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잠깐만 무슨 전문이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때려잡는 거 전문이거든. 마법도 그쪽 방면으로 익히고 있어.”
“…….”
내 대답에 마법사는 침묵하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까지 보이며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핫, 잠깐만 지금 뭐라고요? 힘법사? 농담치고는 유머 감각이 좋은데요? 그래서 장난은 치지 말고 제대로 알려주세요.”
아무래도 내 발언을 농담으로 여겼는지 마법사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그녀는 눈을 뻐끔뻐끔 떴다.
“진짜로? 진짜 힘법사라는 게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뭐, 설령 없다고 해도 지금 생겼다고 치면 되겠지.
말을 길게 섞으면 정체가 탄로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하나 마법사는 내 대답을 다른 뜻으로 알아차렸는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괴랄한 측면이 있으니까. 그런 게 생겼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긴 하죠.”
혼자서 추론을 내세우고, 납득한 모양인지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내게 손을 뻗으며 사과를 건넸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미안하게 됐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태도에 나는 내심 놀랐다.
마법사는 죄다 프라이드가 강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편견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다른 마법사는 보지 않았으니 판단하기엔 너무 이른가.
나는 상념을 옆으로 치워두고는 그녀가 내뻗은 손을 맞잡았다.
‘스스로 마법사 전체를 싸잡아 괴랄한 집단이라고 평가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신박했으니까.’
뭐, 그렇게 됐으니 쌤쌤으로 치면 될 것 같았다.
물론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그쪽의 이름은?”
“신한별이라고 해.”
“신한별이라…. 꽤 특이한 이름인데 기억하기에는 편하겠어요. 제 이름은 치치, 앞으로 잘 부탁해요.”
치치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이 특이한 건 누군데.’
만화영화 속에서 볼 법한 네이밍 센스였다.
물론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말이다.
치치와는 우연찮게 대화를 나누게 됐지만, 딱히 이어나갈 이야기도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를 뜨려는 내 행동에 치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 모습에 나는 의구심을 가졌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처음 만난 상대인데 뭘 그렇게 아쉬워하는 거지.’
영 의아스러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어쩌면 사람 자체가 정이 많은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의심했다간 나만 피곤한 일이다.
“슬슬 일어나볼까.”
“벌써 일어나려는 거에요?”
“그런 셈이지. 도서관에는 딱히 볼 일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니까.”
딱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기에 사실 그대로를 입에 담았다.
탑에 의해 46층에 떨어지고 보니 도서관이었지. 처음부터 이곳에 오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마법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탑을 오르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자리를 뜨려고 하자, 치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하나만 도움을 받고 싶어서 그런데, 가기 전에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요?”
“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일단 듣기만 하는 거라면.”
난데없는 의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을 흘겼다.
평소라면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했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귀가 솔깃했다.
들어둬서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잠자코 듣기로 했다.
“다른 건 아니고 찾고 있는 샘물이 있어서 같이 찾아줄 수 없나 싶어서요.”
“샘물이라고?”
치치의 발언에 나는 제자리에서 멈췄다.
그런 내 모습에 치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네, 그런 소문이 있더라고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금지(禁地)에 샘물이 있다고. 그 샘물에서는 마력을 상승시키고 회복력이 강해지는 포션이 잠들어있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그 포션을 찾는데 협력해라 이건가?”
“네, 어때요?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치치는 요염한 눈빛으로 혀를 날름거렸다.
그녀의 발언에 나는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뽑았다.
책의 제목은 [허상 마법의 소망론], 책을 중간페이지부터 펼치자 보기에도 어려운 이론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곧바로 책장에 꽂아두기는 뭐 했기에 책을 읽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금지라면서, 그럼 그걸 찾는다는 것부터 모순된 게 아닌가.”
“후훗, 정론이시네요. 하지만 그 부분은 한여름 밤의 낭만이라고 쳐둘까요.”
치치는 이야기에 나는 어느 정도 수긍했다.
결국 탑을 등반하는 플레이어들도 자신의 소망을 꿈을 위해서 등반한다.
영웅이 되고 싶다, 금전욕, 물욕, 식욕…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은 연인을 위해서.
각기 다른 꿈을 위해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는 탑을 등반한다.
그런 플레이어들과 치치를 비교해서 보면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었다.
“대단하신 낭만가 납셨네.”
나는 비꼬듯 툭 내뱉었다.
말은 날카롭게 했지만, 사실 짚이는 부분은 있었다.
‘아마도 카르텔의 샘물을 말하는 거겠지.’
아직까진 확신할 수 없지만, 치치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샘물의 위치나 효과를 생각하면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곁으로는 별 관심 없는 척했어도 나 역시 샘물에는 관심이 있었다.
카르텔에게는 물어보고픈 게 더러 있었기에.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몰음을 던졌다.
“증거는 어느 정도 있어?”
“후훗, 관심이 생겼나 봐요? 원하신다면 원하는 대로 정보를 제공해줄 수도 있어요.”
