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40화 (140/175)

제140화

〈79채널- 40층 전용 채널〉

- 야야!! 대박 소식 갖고 왔다!

⤷ 아앗…. 다른 사람들이 다 모이는 40층에서 방구석에 앉아 커뮤니티 하는 건 좀….

⤷ 확실히 대박이긴 하네;;

⤷ ㅋㅋ 인싸들은 다들 먹고 마시고 사랑도 나누고 놀던데

- 아ㅋㅋ 방구석 히키코모리한테는 커뮤니티가 축제라고

- 거울 치료 ㅆㅅㅌㅊ

-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신협 떴음

⤷ 엥? ㄹㅇ? 신협 볼 수 있음?

- ㅇㅇ 지금 신협하고 타짜들 도박판 열렸음

⤷ 도박ㅋㅋㅋㅋㅋ 돌랐?? 진짜 신협 은행 오픈이냐ㅋㅋㅋ

⤷ 돈이 무료라고ㅋㅋㅋㅋㅋ

- 아, 지금 그 자리에 있는데 누가 이길지 내기빵도 하네

⤷ 누구 골랐음?

⤷ 당연히 타짜들이지. 싸움도 잘하는데 도박 정도는 못하겠지.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박판은 나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어, 어떻게….”

“뭔가 약은 수가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내가 질 리가 없는데.”

“으아아아아! 내 돈! 내 돈!!”

함께 도박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전부 잃고 나서야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나를 전투만 잘하는 놈이라고 우습게 생각한 모양인데, 그렇게 얕잡아봤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지구에 있을 적에 내 수입원이 이거였는데 뭘.’

생지옥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지구에서는 정부가 몰락하면서 그 뒤로는 범죄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처벌할 사람이 없다.

그걸 이용해 전세계에서는 탑에서 나온 플레이어들을 위주로 테러 집단이 주류를 일으켰다.

괴수도 괴수지만, 같이 지내는 사람마저 믿을 수 없는 환경.

그런 악독한 환경 속에서 남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눈썰미와 각종 손기술을 배웠었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물이었다.

“끝났네.”

손에 쥔 패를 앞으로 내밀며 나직이자, 내 카드를 바라본 플레이어들은 눈을 번쩍 떴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라고?”

“아니, 이게 가능해?”

플레이어들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세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심하면 뭐 해. 안 들키면 장땡이지.’

심증만 있을 뿐이지 물증은 없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나는 피식 웃으며 도박판에 있는 물건을 싹 쓸어 담았다.

이걸로 즐길 것도 충분히 즐겼다.

“이렇게 즐긴 것도 오래간만이네.”

탑에 들어온 직후로는 등반에만 몰두해서 이렇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름 진귀한 경험이었다.

나름 즐긴 채, 자리에 돌아가자 테이블 위에서 빵빵한 뱃살을 내보이며 누워있는 둘리의 모습이‘ 보였다.

“어, 한별 이제 왔나! 놀러 간 사이에 한별 몫 전부 먹어뒀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거리며 둘리를 뒷목을 집어 올렸다.

“누가 먹는 테이블 위에 누워있으래.”

그대로 의자에 앉히자, 옆에 있던 유채아가 둘리의 뱃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식사도 전부 마쳤는데 뭐 어때요.”

“습관 나빠져.”

“그런가요.”

간략하게 대답하자, 유채아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걸로 식사도, 유흥도 전부 마쳤겠다. 고개를 슬쩍 돌려 40층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내가 시간을 의식한 걸 알아차렸는지 유채아는 손바닥을 짝하고 치며 자리를 일어섰다.

“다음 층에 가기 전까지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슬슬 쉬셔야겠죠?”

“아무래도 그래야지. 이 녀석도 많이 피곤한 거 같고.”

식곤증이라도 왔는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둘리를 가리키자, 유채아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둘리도 피곤했나 봐요.”

“그야, 저번 층에서 많이 움직였으니까. 피곤할 만도 하겠지.”

새벽 내내 잠을 자지도 못하고 활약만 했으니까. 지금쯤 졸음이 오는 것도 당연한 셈이었다.

내 말에 유채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만났는데 여기에서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었는지, 괜스레 풀 죽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영원히 못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다음 층에서 보자고.”

“다음 층…. 아! 네, 좋아요!”

그걸 알아채고 먼저 말을 건네자, 유채아는 화색이 되어 대답했다.

각자 사정이 있었던 예전이면 몰라도 이제는 같이 등반하는 처지다.

비록 떨어진다고 해도 등반하는 속도가 뒤쳐지지만 않으면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다. 탑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

’그러고 보니 플레이어 중에서도 커플들은 일부러 등반 속도를 맞춘다고도 했으니까.‘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언젠가 들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는데 41층이 단체층이 아니라 개인 층이면 어떡하지?

괜히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무시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 * *

〈41층입니다.〉

〈41층의 클리어 조건은 달리는 열차를 멈추는 것입니다.〉

〈기차를 멈추지 못할 시에는 계속하여 재앙이 일어납니다.〉

휴게 공간에서 잠을 취한 직후, 우리는 강한 섬광과 함께 다음 층에 도착했다.

