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36화 (136/175)

제136화

- 아니... 이게 무슨 말임;;

- 선 씨게 넘네

⤷ 신협의 말씀이면 따르는 게 당연한 거슬! 갈!!!

⤷ ㅋㅋㅋㅋㅋ 마족 측 걸려서 싱글벙글

- 신협 덕에 이번 층도 손쉽게 끝내겠네

- 말도 안 되는 탄압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달라!! 이건 공산주의다!

- 아ㅋㅋㅋ 그러게 라인 잘 타야지

- 솔직히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함? 어이 개털리는데

⤷ ㅇㅇ 탑에서 힘 쎈 사람이 깡패지. 꼬우면 방해해 보던가ㅋㅋㅋㅋ

⤷ 정보: 이게 맞다

내 한 마디에 커뮤니티는 정확히 반반으로 의견이 갈려 찬반토론이 일어났다.

당연히 의견에 반대하는 측은 천사 측 진영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이었다.

물론 당장 나와 대면하고 있었다면 이런 반발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커뮤니티는 익명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무슨 비판을 하든 욕설을 내뱉은 그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들도 그 점을 노려 불만을 토로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의견을 불살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건 상대방 측도 납득하게 해야지.’

이유가 타당하면 몰라도 쓸모없이 적을 만들자는 주의는 아니라서.

채찍이 존재한다면 이를 회유할 수 있는 당근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 물론 불만이 계신 분들이 많은 거 같으니, 천사 측 진영분 중에 따로 연락하시면 소소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 와,, 그저 GOAT

⤷ 신협이 아니라 갓협

⤷ 협을 지키실 줄 아는 본좌ㄷㄷ

⤷ 오우, 믿고 있었다고!!!!!

- 속지 말자. 저거 개인 연락처 받아내서 직접 찾아갈 고도의 전략임ㅇㅇ;;

⤷ ㅋㅋㅋㅋ 이 새끼 마족 진영 골랐네 혼자서 꿀빨려고

- 신협제 종합선물세트 기대된다고!!

- 구라 안 치고 탑 보상보다도 훨씬 좋을 거 같은데

- 이정도면 기부 천사 아님?ㅋㅋㅋㅋ

이어진 내 발언에 커뮤니티는 활활 타올랐다.

천사 측 진영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내게서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마족 측 진영을 선택하면 이번 층을 날로 먹을 수 있다.

게다가.

‘나도 필요 없는 물건들 재고 정리도 할 수 있고.’

안 그래도 포켓 안에 필요 없던 물건이 쌓아가던 참이었다.

필요 없는 포션이나 아티팩트 몇 개를 던져주면 되리라.

나한테는 쓸모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물건일 테니까.

나야 정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거야 하늘 정원의 시스템을 사용해서 무한 복제를 하면 된다.

이거라면 서로 윈-윈-윈 전략이 아닐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단 큰불은 해결했네.”

아무래도 내 제안이 솔깃했던 모양이었다.

자리를 이탈했던 플레이어들이 다시 제자리로 귀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한시름은 놓았다.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쯤, 폴리모프를 이용해 숨어있던 둘리가 외쳤다.

“하, 한별! 저기에 예전에 봤던 인상 나쁜 아줌마가 있다!”

“아줌마? 아아, 그놈 말이지.”

둘리의 말에 잠시 의문을 가지다 말고, 이내 호칭의 상대를 깨닫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의 눈은 정직하다는데 옛말치고는 틀린 말은 없다.

미리 준비한 망원경을 이용해 둘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자, 천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둘리가 보기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을 얼굴로 직통했나 보다!”

“흐흐, 그러니까. 이번에는 네 말이 맞는 거 같네.”

나는 둘리의 표현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녀석 디스에도 재능이 있었네.

마족 측에 숨겨둔 첩자(플레이어)들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탓인지, 천사는 악귀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저쪽이 우리보다도 더 마족 같은데.”

나는 망원경을 통해 천사를 바라보며 싱겁게 웃음을 지었다.

마족에 숨겨둔 첩자로 우리를 일망타진할 생각으로 싱글벙글했을 텐데, 그 계획이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생겼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겠지.

과연 그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적이다! 준비, 지금이다! 쏴라!”

사도들이 성벽에 인접하자, 43호는 검을 뽑으며 외쳤다.

“쏴라!”

43호의 우렁찬 외침에 병사들은 복창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미리 준비해둔 총화기가 일시에 불을 뿜었다.

엄청난 화력이 쏟아지자, 전열에 있던 사도들은 차례차례 쓰러졌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위력에 가슴 어디선가 통쾌하기까지 한 쾌감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어쩔 수 없는 남자의 그것.

그 느낌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도 느꼈는지, 그들의 표정에는 이전과는 달리 홀가분해 보였다.

“방심하지 마라! 놈들은 아직 건재하다!”

때마침 들려온 43호의 외침에 우리는 흐트러진 기강을 다시 잡았다.

그 말대로 병사들이 쓰러뜨린 것은 선발대에 불구했다.

아직 뒤에는 많은 전력이 남아있었다.

승리를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제2열 준비하고 쏴라!”

연습한 대로 앞에 나서 있던 1열이 빠지고, 뒤에서 미리 장전을 완료한 2열이 나타났다.

또다시 화포가 불을 뿜는다.

“끼에에에엑!”

포탄이 정확히 얼굴에 적중해 폭발하자, 사도는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단순한 비명 소리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소리는 신경을 갉아 먹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며 다른 병사와 함께 포탄을 날랐다.

