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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3화 (3/150)

3화

남자를 따라 도착한 곳은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서 뻗어져 나온 줄기는 수많은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 나무 설마…….”

“아, 세계수라고 들어보셨죠? 저게 세계수입니다.”

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수라면 이그드라실? 그겁니까? 그건 저승하고는 문화가 틀릴 텐데요.”

“지구에는 여러 신화가 존재하죠? 전부 사실이기에 존재합니다.”

“그 말은 여러 신화가 공존한다는 겁니까? 그게 가능해요?”

“인간들의 기준에 잣댄 개념에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세상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려면 수십 년은 필요할 겁니다.”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설명이 이어졌다.

하나의 문이 하나의 세상을 뜻한다는 것과 총 834개의 문이 존재한다고 했다.

태훈이 감탄하고 있을 때 하나의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은 희한하게도 줄기가 아닌 세계수의 기둥에 달려 있는 문이었다.

재질도 다른 문들은 나무인데 반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저 문은 뭡니까? 저것만 다른데요.”

“고급스럽죠? 저게 바로 천국으로 가는 문입니다.”

“천국이요?”

태훈의 목청이 높아졌다.

말로만 듣던 천국의 문이 지금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저기 들어가는 조건은 뭡니까?”

“포인트죠. 딱 큰 거 한장만 있으면 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태훈의 동공이 커졌다.

100만 포인트라면 자신이 가진 포인트로도 충분했다.

“저는 저기로 가겠습니다! 100만 포인트쯤은…….”

그러자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00만이 아닙니다.”

“그럼 천만?”

“천만도 아닌 100억입니다.”

“배…… 백 억?”

100억이라는 숫자가 가늠되지 않았다.

‘100억이면 대체 몇 명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거지?’

그가 얼떨떨해 있을 때 남자는 태훈의 어깨를 다독였다.

“꿈의 숫자죠. 뭐 지구에선 죽기 전에 회개하면 천국 간다는 말이 있는데 전부 헛소리입니다. 천국의 문이 열리기란 쉽지 않죠.”

“그…… 그렇겠죠.”

태훈이 허망해하면서도 굉장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자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곤 구석으로 그를 데려가더니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천국에 관심이 있나요?”

“당연하죠, 천국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면요.”

“물론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문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100억 포인트를 대체 어떻게 모은답니까.”

“100억 포인트…… 모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태훈이 큰 소리로 외치자 남자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소리가 너무 큽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말해 드리죠. 다만 절대로 다른 존재에게 제가 말씀드렸다는 말을 하셔선 안 됩니다.”

태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얼른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다음 생에서 천만 명의 목숨을 구하면 되는 거죠.”

태훈은 맥이 빠졌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아까 제가 설명했던 것 중에 환생 시 전생의 기억 삭제를 기억하십니까?”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를 만나기 직전 대화를 나누면서 환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환생 시 전생의 기억을 삭제.

저승에서의 기억도 없어진다고 했다.

“만약 전생의 기억과 저승에서의 기억을 가져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가능합니다.”

남자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각 세계에는 포인트로 구입이 가능한 능력들이 있습니다. 그 능력과 전생의 기억에서 유리한 정보를 이용하면 포인트 정도는 쉽게 벌 수가 있죠. 실제로 그렇게 천국에 들어간 망자들이 있습니다.”

“그럼 모든 망자들이 그 방법을 사용하겠네요.”

태훈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든 망자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적성의 포인트가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이죠.”

남자는 환생할 때 기억을 보존해 주는 물건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만 그것이 정상적인 물건은 아니며 엄청난 가격이라고 덧붙였다.

“얼만데 그럽니까?”

“천만 포인트입니다.”

“천……!”

태훈은 헛숨을 들이켰다.

확실히 천만이라는 숫자는 가볍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망자들은 저승에 올 때 마이너스인 경우가 태반.

설사 플러스 점수가 있더라도 수십에서 수백 포인트가 고작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VVIP 이상의 망자만이 가능한 방법이죠.”

“근데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게 설마 불법이라는 겁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무에게나 알려 드리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중개 수수료를 받습니다.”

남자는 저승에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 월급제라고 말해주었다.

그 액수가 워낙 짜서 인간으로 환생하고 옵션 하나 정도 추가하려면 수만 년은 기본적으로 일한단다.

그러다 보니 불법 중계가 성행한다고도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새 지구 출신 중에 VIP 이상의 고객은 매우 드뭅니다. 마이너스가 아니면 오히려 다행이죠.”

쉽게 말해 자신도 수수료를 챙길 절호의 기회라는 말이었다.

“저는 수수료를 챙기고, 태훈 님은 천국에 갈 기반을 마련하니 서로 상부상조가 아닐까요?”

진심이 담긴 듯한 남자의 말에 태훈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겠습니까?”

“태훈 님과 제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태훈은 잠시 망설이며 고심했다.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 이대로 기억 없이 환생한다면 포인트만 깎아 먹을 수도 있어.’

