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보상이 지급됩니다.〉
시스템 창과 함께 오색빛 임팩트가 눈앞에서 번뜩였다.
휘황찬란한 빛깔 앞에서 기대감이 증폭했다.
탑의 저층이면 몰라도 이제 40층에 들어섰다. 슬슬 탑의 중반부에 들어섰는데, 과연 어떤 보상이 지급될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기다리고 있자, 허공에서 일어난 빛무리는 더욱 강해졌다.
이윽고.
파앗!
절정에 다다른 빛무리는 폭죽처럼 터지면서 새하얀 형체가 내 손아귀에 쥐어졌다.
〈투명 팔찌(A+)〉
- 발동 시 [투명 질주]를 3.5초간 할 수 있습니다.
- 투명 질주 시, 모든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또한 투명 질주 발동 시에는 상대방이 사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발동 시에는 상대방에게 어떠한 물리적인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투명질주라 나쁘진 않네.’
시스템창을 통해 설명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3.5초라고 하니 너무 짧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초보자적인 발상이었다.
실제로 전투에 들어가면 사경을 다루는 일에는 단 1초, 2초가 목숨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3.5초간 상대의 유효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적은 이쪽의 실체를 보고 느낄 수 없다.
이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 짧은 사이에 암살마저도 가능케 할지 모르는 아이템이니까.
“물론 사용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남는 시간에 천천히 연습하면서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싱글벙글 웃으며 주먹을 쥐고 있자, 이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유채아가 말을 걸어왔다.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좋은 아티팩트가 떴나 보네요.”
“어?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오, 그것참 잘됐네요.”
유채아는 박수를 짝하고 치며 기쁜 듯이 외쳤다.
제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 유채아는 내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좋은 일도 있었으니, 기념해서 맛있는 거나 먹어요. 주변에 좋은 맛집 알아봤거든요. 거기로 안내할게요.”
“맛있는 거? 한별 뭐하나! 서둘러라 간만에 먹는 밥인데 어서 가자!”
유채아에 발언에 둘리도 가세해 내 팔을 끌어당겼다.
웬일로 쿵 짝이 맞는 둘의 모습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끌려 따라갔다. 하여간 녀석도 먹을 거에 관련이 되면 난리법석이라니까.
그렇게 우리는 공원에서 벗어나 유채아를 뒤따라갔다.
40층의 전체적인 구조는 36층과 비슷했기에 상업지구까지는 금방이었다.
“어서 옵쇼!”
“싸게 싸게 해줄 테니까. 한 번만 들러주세요!”
“네에~ 손님들 몇 분이신가요? 경관 좋은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음식점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NPC들이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호객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치열한 전투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플레이어들은 각자 술잔을 기울이며 화합을 다졌다.
다들 아는 일행인가 싶었는데, 도중에 합석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옛날부터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처음 보는 사람과 마시고 있을걸요.”
“그래?”
“네, 아무래도 탑의 안이니까. 옛날부터 아는 동료라고 해도 이미 죽은 경우가 흔하니까요. 그리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다들 즐기는 거죠.”
확실히 내가 특이케이스라 그렇지, 탑에서는 인맥을 다져봤자 고인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같이 먹고 자던 동료가 눈먼 칼에 찔려 죽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나는 신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36층에서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만날 기회가 있긴 있었지만, 그때는 등반한다고 바빴기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는 괜찮아? 다른 사람들하고 있지 않아도?”
“저야 시끌벅적한 자리보다는 조용한 자리가 좋아서요.”
“뭐 그렇다면야.”
우리는 적당한 가게를 찾아 들어섰다.
중심지로부터 떨어진 외각에 위치한 가게였는데, 우리가 들어가자 종업원이 활짝 웃으며 반겼다.
“어서 오세요. 총 두 분이신가요?”
“아니다! 세 명이다!”
종업원의 말에 둘리가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외쳤다.
그 모습에 종업원은 간드러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꼬마 드래곤까지 해서 총 세 분이시군요.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
“하, 한별! 들었나! 처음으로 드래곤이라고 해줬다. 저 사람 좋은 사람이다!”
드래곤이라는 발언에 둘리는 두 주먹을 연신 흔들며 내 팔을 잡았다.
처음으로 들어온 드래곤이라는 말에 둘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콧김을 내뿜었으며, 그와는 반해 나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사회생활…?
‘역시 서비스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나라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런 립서비스가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NPC의 위대함을 느끼며 적당히 음식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음식이 줄줄이 들어오자, 둘리는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는 침을 흘렸다.
“와! 맛있겠다! 한별 잘 먹겠다!”
둘리는 그 말을 끝으로 고기를 입에 넣었다.
아무래도 저번 층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허기가 진 모양이었다.
유채아는 둘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접시에 각종 야채를 담아 건넸다.