그녀는 매혹적인 제안을 건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샘물을 찾는 걸 도와주세요.”
솔직히 말해 치치를 도와줘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나 역시 카르텔의 샘물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치치는 각종 정보를 들고 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협력만 하면 수월하긴 하겠지.
하나 곁으로 보면 너무나도 허울 좋은 이야기였다. 누구나 불만 없이 윈윈할 수 있는 내용.
그래서 더더욱 의심이 생겼다.
혼자서 이득 볼 수 있을 걸, 구태여 초면인 상대와 반반 나눌 이유는 없었기에.
“일단 그 전에 왜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네, 그럼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전부 물어보세요. 쓰리 사이즈만 아니라면 전부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다는 듯 의문을 내뱉었다.
“분명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나지?”
내 물음에 치치는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 전 사실 마녀예요.”
“마녀라면….”
뜬금없는 단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순간 뇌정지가 왔다.
저렇게 말로 내뱉는 걸 보니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텐데 여기서 그 의미를 되물어본다면 뭔가 의심을 받지 않을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치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이레귤러라는 거죠. 결국 누구한테도 사랑받지 못하는 씨앗일 뿐이니까.”
치치의 발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마녀라는 이유로 회피하는데 나라면 도와줄 거 같다는 건가.’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대충 이유는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어.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할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우리는 마주 보며 서로 악수를 건넸다.
이걸로 해결됐겠다.
그렇게 방금 전에 꺼낸 책을 책장에 넣어두려던 그 찰나였다. 옆에 있던 치치가 입을 가리며 웃더니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아, 맞다. 신경 쓰여서 말해드리려고 했는데. 아까 전부터 들고 있던 그 책 위아래가 거꾸로 되어 있어요.”
* * *
첫 계기는 우연이었다.
그녀는 자료 조사를 하기 위해 상아탑의 도서관에 잠입했다.
상아탑의 도서관은 층마다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달랐는데, 그중에서도 6층은 역대 상아탑주나 그에 준하는 6서클 이상의 원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6서클 이상의 권능을 지닌 그녀한테 잠입은 간단했다.
그렇게 잠입에 성공해 흥얼거리던 찰나,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기척에 치치는 바짝 경계했다.
‘누구지?’
대륙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시꺼먼 흑발에 흑안의 사내,
혹시나 상아탑의 사람인가 싶었지만, 6서클 이상의 마법사 중에는 저런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6층에 오기 위해선 반드시 결계를 통해야 했다.
자격이 미달인 자들이 결계를 통과했다간 몸이 파편처럼 분리된다. 그런 결계를 뚫고 6층에 왔다는 것은 그에 준하는 실력자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치치는 고유한 능력을 사용해 남자의 마력을 훑었다.
그리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마나가 없어…?’
놀랍게도 남자의 몸에서는 마나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묘한 일이었다.
마나가 없는 자가 어떻게 도서관의 6층에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을 지니고 있을 때쯤. 남자는 책장을 훑어보는가 싶더니, 책을 한 권 꺼냈다.
책의 제목은 [마나의 정석].
흔히 학부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 배우는 책인데, 잠깐만 저런 책이 왜 6층에 있는 거지?
문득 의문이 생겼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어머, 이거 유명한 책이죠. 마나의 정석, 학부생들이 매년 있는 마법능력 시험을 공부할 때 사용하는 책이거든요.”
슬쩍 책의 이름을 말하며 다가가자, 남자는 일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자신을 보면 마녀라고 하며 경멸하지만, 남자의 눈빛에는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보다도 이쪽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듯한 얼굴.
조금 대화를 나눠보니 남자의 이름은 신한별이라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이름이네.
그리고 힘법사라는 말을 덧붙였다.
‘힘법사? 그런 게 있나?’
아무렴 상관없나.
자력으로 6층까지 올 수 있는 사내다. 마법이든 힘이든 숨겨진 무언가가 있겠지.
그렇게 남자가 떠나려던 그때.
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찾고 있던 목표, 그러니까 샘물에 대해 물어보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왠지는 몰라도 지금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치치는 물음을 던졌다.
샘물을 본 적 있냐는 물음을.
다른 마법사들은 전부 샘물을 전설 속 이야기로 여기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신한별이라는 사내는 웃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낌새였다.
‘놓치면 안 돼!’
그런 직감이 들자마자, 남자를 붙잡고 있는 그대로 전부 털어놨다.
마녀라는 것에 관해서도 전부.
이쪽을 경멸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남자는 덤덤했다. 곁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오묘한 표정이었다.
“납득했어.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할게.”
그리고는 난데없는 말에 치치는 당황했다.
하나 당황한 모습을 곁으로 드러내지 않고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으레 생각하는 마법사의 손에 비해 남자의 손바닥은 단단했다.
그 점에서 놀랐지만, 치치는 웃으며 화답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에 책을 거꾸로 든 채 읽고 있는 건 좀 깼지만, 그보다도 목적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렇게 비극은 시작되었다.
* * *
〈46층의 클리어 조건은 3일간 생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