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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만 포인트로 환생하기-2화 (2/150)

2화

가까이서 보니 창구의 남자는 굉장히 무뚝뚝하고 무서운 인상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태훈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톡톡-

창구의 남자는 대답 대신 창구의 가림막을 건드렸다.

거기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불만, 불평 금지.’

‘묻는 말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할 것.’

생전 처음 보는 언어였지만 태훈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창구의 남자가 알겠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어딘지 아시죠?”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언어.

“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바로바로 대답합니다.”

“네.”

“거기에 손 올립니다.”

책상에는 볼링공 크기 정도의 수정으로 만든 구체가 있었다.

태훈이 손을 올리자 수정구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강태훈. 나이 40세. 살던 곳 대한민국 인천. 맞습니까?”

“네.”

‘지문 인식 같은 건가…….’

태훈은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했다.

결국 태훈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합니다.”

창구의 남자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잠시 후 남자는 태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남자는 그의 가슴 속에 손을 들이밀었다.

“헉!”

마치 물속에 손을 집어넣듯 남자의 손은 몸을 관통했다.

남자의 손이 회수되었을 때 손에는 물건이 하나 들려 있었다.

‘카드?’

마그네틱과 모양, 크기.

틀림없는 카드였다.

남자는 카드를 옆에 있던 해골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해골의 텅 빈 두 눈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잠시 후, 해골을 지켜보던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무슨 문제라도?”

“…….”

남자는 태훈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연신 카드를 해골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몇 차례 같은 행동이 반복되더니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강태훈 님.”

갑자기 돌변한 그의 태도에 태훈은 당황했다.

“저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네에…….”

“어이, 거기!”

창구의 남자는 한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

앞서 있던 존재들에게 다가와 데리고 사라졌던 사람들과 같은 복색의 사람들이었다.

손짓을 본 남자들 중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VIP…… 아니, VVVIP시다!”

“V…… IP?”

남자의 소리에 걸어 나오던 남자도, 모여 있던 다른 남자들도 일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잠시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태훈에게 몰려왔다.

“고객님! 아수라 컨설팅입니다! 당사는 맞춤형 컨설팅에 자신 있습니다!”

“안물안궁 컴퍼니입니다! 마진율 최저! 최저가로 맞춤형 서비스를!”

“저리 비켜! 원래 내 차례였잖아!”

밀어닥치는 남자의 얼굴들.

그들은 무언가를 건네며 태훈에게 어필을 하고 있었다.

‘팜플렛?’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을 광고용 팜플렛이었다.

‘영업이군. 그래서……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태훈은 하나를 선택했다.

“크으!”

“젠장, 모처럼 큰 건수인데!”

“아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탄식과 아쉬움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 태훈이 고른 팜플렛의 주인은 기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네 뭐…….”

남자는 창구로 달려갔다.

“이분의 자료를!”

창구 직원은 태훈에게 그 남자와 계약한 것이 틀림없냐는 질문을 했다.

태훈이 그렇노라 이야기하자 직원은 한 뭉텅이의 서류를 검은 양복의 사나이에게 넘겨주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죠.”

검은 양복의 사나이는 태훈을 데리고 문 쪽으로 안내했다.

“저 문 너머는 뭐죠? 지옥인가요?”

“지옥도 있고 천국도 있죠. 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284번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름이 아니고 숫자요?”

“저승에선 생전의 이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럼 저도 이름 대신 번호가 붙습니까?”

“강태훈 님께선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시라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가끔 VIP는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지만 VVVIP는 처음 뵙습니다.”

“VVVIP? 그게 뭡니까?”

“아, 망령의 등급입니다. 총 7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태훈 님은 위에서 두 번째 등급이시죠.”

“가장 높은 등급은 뭔데요?”

“플래티넘입니다. 저승 역사상 그 등급은 단 두 명만 존재합니다. 사실 VVVIP도 100명이 안 되죠.”

그들의 눈앞에 깨끗한 대합실이 나타났다.

2인이 앉을 수 있는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일한 테이블과 의자에 정장 차림의 남자들과 망자들이 면담을 하고 있었다.

“여기 앉으면 되겠네요.”

“하하, 여긴 일반실입니다. VVVIP를 이런 곳에 있게 하실 순 없죠.”

그들은 계단을 올라 몇 층을 더 올라갔다.

조그마한 입구가 나타났는데 입구 위에는 D층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3개의 방이 있었고 그 안에 들어가자 화려한 하얀색 쇼파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남자가 권하는 자리에 앉자 곧이어 다른 남자가 들어와 차를 내놓았다.

“방이 좋아 보이네요.”

“VIP 이상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뭐를요?”

“VVVIP라고는 하시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망자는 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위한 준비입니다. 일단 서류를 검토할 테니 차를 드시면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남자는 5분도 되지 않아 서류를 모두 훑어보고는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따 재판이 시작되시면 제 말에 무조건 네라고만 대답하세요.”

“귀인이라더니 재판을 받습니까?”

