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철컥!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곧이어 펼쳐진 풍경에 나는 감탄을 토했다.
“오…….”
하늘 공원의 정체는 말 그대로 상당한 평수의 정원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잔디에 저 너머로는 수영장이 있었고, 쭉 펼쳐진 나무에는 보기에도 탐스러워 보이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풍경을 구경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몸을 전부 닦은 둘리의 모습이 보였다.
“우와! 한별…… 여기는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 엄청 예쁘다.”
정원을 눈에 담은 둘리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알에서부터 부화했을 때부터 괴수와 생존으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탑에서 살아가는 둘리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그 증거로 둘리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던 둘리는 내 팔을 붙잡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 한별… 여기 수영장에 들어가서 놀아도 되나!”
아, 그냥 수영장 보고 놀 생각에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건가.
잠깐만.
“너 욕실에서 수영했잖아. 근데 또 해?”
“삐삐! 한별은 틀렸다! 그건 진정한 수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둘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의성어를 냈다.
녀석의 귀여운 모습에 나는 등을 밀며 입을 뗐다.
“대신에 놀고 나서는 다시 씻어야 해.”
“역시 한별 믿고 있었다! 걱정 마라 놀구 나면 씻을 거다, 깨끗이!”
명랑한 대답과 함께 둘리는 하늘을 날아서 수영장으로 다이빙했다.
첨벙! 둘리의 육중한 몸이 떨어지자, 수영장의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하여간 물만 보면 환장 못 하는 걸 보면 아직 애라니까.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머릿속으로 의문을 띄웠다.
보상으로 휴게 공간에 새로운 장소가 생겼다는 것은 알겠는데, 겨우 이것뿐일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려고 할 때쯤이었다.
땅속이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시꺼먼 형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휴우! 안녕하십니까!”
지면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안전 주의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헬멧을 착용한 작은 두더지.
당황한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두더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기요? 저기…… 혹시 제 말이 안 들리시나요?”
“어, 들리는데 넌 뭐야?”
“에? 어랏, 이상하구만요. 저에 대해서는 이미 안내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모르시나요?”
두더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길 잠시, 이윽고 떠오른 기억에 나는 다시 시스템을 확인했다.
〈최초 획득자 보상으로 특전이 지급됩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정원에 입장하기 전에 이런 문구가 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딴 게… 특전?
순간 반품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묘한 눈빛으로 두더지를 바라보고 있자, 녀석은 뜨끔했는지 눈을 흘겼다.
“설마 절 보고 반품하고 싶다느니 하는 무례한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어,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반품은 돼?”
“…….”
직설적인 말에 두더지는 할 말을 잃은 채, 공허한 눈빛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의 앞에서 직설적으로 불만을 들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얼굴.
두더지는 숨을 크게 들이켜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면서 대꾸했다.
“이, 이래봬도 저는 이 하늘 공원의 관리인으로 고용된 사람입니다! 반드시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 의지를 불태우는 건 좋은데 내 앞에서 주인이라는 말은 하지 마.”
“그건 어째서?”
“조금 비위가 상해서.” “…….”
사람도 아닌 두더지한테 주인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잠시 속이 거북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하늘 공원이라는 곳이 확실하게는 뭘 하는 장소인데?”
“아! 모르시나요?”
녀석은 잠시 우울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내 질문에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는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드디어 제 존재가치가 증명되는 날이 왔군요! 하늘 공원에 설치된 텃밭에서는 여러 제품들을 재배할 수 있죠.”
확실히 두더지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작은 규모의 텃밭이 보였다.
“텃밭?”
“네, 가령 예를 들자면….”
두더지는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텃밭에다가 파묻었다.
뜬금없는 녀석의 행동에 의아스러워하고 있는데, 텃밭에서 황금빛이 일어났다.
두더지가 자신의 헬멧을 묻은 자리를 다시 파자, 그곳에는 두 개의 헬멧이 생겨났다.
마치 복사라도 한 것 같은 광경.
“이런 식으로 이 텃밭에서는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고 두 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생물체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냥 생매장이죠. 뭐, 마음에 안 드는 상대가 있다면 그냥 담가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요.”
두더지는 낄낄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아! 말씀드리는 걸 잊고 있었는데, 텃밭에서 재배되는 시간은 상품의 가치에 따라서 속도가 달라지니 유의하시길!”
다시 헬멧을 착용한 녀석은 제 가슴을 두들기며 당당하게 외쳤다.
“어쨌건 저는 이 하늘 공원을 관리하는 겸, 텃밭을 일구는 역할입니다.”
두더지의 말에 따르면 텃밭에 묻기만 하면 모든 물건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
이는 엄청난 이야기였다.
이 사실을 다른 플레이어나 대형 길드에서 알게 된다면 침을 흘릴 정도로.
예를 들어 탑에 단 하나밖에 나지 않는 귀환 물건도 텃밭에 묻으면 두 배로 늘어나는 거잖아.
