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끝도 한도 없이 쭉 이어진 선로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열차의 목적지가 절벽, 그러니까 막다른 길이었다면. 과연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한 시작점은 어디일까.
그런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들었다.
끝이 있다면 시작점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협곡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만약 선로가 시작된 출발점에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열차를 제작하고 또, 전류를 공급하고 출발시키려면 상당한 기술력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탑의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둘러 결심을 내렸다.
“둘리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선로를 따라서 가.”
“선로를? 일단 알겠다!”
내 말에 둘리는 의문을 가지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날갯짓을 시작했다.
우리는 선로를 따라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절벽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열차의 속력을 생각하면 상당히 긴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뭐, 둘리라면 금방이겠지만.’
드래곤인 둘리의 속도라면 금방 돌파할 것이다.
휘이잉!
둘리의 날개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상당한 소음이 귀청을 때렸다.
그렇게 1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을까. 둘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한별, 저기에 뭐가 있다! 일단 숨겠다!”
둘리는 눈에 띌 것을 고려해 거대한 바위 사이에 착지했다.
곧바로 성체화를 해제한 둘리는 숨을 헐떡이며 지면에 뻗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을지도 몰랐지만, 성체화를 유지한 채 여기까지 날아왔으니 쉬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나는 둘리를 내버려 둔 채, 협곡 아래를 내려다봤다.
쭉 이어진 선로의 끝에는 열차의 스테이션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는데, 어두운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림잡아 20명이나 되는 인원.
“쯧, 역시 여기에선 보이지 않나.”
아무리 살펴봐도 지리적인 특성상, 이 자리에서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나는 지면에 쓰러진 둘리를 들쳐메곤 내려갔다.
“하, 한별? 갑자기 어딜 가나!”
“어딜 가긴.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수확도 없이 갈 순 없잖아. 확인이라도 해봐야지.”
언제까지고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어차피 41층은 클리어한 뒤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42층으로 이동하면 되기에 나는 당당히 스테이션 안으로 들어섰다.
스테이션에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탑승했던 열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NPC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곁으로 보기에는 전에 탔던 열차와 판박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정했다.
분명 내가 탔었던 열차는 절벽에 충돌해 흔적도 없이 폭발했다.
열차의 잔해는 내가 똑똑히 보고 왔다.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열차를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사 수리가 가능하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절벽에서 여기까지 옮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는 건 내가 탔던 것과는 다른 열차인가.’
기술자들로 보이는 NPC들은 이쪽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손쉽게 잠입한 나는 주변을 살피며 관찰했다.
“보아하니 여기에서 열차를 제작해서 플레이어들을 태우나 보네.”
과연 저들은 그 사실을 알고 움직이는 걸까.
38층에서 마주했던 NPC들은 탑에 대한 존재도 모른 채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저들이 탑과 플레이어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면 38층의 NPC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 그러한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즈음, 바로 뒤에서 쇠망치가 날아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반사신경으로 가까스로 비켜나간 망치는 열차의 벽면을 강타하고는 떨어졌다.
망치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괴팍해 보이는 노인이 대못을 입게 물고 이쪽을 째려보고 있었다.
“오늘 온다고 도착한다고 했던 신입인가 본데, 거슬리게 서 있지 말고 퍼뜩퍼뜩 움직… 어?”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다 말고,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목격한 듯한 얼굴.
이윽고 노인은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켰다.
“그, 그럴 수가… 하지만 자네는… 자네는 틀림없이… 플레이어이렷다? 어째서 플레이어가 이곳에?”
노인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입에 문 못을 떨어뜨렸다.
그 반응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저 NPC는 탑과 플레이어에 관해서 알고 있나 보네.’
그것뿐만이 아니다.
노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41층의 구조 역시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내 팔을 끌어당겼다.
“일단 다른 사람의 눈에 띄면 곤란할지도 모르니, 자리를 옮기게나.”
“알겠어.”
그의 말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나도 그에게는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게 있던 찰나였다.
* * *
그렇게 나는 로브를 쓴 채,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과 동행하면서 안 사실인데, 아무래도 노인은 이 스테이션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를 지닌 것 같았다.
실제로 직위나 계급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41층에서 가장 오랫동안 NPC로서 받는 명망 같은 부류인 듯싶었다.
“으싸! 대충 여기면 되겠지.”
열차의 뒤편에 도착한 노인은 주변 눈치를 살피며 손을 털었다.
“아마도 여기에 있으면 한동안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을 걸세. 안심하게나.”
