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이등석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암흑이 펼쳐졌다.
다행히도 이등석에는 마법사가 있었는지, 희미한 불빛이 존재했는데 그 주변으로 모여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원은 대략 잡아 열 명 정도일까.
플레이어들은 경계심이 짙은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이 아군인지 혹은 적인지 재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일등석에 있는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
‘이래선 대화도 성립되지 않겠는데.’
서로가 이렇게 쫄아 있어선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된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정면을 향해 한 발짝 옮겼다.
내 행동에 상대는 화살의 시위를 잡아당기며 이쪽을 향해 조준했다.
“멈춰라!! 우리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그들은 바짝 긴장한 채, 버럭 소리 질렀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들이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는 대목.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앞을 향해 발걸음을 내뻗었다.
“이, 이쪽은 분명 경고했다! 이를 어긴 건 그쪽이니 원망은 마라!”
촤악!
그의 외침을 끝으로 수발의 화살이 쏘아졌다.
스킬이 발동하며 화살촉에서 화염이 일어났다.
위협적인 공격인 건 부정할 수 없었으나, 40층대를 등반하는 플레이어의 수준을 고려하면 어디까지나 제압을 최우선시하기 위한 일격.
그것만으로도 대화를 할 여지는 남아있었다.
적어도 이쪽을 완전히 살해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무리 제압 목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해도 누구 앞에서 명령이야.
나는 지면을 박차고 화살을 향해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낯빛이 되었다.
화살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가는 행위는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몸을 측면으로 비틀어 스쳐 지나가는 화살을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는 손에 힘을 주자, 화살은 산산조각이 났다.
좌석을 가뿐히 즈려밟고는 궁수를 향해 니킥을 날렸다.
그 충격으로 나가떨어진 궁수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피를 울컥 토했다.
“역시 말로 해도 못 알아듣는 놈들한테는 매가 직빵이라니까.”
손을 탈탈 털며 중얼거리자, 뒤늦게 다가온 소녀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사람 죽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괜찮아. 원래 사람은 잘 안 죽어.”
“어련하시겠어.”
소녀는 피식거리며 손에 쥔 스태프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으로 수십 개의 도깨비불이 생성되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뒤늦게 등장한 소녀의 모습에 옆에 있던 유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첨 보는 얼굴이네요.”
“아, 나랑 같이 특등석에 있던 애야.”
“흐음... 그런가요.”
내 말에 유채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녀를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두 눈에서 불꽃이 튈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특등석이 아니라 일등석에 배치되었던 게 그렇게도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인가?
하긴 나라도 내 실력으로 특등석에 배치되지 않고 엉뚱한 사람이 있었다면 불쾌해질 법도 하니까.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잠시, 유채아는 눈빛을 사그라뜨리며 되물었다.
“흐음, 저희 혹시 어디에서 보지 않았나요?”
“그냥 오다가다가 어쩌다가 본 게 아닐까. 언니처럼 유명인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잖아.”
“어, 언니요?”
뜬금없는 호칭에 유채아는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스태프를 타고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언니지. 안 그래?”
“.......”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아니, 유채아는 언니인데 나는 호칭이 왜 아저씨야? 보기에 내가 그렇게 삭은 얼굴이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쯤,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를 알아봤는지 이등석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시, 신한별? 어째서 신한별이 여기에...?”
“잠깐만 유채아도 있잖아!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음 누군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이등석에는 왜 저분들이?”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인지, 플레이어들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의 안에서는 도망칠 자리가 없다는 깨달은 플레이어들은 사색이 되었다.
영락없이 궁지에 몰린 생쥐 꼴.
나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다들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난 이등석에는 관심 없어. 관심 있는 건 이 너머에 있는 것뿐이지.”
플레이어들을 가로질러 삼등석의 입구로 향하자, 그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변했다.
“하,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건 괴수....”
“어, 알고 있어. 그래서 가는 거야. 너희들도 뻔히 알고 있잖아. 괴수를 막지 않으면 산소 부족으로 다 죽는다는 건.”
“그렇지만 저기에 들어가는 것도 뻔하잖아!”
누군가의 외침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닥쳤다.
산소는 점점 떨어져 갔으며 전기가 단절돼서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와중에 괴수까지 나타났다.
당장 목숨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니, 주저하게 될 만도 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석에 앉아서 뒈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미안한데 그런 죽음이라면 사양인걸.”
“..........”
“하나만 말한다. 따라와서 걸리적거리지 않을 자신 있는 사람만 따라와. 강요는 안 할 테니까.”
탑에 들어와서 남들과 같은 선택지만 고르고선 끝까지 등반할 수 없다.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탑은 만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니까.
내 발언에 고무된 플레이어들이 뒤로 따라왔다.
이윽고 나는 삼등석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철컥!
* * *
열차의 삼등석은 이전에 봤던 좌석과는 달리 상당히 지저분했다.
제대로 된 자리는커녕, 벽에 어정쩡하게 달린 안전 벨트가 전부.
