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58화 (158/175)

제158화

쿠웅! 쿠웅! 쿵!!

강렬한 충격이 지면을 울리며 공기를 강타한다.

1초에도 수십 발, 가공할 만한 일격이 난사했지만 그 앞으로 나아가던 아저씨의 발걸음에는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태산과도 같이 굳건한 등에 동경심이 솟아올랐다.

어쩌면 아저씨라면 로드라 하더라도 쉽게 무찌를 수 있지 않을까?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아델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에 안고서 둘리를 불렀다.

“둘리야! 어쩌면 이길 수도….”

뒤돌아 둘리의 표정을 본 아델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항상 아저씨를 믿으라고 외치던 둘리의 표정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기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둘리의 표정에 아델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뗐다.

“이번에도 아저씨가 이길 수 있지? 둘리 네가 항상 그랬었잖아. 아저씨라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쉽게 무찌를 수 있다고 했잖아!”

억지로나마 확인을 받고 싶은 기분에 억양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완전히 깨부수듯 둘리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또, 형용치 못할 어둠이 깔려 있었다.

둘리는 처음에서 끝까지 침묵을 고수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어질 발언은 예상할 수 있었다.

“싸, 싸움 중에 한별이 저렇게 고역을 치르는 건 처음 본다.”

“처음이라고?”

“그렇다. 상대 너무 강하다!”

둘리의 말에 아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공격,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한별은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손톱이 부러지고, 틀어진 뼈가 피부를 꿰뚫고 나왔다.

한 번쯤은 포기할 만도 했으나 신한별은 크게 휘어질지언정 부서지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아델은 눈을 떼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아저씨 본인은 자기를 위해서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거짓임은 알고 있었다.

자기가 없었다면 아저씨가 나설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디까지나 타인일 아저씨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델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새빨간 선혈이 주르르 흘렀지만, 아저씨의 아픔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야.

앞서 나가는 아저씨는 더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나는 제자리걸음만 할 뿐인데.”

아델은 고개를 푹 숙이며 혼잣말을 했다.

로드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나다.

혹시 로드에게 몸을 바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닐까? 아저씨도 둘리도 모두가 편해질 수 있잖아.

그런 유혹이 떠올랐지만, 아델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순 없어.’

아저씨나 둘리나 나로 인해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에서 포기해버린다는 건 필사적으로 노력해준 둘을 기만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시선을 돌려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발버둥 칠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언제나 타의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사실 아저씨를 따라 나온 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만약 둘을 따라가면 현실을 등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전부 틀렸어.”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이 로드에게 몰살당했을 당시, 세상의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여기고 싶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자력으로 빠져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 이제는 아니다.

아델은 용기를 내어 마나를 쥐어 짜냈다.

“윽….”

근 백 년간 멈춰있었던 탓에 마나가 드래곤 하트를 자극하면서 강한 통증이 신체에 동반했다.

로드에 의해 세계수에 빼앗기면서 몸에 남은 것은 온전한 드래곤 하트가 아닌 남은 찌꺼기.

드래곤 하트는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조각난 드래곤 하트는 아델의 의지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백 년 간 정지해있던 드래곤 하트가 움직이자 몸에 부감이 그대로 전해왔다.

“쿨럭! 그래도 해야 해!”

숨을 쉴 때마다 폐포가 저리고 고통이 몸을 억죄어왔지만, 아델은 포기하지 않았다.

목표는 로드의 심장…!

놈의 의식이 아저씨에게 향해 있을 지금이라면 한 방을 먹일 수 있을지도 몰라.

치열한 연산 끝에 마법을 발동하려던 그 찰나였다.

쏴아아아아악!

마치 아델의 마력에 동화되듯 세계수가 지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공포감이 느껴졌지만, 손을 놓고 포기할 순 없었다.

이대로 연산 중이던 마법을 끊었다간 좁쌀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 하트를 사용하려던 여파가 들이닥칠 게 뻔했기 때문에.

‘끝까지 한다!’

굳게 다짐하며 마법에만 집중하던 그 순간이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스르륵, 공동에 넓게 펼쳐진 세계수의 마나가 의지를 가진듯이 아델의 주변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응집된 마나는 마치 손과 같은 형상을 띠며 떨리는 아델의 팔을 받쳤다.

본래 마나는 허공에 존재하는 물질, 따지자면 강에 흐르는 물이나 화재 속에서 일렁이는 불꽃과 다를 게 없는 존재다. 그러니 의지를 지니고 움직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깨부수듯 세계수의 마나는 아델의 마법에 영향을 끼쳐 더욱더 방대한 힘과 출력을 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상황에 경악과 공포감이 경종을 울렸지만, 아델은 끝까지 손을 뻗었다.

“간다!!”

아델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손바닥 끝에서 일렁이던 마법은 기염을 토해냈다.

목표물을 향해서.

* * *

〈이터의 권능이 드래곤 하트 일부분을 흡수합니다.〉

내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 촉수는 로드의 몸을 휘감더니, 놈의 힘을 거머리처럼 흡수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찢어들 듯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하고 있었지만 놈의 힘이 들어올수록 재생력이 높아졌다.

떨어져 나간 뼈가 붙고, 파열된 근육이 서로 엮였으며, 새 살이 돋아났다.

반면 그 여파로 인해 로드의 몰골은 비쩍 말라갔다.

“끄아아아악! 어째서 내 힘이…. 내 모든 것이 네놈한테 흘러가는 말이냐!!”

동족의 뒤통수를 때려 얻은 권능이 내게 흘러 들어가자, 로드는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래봤자 마지막 발악이다.

“말했잖아. 강탈하는 건 내 전공이라고.”