노인은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더니,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혹시 몰라 확인해보겠다만, 자네… 플레이어가 맞지? 어떻게 플레이어이면서 이곳에 있지? 탑이 실수를 저지른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있거나… 아니군. 하지만 어째서? 탑의 제약에 얽혀 있는 플레이어가 열차에서 나오는 건 어떤 수단을 써도 불가능할 텐데? 생각할 수 있는 건… 이레귤러라던가. 그런 건가?”
노인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오죽하면 나조차도 대화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는 손을 앞으로 뻗어 그를 제지했다.
“우선 하나만 정정하자면 플레이어 맞아. 그리고 방금 전에 너희가 만들었던 열차를 타고 41층을 클리어한 플레이어고.”
“방금 전이라면… 용케도 성공했나 보군.”
“그런 셈이지. 때마침 열차에서 탈출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타, 탈출이라니? 열차 안에서 무슨 수로 탈출했지? 거기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짤막한 대답에 노인은 두 눈을 번뜩이며 되물었다.
그의 반응을 보고서 확신했다.
역시 열차에서 탈출할 수단은 없었구나하고, 어쩐지 아무리 찾아봐도 탈출할 수단이 없었다 싶었다.
애초에 열차에서 탈출이 불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면 이해할 만했다.
“아티팩트를 통해서 탈출했어.”
손목에 착용한 아티팩트를 보이자,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이건 투명 팔찌?”
아무래도 그 역시 아티팩트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지.
“맞아. 이걸 통해서 탈출했어.”
“자,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인가. 아티팩트를 통해서 탈출했다고?”
“무력으로 열차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 그래서 아티팩트를 사용했는데, 그게 왜?”
“그러니까. 내 말은 열차에서는 무력을 포함해 아티팩트, 스킬 등등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탈출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는 말일세. 열차에서 탈출할 방법은 오로지 좌석에 착석해서 마지막 재앙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지.”
“뭐라고?”
그의 발언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아티팩트를 사용해도 탈출이 불가능하다니?
그렇지만 나는 탈출에 성공했었다.
그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노인의 표정을 보고서도 도저히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전의 NPC 발언.
“그 전에 플레이어가 탑의 제약에 얽혀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
“아아, 그거 말인가. 별 건 아니네. 플레이어는 탑에 들어올 때부터 ■■ 자체가 탑에 ■■■다네.”
내 물음에 노인이 대답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이명과 함께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이전에도 한 번 겪어본 경험.
‘분명 탑과 밀접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만 그랬었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뒷덜미를 긁쩍이며 되물었다.
“어이쿠, 내 말이 안 들리나?”
“그렇게 된 거 같은데.”
“그렇다면 탑이 플레이어를 ■■로 ■■ 자네가 사는 ■■의 ■■■를 ■■■■ 것인데…. 혹시 이것도 안 들리나?”
노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턱을 매만지며 침묵했다.
“음… 이게 안 들리는 걸 보니, 자네 역시 탑의 제약에 얽혀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 같은데 영 이상하군. 그런데 탑의 제약이 걸린 열차에서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탈출은 성공했고… 앞뒤가 안 맞아.”
노인은 한참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질문을 던졌다.
“자네 혹시 이전에 탑으로 인해 제약이 생겼을 때, 그 제약이 해제되거나 하는 경험이 생긴 적이 있는가?”
“제약이 해제돼?”
“그렇다네. 사소한 거라도 좋아. 사물이거나 능력 혹은 저주라도 상관없다네.”
저주라면….
그의 말에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도 한 번 개인 층을 등반하면서 탑의 제약으로 신체의 감각을 잃은 적이 있는데, 모종의 일로 신체의 감각이 되돌아왔었다.
“한 번 있었던 거 같은데.”
“음… 이건 내 추측이다만. 탑의 제약이 걸린 열차에서 자네가 자유로웠던 이유도 그 영향일지도 모르겠네.”
“…….”
“혹시 그 당시에 평소와는 다른 일이 있었나?”
다른 일이라면….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뇌었다.
분명 34층의 사막 에리어를 돌파하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감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둘리와 같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피라미드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우리가 샘물을 발견했었지?
머릿속으로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 바로 직전이었다.
“영감님!! 신입들 왔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깥에서 들려온 외침에 우리는 움찔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노인에게 물었다.
“신입?”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오늘 새로운 NPC들이 오기로 했었다네.”
그러고 보니 나를 처음 봤을 때도 신입이라고 착각했었지.
노인은 바닥에 내려둔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먼저 일어나봐야겠어. 일단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중에 또 찾아오겠네. 그럼 실례하겠네.”
뭐가 그리 급한 지 노인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떠나고 자리에 홀로 남은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새로운 NPC라….”
관심이 동했다.
어쩌면 NPC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