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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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태훈은 잠시 눈을 끔벅였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선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꽤괙-
조류를 비롯해서.
뿌오오오-
끔뻑끔뻑-
포유류와 어류까지.
국경 없는 종의 구성에 감탄할 즈음 다른 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고막을 건드렸다.
“와탈라이마쿠류 쿰!”
“……?”
다른 줄에는 뭔지도 모를 기이하게 생긴 생명체들이 보였다.
그러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생명체를 보았다.
“원숭이…….”
“원숭이인데 뭐 불만 있냐?”
태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동물원에서 들었던 듣기 거북한 원숭이 울음소리.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울음소리가 이해가 되었다.
“미…… 미안.”
‘내가 원숭이한테 사과하는 날이 올 줄이야.’ 태훈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줄은 자신이 서 있는 곳 말고도 수백 개.
줄마다 종의 구성은 다양했다.
낙지가 진화한 것 같은 우주인.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초록빛 덩치.
영화에서만 보던 몬스터는 물론 다른 시대에서 살다 온 복장을 한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람만 사후세계가 있는 게 아니었어.’
“저기…….”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
그가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뒤로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젊은이…… 여기가 저승이 맞는가?”
“맞는 것 같은데요.”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정말로 죽은 거였어…….”
노인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들며 태훈에게 물었다.
“그래…… 여긴 뭐 하는 줄인고?”
“저도 그건 잘…….”
태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저승사자가 기다리라고만 했지 뭐 하는 줄인지는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다.
물어볼 저승사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설명은 해주고 갈 것이지.’
장내는 난장판을 넘어선 아수라장이었다.
대성통곡하는 울음소리.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
그때 가까운 곳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안 돼! 못 죽어! 내 돈! 내 건물이 얼만데!”
앞쪽에서 한 남자가 뛰어오더니 태훈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반쯤 까진 중년 남자.
무거워 보이는 몸놀림으로 뛰던 남자는 태훈을 지나쳐 줄 뒤쪽으로 향했다.
“으헉!”
얼마 못 가 남자의 몸이 활처럼 앞으로 구부러졌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뒷덜미를 낚아채는 듯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러곤 허공에 살짝 뜨더니 잡아끌리듯 다시 앞쪽으로 사라졌다.
‘도망은 무린가.’
태훈은 차분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이승에 미련은 없었다.
그는 평범하기 그지없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았다.
지방 4년대 화학과에 입학.
1학년이 끝난 뒤 군대를 다녀와 2년간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어학연수의 실상은 당근 농장의 노역부였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월세 30만 원의 단칸방에서 대학을 마쳤다.
그 뒤 간신히 서울의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손에 넣은 그는 1년동안 취업 준비를 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제약회사.
나름 고액의 월급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빠져나갔다.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17평짜리 원룸을 전세로 마련했을 땐 그의 나이 36세였다.
“형, 정보 하나 줄게. 차명으로 우리 회사 주식 좀 사놔.”
“뭐? 왜?”
입사 동기이자 한 살 아래의 동생이 그를 불러다 놓고 조용히 속삭였다.
이유를 묻자 곧 신약이 나올 거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무슨 신약인데?”
“놀라지 마. 이게 나오면 인간은 백혈병을 정복할 거야.”
동생은 신약을 만든 팀의 일원이었다.
“뭐 돈이 있어야지. 그리고 주식해서 열에 아홉은 패가망신한다더라.”
“아니야, 이건 진짜라니까? 빚을 내서라도 사놔야 해.”
태훈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을뿐더러 주식했다고 좋은 꼴을 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은 인생에 한 번의 기회는 분명히 온다며 지금이 그 기회라고 태훈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신약이 발표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노벨상까지 거론되는 언론 보도에 신약에 대한 기대는 엄청났다.
신약 출시 이후 단 두 달 만에 주식은 3배 이상이 되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아는 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의 목소리는 풀이 죽은 듯했다.
“형, 술 한잔하자.”
“그래, 오늘 내가 제대로 뽑아먹는다.”
축하해 줄 겸 즐거운 기분으로 나간 태훈은 자신이 아끼던 와인도 가지고 나갔다.
술자리에서 동생의 표정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이유를 물어도 입을 다물고만 있던 동생은 술기운이 오르자 입을 열었다.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신약의 임상 실험 결과에 누락된 부분이 있다는 것.
거기다 굉장히 치명적이란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 어떡하면 좋냐. 형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걸 내가 만들었냐?”
동생의 심각한 말투에 태훈은 일의 심각성을 넌지시 느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 동생은 갑작스레 퇴사했다.
“퇴사요?”
“응, 오늘 아침에 갑자기 전화로 연락을 하더라고. 짜식이 잘되니까 건방져졌어.”
“아니, 잘나가는데 왜 퇴사를 해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마 다른데서 스카웃한거 아닐까? 듣자하니 중국계 회사에서 연봉 3, 4배 주고 스카웃 한다던데?”
자신에게 말도 없이 이직을 했다는 말에 태훈은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는 며칠 뒤 동생의 장례식장에 앉아 있었다.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말 한 줄만 적혀 있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태훈의 집에는 택배가 와 있었다.
그 안에는 한 통의 편지와 스티로폼 박스가 들어 있었다.
편지 봉투 안에는 USB 하나가 동봉되어 있었다.
글을 읽는 태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편지는 틀림없는 동생의 필체였다.
형, 나야.
누락된 임상 실험 결과를 식약청에 보고하자고 했다가 바로 잘렸어.
아마 회사에는 이직했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겠지.
