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20화 (120/175)

제120화

〈첫 번째 히든 스팟을 발견하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스팟: 1/5〉

〈최초로 히든 스팟을 발견한 특전으로 지도가 지급됩니다.〉

괴수를 쓰러뜨리고 그 뒤로 숨겨진 장소에 발을 들이자, 강렬한 섬광과 함께 신성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신성한 빛에 노출된 괴수들은 검은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려 소멸했다.

마치 성역을 연상케 하는 광경.

아름다운 광경에 나와 함께 따라온 둘리와 유채아는 짤막한 감탄사를 흘렸다.

우리들도 놀랐지만, 이곳을 스트리밍 중인 커뮤니티에서도 덩달아 소동이 벌어졌다.

- 와…… 개미쳤다. 왤케 예쁘냐?

- 아니ㅋㅋㅋㅋ 그것보다도 신협 대박이네. 어케 한 방에 찾아내냐

⤷ 확률상 히든 스팟은 1/160임ㅋㅋㅋ

⤷ 1/160의 사나이

- 역시 될 놈은 되구나.

- 유채아 표정 봤음? 와 진짜 여신이다…… 가슴이 웅장해지네

⤷ 움짤 저장한 사람?

⤷ 신협 움짤은 저장했음

⤷ 씹ㅋㅋㅋㅋㅋㅋ 아니 그걸 왜 저장하냐고

이어진 상황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감탄하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하나 그 와중에도 극히 일부분은 의문을 제기했다.

- 아니, 근데 이상하지 않음? 여기 3대 길드에서 막고 있던 장소 아니었음?

- 어, 그렇네? 뭐지 그럼 3대 길드는 여기에 히든 스팟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 억까ㄴㄴ

⤷ 하… 신협단 ㄹㅇ 지건 마렵네. 걍 위험하니까 막은 거겠지.

⤷ 쉴드러 개역겹네

- 근데 좀 묘하긴 함ㅇㅇ;;

- 만약에 3대 길드장들이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을 이유도 없잖슴

- 갈!! 지엄하신 길드장님의 고언이시다! 사교는 꺼지도록

⤷ 설정 개웃기네

⤷ 가아아알!!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심증만 존재할 뿐이지, 실제로 3대 길드장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게다가 놈들은 사회적인 입지로도 상당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나서서 말을 꺼내더라도 묵살 당할 터.

조금 과장해서 저들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잡아떼면 정말 그뿐인 이야기였다.

‘내가 아닌 신협단이라면 충분히 저지르고도 남겠지만.’

나는 조소를 머금으며 떠올렸다.

고작 신협단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3대 길드 중 한 곳을 테러하고.

내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NPC이기도 한 요정들의 왕국을 폭격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단체다

솔직히 정도를 모르는 신협단을 전면에 세운다면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지 걱정될 정도니까.

어쨌든 간에 신협단의 힘을 빌릴 것까지도 아니다.

그야.

“원래 스스로 떳떳하면 모를까. 당당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크게 반응하기 마련이거든.”

그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간에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장 느껴지는 기감으로는 세 명인가.

적당히 앉을 곳을 찾아 기다리고 있자, 이쪽을 향해 3인의 남성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옆에 있던 유채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각각 신화와 살룡문, 백신전의 팀장들이에요.”

“그래?”

유채아의 말에 나는 느긋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우리들을 발견한 팀장들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 모습에 비웃음을 흘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사자는 안 오고, 아랫것들이나 시켰나 보네.”

“신한별 씨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 역시 당신께는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지나친 언동은 조심해 주시죠. 회장께서는 다른 곳에서 괴수와 싸우느라 대리인으로 제가 온 것입니다.”

신화 소속으로 보이는 남자는 엄숙한 분위기로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슥 살폈다.

“그래서 그 핑계는 살룡문하고 백신전도 똑같을 거고? 맞지?”

“…….”

“…….”

노골적인 내 물음에 그들은 침묵했다.

반박을 하기에는 있는 그대로이기에 할 말이 없어서.

까놓고 말해서 그들이 여기에 나타날 거라고는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뭐, 사소한 변명이니 사설은 집어치우자고, 그깟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36층에 온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깝고 말이야.”

36층에는 제한 시간이 걸려 있다.

그러니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신한별 씨라고 해도 그걸 멋대로 정하는 건…….”

“아, 참고로 반박은 안 받아. 라이브로 이걸 지켜보고 있을 36층의 플레이어들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나는 그의 말을 끊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 ㅇㅇ 빨리 본론만 들어가자

- ㅋㅋㅋㅋ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면 개추

- 명색이 3대 길드인데 신협한테 털리는 거 봐ㅋㅋㅋ 개웃기네

⤷ 털리긴 누구한테 털려

- 속이 뻥~!

