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신입 NPC의 등장, 아무래도 이 일은 기존에 있던 NPC들에게도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다들 관심을 기울였다.
나는 무수한 인파 속에서 몰래 잠입한 후, 상황을 살폈다.
“새로운 NPC들은 저기에 있는 건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선로를 타고 열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증기를 배출하며 열렸다.
철컥!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열린 문의 너머에서는 묘한 냄새가 느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피 냄새인가?”
무의식적으로 눈가를 찌푸렸다.
착각이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찐득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한 이 감각,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가 착각할 리는 없었다.
열차의 안에서는 자욱한 피 냄새가 눌어붙어 있었다.
수많은 상황을 겪었던 나조차도 인상을 찌푸릴 만한 광경인데, NPC들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쯔쯔쯧, 이번에는 더 심하군.”
“하여간 탑도 악취미라니까. ■■■도 없는 놈들에게 무슨 시련을 내려주는지 참…. 차라리 갈 곳이라도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어쩌겠나. 돌아갈 곳이 없는 놈들인데, 상관없어. ■■■라고는 하지만 저들도 바래서 선택한 것일 테니까.”
NPC들은 인상을 구기며 서로 속닥거렸다.
역시나 그들의 말은 탑에 의해 검열되어 들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입 모양을 통해 대화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집중했지만, 그마저도 상정한 부분인지 뭐라고 하는지 인식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각종 실험을 해봤지만 연이어 실패했었으니까.
나는 관심을 돌려 열차에서 나오는 NPC들을 향해 집중했다.
인원은 대략 서너 명 정도일까.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상당히 지친 기색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봐야겠는데.”
결심은 빨랐다.
나는 무수한 인파를 뚫고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얼굴이 인식될 만한 거리까지 다가간 직후.
새로운 NPC들의 안면을 확인한 나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어? 잠깐만, 왜 저기에 저 사람들이?”
“음? 한별 왜 그런가? 저 NPC들이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건 아닌데.”
저도 모르게 내뱉은 목소리에 품속에 숨어있던 둘리가 얼굴을 불쑥 내밀며 의문을 던졌다.
녀석의 질문에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다시 한번 NPC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무언가 착각이 아닐까 싶었지만, 곧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녀석들, 사등석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이야.”
* * *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몇 가지가 있었다.
일전에 유채아와 마주했을 당시.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그녀에게서 사등석에 탑승한 플레이어의 정보를 받았었다.
비록 그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그 당시에 받았던 정보와 신입 NPC라 불리는 이들의 생김새와 옷차림은 흡사했다,
무엇보다도 사등석은 41층의 첫 번째 재앙으로 인해 가장 먼저 열차에서 떨어져 나갔었다.
만약 떨어져 나간 열차가 그대로 스테이션까지 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거리와 시간을 감안해도 얼추 맞아떨어지고.’
심증뿐만 아니라 물증까지 있다.
확정이라고 해도 다름없는 상황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NPC가 플레이어가 된다니, 여러모로 의아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일렀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일단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최선이겠지.”
나는 NPC들의 눈을 피해 컨테이너 박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롭게 선발된 신인 NPC의 행적은 둘리를 통해 미리 알아뒀다.
“정말로 여기에 있는 게 맞지?”
“맞다! 분명히 둘리의 눈으로 NPC인가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미심쩍은 내 눈초리에 둘리는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외쳤다.
저 정도 확신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알았어, 알겠어.”
손을 휘적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돌리자, 따로 잠금장치를 해두지 않았던 모양인지 쉽게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그대로 문을 활짝 열자, 안에는 활을 겨누며 이쪽을 경계하는 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경계하다 말고 내 얼굴을 확인하곤, 놀란 듯한 기색을 보였다.
“신, 신한별?”
“신협께서 어째서 여기에?”
“어?”
나지막한 중얼거림, 하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저들이 나와 같은 열차의 사등석에서 나온 플레이어라는 것을.
“안 그래도 너희 때문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 우선 흉흉하니까. 그것부터 치우지….”
피슝!
그들이 손에 쥔 화살을 가리키며 경고하려 했지만, 내 말이 전부 잇기도 전에 화살은 공기를 가르고 벽을 꿰뚫었다.
내 머리통과 불과 몇 센치 떨어진 거리.
자칫하면 머리통이 날아갈 뻔한 상황 속에서 활을 든 여자는 사색이 된 채 딸꾹질했다.