USB랑 샘플은 회사에서 나오면서 가지고 나온 거야. 아직 파기 안 된 것이 남아 있더라고.
솔직히 무슨 부작용이 더 있을지 몰라.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것들은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미안해, 무거운 짐을 맡겨서. 난 당분간 해외에 나가 있을게. 건강해.’
편지를 읽던 태훈의 손이 떨렸다.
택배의 발송일은 동생이 회사를 그만두었던 날짜였다.
‘해외로 나간다는 놈이 자살을 해? 이건 타살이야!’
스티로폼 안에는 작은 시험관이 얼음팩과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USB에는 빼곡한 수치들과 함께 임살 실험 경과가 적힌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맨 밑에 있는 작성자의 이름과 결과 정리란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동생의 것이었고 정리란의 글귀는 한 문장이었다.
‘매우 치명적인 부작용이 염려됨.’
다음 날 출근한 태훈은 자신의 실험실에 샘플을 가져갔다.
“태훈 씨, 지금 바빠?”
“왜 그러시죠?”
“아, 저번 주에 정리하기로 한 데이터. 아직 못 했거든.”
“그런데요?”
“내가 점심시간에 볼일이 좀 있거든…….”
태훈보다 2년 빨리 입사한 노처녀 주임이 말끝을 흐렸다.
‘젠장, 손톱에 매니큐어 칠할 시간에 일이나 처하라고!’
태훈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요. 조금 있다 해두겠습니다.”
“아, 그래? 고마워. 다음에 커피한 잔 살게!”
점심시간에 혼자 남아 샘플을 분석하던 태훈은 인체에 유해한 유기 화합물을 발견했다.
‘이거면 충분해. 이걸로 신약 출시는 막을 수 있어.’
태훈은 동생이 타살이라는 증거를 찾으려 했다.
여러모로 알아보던 중 회사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을 무리하게 진행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훈은 바로 내부고발을 진행했다.
동시에 언론에도 자료를 뿌리고 경찰에는 알고 지내던 동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탄원서와 함께 동생의 편지도 제출했다.
하루아침에 회사의 주식은 폭락.
경찰과 검찰에서는 회사와 임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기자들과 방송국의 유명한 프로그램 PD들과 작가들이 그를 찾아왔다.
“양심고발을 한 이유가 뭔가요?”
“유가족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희생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이 알려주는 대로 인터뷰를 한 태훈은 유명인이 되었다.
거대한 기업과의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의인으로 취급받았다.
몇몇 기업은 그의 이미지를 내세워 광고모델로 제의까지 해왔다.
그리고 그는 여느 내부고발자와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동시에 여론에 반전이 생겼다.
태훈도 그 임상 실험 누락에 동참한 것으로 소환당한 것.
아무 문제가 없다는 외부 평가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의 작성자가 태훈이었다.
거기다 그를 폄하하는 인터뷰가 나왔다.
“매일 점심시간에 다른 일을 하더라고요. 경쟁사 일거리를 받아와서 회사 장비를 쓰다니. 염치도 없죠.”
인터뷰의 당사자는 여자 주임이었다.
반전한 민심은 그를 천하의 염치없는 인간으로 몰고 갔다.
생명을 갖고 놀았다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고 가족과 친구들도 돈에 눈이 먼 놈이라며 연락을 끊었다.
거기다 알 수 없는 출처로 회사로부터 돈까지 받았다는 증거가 나왔다.
사기죄를 비롯한 갖가지 죄로 인해 징역 7년을 받았다.
거기에 광고를 제의했던 회사들로부터 이미지 손상에 대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금까지 청구됐다.
소송을 진행하여 누명을 벗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누명은 벗었지만 이미 시간과 돈이 허무하게 날아간 뒤였다.
길고 긴 외로운 사투가 끝났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가 되었다.
다시 재판을 통해 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았지만 끊어진 인간관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
보상금은 재판과 배상을 진행하기 위해 졌던 빚을 갚는 데 전부 쓰였다.
업계와는 단절.
결국 먹고 살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포장마차였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겨울이 되어 눈길에 미끄러진 트럭이 대로변에 있던 그의 포장마차를 덮친 것.
자신을 들이받은 트럭을 향해 한참을 욕하고 나서야 그는 저승사자를 따라나섰다.
‘근데 이 줄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그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
‘얼마나 기다리라는 거야.’
하늘은 항상 붉은빛이 감도는 구름만이 있을 뿐.
낮과 밤이 없었기에 시간이 흐르는 것을 체감할 수 없었다.
꾸오오오-
거대한 울음소리에 태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구름 속에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고…… 고래?”
콧등에 거대한 원형 뿔이 돋아나 있긴 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고래였다.
고래는 한동안 허공을 맴돌더니 이내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그의 눈에 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창구?’
그의 시선 끝에 다다른 곳엔 창구가 있었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 가면 있는 그런 흔한 창구였다.
창구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건 사기야!”
그의 앞에 있던 원숭이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원숭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이 사기꾼 놈들!”
원숭이가 발광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했다.
그때 검은 정장의 남자가 나타나 원숭이에게 다가갔다.
앞서 있던 자들에게도 다가가 뭔가를 건네주던 남자들.
그런 남자들이 창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많이 몰려 있었다.
‘뭐지? 사탕을 주는 건 아닐 텐데.’
노발대발하던 원숭이는 남자가 다가가자 조용해졌다.
이것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남자들이 다가가면 발광을 하던, 울음을 터뜨리던 금세 조용해졌다.
그러곤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내 같이 창구 너머의 문으로 사라졌다.
까딱까딱.
그때 창구의 남자가 태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태훈이 창구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