- 아,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자ㅇㅇ

그들도 커뮤니티를 확인한 모양인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끈 덕인지 후원이 도착했다는 시스템창이 연달아 떠올랐으나, 나는 가볍게 손을 저어 시스템 소리를 껐다.

“뭐, 굳이 할 말은 없고 일단 들어나 보자. 너희 길드장들은 뭐라고 변명했는지.”

“오해하실까 봐. 확실히 밝히는 부분이지만, 저희는 그저 이 에리어에 괴수가 있기 때문에 위험해서 통제했습니다. 여기에 히든 스팟이 있을 거라곤…….”

그들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끝을 늘어뜨렸다.

자기네들도 몰랐다는 듯이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인 듯했지만,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안 통한다.

“까고 있네. 당연히 탑인데 괴수가 있어서 위험하지. 그걸 변명이라고 해?”

“…….”

“탑에 와서 괴수 한두 번 봐? 웃긴 새끼들이네.”

사람을 호구로 보는 것도 정도껏이지.

나는 벽에 기대둔 검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상 저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도 시간낭비다.

“그러니까. 너희 말대로면 플레이어들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통제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뭐 그건 그렇게 치자고.”

“그 말씀은…….”

내 말에 그들의 표정이 화색이 되었다.

적당히 일을 무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너희 말대로라면 직접 알리바이를 만들어서 증명해야지.”

“……알리바이라고 하시면?”

“말 그대로야. 너희가 정말 모르고 플레이어들을 지키려고 한 거였다면 직접 증명해라고.”

내 말에 커뮤니티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저들도 3대 길드라는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전부 플레이어들의 지지 덕분이다.

36층는 바깥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으니, 당연히 신경을 쓸 터.

그래서 나는 결론을 말했다.

“히든 스팟은 5곳, 탑에서는 36층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히든 스팟을 점령해야 한다고 했지. 그건 알고 있지?”

“…….”

내 말에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클리어 조건: 히든 스팟 5곳을 동시에 플레이어가 점령해야 합니다.〉

※ 주의 사항: 모종의 이유로 히든 스팟을 점령한 플레이어가 사라지면 해당 스팟은 소멸합니다.

“히든 스팟은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 너희 길드장은 히든 스팟을 지키고 서 있어.”

“예? 아니… 그게 무슨.”

내 발언에 그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데 왜? 싫어?”

“하, 하지만… 길드장님께서는 발견한 스팟을 지키는 것보다도 공략에 참여하시는 편이 일의 효율이…….”

“아, 그래서 몇 년째 도전해도 클리어하지 못한 36층의 히든 스팟을 너희들보다도 내가 먼저 찾은 건가.”

“그, 그건….”

네 말에 정곡이었는지,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몇 년째 죽만 쑨 그들과는 달리, 나는 직접 성과로 증명해 보였으니까.

“아냐, 괜찮아. 우리가 히든 스팟을 백날 찾아 봤자 뭐해? 시스템 말대로 모종의 일로 히든 스팟이 사라지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러니까 제일 믿음직한 사람한테 맡기겠다는 거야.”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 이상 타협은 없어.”

짤막한 내 경고에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서둘러 연락을 취했다.

“길드장님께서도 그 제안에 따르겠다고 하십니다.”

내 말을 전하자, 3대 길드장들에게서 차례차례로 답변이 왔다.

아무리 저들이라고 해도 무를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상황이 모든 플레이어에게 실시간으로 송출 중인데, 거절이라도 했다간 그 뒤에 벌어질 여파는 그들이라고 해도 수습하기 벅찰 테니까.

나는 히죽 웃으며 그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희들 대가리한테 내가 해결할 테니까. 그동안 집이나 잘 지키고 있으라고 전해 뒤.”

그들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깍지를 쥐었다.

그른 녀석들을 뒤로하고 나는 바깥으로 나섰다.

바깥으로 나선 직후, 내 뒤를 따라오던 유채아는 사뭇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걸로 괜찮을까요?”

“글쎄?”

유채아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내 대답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답변이었는지 유채아의 얼굴은 희게 굳었다.

아무런 심사숙고 없이 꺼낸 빈말이 아니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160개의 포인트 중에서 정말 우연찮게 히든 스팟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단지.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나보다 못한 놈들인데, 그런 놈들이 하나둘 빠진다고 달라질 건 없어.”

오히려 방해꾼이라면 빠져 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런 이유에서 그들에게 그런 제안을 건넨 것이다.

만약 저들이 무슨 수를 쓰게 된다면 바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장소니까.

“그럼 한별은 그 사람들이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말은…….”

둘리의 사소한 의문에 옆에 있던 유채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녀석의 말을 쉽게 직역하자면…

플레이어들의 뒤통수를 친 배신자거나.

혹은 탑이 심어둔 모종의 스파이.

둘리의 의도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이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을 이었다.

“누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탑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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