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52화 (152/175)

제152화

초롱초롱한 둘리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저 기대감을 배신하고 나도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둘러보는 중이라고 말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뭐, 그런 셈이지.”

“역시 한별이다! 믿고 있었다!”

“흐음….”

둘리의 감탄에 옆에 있던 꼬마에게서 의미심장한 눈초리가 느껴졌다.

나는 [이터]의 권능을 이용해 서둘러 쇠창살을 뜯어냈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둘리는 그대로 도약해 내 품에 안겼다.

“그렇게 보고 싶었….”

“하, 한별… 내가 여기에 넣어뒀던 사탕은 어쨌나! 일부러 아껴 먹으려고 둔 건데!”

“…….”

둘리는 내 주머니 속을 뒤져보더니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녀석, 내가 구해줘서 품에 안긴 건가 싶었는데 사탕이 목적이었나.

그럼 그렇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옆에 있던 꼬마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꺄르륵, 거기에 있던 막대 사탕 말이지? 내가 전부 먹었지롱!”

꼬마의 외침에 둘리는 충격이라도 먹은 듯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것도 잠시, 내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한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나뿐인 사탕인데.”

사탕이 뺐겼다는 게 어지간히도 충격적인 모양인지 둘리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둘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하나로도 벅찬데, 1+1이라니 어린 애들의 보모라도 된 기분이었다.

둘리와 꼬마는 한동안 투닥거리다 말고 질문을 던졌다.

“사탕 도둑! 너 이름이 뭔가!”

“내 이름? 글쎄… 알려줄까 말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동안 꼬마라고 부르긴 했지만, 둘리의 물음에 관심이 생겼다.

꼬마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양팔을 허리에 올리며 외쳤다.

“잘 들어둬!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난 아델 비 클로세이드야!”

“음… 아델… 버클로?”

“기억도 못 하긴, 그냥 줄여서 아델이라고 불러. 특별히 허락해 줄 테니까.”

“알았다 아델! 참고로 내 이름은 둘리다, 둘리! 아, 맞다. 이쪽은 한별이고.”

“네 이름은 특별히 기억해둘 테니까. 영광으로 알아둬.”

둘리와 아델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싱긋 웃었다.

티격태격하긴 해도 첫 만남에 저 정도라면 둘 다 꽤 친한 편이 아닐까 싶었다. 둘 다 정신연령도 비슷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된 의미로 우린 여기서 나가보려고 하는데, 어때 너도 따라올 거야?”

“좋아, 아저씨랑 같이 다니는 편이 더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뭐가 그리도 흥겨운지 아델은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런 녀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히든 조건: 위기로부터 아델 비 클로세이드를 구하십시오.〉

※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미션입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눈가를 가늘게 떴다.

‘어? 히든 조건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눈을 번쩍 떴다.

탑을 등반하면서 히든 조건이 뜨는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번 히든 조건은 아델과 관련된 일.

하지만 묘한 일이었다.

보통 히든 조건이 생성될 때는 해당 층의 히든 피스를 발견하거나 혹은 특수한 상황에 닥치는 경우뿐이다.

43층에 도착했을 때부터 아델과는 함께 다녔다.

만약 히든 피스를 찾는 조건이었다면 아델을 만났을 때부터 히든 조건이 생겨났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아델과 탈출을 결심하자마자 나타났다는 뜻은 하나밖에 없었다.

‘위기라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히든 조건을 달 정도로 굉장히 빡세다는 뜻이겠지.’

이례적으로 추가된 포기 가능 문구를 생각하면 틀림없었다.

어쩌면 목숨이 달릴지도 모르는 일.

하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탑에 들어올 때부터 목숨을 걸었는데 뭘.”

지금 와서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서 지레 겁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화기애애 장난치는 둘리를 내려다보며 결심했다.

적어도 둘리가 첫 번째로 사귄 친구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 * *

여기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한 직후.

나는 둘리와 아델과 함께 감옥을 훑어봤다.

감옥은 규모가 상당히 커서 움직이는데 시간이 많이 소모될 뿐이지, 구조 자체는 아주 단순했다.

ㄷ자 형태로 한쪽 끝은 심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반대편은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이었다.

‘다행히 둘리가 갇혀 있던 곳이 바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까워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것도 모른 채 한참 헤맬 뻔했다.

그렇다고 해도 방심할 순 없었다.

감옥의 구조가 단조롭다는 건 어디까지나 형태에 관해서였지, 경계해야 할 점은 많았다.

“감옥의 구조가 간단하다는 건 적들도 지켜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

설령 탈옥자가 생겨도 출구만 틀어막으면 탈옥을 막을 수 있다.

이는 경계 할 만한 사항이었다.

적이 어디에서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니까.

“그나저나 아델 궁금한 게 있는데 이 감옥은 너밖에 없어?”

“응, 맞아. 들어올 때부터 내내 혼자였는걸.”

내 물음에 아델은 빙그르르 돌며 대답했다.

명랑한 아델과는 달리 나는 미간을 찌그러뜨렸다.

왠지 모르게 묘한 불쾌감이 엄습했다.

그도 그럴 게.

43층에 들어와서 꽤 상당한 시간 동안 걸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가는 곳마다 감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드넓은 감옥에 투옥된 사람은 오직 아델 혼자.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감옥인데도 죄다 마법이 걸려 있어.’

지금까지 수십 개의 감방을 지나쳤는데, 놀랍게도 모든 감방의 쇠창살에는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혹자라면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그게 뭐가 특별한 거냐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나 마법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안다.

저런 식으로 마법을 작동시키는 게 얼마나 큰 소비인지.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마법이 설치된 건 이상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감방에도 마법이 발동 중이라면 그건 이상한 거지.”

