍만함이 미의 기준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이건 좀 도가 지나치군.’

건강하지 않은 몸에 초산이라면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짧은 기간이 지나자 나라는 금방 들뜬 분위기로 바뀌었다.

태훈의 한쪽 눈이 붉은색이라는 이유였다.

마도왕국이라 불리는 카나리스 왕국은 역사가 400년에 이르는 유서 깊은 왕국이었다.

건국왕 메드니안은 붉은색과 푸른색의 오드아이를 가진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 후로 대대로 왕실은 붉은색 오드아이를 가진 자식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왕실에는 오드아이를 가진 자손이 태어나지 않았다.

이번에 태훈이 오드아이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160년 만의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갓난아기의 몸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멀쩡한 성인의 정신으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은 엄청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쏟아져 오는 잠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엇?’

기운이 빠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태훈의 몸이 늘어졌다.

”으으…….”

“아휴, 왕자님, 또 싸셨네요.”

‘젠장, 이 수치감은 어떻게 못 하려나.’ 어린아이다 보니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큰 것 작은 것을 싸대는 통에 자신의 하반신이 항시 노출되는 게 제일 큰 고통이었다.

태훈은 배고플 때와 하반신이 찝찝할 때만 울었다.

그러면서도 항시 조용히 하며 주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나머지 한 가지 능력은 언어 적성을 넣어야 했나.’

태훈은 언어에 신경을 쓰면서도 심장 쪽에 기운을 모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기운을 모으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대략적인 말들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들을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말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이가 전부 나지 않은 구강과 덜 발달한 짧은 혀 때문에 나오는 것은 옹알이뿐.

“짹짹.”

“왕자님, 책 읽어드릴까요?”

책이란 발음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손가락으로 책을 가리켜야만 했다.

자신을 돌보는 시녀가 저녁 시간마다 가져오는 책을 읽어주었고 그것으로 언어를 습득했던 것.

저녁에는 시녀가 읽어주는 것을 잘 기억했다가 낮에는 그 책을 펼쳐놓고 암기했던 것과 책의 문자를 대조했다.

“왕자님, 책에다 침 흘리시면 안 됩니다.”

“까으아(쪽팔리게).”

코는 이물질로 막히기 일쑤였고 어린 나이에 비염까지 있는지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 보니 입을 벌리고 숨을 쉴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침이 흘렀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이 삭았을 무렵 첫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태훈의 새로운 이름은 건국왕의 이름을 따서 메드니안으로 지어졌다.

끊긴 줄 알았던 선대의 징표가 다시 나타난 것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국왕이 태훈에게 쏟는 관심과 정성이 대단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차질 없이 준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왕은 태훈의 첫 생일을 아주 성대하게 치르려 하고 있었다.

왕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민심과 귀족들을 다잡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외부 인사도 닥치는 대로 초청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카나리스 왕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심려치 마십시오. 아주 성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메드니안의 안전에도 유의하도록.”

태훈은 자신의 생일잔치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돌보는 시녀들의 대화에서 항상 그 주제가 끊이지 않았다.

태훈의 생일날이 되었을 때 수많은 인사들이 왕궁을 찾았다.

단상 위에 국왕이 앉아 있고 그 옆의 태훈이 바구니 형태의 의자에 기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국왕과 태훈의 양옆에는 육중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그들을 지켰다.

끝이 없는 행렬.

“폐하, 경하드리옵니다. 드디어 카나리스 왕국이 다시 기개를 펼칠 때가 왔습니다.”

“축하드리옵니다, 폐하. 여기 제 충심의 증표이옵니다.”

태훈은 경직되어 있었다.

자신을 보러 온 엄청난 인파의 숫자에도 기가 질렸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그는 간파의 적성을 깨우쳤다.

지금까지 시녀들과 신관들만 보아왔을 때는 전부 푸른색이나 흰빛이었다.

그로인해 호감이 있다면 푸른빛, 제로라면 흰빛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들에게서 보여지는 오라는 대부분 붉은색이나 검은색이었던 것.

‘뭐야, 이거 설마 저 사람들이 나를 다 싫어한다고?’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한 남자 귀족이 국왕에게 인사한 뒤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태훈을 자세히 보려는 듯 얼굴을 들이 밀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오크 같은 얼굴이 다가오자 태훈은 흠칫 놀라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쳇.”

혀를 차는 남자.

순식간에 험악해지는 그의 얼굴에 태훈은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짧은 탄식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원망, 그리고 살기였다.

“콴타스 자작님, 왕자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수호 기사 한 명이 남자 귀족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왕자님이 정말 선안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마음이 정말 든든합니다.”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

태훈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피식 웃었다.

‘재밌네, 이번 생도 파란만장하겠어.’

태훈은 귀족들의 오라와 얼굴을 기억하겠다는 의지로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 * *

인상 깊은 첫 생일이 있은 후 시간은 훌쩍 흘렀다.

콰앙-!

흙과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튀며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메아리쳤다.

먼지가 가라앉자 큰 벽이 나타났다.

땡그랑.

그가 들고 있던 검이 바닥과 부딪히며 난 소리가 메아리쳤다.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후우, 아직 멀었네.”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벽을 깨려고 일 년째 검기를 날리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시간이 흐를수록 검기가 깊게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때 먼 곳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자님! 이제 그만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알았어, 금방 갈게.”

태훈은 부러져 버린 검을 버리고는 등을 돌렸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한 명의 기사가 태훈에게 수건을 건넸다.

“고마워, 알.”

“왕자님, 매일 안에서 뭘 그렇게 하십니까?”

“운동한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동굴 안에서 운동을 하시냐니까요? 연병장도 있잖습니까.”

“내가 가면 신경 쓰여서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훈련이나 하겠어?”

“그렇다고 폐광에서 운동을 하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제가 폐하께 야단맞는다구요.”

그의 말대로 태훈은 2년 전부터 폐광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산책 중에 발견한 것으로, 300년도 더 된 폐광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자신의 수호기사인 알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려 할 때 내성의 문이 열리며 마차가 나타났다.

그 마차를 본 태훈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마차가 다가오자 태훈과 기사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마차는 그들의 앞에 멈추어 섰다.

창문 너머로 드러난 얼굴은 호빵 같이 부풀어 오른 큰 여성의 얼굴이었다.

“아침부터 어딜 갔다 오느냐.”

“운동을 다녀오는 길입니다. 피나 어머님은 어디 가시는 길이옵니까?”

“아침부터 어딜 그리 돌아다니느냐. 폐하께 문안부터 드리지 않고.”

왕비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그를 나무랐다.

“이른 시각이라 아버님이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문안을 드리러…….”

촤악-

태훈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커튼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이내 움직이는 마차를 향해 태훈은 고개를 숙였다.

수호기사인 알이 착잡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왕비님이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신경 안 써. 어머님의 기분이 안 좋으신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제1왕비인 피나 왕비는 태훈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정실의 자식이 아닌 태훈이 선대의 증표인 선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그 원인이었다.

태훈도 그런 피나 왕비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를 본 문지기가 거수경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님.”

“별일 없어?”

“네, 없습니다.”

자신의 방 앞에 다다른 태훈은 조심스레 문고리를 살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문틈에 잘 붙어 있었다.

태훈은 재빨리 씻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국왕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는 네 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님.”

“아버님은?”

“깨어계십니다.”

기사가 열어주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올해로 60세가 된 엘리우스 국왕은 상당히 노쇠해져 있었다.

80세는 되어 보이는 노안에 주름도 상당했다.

태훈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국왕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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