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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27화 (127/175)

제127화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왕좌를 호시탐탐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인원수는 대략 열 명 정도일까.

37층을 도전하는 플레이어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

왕좌가 네 곳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쟁률이 높은 선택지를 택한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저층에서는 상상치도 못할 일이지만, 오히려 바라는 바다.

‘탑을 끝까지 등반하려면 남들과 똑같아선 안 되니까.’

언제나 남들과 필사적인 경쟁을 겨뤄온 그들이기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똑같아선 안 된다고.

남들보다도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야지만,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비록 경쟁자는 더욱 늘어났으나 내 입가에는 완만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히려 바라는 바지.”

쉽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도전도 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왕좌 앞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차가운 긴장감을 흘렀다.

37층까지 등반한 그들이기에 더욱더 잘 아는 것이다.

서로가 지닌 강함과 무력에 관해서.

왕좌를 향해 먼저 달려가면 순식간에 다른 이들의 공통의 적이 되어버릴 터.

“쳇, 신한별까지 와버렸나.”

“다른 곳에 가기엔 너무 늦었어. 적어도 이곳이라도…….”

제한 시간 10분 중 벌써 절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대치하는 와중에도 다른 왕좌는 치열한 자리 경쟁 끝에 죄다 결정난 상황.

지금부터 다른 왕좌를 노린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빠듯하다.

남은 건 보너스 왕좌밖에 없다고 판단한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비켜!”

“비키긴 뭘 비켜! 이거나 먹어라!”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권능을 일제히 발동했다.

무수한 공세가 쏟아진다.

어지간히 마음을 먹지 않은 한, 뛰어들기조차 벅찬 대규모 폭격 속에서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 상황을 지켜봤다.

플레이어들이 폭격을 가한 뒤, 아주 짧은 찰나 소강상태로 접어든 직후.

나는 검에 손을 올린 채, 불길 속으로 서둘러 뛰어들었다.

파앗!

내가 지나간 자리로 거센 강풍이 일어나며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플레이어들은 사색이 되었다.

이대로면 왕좌를 차지하는 사람은 내가 될 게 뻔해서.

플레이어들은 아주 잠깐의 시선 교환 끝에 나를 향해 무수한 포격을 내뿜었다.

발을 봉쇄하기 위해 사방에서 싱크홀이 생겼으며, 그 안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으며 차가운 전격이 사지를 묶는다.

치열하다 못해 집착마저 느껴지는 방해.

다른 플레이어들한테라면 통할지도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한다.

촤아아악!

검을 사선으로 긋자, 주변을 둘러싼 각종 방해는 순식간에 뚫렸다.

“제, 제기랄!”

“막아!”

“마지막 하나라고... 저것마저 잃으면 죽도 밥도 안 돼!”

플레이어들은 악에 받친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까지 내가 내보였던 무위를 떠올리면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덕분에 나는 편하게 됐으니 좋은 일이다.

이걸로 편하게 왕좌를 손에 얻으면 된다.

고민은 짧았다.

지면을 박차자, 순식간에 보너스 왕좌의 앞에 도달했다.

왕좌를 얻기 위해 손을 뻗으려던 그때였다.

타앗!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는가 싶더니, 기민한 움직임과 함께 누군가가 왕좌에 착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서둘러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37층에 도전하기 전에 잠깐 대화를 나눴던 소녀.

소녀는 욍크를 하며 이쪽을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또 만났네.”

그 모습에 등골이 싸늘해진 기분을 느꼈다.

‘분명히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37층에 올라오고 나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기척은 확실하게 파악 중이었다.

한데 이렇게까지 근거리에 다가왔음에도 작은 변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형형히 빛냈다.

‘적어도 3대 길드장… 아니, 유채아보다도 더 강한 강자.’

잠깐 유채아보다 강하다면…

순간 머릿속에서 한 명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탑의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던 골리엇.

그라면 이만한 강함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골리엇이 함께 있었다면 36층을 등반할 때, 유채아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보너스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 인원수 (5/5)

〈다음층으로 등반하기 위해선 상대의 왕좌를 탈취하시오!〉

그녀의 머리에는 이미 순은으로 된 왕관이 있었는데, 시스템창이 뜨자마자 소녀의 손에 금으로 된 왕관이 새롭게 쥐어졌다.

“이거 어쩌지. 마지막 남은 왕좌까지 내가 가져가 버렸네. 아저씨 미안해.”

“괜찮아. 사과하지 않아도 내가 다시 탈취하면 되니까. 그리고 아저씨 아니야.”

이게 사람 약 올리고 있어.

안 그래도 둘리와 붙어있을 때면 가끔 아저씨 냄새가 난다고 해서 신경쓰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또 들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내가 튜토리얼에서 천 년이 넘도록 보내긴 했어도 아저씨라는 말을 들을 외모는 아니다.

슬쩍 시간을 살피니 시간은 2분가량 남아있었다.

