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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23화 (123/175)

제123화

검 끝이 진행자를 향하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탑의 어떤 플레이어가 미쳤다고 진행자에게 살기를 보이겠는가.

자칫하다간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하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진행자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한 번도 했는데, 두 번이 힘들겠어?”

그 말에 진행자는 정말로 기쁜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핫! 역시 신한별 플레이어입니다. 끝까지 제 기대를 만족시켜주시는군요. 하기야 과거에도 진행자를 타도한 전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못할 것도 없으시겠죠.]

진행자가 내뱉은 말에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3대 길드장은 물론 유채아마저 제 귀를 의심했다.

“진행자를 타도해…? 그게 소문이 아니었어?”

[소문? 여러분은 아직 신한별 플레이어를 얕보신 모양이군요. 그럼요. 그의 진가를 모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죠.]

이단심판관의 중얼거림에 진행자는 옅은 비웃음을 흘렸다.

탑을 등반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 진행자는 절대적인 존재.

누가 감히 그런 존재와 맞서려고 들까.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가치를 직접 증명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진행자를 향해 도약했다.

“그쪽에서 안 온다면 먼저 간다.”

망설임을 없었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놈의 몸을 향해 검을 내둘렀다.

검에서 일어난 참격은 진행자의 몸을 가로로 베고는 그 너머에 있는 빌딩을 베었다.

쿠구구궁! 콰앙!

빌딩은 힘없이 눈으로 가득한 지면으로 나가떨어졌다.

강렬한 굉음이 귓가를 강타하며 상당한 규모의 눈폭풍이 일어났지만, 나는 괘념치 않다는 듯이 그 앞을 나아갔다.

자욱한 눈으로 인해 앞은 보이지 않았음에도 감각은 뚜렷했다.

나는 손을 쥐락펴락 움직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베긴 한 거 같은데, 제대로 벤 느낌은 없었지?’

마치 연기를 베는 듯한 감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정면을 향해 검을 휘둘러 일대를 자욱이 감싼 눈보라를 걷어냈다.

다시 진행자의 기척을 따라 주변을 훑어보자, 놀라운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상체와 하체가 깔끔하게 분리된 진행자.

하지만 절단부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으며, 놈은 고통스러운 표정은커녕 아무렇지 않은 듯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짝짝짝!

그것도 잠시, 진행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역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으시군요.]

절반으로 쪼개진 진행자의 몸은 연기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서로 뒤섞여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마치 구름과 구름이 합쳐지는 듯한 광경.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온 진행자는 곰방대에 입에 물었다.

[확실히 신한별 플레이어의 불만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밸런스를 위해 특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특전?”

[그럼요. 잠시 이곳을 봐주시길.]

〈제한 시간: 03:14〉

진행자가 손을 튕기자, 하늘에서 적란운이 뭉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36층의 제한 시간이 나타났다.

빠르게 흐르던 시간은 진행자가 박수를 치자, 거짓말 같이 멈췄다.

[이대로면 여러분이 이번 층을 클리어 하는 건 실패, 따라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기회라면?” [간단합니다. 이번 층을 한 번에 클리어할 수 있는 기회.]

진행자는 새하얀 이빨을 보이며 실실 웃기 시작하더니,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하늘 위로 던졌다.

차가운 강풍에 의해 하늘 위를 부유하던 중절모는 폭죽처럼 퍼졌다.

중절모에서 뿜어져 나온 암흑 물질은 마치 새장처럼 인근을 봉쇄했다.

이윽고.

진행자는 어디에서 갖고 왔을지 모를 지휘봉을 휘두르며 말했다.

[3대3 죽음의 매치! 적 중 세 명을 전부 쓰러뜨릴 시, 다음 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끝까지 분투해주시길!]

그 발언을 끝으로 진행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클리어 조건: 3대3 매치에서 승리해라〉

잇따라 시스템창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36층의 클리어 조건이 변경되었다.

3대3 매치.

진행자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았음에도 내 시선은 자연스레 이동했다.

3대 길드장을 향해서.

그들 역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사뭇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네. 마음 같아선 저 진행자라는 놈까지 족쳐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혼자서 튄 모양이니까. 어쩔 수 없지.”

꿩 대신 닭이랄까?

나는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손에 쥔 바스타드 소드는 순식간에 짤막한 길이의 단도로 변했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 잇따라 유채아와 둘리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같이 응전하겠어요.”

“싸워주겠다! 한별, 뒤는 둘리한테만 믿고 앞으로 나서라!”

유채아는 채찍을, 둘리는 자신의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올리며 투지를 끌어올렸다.

내 실력이라면 혼자서도 별문제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부담감을 지우기 위해 같이 나서려는 그들의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둘리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이 쓰다듬고는 놈들을 바라봤다.

“너무 원망하지는 마. 애초에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니까.”

“그걸 말이라고…….”

“그러는 너희들은 그걸 변명이라고 하려고?”

“…….”

뒤늦게 흑룡이 앞으로 나서서 반박하려고 했으나 뒤이은 내 발언에 입을 다물었다.

플레이어들의 발언권은 대개 힘의 우위로 정해지는 듯했다.

물론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저들의 행적을 보면 강자존의 법칙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누가 지은 말인지는 몰라도 말 한번 잘 지었네.