“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점수를 더 얻을 수도, 더 차감될 수도 있으니 중요한 절차죠. 태훈 님은 VVVIP이시니 일종의 관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남자는 그 외에도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알려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VVVIP라는 건 뭘 기준으로 합니까?”

“아, 말씀을 안 드렸군요. 모든 영혼은 살아생전의 선행과 악행을 수치로 정산받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마치 메뉴판처럼 어떤 항목이 어떤 점수를 받는지에 대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지나가다 쓰레기를 주운 선행 점수부터 담배꽁초를 버리면 깎이는 점수까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점수를 얻는 것보다 깎이는 점수 폭이 2배 이상이었다.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구의 남자가 건네준 카드를 들어 보였다.

“이건 뭡니까?”

“그 카드에는 강태훈 님이 그간 쌓아온 포인트가 들어 있습니다. 이번 생애뿐만이 아니라 전생의 모든 점수까지 총 결산된 점수죠.”

“제 점수가 얼마나 높길래 등급이 높은 겁니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1422만 36점입니다.”

“천사백만…….”

놀라는 태훈에게 남자는 점수의 내역을 설명해 주었다.

강태훈으로서 삶을 시작할 때 그의 점수는 28점이었다는 것.

다만 거액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태훈의 내부고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약에 대한 검사가 다시 이루어지고 식약청에서 백신의 출시를 중단시켰던 것.

그리고 그 백신의 중단이 많은 사람을 살렸다는 것이다.

“그 신약이 목숨을 빼앗을 정도였습니까?”

“여긴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마 강력한 바이러스로 발전할 모양이었나 봅니다.”

태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목록표에 따르면 1422만 점은 14,220명의 목숨을 살렸다는 것이었다.

태훈의 낯빛이 바뀌는 것을 본 남자는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신약 접종자 5만 8천여 명. 그중 발병자 3만여 명. 사망자가 14,220명에 이를 예정이었다. 라고 적혀 있군요.”

“잠시만요. 그 신약에 대한 정보는 다른 사람이 제공했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죄송합니다만 저는 태훈 님 말고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알지 못합니다.”

남자가 유감스럽다는 말을 할 때 방의 문이 열렸다.

일어서라는 말에 몸을 일으키며 뒤를 보니 다른 양복의 사람이 서 있었다.

무척이나 삭막해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강태훈 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강태훈 님을 담당할 판사입니다.”

태훈은 공손히 그 사람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를 비롯해 저승에서 일하는 모든 망자들은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 일합니다. 판사에게 적당한 포인트를 주세요. 자잘한 부분은 넘어가 줄 겁니다.’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태훈은 자신의 카드를 슬며시 내밀었다.

그러자 판사도 아무 말 없이 품속에서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던가?’

태훈은 속으로 300포인트라는 숫자를 생각하고 자신의 카드와 판사의 카드를 맞부딪쳤다.

키링-

맑은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284라는 남자는 100포인트만 주면 충분할 것이라 말했지만 태훈은 300포인트를 제공했다.

“으흠, 뭐 이런 걸…… 귀인이시라 심사할 것도 없으실 텐데.”

판사는 빙그레 웃음을 띠며 태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 그럼 바로 심사에 들어가 볼까요?”

한층 부드러워진 표정을 지어 보인 판사는 태훈의 과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문구점에서 불량식품을 훔친 것까지 채점 사항에 들어가 있는 세밀한 검토였다.

차감 요인이 발견될 때마다 남자는 열심히 변론했다.

판사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승에서도 뇌물이 먹히긴 하는구나. 이래서 재벌들이 전부 유예를 받는 건가.’

검토를 마친 판사는 태훈의 서류 마지막 장에 도장을 찍어주며 말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이걸로 심사를 종료하죠.”

“고생하셨습니다!”

남자는 벌떡 일어나 판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태훈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고 고개를 들었을 땐 판사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자, 그럼 일단 변호 정산을 하실까요?”

변호에 든 비용은 100포인트였다.

“이제 뭘 합니까?”

“다음 생애에 대한 컨설팅을 하셔야죠. 참고로 수수료는 컨설팅에 드는 비용의 5%를 받고 있습니다.”

“그거 싼 겁니까?”

“저승에서 정한 최저 기준이 4.5%입니다. 사실 저승 로펌들이 전부 담합을 해서 5%가 고정이죠.”

남자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태훈은 남자가 모든 질문에 성의 있고 세밀하게 설명을 해주었기에 그를 의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일로 봤을 때 저승이나 이승이나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는바.

영업하는 자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있을까 했다.

태훈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원한다면 다른 영업맨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심성의껏 컨설팅에 임하겠습니다. 그럼 환생하고 싶은 곳은 어디시죠?”

태훈은 대기하고 있던 곳에서 본 다른 세상에서 온 망자들을 떠올렸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거기다 지구에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오히려 다시 생각하니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떠올랐다.

“지구는 좀 피하고 싶네요.”

“그럼 어디가 좋으십니까?”

태훈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자 그는 세상에 대한 관람이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견학이 가능합니까?”

“정확히는 구경만 가능하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태훈은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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