“고기 말고도 샐러드 같은 것도 같이 드셔 보세요.”
“윽… 원래 야채는 안 먹는데, 채아가 준 거라 특별히 먹는 거다!”
“그럼요. 알고 있을게요.”
평소에는 내가 건네도 먹지 않는 야채들인데, 저렇게 먹인다니.
나보다도 육아에 재능이 있는 거 아냐?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채아의 배우자는 복 받은 게 아닐까.
간만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꽤 입에 맞았다.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쯤, 바로 옆자리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미친 이걸 전부 딴다고?”
“탑에 와서 사짜를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구만.”
“으하하핫! 이 기세를 몰아서 나머지도 따 주마!”
갑작스레 들려온 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옆자리에서는 작은 도박판이 열리고 있었다.
가게에서도 허락한 모양인지, 종업원 역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유채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도박이네요. 그러고 보니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지닌 물건을 걸고 하는 도박이.”
“그래? 너도 관심이 있나 보네.”
“그야 흥미롭잖아요.”
유채아의 설명에 나는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테이블 위에는 각종 아티팩트들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한 방 주의.
말을 등반하는 플레이어로서 안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게 정상적인 편이다.
지구에서 탑으로 건너오는 사람 중 대다수는 강력한 힘과 지위를 노리기 위해 등반한다. 불안전한 탑을 등반하는 것 자체가 언제나 도전과 위험성을 동반하는 행위.
탑의 최상위층까지 도달한 플레이어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았다.
“나도 한 번 해볼까.”
“네? 한별 씨도요?”
“재밌어 보이잖아.”
기왕 온 탑인데, 유흥이야 좀 즐길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내가 중간에 난입하자,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어엉? 뭐야. 늦게 왔으면 얌전히 순서나 기다리라고.”
“음? 이거 어디에선가 본 얼굴인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자, 잠깐만 저거 신한별 아니야?”
“신한별이라고?”
내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에 가게에 있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한데 집중되었다.
그리고 소란은 소란을 물고 더욱 커졌다.
“와씨 신한별이라고? 여기에서 실물을 다 보네.”
“사진으로 본 것보다도 더 잘생긴 거 같은데? 그러면 항상 같이 있던 그 드래곤도….”
“어허이, 예끼! 이놈아. 그 도마뱀이 드래곤일 리가 있겠어? 그냥 비슷한 종족이야.”
“하긴 신협단인가 뭔가 하는 놈들의 엄살이겠지.”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커뮤니티에서 점점 퍼지기 시작했는지, 점점 가게 앞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이 되어버린 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참여하겠슈? 보아하니 판돈도 많이 지닌 거 같은데, 같이 어떻소? 보아하니 관심도 있는 거 같은데.”
쉽게 해석하자면 쫄리냐는 물음.
당연히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쫄리면 뒈져야지.”
“껄껄, 이 친구 호쾌하구만. 괜히 얻은 유명세가 아니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들었지? 그 유명한 신한별이 참가하신단다! 판을 깔아라!”
“예엡!”
아무래도 나와 대화를 나눈 플레이어는 이쪽 세계에서 유명한 모양인지, 일사천리로 테이블이 정리되었다.
점점 인파가 쏠리자, 혹여라도 싸움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종업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플레이어들이 날뛰기 시작한다면 재앙일 테니까.’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종업원에게 적당히 돈을 쥐여줬다.
“이건 음식값이야. 선불할게.”
슬쩍 고개를 내려 금액을 확인한 종업원은 되려 난처한 듯 내 시선을 마주했다.
“소, 손님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남는 건 팁이야.”
내 말에 종업원은 미묘한 웃음을 짓고는 카운터에서 귀중품을 챙겨 슬쩍 자리를 피했다.
설마 내가 깽값까지 미리 지불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봤던 무협지 속에서도 싸움을 일으키기 직전에 점소이한테 깽값을 미리 치르고 하던데.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부족한 금액이라면 다시 따면 되는 일이다.
“신한별 플레이어! 전부 됐습니다. 오시면 됩니다.”
때마침 테이블을 정리하던 플레이어가 혼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따라 자리에 착석하자, 꽤나 쟁쟁해 보이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플레이어로서가 아닌 타짜로서 이름을 떨칠 듯한 비쥬얼의 사람들.
내가 입장하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
내게서 어떻게 하면 많이 뜯어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 쓸모없는 고민은 안 해도 될 텐데.
그야.
나는 손에 쥔 패를 전부 앞으로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사짜들은 당혹스러운 낯빛을 띠었다.
도대체 내 행동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기 바쁜 얼굴들이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간략하게 말을 내뱉었다.
“올인(ALL IN).”
자잘하게 승부를 보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꿀꺽.
내 선언에 테이블 위에는 타짜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