낡을 대로 낡은 창밖 너머로 빠르게 넘어가는 풍경만이 그나마 이곳이 열차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열악함의 끝을 달리는 풍경 속에서 흉측하게 생긴 괴수와 플레이어들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당한 모양인지, 바닥에는 플레이어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파앗!
바닥에서 쓰러진 플레이어가 숨을 잃자, 섬광이 번뜩이며 시신이 사라졌다.
‘지구로 돌아간 건가.’
탑에서 죽으면 다시 지구로 송환된다.
물론 탑보다도 지구가 더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지구가 더 생지옥일지도 모르지.
비록 여기에서는 죽었지만, 지구에서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길 기원하며 나는 발길을 옮겼다.
“어서 구해야겠네.”
괴수와 함께 전투를 벌이고 있는 플레이어는 총 네 명.
한 명, 한 명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게이트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괴수를 상대한다고 정신이 없을 테니까.
고민은 짧았다.
“후....”
숨을 길게 내뱉고는 정면을 향해 뛰쳐나갔다.
검을 손가락으로 튕겨 스틸레토로 전환한 다음, 괴수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콰아악!
검이 관자놀이를 관통하고서 사선으로 비튼 다음 세게 내두르자 괴수는 손쉽게 쓰러졌다.
단 일격.
괴수를 쓰러뜨리기까지 단 3초도 걸리지 않아 벌어진 상황에 배후에서 따라오던 플레이어들은 기세에 힘입어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유채아와 소녀.
유채아가 채찍을 휘둘러 괴수들의 행동을 봉인하자, 그 틈을 노리고 소녀가 흑염을 쏟아부었다.
그대로 쓰러진 괴수의 시체는 다시금 소녀의 사역마로서 부활해 우리의 전력이 되었다.
“아저씨! 삼등석 플레이어들의 안전은 확보됐어!”
“그래.”
뒤이어 들린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걱정했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는 고개를 돌려 괴수를 뿜어내는 게이트를 바라봤다.
여기서 아무리 괴수들을 상대한다고 해도 결과는 변함없다. 오히려 쓸모없는 체력만 빼는 일, 그리고 호흡이 거치면 거칠수록 열차 내의 산소량은 급격히 줄어든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인을 처리해야 했다.
“이쪽은 잘 부탁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괴수들의 틈을 노리고 쇄도해들었다.
내 의중을 파악한 모양인지, 괴수들은 서로 뭉치고 뭉쳐 일종의 바리게이트를 형성해냈다.
어떻게든 게이트에 접근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
“소용없어!”
나는 힘차게 소리를 지르며 괴수의 어깨를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마음 같아선 더 높게 뛰어오르고 싶지만, 열차의 구조상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열차의 벽을 강하게 박차고는 지그재그 형태로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열차는 아무리 강한 충격을 내도 박살나지 않는다. 내 힘을 전력으로 발휘하기에는 딱 좋은 기회였다.
벽과 창틀을 박차고 나아가자, 가속력이 붙으며 내 몸은 더욱 빨라졌다.
게이트와 마주하기 직전.
다시금 손가락을 튕겨 대검으로 변환한 다음, 힘차게 내두른다!
촤아아악!
가속력과 함께 내 힘이 합쳐지며 게이트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벌어진 균열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거미줄처럼 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박치기로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쿠웅!
그 일격을 마지막으로 게이트는 완전히 소멸했다.
“쓰읍, 아파 죽겠네.”
나는 완전히 소멸한 게이트를 확인하고는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섰다.
혹시나싶어 이마를 짚은 손바닥을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출혈은 없었다.
‘고작 게이트가 뭐 이리 단단해.’
슬쩍 뒤를 돌아보자, 유채아와 소녀를 중심으로 플레이어들이 합심하여 다른 괴수들도 연이어 쓰러졌다.
저대로 내버려 둬도 사상자 없이 몇 분 안에는 잔당을 소탕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그렇게 세게 걷어찼는데도 안 부서진 거 보니까. 어지간히도 딱딱한가 보네.”
나는 고개를 돌려 삼등석의 벽을 바라봤다.
게이트를 향하면서 있는 힘껏 박찼는데도 불구하고 열차의 벽에는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아니,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는 건 좀 오바고 어느 정도 금은 생겼다.
그것마저 빠른 속도로 복구돼서 문제지.
이래서는 열차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방법이야. 차차 생각해봐야지.’
그들을 돕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갑작스레 팔에 착용한 팔찌가 떠올랐다.
39층을 클리어하면서 얻은 보상.
〈투명 팔찌(A+)〉
- 발동 시 [투명 질주]를 3.5초간 할 수 있습니다.
- 투명 질주 시, 모든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또한 투명 질주 발동 시에는 상대방이 사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발동 시에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물리적인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투명 팔찌의 설명을 다시 머릿속에서 되새긴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열차의 벽을 바라봤다.
“어?”
혹시 이거... 발동하면 열차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고민을 오랫동안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오랜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아티팩트를 발동함과 동시에 열차의 벽을 향해 팔을 쭉 내밀자, 그와 동시에 열차의 벽을 관통하는 내 손.
나는 열차의 천장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나한테도 기회가 찾아온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