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채널1〉
- 와 ㅁㅊ… 49층 단체층에서 우리 채아 누님 행방불명됐다는데 ㄷㄷ
⤷ ? 누님은 누가 누님임 뒤지려고
⤷ 근데 ㄹㅇ? 갑자기 어디 갔음?
⤷ 몰?루 그러니까 찾고 있는 거지
- ㅉㅉ 랭킹 2등을 걱정할 시간에 너희들 앞가림이나 해라
⤷ ㅋㅋㅋㅋ 긍까 ㄹㅇ 웃음벨이라니까 2위가 뉘집 개이름이냐
- 팩트) 지금 커뮤하는 놈들 다 합쳐도 유채아한테는 짐
- 아ㅋㅋㅋ 살살 때리라고
- 뼈 때리는 거 개웃기네
⤷ 억까ㄴㄴ
⤷ 억까는 무슨 억까야;; 그러게 랭킹 2위보다 약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함?
- 그러고 보니 신협 소식은 요새 들은 적 없는데 어디 가셨음?
⤷ 일주일 넘게 실종된 신협 찾습니다
⤷ 어련히 알아서 등반하고 있겠지ㅋㅋㅋ
- 혹시 모름 나중에 알고 보니까 100층에 있을지도
⤷ 탑이 어디로든 문이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철컥!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넓은 회장이 펼쳐졌다.
연회장이라고 해서 적당히 시늉만 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꽤나 본격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딜 바라보나 아리따운 장식물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천장에는 화려한 보석이 박힌 샹들리에가 있었다.
그리고 회장의 중앙에는 각종 다과와 함께 초콜릿 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초콜릿 분수를 발견한 둘리는 가슴이 웅장해졌는지 흥분된 목소리로 눈을 빛냈다.
“하, 하…… 햐별, 저거 봐라! 초… 초콜릿 분수다!!”
얼마나 충격인 모양인지, 둘리는 혀를 씹을 정도로 말을 더듬거렸다. 총을 처음 본 원주민 같은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둘리한테는 그 이상의 충격일 지도 모르지.
그렇게도 좋아하는 초콜릿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당장에라도 초콜릿 분수대를 향해 뛰어들려는 녀석을 제지했다.
“조금만 있어 봐. 내가 나중에 데려다줄 테니까.”
“저, 정말인가?! 기대하겠다!”
내 말에 둘리는 두근거리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런 녀석을 뒤로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매번 삭막한 풍경의 탑만 보다가 고급스러운 풍경을 보니 마치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이름도 지상 최대의 연회였던가.’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름값은 하네.
그렇게 넋을 잃은 채 연회장을 구경하던 도중이었다.
“흠흠, 즐기시고 있는 도중에 죄송합니다만 이번 연회에는 드레스코드가 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측에서 준비한 옷을 시착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난 안내인은 손을 내밀며 제안을 건넸다.
그의 물음에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멋들어진 정장과 아리따운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확실히 그들과 비교하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복장은 눈에 띄었다.
연회라고 해도 그들과 어울릴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호의를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이자, 안내인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손을 뻗어 안내했다.
“네, 그렇다면 곧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소개인의 권유대로 나는 복장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직후, 거울을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검은 모자에 턱시도, 지팡이까지 연회장에서 볼 법한 정석적인 차림이었는데, 평소에는 언제든지 전투에 참여하기 편한 가죽 차림이었다가 이런 고급진 복장으로 차려입으니 평소와는 영 매치가 안 되었다.
사뭇 낯선 복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쯤, 한편에서 둘리가 나타났다.
“어디 갔었어. 갑자기 사라져서 한참 참고 있었… 어? 그 복장은….”
“한별 한 번 꾸며봤는데, 어떤 거 같나?”
녀석은 커튼을 젖히고 나타나선 제자리를 빙그르르 돌았다.
둘리는 검은 정장과 깔맞춤으로 앙증맞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느껴졌다.
제 딴에도 만족한 모양인지 콧김을 길게 내뱉었다.
아무래도 회장에 있던 초콜릿 분수는 완전히 잊어먹은 것 같았다.
‘애도 아직 어리다니까.’
그래도 혼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곳곳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나는 둘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고는 옷매무새를 다시 손질했다.
“어때, 이렇게 하니까. 훨씬 편하지.”
마지막으로 나비넥타이를 정돈하자, 둘리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응! 한별 말대로 하니까. 훨씬 편하다! 아, 맞다! 둘리도 한별한테 줄 선물이 있다!”
“선물?”
“후후후, 기다려봐라!”
은밀한 미소를 짓던 둘리는 한쪽 구석에서 상자 속을 뒤적거리더니, 검은 형체를 활짝 펼쳐 들었다.
펄럭!
반사신경으로 둘리가 건넨 것을 받아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망토다! 한별이 입으면 엄청 괜찮을 거 같아서 챙겨왔다.”
“망토까지? 이건 너무 과하진 않나?”
망토를 등에 걸치며 나는 조용히 나직이었다.