빠듯하다면 빠듯할 수도 있겠지만, 왕좌를 뺐어 다음 층에 등반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민은 짧았다.

촤아악!

제압할 작정으로 소녀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그것도 잠시, 소녀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하늘 위로 도깨비불과 같은 푸른빛의 화염이 화르르 일어났다.

도깨비불은 허공 위를 빙그르르 돌더니, 이내 이쪽을 향해 쏟아졌다.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설지도 모를 장면이었으나 둘리가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한별, 불은 둘리에게 맡겨라!”

둘리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도깨비불을 향해 흑염을 내뿜었다.

불을 이용해 상쇄해버릴 심상이었다.

하나 소녀가 다시 손을 뻗자, 도깨비불은 마치 의식을 지닌 듯 흑염을 피해 둘리의 몸에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불길에 휘말린 둘리.

“으아아아! 몸에 불이 붙었다! 아뜨뜨… 뜨겁진 않네?”

둘리는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난동을 부리다 말고,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소녀는 짙은 웃음기를 흘리며 말했다.

“너 같은 아기 돼지를 괴롭히는 취향은 없어.”

“두, 둘리는 돼지가 아니라 드래곤이다!”

“어머, 그랬어?”

두 발을 동동거리며 화를 내는 둘리에게 소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둘리와 소녀의 대치 상황을 눈여겨 살펴보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너스 왕좌를 획득할 시에는 능력치의 50%가 저하하는 패널티가 존재한다.

하지만 능력치가 제한되었음에도 소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공격을 피하고, 자유자재로 능력을 다룬다.

그것만으로도 강함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상대다.

소녀는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빗자루를 밟고 선 채 하늘을 부유했다. 그리고는 마치 지휘봉을 휘두르듯 스태프를 휘두르자 사방을 물들이고 있던 불꽃은 한데 모여 엄청난 크기의 홍염을 만들어냈다.

상당히 떨어진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열기가 다다를 정도.

“피, 피해!”

“제정신이야? 왕좌고 자시고 저런 미친년을 어떻게 상대해!”

“차라리 나중에 다시 도전하는 게 낫지. 여기에서 쓸모없이 개죽음이라도 당하면 지구로 다시 돌아가고 끝이라고!”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사색이 되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왕좌를 뺐어 다음 층에 등반하겠다는 욕망은 사라진 지 오래.

모두가 도망치는 와중에 나는 파도를 거슬러 앞으로 나아갔다.

“이걸 보면 뒤로 내뺄 줄 알았는데, 안 도망가네 아저씨?”

“저런 허접들하고는 달라서 말이지.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니까.”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검은 내 손을 거치자, 단도에서 카타나로 형태가 변했다.

머리 위로 검을 올린 채, 힘차게 베어낸다!

검기의 형태를 띄고 날아간 풍압은 홍염을 절반으로 베었다.

나는 그사이에 생긴 빈틈을 파고들어 빠르게 내달렸다. 하늘 위에는 당황한 낯빛의 소녀가 있었는데, 내 시선은 그녀의 머리를 장식한 금빛 왕관에 고정된 채였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파앗!

부족한 도약력을 메꾸기 위해 공기를 박차자, 강풍이 일어나며 소녀의 움직임이 흐트러졌다.

“윽….”

절호의 기회!

나는 소녀가 탄 빗자루에 발을 내딛고는 왕관을 낚아챘다.

〈왕좌의 소유자가 바뀌었습니다.〉

왕좌를 차지하자, 소녀의 머리에 놓여있던 왕관이 가루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허공을 휘날리던 금가루는 이윽고 왕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새빨간 망토와 함께 금으로 된 왕관이 머리에 씌워졌다.

〈능력치의 50%가 하락합니다.〉

왕관의 효과가 발동하며 허탈감과 함께 온몸에 족쇄를 채운 듯이 무거워졌다.

‘이걸 착용한 채로 싸웠다고?’

나는 소녀를 다시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왕관을 차지하자마자 평상시 몸 상태와의 괴리감으로 주저앉고도 남을 패널티였다.

하나 소녀는 나를 상대하는 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확신했다.

‘역시....’

머릿속에 생긴 위화감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갈 때쯤, 콜로세움의 천장에서부터 카운터다운이 점멸했다.

마침내 숫자가 0에 다다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제한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보너스 왕좌를 차지하여 38층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시스템창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등반한 저번 층과 비교하면 이번 층은 엄청나게 빠르게 클리어한 셈이었다.

나쁠 건 없다. 더욱 빠르게 등반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던 도중이었다.

〈보너스 왕좌를 점령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너스 왕좌를 점령한 보상이 빛무리에 감싸진 채, 손에 떨어졌다.

한껏 기대를 품으며 보상을 확인해보려던 바로 그때!

하늘에서 강렬한 섬광이 떨어졌다. 이내 그 섬광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반항하려 했으나 내 외침은 반 반자 늦었다.

“아, 잠깐……!”

〈38층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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