태훈은 고민했다.

기억을 잃고 환생한다면 지금의 인격과는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질 수 있었다.

살인귀가 될 수도, 망나니가 되어 포인트만 깎아 먹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시도해 볼 마음이 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보죠. 방법이 뭡니까?”

“좋습니다. 일단 환생하실 세상을 고르셔야 합니다.”

태훈은 신중해졌다.

가장 먼저 포인트를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가 지금 가진 기억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

‘당연히 약을 만들어야겠지. 지금의 기억으로는 그게 최선이야.’

다행스럽게도 그는 제약회사에서 천연 성분의 약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화학 약품에 알레르기나 거부 반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부서였다.

그걸 이용하자면 낙후된 곳이 좋았다.

태훈은 남자를 따라 여러 세상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한 곳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문 옆에 달린 브라운관으로 본 그 세상은 중세 정도의 문명을 가진 곳.

설명을 들어보니 의술은 거의 전무한 세상이었다.

거기다 그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능력들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가 좋겠네요.”

“좋습니다. 그럼 저와 가실 곳이 있습니다.”

남자는 태훈을 데리고 광장을 벗어났다.

이동한 곳은 음산한 기운이 안개처럼 깔린 곳이었다.

슬럼가를 떠오르게 하는 곳으로 망자들이 곳곳에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또 수많은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여긴 어딥니까? 분위기가 전혀 다르네요.”

“일종의 슬럼가입니다.”

“저 망자들은요?”

“지옥엔 가지 않고 환생할 만한 포인트는 없어서 죽치고 있는 망자들이죠. 뭐 쉽게 말해 저승 부적응자들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태훈을 데리고 한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자 천막의 주인으로 보이는 후드를 눌러쓴 자가 둘을 맞이했다.

“오랜만이군, 284.”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선배님.”

“그래, 뭘 사러 왔나?”

남자는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기억을 보존하는 물건을 달라는 말에 후드의 남자는 태훈을 보며 말했다.

“포인트 부자가 나타났다는 말이 있더니 바로 당신이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이미 저승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지. 귀인이라는 게 흔치 않거든. 포인트 간수 잘하게.”

“포인트도 도난당합니까?”

“저승에도 강도는 있네.”

“뭘로 협박합니까? 이미 죽은 몸인데요.”

“별로 듣고 싶지 않을걸세.”

“그렇군요. 그보다 물건은 있습니까?”

태훈이 조심스레 묻자 후드의 사나이는 쌓여 있는 물건 더미들 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꺼내주었다.

그것을 열어보니 작은 앰플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게 기억을 보존시키는 물건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주인 대신 양복의 남자가 대답했다.

천만이라는 액수치고는 초라한 물건의 모습.

태훈은 의심의 눈초리로 둘을 바라보았다.

“이게 천만짜리라고요?”

그의 불신의 눈초리를 본 주인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믿든 안 믿든 자네 자유지.”

불성실한 주인의 대답에 태훈은 발끈했다.

“짜고 치는 사기가 아니라고 어떻게 믿습니까.”

“싫으면 내 천막에서 나가게. 말싸움하고 싶지 않으니까.”

“뭐요?”

울컥하는 태훈을 양복의 남자가 말리며 그를 데리고 천막을 나왔다.

“말투는 저래도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블랙마켓 주인입니다. 저처럼 영업까지 하시던 분이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태도나 물건이나 전혀 신용이 안 가는데요.”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아까 저를 믿어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간절함이 묻은 남자의 말에 태훈은 갈등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강도까지 있다는 판국에 사기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신은 믿지만 저 안의 남자에 대한 믿음이 안 갑니다.”

“여기서 가장 오래된 상점 주인입니다. 물건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계속되는 설득.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태훈의 경계심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저 물건을 먼저 복용하시고 잔금을 치루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설득해 보겠습니다.”

조건에 만족한 태훈이 허락하자 남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손짓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태훈이 들어갔다.

“절반만 먼저 받겠답니다.”

적당한 선의 타협안이 제시되자 태훈은 카드를 내밀었다.

500만 포인트가 넘어가자 후드의 남자는 두 개의 상자를 넘겨주었다.

하나는 앰플이었고 다른 하나에는 소름끼치는 도마뱀의 눈이 들어 있었다.

“이건 뭡니까?”

“마안이라고 하는 겁니다. 본래 일반 영혼은 기억 보존이 안 되죠. 이게 있어야 약이 효과를 봅니다.”

“또 돈을 내야 하는 겁니까?”

“아니요, 이건 같이 딸려오는 것이니 포함된 가격입니다.”

태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상자에서 눈알을 꺼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그러고는 태훈이 뭐라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눈을 교체했다.

따끔하다는 걸 느낄 새도 없었다.

후드의 남자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의 안구였던 것이 들려 있었다.

“눈을 두 번 깜빡여 보세요.”

남자의 말대로 행동하자 이내 태훈의 시야에 뭔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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