내가 나서기에는 아직 멀었다.

아무리 잔챙이를 사냥해봤자, 시간 낭비다.

무릇 공성전이란 수성하는 입장에서는 적 지휘관의 대가리를 따내야지만 승리를 쟁취하는 것.

하지만 천사는 배후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서기에는 이르다.

‘그리고 상대가 아직인데, 내가 나서는 것도 멋없잖아.’

물론 부추겨놓고서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미리 커뮤니티에 적어둔 신호를 주자, 각 병력에 숨어있던 플레이어들이 각자 권능을 내뿜으며 전장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다.

한 명 한 명이 탑의 최전선에 뛰어들만한 강자.

그리고 전투에서 강자의 존재는 일인 군단과 다름없는 힘을 자아낸다.

슈우웅, 콰아아앙!

플레이어들이 나서자, 팽팽하게 흘러가던 전황이 순식간에 변했다.

사방에서 뇌전과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사도들은 하나둘씩 쓰러진다.

예상 밖의 상황에 병사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들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야 플레이어들의 무력을 잘 알고 있는 것에 반해, 병사들은 플레이어에 관해서 잘 모른다.

그렇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플레이어들에 관해 의문을 지니긴 했으나 어찌 됐건 아군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병사들의 표정은 조금 환해졌다.

다만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묘한데.”

비록 당장은 수적 열세는 아니지만,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사도의 질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팽팽해 보일지도 몰라도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패배에 다다를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천사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마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듯.

혹시 몰라 기감을 끌어올려서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콰앙!

상당한 굉음과 함께 성벽이 뒤흔들렸다.

사방에 설치된 포와 전선에서 나가서 활약하는 플레이어 덕분에 이 이상 접근하는 사도는 없을 텐데?

그런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 성벽 위로 사도들의 얼굴이 드리웠다.

“이, 이봐! 조심해!!”

“으아아악! 내, 내 팔이!”

“놈들이 포에 접근하는 것만은 제지해라!”

성벽을 타고 기어오른 사도들은 신성력을 남발하며 훼방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어찌 된 일인지 성벽을 타고 나타난 놈들은 가장 먼저 쓰러졌으리라고 판단한 사도들이었다.

놈들은 얼굴이 박살 나고, 상체와 하체가 양분되어 피를 흩뿌렸음에도 멀쩡히 움직였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상황.

나는 그것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생명력이 왜 저래.’

가능하면 끝까지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둘리야, 이번에도 네가 활약을 좀 해야겠는데.”

“활약? 나한테만 맡겨라! 둘리가 죄다 해결하겠다!”

내 말에 둘리는 기다렸다는 듯 팔목을 걷는 시늉을 하며 알통을 내세웠다.

물론 그래봤자 나오는 건 물렁한 살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둘리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쳤다.

“알겠으니까. 보여주고 나서 말해.”

“둘리만 믿어라!”

둘리는 그 말을 끝으로 성벽 위로 도약했다.

그리고는 강렬한 섬광과 함께 그 자리에는 성체화한 둘리가 두 눈을 번뜩이고 서 있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둘리의 모습에 병사들은 경악과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래곤님께서 오셨다!”

“크흑… 믿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병사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둘리를 향해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환성에 흥이 오른 모양인지 둘리는 브레스를 내뿜으며 활공했다.

화르르륵!

흑염은 사도들의 몸에 붙어 화르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한 번 붙은 흑염은 뼈가 가루가 되어서야 꺼진다.

성벽에 오르던 사도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저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블랙드래곤 앞에서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둘리에 기세에 힘 얻어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각자 지닌 총화기를 뿜어냈다.

한 번 오르기 시작한 기세는 멈출 줄 모르고, 성벽 너머를 불바다로 만들어냈다. 어중간하게 남겨뒀다가는 방금 전처럼 역공을 당할 기회를 상대에게 주는 꼴이다.

그걸 막기 위해선.

‘상대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야지.’

바로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적을 궤멸시킬 때쯤이었다.

일순 공기가 바뀌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인지하자마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한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렸다.

시선을 올리자, 그곳에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성벽의 상공에서 천사가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벌레를 바라보듯 역겨움이 가득했다.

“비켜라!”

“진정한 용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도마뱀이 활보하는 꼴은 두고 볼 수는 없겠네요.”

이를 인지한 둘리가 손톱을 세워 길게 내리그었지만, 천사는 상관없다는 듯 손바닥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둘리의 몸은 볼품없이 튕겨 나갔다.

성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제자리에 멈춘 둘리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고민은 짧았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시, 신입! 어딜 가나! 신입!”

넋이 빠진 채,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43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천사의 앞에 다가갔다.

“많이 기다렸지.

“음? 당신은…? 아아, 그랬었나요. 누군가 싶었는데 40년 전에 봤던 그 마족이시군요.”

내 부름에 천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한데 모았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아름답다 못해 신성하다고 여겼을 테지만,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아티팩트를 꺼냈다.

내가 꺼낸 물건에 천사의 눈빛에는 탐욕이 깃들었다.

“그, 그건…….”

“이걸 갖고 싶다고 했었지?”

내가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닌 빛의 정기.

40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빛의 정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빛의 정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파지지직! 파직!

내 힘에 빛의 정기에 금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산이 조각나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천사의 눈이 파르르 떨리며 믿기지 않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지, 지금 무슨 짓을…….”

“어쩌나 네가 원하는 건 이미 사라진 거 같은데.”

나는 손아귀에 남은 유리조각을 땅바닥에 털며 도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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