“히끅!”
“크크크! 한별, 방금 머리통이 뚫려서 죽을 뻔했다! 아깝다, 조금만 더 옆이었다면 적중이었을 텐데.”
화살을 쏜 당사자는 울상이 된 것에 반해, 옆에 있던 둘리는 고소하다는 듯이 웃으며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나는 둘리의 머리를 낚아채 손으로 있는 힘껏 쥐어짰다.
“으악! 한별 아프다! 이러다가 머리 깨진다!”
“넌 깨져도 싸.”
둘리를 적당히 집어 던져두고는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죄, 죄송해요!”
“아, 됐어. 지금은 너보다도 이쪽이 더 꽤 심하니까.”
나는 둘리를 턱짓하며 말했다.
설사 맞았다고 해도 두개골을 꿰뚫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관통력이라 아무 일도 없었을 테니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쨌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까웠기에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확인차 묻겠는데, 나와 같이 41층의 열차를 타고 있던 게 너희가 맞지?”
“네, 맞아요.”
내 물음에 남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역시였나.
나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래서 너희는 뭐야. 플레이어야 아니면 NPC야?”
“그게, NPC냐 플레이어냐고 물어보셔도 저희도 당황스러워서 당장은….”
내 물음에 그들은 난처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기감을 통해 그들을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듯 보였다. 정말로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서 정보를 기대하긴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의 요지를 바꿨다.
“사등석에는 너희들밖에 없던 거 같은데, 나머지는 어떻게 됐어? 혹시 내분이 일어나거나 했나 봐?”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등석의 내부는 핏덩어리로 가득했었다.
적어도 괴수가 난입하거나 한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으로서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내분뿐이다. 하나 이어진 여자의 대답으로 내 추측은 보기 좋게도 벗어났다.
“아니에요. 내분이라거나 괴수의 난입은 없었어요.”
“없었다고?”
“네, 믿기지 않겠지만 저희 이외에는 몸이 부풀어 올라서 그대로 폭사했어요.”
옆에 있던 자들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폭발한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PTSD가 되기에는 충분한 상황이겠지만, 41층을 등반하면서 산전수전을 전부 겪은 베테랑답게 곁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상한 이야기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죽었는데, 너희들은 왜 멀쩡한 거야. 아, 동료는 죽었는데 너희는 왜 안 죽었냐고 탓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의문이야.”
게다가 저들은 NPC가 되었다.
그 점에서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있었다.
‘그러면 NPC들은 원래 플레이어라는 뜻인가?’
확실하게는 저들과 마찬가지로 등반에 실패한 전직 플레이어.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본래 플레이어들은 죽으면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을뿐더러 지구로 귀환하지도 않았다.
묘한 일이었다.
“모르겠어요. 저희라 해봤자 별 공통점은 없을 텐데ÿ. 아, 맞다!”
말하던 도중, 무언가 떠올랐는지 여자는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저흰 돌아갈 고향이 없긴 한데 이게 관련이 있을 진….”
그녀는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그들은 각각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플레이어인듯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그 지역은 과거 괴수의 침략으로 국토 자체가 사라진 나리였다
그 정보만으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유용한 정보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단 알겠어. 참고할게.”
다른 NPC에게 들킬 것을 대비해 슬슬 일어나보려는데, 그들은 내 팔을 붙잡았다.
“시, 신협!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탁?”
“네! 다름이 아니라 열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묘하게 생긴 장소를 발견했거든요. 뭐랄까, 곁으로 보기에는 묘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의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둘리를 타고 이곳까지 올 때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보고 나서부터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알았어. 나중에 확인해볼게.”
41층의 배경은 어디까지나 열차의 안이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41층을 벗어난 장소, 어쩌면 숨은 조건이나 진귀한 아티팩트를 손에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렇게 다음 층에 등반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시간도 많이 낭비한 거 같으니까. 이만 가볼게.”
“잠깐만요! 그 전에 하나만 더 알려주세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저희는 등반에 실패했다지만 신협은 어떻게 열차에서 탈출하셨나요.”
바깥으로 나서기 직전, 플레이어들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41층에서 열차를 경험한 그들이라면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자기들은 실패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 열차에서 탈출할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
그들의 궁금증에 나는 MSG를 살짝 더해 대답했다.
“아, 그거. 그냥 자력으로 탈출했어.”
“아니, 그게 무슨….”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