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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25화 (125/175)

제125화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원래라면 내가 지닌 코인으로는 구매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아티팩트였지만, 진행자 덕분에 큰 차질 없이 손에 얻을 수 있었다.

〈백룡의 투구(SS+)〉

- 수백 년 전에 죽은 드래곤로드의 뼈로 만든 투구로 어떠한 투구과 비교해도 비견할 수 없는 강함을 자랑합니다!

.〈백룡 시리즈를 연속으로 발견하셨습니다. (3/5)〉

- 아티팩트 세트의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속성 저항력+300, 내구도+200, 체력+100......)

다섯 개의 파츠 중, 이걸로 세 번째.

아티팩트를 착용하자, 확실히 이전보다도 더 강렬한 기운이 온몸에서 용솟음쳤다.

가볍게 몸을 풀며 감탄하는데, 옆에서부터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칫, 이러면 실적을 받는다고 해도 손해나 다름없는데...]

“왜? 불만이야? 불만이면 환불하고 다른 담당자로 바꿔도 난 상관없는데.”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진행자는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는 양손바닥을 비비며 고개를 숙였다.

[그럴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야 만족합니다. 신한별 플레이어도 만족하니 그걸로 된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난 또 너도 불만족스러웠다면 당장에라도 바꾸려고 했었지.”

[하하…….]

내 말에 진행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태연자약하게 반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어디든 간에 영업직은 힘든가 보다.

나는 아티팩트들을 바라보다 말고 시선을 거뒀다.

이제 수중에 남은 캐시도 없으니, 보고 있어봤자 시간 낭비다.

‘그리고 딱히 사고 싶은 물건도 없으니 뭐…….’

이만 가볼까.

이렇게까지 방치했으면 둘리도 슬슬 지루해서 난리 칠지도 모른다.

괜히 한 소리 듣기 전에 어서 가봐야지.

나는 몸을 돌려 들어왔던 문을 붙잡았다.

문고리를 붙잡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이를 지켜보던 진행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대로 나가시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따로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문제는 아니고 궁금한 게 있는데.”

[네,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물어보시죠. 물음에 대답해드릴 여유는 있답니다.]

진행자는 입에 곰방대를 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시선은 각종 과자로 만들어진 건물에 고정된 채였다.

“혹시 여기 문짝 좀 떼가도 되나? 이거 둘리한테 갖다주면 좋아할 거 같은데.”

[예? 그 문을… 말인가요?]

“어, 왜 안 돼?”

내 물음에 진행자는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진행자는 무언가를 포기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뇨, 안 될 건 없는데 그거 쉽게는 안 떼질 텐데….]

우지끈!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갖다 대자, 문은 순식간에 분리되었다.

“되는데?”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문이 박살 나서 바깥 공기가 들어와서 그런지, 우리 사이에는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 * *

파앗!

강렬한 섬광에 부신 눈을 뜨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둘리와 유채아가 눈에 들어왔다.

“한별 씨 괜찮아요?”

“한별! 아픈 척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

전자는 그렇다 치고, 후자는 뭐야.

눈을 부라리며 둘리를 바라보자, 녀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하… 한별 들었나?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됐고, 이거나 먹어.”

나는 과자로 만들어진 문을 포켓에서 꺼내 둘리에게 건넸다.

자기 몸보다 몇 배 만 한 과자를 바라본 둘리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하, 한별! 고맙다! 마싰게 잘멌켔다!”

얼마나 기쁜 모양인지, 말하다 말고 혀를 씹어서 발음이 뭉개질 정도.

그럴 만도 하겠지.

문으로 만들어진 과자는 처음 볼 테니까.

아니, 이 경우에는 과자로 만들어진 문이라고 하는 게 맞던가?

‘아무튼 뭐 어때.’

머릿속에서 혼선이 들었지만, 나는 기쁜 듯이 과자를 씹어먹는 둘리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저거 다 먹으면 살도 엄청 찌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말해서 은근히 궁금해질 정도다.

과연 저 덩치가 얼마나 늘어날지.

‘어쩌면 살쪄서 날지 못하는 최초의 드래곤이 될지도 모르고.’

오히려 유채아 같은 경우에도 말랑말랑하게 살집이 잡히는 편이 좋다니까. 저대로 둘까.

나는 둘리를 뒤로하고는 유채아에게 물음을 던졌다.

“보니까. 먼저 나온 거 같은데, 많이 기다렸어?”

“아뇨, 그건 아니에요. 어차피 저는 이번 층에서 볼 일이 있어서 잠시 있다가 다음 층에 등반할 거 같거든요.”

“볼 일?”

“네, 아무래도 남은 플레이어들이 있으니까요.”

하긴 내가 3대 길드장의 머리를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꺾어 버렸으니, 적지 않게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지금까지 구심점의 역할을 하던 이들이 사라졌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심할 경우에는 플레이어 사이에서 살인이나 약탈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유채아라면 알아서 어련히 잘 해결하겠지.

“적당히 일만 해결하면 되는 거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저도 금방 올라갈게요.”

“뭐 그렇다면야.”

나는 적당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내가 아는 유채아라면 알아서 똑 부러지게 행동할 것이다.