“응? 그런 거였어? 나야 여기에 있을 때부터 그래서 별로 이상하게 안 여겼었는데, 아저씨 대단해!”

“후훗! 물론이다! 우리 한별이 뛰어나다는 걸 이제 알았나!”

아델이 손뼉을 치며 외치자, 옆에 있던 둘리가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옅은 웃음기를 지었다.

둘리야, 넌 자기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그거야 일단 둘째치고 나는 아델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너는 여기에 왜 갇혀 있는 거야.”

내 물음에 녀석은 멈칫하더니, 기나긴 침묵 끝에 겨우 입을 뗐다.

“글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일종의 산제물이라고 들었어.”

아델의 안색을 보고서 금방 확신했다.

방금 내뱉은 발언에는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아마도 거짓은 전자겠지.

녀석의 표정을 보고서 깊이 파고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민감한 내용을 건드려 미움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고.

슬슬 감옥의 출구에 가까워져 갔기에 축 늘어진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일단 다들 긴장해, 누가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언제든 반응할 수 있게 대비해 둬.”

“알겠다! 아델은 둘리가 지킬 테니까. 내 뒤에만 숨어있어라.”

“으응… 알겠어.”

같은 또래를 만나서 멋있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픈 모양인지, 둘리는 제 가슴을 두들기며 앞장섰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둘리의 모습에 한결 긴장을 풀었다.

‘아델에 관한 건 둘리에게 맡겨둘까.’

지금까지 탑을 등반하면서 둘리도 어지간한 플레이어 못지않은 강함과 경험을 쌓았다.

설령 무슨 일이 터진다고 해도 시간 벌기는 할 수 있으리라.

다시 한번 검을 손본 뒤, 계단을 올랐다.

한 칸 한 칸이 피라미드처럼 높은 계단을 등반한 끝에 상공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느껴졌다.

오래간만에 느낀 따스한 햇볕에 힘을 얻어 박차를 더하려던 찰나.

“잠깐만 멈춰!”

“하, 한별, 무슨 일인가?”

옆으로 손을 뻗으며 외치자, 뒤따라오던 둘리가 바짝 긴장하며 물음을 던졌다.

나는 대답 대신 바닥에 떨어진 생쥐의 사체를 정면을 향해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가던 쥐의 사체는 중간에서 불꽃이 일어나며 화르르 불타올랐다.

얼마나 강력한지 한순간이지만, 일대를 번쩍 밝힐만한 화력.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둘리는 눈을 번쩍 떴다.

“스, 습격인가!”

“호들갑은.”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포켓에서 나무 막대기를 꺼내 다시 상공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나아가던 나무 막대기는 생쥐가 불타 떨어진 위치를 유유히 지나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거기까지 실험해보고서 결론을 내렸다.

“마법이네.”

“마법이라고?”

“어, 일종의 결계야. 보다시피 생명체에만 반응해서 작동하는 형식의 마법이고. 꽤나 강한 종류인데.”

나는 덤덤히 말했다.

그야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감방의 쇠창살에는 일일이 마법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감옥의 입구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이만한 설비를 갖춰뒀기에 감옥 안을 지키는 병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지간한 자신감이네.’

감옥에 가둬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데, 경비를 두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 자신감이 제 발등을 찍을 거라곤 상상치도 못하겠지.

정면을 향해 손을 뻗으며 [이터]의 권능을 발동하자, 결계의 한 부분이 물어뜯기듯 소멸했다.

핵이 소멸하자, 결계를 구성하는 마나가 흩어졌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직후, 주변을 둘러본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쩌억 벌렸다.

드디어 감옥을 탈출했는가 싶었는데, 주변에는 이를 파악한 병력이 포위망을 펼치고 있었다.

하나 내가 놀란 건 현재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더욱 정확하게는 저들의 종족.

“드래곤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적게는 수십 미터에서 크게는 수백 미터의 높이에 달하는 드래곤이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가 이쪽을 포위하고 서 있다.

드래곤을 눈여겨보자마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임시 스킬: 친화도 상승(LV. MAX)이 발동합니다.〉

〈백룡 시리즈의 존재로 인해 드래곤의 불쾌와 적대를 사게 되었습니다.〉

〈친화도: -999〉

허공에 뜬 친화도 수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친화도의 수치에 대한 우호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군림하는 드래곤들이 내게 엄청난 적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그 증거로 강렬한 드래곤 피어가 내 몸을 억눌렀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의 압박감이었으나 나는 미친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하하하…. 웃겨 죽겠네.”

“하, 한별 뭐가 웃긴가.”

웃음을 참지 않고 뿜자, 곁에 있던 둘리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가 웃기긴, 엄청 웃기잖아.”

나는 웃음을 멎으며 백룡 시리즈를 내려다봤다.

〈백룡 시리즈(4/5)〉

- 수백 년 전에 죽은 드래곤로드의 잔해물을 엮어 만든 시리즈로 어떠한 시리즈와 비교해도 비견할 수 없는 강함을 자랑합니다!

※ 주의! 봉인되어 있습니다.

흉갑부터 시작해 갑옷, 투구, 부츠는 전부 SS+에 달하는 힘을 지닌 아티팩트다.

하나 단 한 가지, SS+ 아이템에는 크나큰 흠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봉인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백룡 시리즈의 봉인을 풀기 위해선 꼭 필요한 준비물이 필요했다.

봉인을 풀기 위한 히든 피스는 바로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

그걸 손에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탑을 등반하고, 수많은 괴수를 쓰러뜨렸다.

사실 드래곤 하트를 손에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반쯤 손 놓고 있었는데 말이지.

나는 이쪽을 적대하는 드래곤 무리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여긴…. 채굴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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