기껏 얻었던 힘을 내가 꺼억 해버리는 꼴이었지만 뭐 어떤가.

덕분에 이쪽은 며칠간 요양해야 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는데, 그 보상은 받아내야지.

이터의 권능을 통해 놈의 힘을 완전히 강탈했을 찰나.

뒤에서부터 강렬한 에너지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아델의 필사적인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대로면 마법의 범위에 휘말리고 말리라.

아델의 손끝에서 파괴의 힘이 응집되기 바로 직전.

권능으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강탈하고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와 동시에.

콰과과광!!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마법은 로드의 몸을 뒤덮었다.

파괴의 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로드의 힘은 내가 전부 흡수했으니, 놈에게 일격을 상쇄할 능력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히든 조건: 위기로부터 아델 비 클로세이드를 구하십시오.〉

〈띠링!〉

〈성공적으로 히든 조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로드를 쓰러뜨렸다는 증거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걸로 이번 층도 끝이라는 생각에 쌓여있던 긴장과 신체에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탈력감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드러누웠다.

그 모습에 멀리서부터 아델과 둘리가 뛰어왔다.

“한별!!”

“아, 아저씨 괜찮아?!”

녀석들의 외침에 나는 피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네.”

사실 죽을 만큼 아프긴 한데, 튜토리얼에서는 패시브처럼 지녔던 통증이라 무덤덤하게 넘겼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델을 바라봤다.

“방금 전엔 훌륭한 한 방이던데? 한 방 먹었어.”

“으헤헤, 그렇지?”

칭찬을 건네자 아델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전에는 진지한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 어리긴 어리다니까.

그것도 잠시, 아델은 사뭇 걱정스러운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난 그저 마법만 썼을 뿐인데, 갑자기 세계수의 마나가 나를 도운 것처럼…. 어,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러니까 세계수의 마나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네 마법을 도왔다고?”

“응응! 맞아, 그 말대로야!”

적당히 정리해서 말하자 아델은 홍조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다.

전투 중에 갑작스레 느껴진 마나의 흐름으로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다.

나도 드래곤은 아닌지라 딱 잘라 결론을 내놓긴 어려웠지만, 추측하는 바는 있었다.

“아무래도 아델, 너와 세계수가 연결된 거 같은데.”

“연결…?”

세계수는 아델의 비롯해 일족의 드래곤 하트로 형성되어 있다.

세계수의 심장과 같은 장소에서 아델이 드래곤 하트를 사용함으로 인해 공명 작용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일종의 블루투스랄까.

알아듣기 쉽게 정리하자 아델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직전까지 로드가 아델을 세계수의 제물로 바친다고 이야기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세계수의 뿌리를 잘랐기 때문에 로드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아. 오히려 세계수의 힘이 아델, 네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가깝지.”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어진 내 설명에 아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동안 전전긍긍하던 근심이 해결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곧이어 44층으로 이동합니다.〉

44층으로 이동한다는 문구.

헤어짐의 순간이 한걸음 다가왔다.

나는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아델에게 말을 건넸다.

“아델, 잠시만 할 말이 있어.”

“응응! 무슨 말이야? 뭐든 해!”

아델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 아저씨와 둘리하고는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야?”

“그건…. 그렇게 됐어.”

한순간 적당한 말로 회유하려다 말고, 사실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아델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탑을 등반한다는 목표를 지니고 이곳에 왔다.

아델과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둘리를 바라봤다.

과거 탑을 등반하면서 결심한 내용이 있었다.

만약 둘리의 친구를 발견한다면 그때는 둘리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결심을.

“둘리야. 혹시 여기에 있고 싶으면…….”

남아 있어도 된다. 나는 혼자 탑을 등반하면 되니까…, 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좀처럼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둘리와는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말해야 한다.

둘리에게는 친구를 사귀어 주겠다고 결심했었고,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언제, 무슨 위험이 도사릴지 모를 탑을 등반하기보단 둘리는 다른 드래곤이 있는 이 세계에 남아 있는 편이 녀석을 위한 게 아닐까?

사실상 탑을 등반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내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에 둘리를 휘말리게 할 이유는 없었다.

결심한 내용을 입으로 내뱉으려고 한 그때였다.

“괜찮다 한별! 나는 한별과 같이 할 거다!”

“둘리야?”

“한별이랑 같이 다녔다! 표정만 보면 둘리는 안다! 그러니 둘리는 한별과 끝까지 할 거다!”

둘리의 외침에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여기는 또 올 수 있지 않나.”

둘리의 말대로였다.

이미 클리어 한 층은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다.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밑층의 NPC와 관계를 맺고 생활을 같이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니.

다만 위를 향해야 하는 나한테는 밑을 내려다볼 겨를이 없어서 그렇지.

“여기는…. 그리고 아델하고는 한별의 목표를 이룬 다음에 와도 늦지 않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둘리의 발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아델! 나중에 또 오겠다! 꼭 약속한다!”

둘리는 손가락을 아델한테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아델은 붉어진 눈시울로 둘리의 손가락을 잡았다.

“바보 뚱돼지…. 꼭 약속했으니까. 와야 해. 그리고 아저씨도 말이야. 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델은 내게도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싱긋 웃으며 그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래, 꼭 약속할게.”

“히히히, 믿고 기다릴게!”

아델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파앗!

약속을 끝마치자마자 하늘에서 섬광이 떨어졌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빛.

무심결에 섬광의 정체를 파악했는지 아델은 우리에게 양팔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럼 잘 다녀와!! 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해맑은 외침을 끝으로 우리들의 시야는 점멸했다.

〈44층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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