확실히 턱시도 차림일 때는 다른 사람하고 차이점이 없어서 평범한가 싶었는데, 망토까지 더하니까. 이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눈에 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둘리가 처음으로 건넨 선물이니 걸치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쳤을 때쯤, 때마침 안내인이 들어섰다.
“두 분 모두 준비를 마치신 거 같군요. 아무래도 어린 도련님과 함께 다니시는 것 같아, 따로 제작 주문을 해봤는데 어떠신 것 같습니까.”
안내인은 둘리의 복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누가 준비한 건가 싶었는데 안내인이었나.
“덕분에 고맙게 됐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적당히 인사를 건네자, 안내인은 손을 저으며 겸손을 떨었다.
인사치레는 이걸로 됐고.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주변을 둘러보고 싶은데, 따로 움직여도 되나?”
“흠… 네, 괜찮습니다.”
내 물음에 안내인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그의 허락에 나는 방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서자, 뒤따라오던 둘리가 의아한 기색으로 물음을 던졌다.
“한별 바로 회장으로 안 가고 어딜 가는 건가?”
“뭐, 회장에 가도 상관없긴 한데. 기왕이면 상대의 전력을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만일 전투가 벌어졌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는 건 최대한 기피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만일의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미리 파악한 편이 나았다.
게다가.
‘왜인지는 몰라도 뭘 숨기려는 것 같았고.’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안내인은 대답하길 주저했었다.
제 딴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돌다리도 두들겨서 신중히 건너는 마당에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나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연회장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나 싶어서 최대한 멀어지는 방법을 선택해봤지만, 계획은 실패했다.
“건물의 바깥으로는 아예 못 나가게 되어 있을 줄이야.”
나는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은커녕 다른 플로우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최대한 바깥으로 벗어날 수 있는 범위라 해봤자 발코니뿐.
그 이상 벗어나려고 해도 마치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꼼짝달싹조차 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새장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둘리야. 여길 뚫을 수 있겠어?”
“음… 힘들 거 같다.”
투명한 벽을 툭툭 치며 물어보자, 둘리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실망하진 않았다.
나도 불가능한 걸 둘리가 가능케 만들 리는 없었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둘리의 직감은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편이었기에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선고에 나는 입을 다셨다.
“어쩔 수 없나.”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점검을 해봤지만, 딱히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탐색하기는 관두고 연회장에 복귀하기로 했다.
회장에 들어서자, 때마침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사람들은 각자 와인이나 샴페인을 한 손에 든 채, 오케스트라를 감상 중이었다.
주변을 슥 둘러보는데, 멀리서부터 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채아…?”
“어? 한별 씨?”
왠지 모르게 낯익은 모습에 이름을 부르자. 아니나 다를까, 유채아는 반가운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유채아는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마치 흑요석을 연상케 하는 검은 드레스 차림에 머리에 장식된 한 송이의 꽃은 모든 여성의 매력을 한데 압축한 듯한 아름다움이었다.
실제로 유채아의 모습에 연회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힐끗힐끗 곁눈질했다.
새롭게 보는 모습에 넋을 잃으며 바라보고 있자, 소피아는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언제 오셨어요? 오셨으면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 연회장을 조금 둘러본다고 말이지.”
입술을 쭉 내빼기도 잠시, 유채아는 옆에 있던 둘리를 보고선 활짝 웃었다.
“둘리도 같이 계셨군요! 나비넥타이 귀여운데요.”
“헤헤, 그런가. 둘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채아가 칭찬을 건네자, 녀석은 쑥스러웠는지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저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도 칭찬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뭐야, 아저씨도 같이 있었어?”
유채아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한 손에 오렌지 주스를 든 소녀가 다가왔다.
생각지도 못한 면면에 나는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뭐야. 너도 연회에 초대받았어?”
“뭐, 그런 셈이지. 아저씨도 초대받았는데 우리라고 못 받을 이유야 없잖아.”
내 물음에 소녀는 유채아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며 대답했다.
그러자 유채아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동조했다.
못 보던 새에 서로 장난을 치는 걸 보니, 꽤 친해진 듯했다.
어쨌건.
유채아와 골리엇도 연회장에 초대받았다는 건 의외긴 했지만, 믿을 수 있는 전력이 함께한다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난 직후, 스포트라이트가 무대의 한가운데를 비추기 시작하더니 안내인이 등장했다.
무대의 한가운데에 선 안내인은 연회장을 스윽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딱히 마이크를 가져다 댄 것도 아닌데, 안내인의 목소리는 연회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안내인은 말을 한차례 쉬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특별 게스트, 탑의 관리자께서 직접 행차하셨습니다!”
이어진 안내인의 발언에 나는 안색을 굳혔다.
탑의 관리자- 즉, 나를 튜토리얼에 999년간 가둔 원흉의 행차였다.
들고 있던 포크로 스테이크를 내리찍자, 힘에 의해 테이블이 폭삭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검을 빼 들어 앞으로 뻗었다.
씌이이잉!
서슬 퍼런 날이 무대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잘됐네, 이 시답잖은 연회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