그게 저들의 법칙이라면 따라야지.

“그리고 물어봤었지 그게 말이냐고? 미안한데 난 말귀 못 알아듣는 놈들하고는 말로 안 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지.

그 말을 끝으로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뻗어나갔다.

“……!”

눈으로 따라잡기도 벅찬 속도에 그들은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뒤늦게나마 반응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내가 더 빨랐다.

콰드득!

힘껏 뻗은 주먹은 이단심판관의 허리를 꿰뚫고는 뼈를 부숴뜨렸다.

그 충격으로 저만치 나가떨어진 놈은 새장처럼 주변을 둘러싼 암흑 물질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아무리 회복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위력으로 내리쳤으니, 다시는 일어나진 못할 것이다.

그건 잠시 제쳐두고.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리였나,”

아무래도 진행자가 설치한 암흑 물질의 강도는 상상 이상인 듯 했다.

놈의 말대로 3명 중 전원이 죽을 때까지 무력으로는 타파하기는 어렵겠지.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너희들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잖아.”

내가 나가지 못한다는 뜻은 저들도 마찬가지.

눈을 희번덕 뜨며 흑룡과 회장을 바라보자,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나 어림도 없다.

가만히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지.

손에 쥔 단검을 역수로 쥐고는 이번에는 확실히 목숨을 끊어버리라는 기세로 달려들자, 놈들은 서둘리(@수정/서둘러) 반응했다.

“회장!”

“알고 있다!”

다급히 외친 흑룡의 목소리에 회장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이쪽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에는 극독으로 보이는 초록색 액체가 맺혀 있었는데, 독은 흑룡이 전개한 실에 스며들며 나한테도 쇄도해 들었다.

이미 내가 한 수법을 봐서일까.

흑룡과 회장은 절묘한 타이밍에 자리를 바꿔 내 공격에 대처했다.

즉흥적으로 한 행동이라곤 믿기지 않는 움직임.

확실히 3대 길드장이라는 명성은 거저 쥐며 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나 단지 그뿐으로 날 이기려 들려 했다면 큰코다친다.

촤악!

단검을 가로로 세차게 휘두르자, 극독이 맺힌 실은 맥없이 끊겼다.

풍압으로 인해 사방에서 극독이 떨어졌지만, 뒤늦게 나타난 둘리는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흑염을 내뿜었다.

극독은 불꽃에 의해 전부 말랐다.

“어, 어떻게?!”

흑룡은 놀라는 와중에도 반격을 위해 서둘러 양손을 펼쳤다.

그러자 주변에 전개된 실이 X자로 교차한 상태로 이곳을 향해 쇄도해왔다.

이대로 분쇄해버릴 작정한 듯싶었지만, 뒤늦게 나타난 유채아는 채찍을 휘둘러 실을 전부 끊어냈다.

나 혼자로도 버거울 텐데, 내 옆에는 둘리와 유채아가 함께 하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들한테는 압박감이 되리라.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곤 앞으로 발걸음을 뻗었다.

작게 점멸한 내 움직임은 이윽고 거대한 혜성이 되어 회장의 앞에 다다랐다.

“이걸로 두 명째.”

회장은 뒤늦게 손바닥을 뻗었지만 나는 손목 채로 벤 다음, 손아귀 안에서 단검을 180도로 회전시킨 후 회장의 목에 단검을 꽂았다.

“쿠, 쿨럭! 이걸로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면….”

“응, 졌어.”

나는 가볍게 단검의 손잡이를 튕기자, 거대한 크기의 클레이모어로 변했다.

목 안에서 급속한 크기 변화를 한 탓일까.

회장의 목은 폭발하듯이 터졌다.

놈의 혈흔이 옷에 잔뜩 묻었지만, 아티팩트의 효과로 깨끗하게 되돌아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놈.

시선을 돌려 흑룡을 바라보자, 놈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까.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실과 실 사이를 박차고 허공을 뛰어넘는 흑룡.

마치 무협지 속 허공답보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지만, 나는 가벼운 조소를 머금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도망치려는 모양인데.

“소용없어. 어차피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뭘.”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는 흑룡의 옆으로 다가갔다.

“제, 제기랄! 비, 비키라고!!”

“원망하진 마. 너희가 벌인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클레이모어를 가로 베어 흑룡의 몸을 양분했다.

〈클리어 조건: 3/3〉

〈상대방을 전원 쓰러뜨리셨습니다!〉

〈곧이어 37층으로 이동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철장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그리고는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

나한테야 항상 봐오던 것이지만, 36층을 등반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몇 년 만에 마주한 클리어창.

슬쩍 고개를 돌리니, 유채아도 감격스러운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틀어막았다.

수년간 많은 목숨과 피를 흘리며 도전한 36층이다.

비록 믿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결과만 좋으면 된 거잖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무렵, 청명한 시스템음과 함께 무수한 후원창이 떠올랐다.

〈500코인이 후원됩니다.〉

〈130코인이 후원….〉

〈210코인이….〉

……

물밀듯 들어오는 후원 창.

이번 층을 클리어하기 위한 코인은 아득히 상회한 뒤였다.

나는 엄청난 양의 코인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됐으니.

“이제 이걸 어떻게 쓰면 잘 썼다는 소리를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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