눈을 뜨자 열차의 내부 풍경이 펼쳐졌는데, 둘리와 나는 나란히 객석에 착석해 있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

게다가 팔을 거치하는 곳에는 신선한 과일과 마사지기도 놓여있었다.

누가 봐도 엄청난 퀄리티의 좌석이었다.

“일어나 봐.”

나는 옆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둘리를 흔들어 깨웟다.

뒤늦게 일어난 둘리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별? 여긴 어딘가?”

“어디긴 어디야. 41층이지.”

“아, 벌써 도착한 건가.”

둘리는 그 말을 끝으로 옆에 있던 과일을 입에 집어넣었다.

일어나자마자 찾는 게 먹을 거라니, 순간 여기가 휴게 공간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태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 당황해서 호들갑을 떠는 것보단 낫겠지.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때마침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무력, 활약, 명성 등등 종합적인 수치를 따져 각 플레이어의 좌석이 배치됩니다.〉

〈현재 신한별 플레이어의 좌석은 [특등석]입니다.〉

※ 변동이 가능하니, 주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여기가 특등석인가 보네.”

썩 나쁘지 않은 자리 선정이었다.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저씨 안녕, 여기에서 또 만나네.”

“어? 너도 특등석이었어?”

“물론이지. 날 우습게 보면 큰코 다친다고.”갑자기 나타난 소녀의 모습에 나는 얼떨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도 좋은 모양인지 소녀는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문득 떠올라 유채아를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특등석에는 좌석이 두 개인 걸 보니 여기에는 소녀와 나밖에 없는 듯했다.

’유채아는 뒤에 있나.‘

유채아의 실력으로 보건대, 아마도 특등석 다음인 일등석에 있겠지.

그런데 유채아보다도 이 소녀가 더 앞선다고?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녀는 스태프로 어깨를 치며 째려봤다.

“지금 실례인 생각했지. 예를 들면 내가 왜 특등석인가 하는…”

“잘 알고 있네?”

“치, 아저씨도 내 실력 보면 놀랄걸.”

“알았어, 알겠어.”

녀석의 말에 나는 가볍게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모로 의아스럽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열차에서 자리 배치는 실력뿐만 아니라 인기나 활약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서 따진다고 하니까.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보다도 이렇게 시답잖은 대화나 나눌 때가 아니다.

“일단 이번 층부터 클리어하고 봐야지.”

시스템의 언급에 따르면 달리는 열차를 멈추면 이번 층을 클리어할 수 있다.

적어도 곁으로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는 임무.

“당장 기관실에 들어가서 멈추면 되잖아. 아저씨 맞지?”

“그런 셈이지.”

솔직히 말해 탑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41층을 마무리하도록 설계해두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도를 안 할 순 없었기에 움직이기로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둘리한테 대기하라고 하고는 기관실을 향했다.

다행히도 기관실은 특등실의 바로 옆 칸이었다.

끼익!

기관실의 문을 따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두운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의 풍경.

객실에서는 빠르게 스쳐 가는 옆 풍경만 볼 수 있었기에 정면의 풍경은 나름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저씨… 이거 큰일 난 거 같은데 이 열차 혼자서 움직이는 거 같아.”

“혼자서라고?”

“어, 기관사가 안 보여.”

소녀의 말대로 기관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밤중을 혼자서 움직이는 열차, 마치 괴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현재 달리는 열차의 시속은 80KM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속도가 점점 증가했다.

“아저씨 혹시 열차 조종할 줄 알아?”

“아니, 너는?”

“나야 당연히 모르지!”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소녀 역시 열차를 다룰 방법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계적으로 열차를 멈추는 방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방법은 물리적인 방법뿐.

나는 있는 힘껏 기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큰 굉음과 함께 기계가 박살이 나며 연기가 올라왔다.

“아, 아저씨 뭐해! 갑자기 그걸 왜 박살 내고 있어!”

“뭐긴 뭐야. 기계가 고장 나면 당연히 쳐서 고치는 건 상식이잖아.”

“미… 미친!! 상식은 무슨 상식이야! 누가 그걸 상식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나라가 어딨어! 불이라도 나면 어쩌라고! 아… 이거 어쩌지 뭘 잘못 누르기라도 했으면 큰일인데….”

소녀는 내가 주먹을 휘두른 기계를 바라보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하나 그런 노파심도 잠시, 박살난 기계는 빠른 속도로 수복되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을 돌리기라도 한 듯한 광경.

“어…?”

상황을 지켜보던 소녀는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평범한 열차는 아닌 모양이었다.

슬쩍 벽면을 뜯어내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열차의 벽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사 벽면을 부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해도 다시 수복될 테니, 탈출로로는 불합격이었다.

바깥에서 요청을 청할 수도 없으며, 안쪽에서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난공불락 요새 그 자체.

탑에서 구조를 짰을 테니, 심상치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 밖의 문제였다.

’역시 탈출 수단을 안에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시선을 열차 안쪽으로 옮기려던 그때였다.

〈다섯 재앙 중 첫 재앙이 일어납니다.〉

〈맨 후미인 4등석 열차를 떼어냅니다. 따라서 4등석 열차의 탑승자들이 탈락합니다.〉

이어진 시스템 창을 보며 나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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