걱정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것도 잠시, 머릿속에서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뭔가요?”

“다름이 아니라.”

나는 포켓에 넣어뒀던 물건을 꺼냈다.

내가 꺼내든 물건은 은은한 청옥색이 인상적인 반지였다.

“그건... 이단심판관이 끼고 있던 반지.”

한눈에 반지의 정체를 알아차린 유채아는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이 반지는 A+급이나 되는 아티팩트다.

물론 나한테야 흔하디 흔한 물건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평범한 플레이어한테는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아티팩트다.

“그런데 그건 왜? 궁금하다는 게 그 반지에 관해서인가요?”

“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손가락이 열 개잖아. 거기에 반지를 다 끼우면 그 효과가 전부 발동하나 싶어서 말이지.”

“어.... 그건...”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었는지 유채아는 섣불리 말을 내뱉길 주저하는 눈치였다.

잠시 주저하며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유채아는 떠올렸는지 손뼉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아! 그러고 보니 본 적이 있네요. 컨셉인지는 몰라도 옛날에 양 손가락에 반지를 낀 플레이어도 있었거든요.”

“그래?”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흔하지 않아요. 싼 아티팩트면 몰라도 그렇게 귀한 아티팩트를 열 개나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만약에 복사하지 않은 한 모르겠지만요.”

장난스레 내뱉은 유채아의 발언.

하나 나는 제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은 채, 반지와 유채아를 번갈아 살펴봤다.

‘어? 복사라고.’

보통은 우스갯소리로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하지 않은가?

분명 하늘 정원의 텃밭에 묻으면 아티팩트를 복사할 수 있다.

유채아는 이 사실을 모르는 채 말로 내뱉은 것이겠지만, 엄청난 이득이었다.

나는 서둘러 하늘 정원에 반지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이거면 됐겠지?”

“음? 뭐가 된 건가요?”

“아냐, 신경 안 써도 돼.”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채아가 내뱉은 의문에 나는 적당히 웃으며 얼버무렸다.

‘슬슬 올라갈 때도 됐나.’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둘리야. 이제 우리도 가야 하니까. 인사해야지.”

내 목소리에 양손에 과자를 쥐고 있던 둘리는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유채아에게 다가갔다.

“어… 음, 이거 하나 가져가라. 나눠주겠다!”

둘리는 유채아 앞에 서서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얼굴로 쥐고 있던 과자를 하나 건넸다.

그런 와중에도 눈을 질끈 감으며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뒤로 쭉 빼는 녀석.

행동과 생각이 부조화를 일으킨 그 모습에 유채아는 빙그레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어머, 절 주시는 거예요?”

“우응... 워, 원래는 남한테 안 나눠주는 거지만… 채아니까 특별히 주는 거다! 선물이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둘리의 손에서 과자를 건네받은 유채아는 두 손으로 녀석의 볼을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반항할 새도 없이 제 볼을 양보하게 된 둘리는 두 눈을 부라리며 중얼거렸다.

“흐즈마라…… 흐즈믈르그!”

“마지막이니까 뭐 어때요.”

그렇게 한동안 둘리의 볼을 주물럭거리던 유채아는 치마를 털고 일어섰다.

“그럼 또 나중에 봬요! 저도 금방 올라갈게요!”

“알았어.”

내 대답과 동시에 다음 층에 등반하기 위한 섬광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손을 흔드는 유채아를 뒤로하고 새하얀 섬광이 점점 시야를 물들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이 날아갔다.

〈36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따라서 37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띠링!〉

〈전이 중에 간섭이 발생했습니다.〉

〈하늘 공원으로 이동합니다.〉

* * *

평상시와 같이 눈을 뜨자,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를 알아차린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하늘 공원이잖아.”

갑자기 여기는 왜 왔지?

의아스러워할 때쯤, 내 앞으로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이! 형씨,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안전 주의’라고 적힌 인상적인 헬멧을 쓴 두더지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나 들고 있던 곡괭이를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쪽지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티팩트를 열 개나 복사하라는 말은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혼자라 안 그래도 힘든데 하나도 아니라 열 개라니.”

두더지는 혀를 내두르며 투정을 부렸다.

녀석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반지 열 개는 도대체 누구한테 줄 거길래 그렇게 많이 필요하신 겁니까?”

“나 혼자 쓸 건데.”

“예…?”

뒤이은 내 답변에 두더지는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금 이쪽을 향해 바라봤다.

“그러니까 혼자서 다 낀다고?”

“어, 문제 있어?”

“아뇨, 문제는 없죠. 아하하핫.”

다시 되묻자, 두더지는 손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호탕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시답잖은 소리나 하자고 우릴 이쪽으로 부른 거야? 이럴 시간에 어서 반지를….”

“아, 그거라면 이미 다 만들었소.”

“그러니까.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만들…… 어? 뭐라고?”

이어진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형씨가 요청했던 반지 열 개 전부 복사했습니다.”

아니, 벌써?

언제 보냈다고 이렇게 빨리 완성된다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어떠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빨리 완성될 줄 알았으면 손에 끼는 반지 말고 발에 끼는 반지 열 개도 부탁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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