가치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제약이 있다면……
“휴게 공간은 5층마다 한 번씩 오니까. 물건을 묻어도 다시 받을 수 있는 건 10층 뒤인가.”
그게 좀 많이 걸리긴 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총 통틀어 10층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텃밭의 가치는 그 제약을 무시해버릴 정도로 상당한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은 명백하니까.
그렇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릴 때였다.
“누가 그런 낭설을 퍼뜨립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썩 재미없는 농담을 하시군요. 시스템을 통해서 저한테 보내시면 언제 어디서든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걸요.”
“……지금 뭐라고?”
“그러니까. 하늘 공원은 층과는 상관없이 입장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두더지의 발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거 완전 대박이잖아.
휴게 공간에 들어와야지만 아닌 탑의 어디에서든 하늘 공원에 출입이 가능하다.
그 뜻은 단 하나 남아있던 제약마저 사라진 셈이었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간단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씁,… 쑥스럽게 왜 이러신가요. 크흠흠! 걱정 마시고 맡겨주십쇼!!”
나름 나쁘진 않은 기분인지, 두더지는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당연하지, 다름 사람도 아닌 나를 위한 건데 두말하지 않아도 열심히 일해야지.
말로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뭣했기에 나는 포켓 속을 뒤졌다.
분명 줄 만한 게 있을 텐데.
한참 동안 포켓의 구석을 뒤지다 말고 나는 손에 집히는 것을 서둘러 꺼냈다.
〈조금 특별한 괭이(C)〉
- 조금 특별한 괭이입니다.
- 적은 힘으로 땅을 더 빨리 팔 수 있습니다.
일전에 별꿀 파라다이스에서 쓰고 나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아티팩트.
또,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을 듯한 물건이었다.
녀석에게 건네자, 두더지는 믿기지 않은 얼굴로 나와 괭이를 번갈아 봤다.
“헉! 그렇게 귀한 물건을… 제가 가져도 되는 겁니까?”
“어 상관없어. 나를 위해서 일해 주는 건데 이것도 못 해줄까.”
나는 본심은 숨긴 채,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사실 나한테는 그다지 귀한 물건도 아니다.
쓸모없다 못해서 포켓의 구석에 박혀 있던 물건인데 뭐.
고작 괭이 하나 받고 무보수로 일하는 거라… 뭔가 심각한 블랙 기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짬처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낸들 어때, 당사자가 만족하면 된 거지.
그리고 저렇게 만족하는 얼굴에다가 대고 순순히 사실을 말하기에는 나라고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이 느낀다.
나는 녀석에게 괭이를 맡긴 채,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볼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할 테니까. 그땐 잘 부탁할 게.”
“마, 맡겨만 주십쇼!”
내 부탁에 두더지는 아티팩트를 자신의 보물인 양 안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끝으로 휴게 공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수영장에 있을 둘리도 데려갈까 싶었지만.
첨벙! 첨벙! 촤아아악!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마냥 수십 미터가량을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관두기로 했다.
“혼자서 재밌게 놀고 있나 보네.”
저렇게 잘 노는 애를 혼자서 방치했단 생각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친구라도 만들어줄 걸 그랬어.’
다음에 시간만 되면 드래곤 해츨링도 입양이 가능한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 * *
나는 36층으로 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해 훈련에 임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을 끝낸 후, 마지막으로 목욕까지 끝내고서 시간을 확인했다.
〈02:11 뒤에 36층으로 전이됩니다.〉
36층까지는 2분가량 남은 시간.
조금만 지나면 다음 층에 올라가서 탑의 최전선에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잘하면 플레이어 중의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지닌 골리엇과도 만날 수 있으리라.
‘유채아한테도 연락해볼까.’
불과 몇 분 뒤면 36층에 합류한다고 전달하면 유채아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내가 아는 유채아라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반응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머릿속 한켠에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무시했다.
과한 걱정이리라.
“뭐, 연락하는 것보다도 직접 만나는 게 낫겠지.”
오히려 그편이 서프라이즈라는 느낌이 강할 테고.
그런 상념에 빠지고 있을 무렵, 어느덧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카운터는 빠르게 흘러 임박한 시간이 되었다.
〈3초, 2초…… 1초〉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
튜토리얼에서 탑의 최선봉까지.
물론 100층에 도달하기까지에는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앞으로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설렜다.
지금까지는 남들의 족적을 밟고 온 것이라면 다음 층부터는 미지의 공간을 온전히 내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긴장할 건 없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그리고.
“직접 증명해내 보이면 되잖아.”
그게 내 실력이든, 힘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 될지언정 직접 증명해 보이면 된다.
탑에 입성할 때부터 다짐한 다짐을 입으로 내뱉었다.
나는 기대감을 품고 순백으로 물드는 시야에 집중했다.
〈띠링!〉
〈36층으로 이동합니다.〉
* * *
〈36층 TIP.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함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그게 정의든 악이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