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모래로 가득한 사막의 지면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끝없이 피어난다.
워낙 뜨거운 열기에 가려 풍경도 마치 신기루처럼 흐려졌다.
극한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상황 속에서 나는 둘리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뭐라고?”
“난 몇 번이고 말했다! 처음 한별이 가리킨 방향은 동쪽이고 그 뒤에도 동쪽, 그리고 방금 전에는 남쪽이었다! 한별 말하는 것과는 전혀 틀린 방향을 가리킨다.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이상해졌다!”
둘리의 일갈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기본적인 것 가지고 둘리한테 타박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순히 방향 감각만 잃었으면 모를까. 한쪽을 향해 직선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쭉 나아가도 발길은 계속 이상한 샛길로 빠지게 된다.
‘방향뿐만 아니라 균형 감각까지 잃은 건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스템의 말대로 모든 감각을 잃어버렸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사막 속에서 열사병이나 일사병에 걸려도 감각이 없으니 알 수 없으며 갈증이 있어도, 혹은 영양을 섭취하지 않아 아사하기 직전이 되어도 알아챌 수 없다.
마냥 가정뿐인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나도 겪을 수 있는 일.
그나마 다행인 건 온전히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둘리가 동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목이 마르거나 식량을 섭취하는 생체리듬은 둘리랑 같은 페이스를 맞추면 되겠지.’
나는 서둘러 대책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둘리가 옆에 없었다면 아찔할 뻔했다.
‘쯧, 하필이면 또 장비도 없으니.’
혀를 내두르며 한 벌 뿐인 허름한 옷을 내려다봤다.
백룡의 갑옷이 있었다면 열기를 전부 차단했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일단 시스템의 영향으로 장비가 없으니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했다.
단지 감각이 없을 뿐이지.
뜨거운 사막을 걷는 것으로 체력은 지속적으로 닳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쪽으로 가는 게 맞아?”
“헤엑… 헤에엑… 맞다. 이대로 쭉 가면 된다.”
내 머리 위에서 네비게이션이 된 둘리는 혀를 쭉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평소에도 더위를 잘 타는 둘리한텐 이번 층의 환경은 고문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러게 운동을 해 두지 그랬어. 34층에 온 지 겨우 1시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쓰러질 정도로 체력이 약하면 어떻게.”
“으윽…… 한별 거짓말하지 마라! 여기에 도착한 지도 벌써 4시간은 훌쩍 넘었다!”
“……그랬어?”
아, 돌겠네. 시간 감각도 없어진다고?
혹시나 둘리가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녀석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물에 푹 찐 듯한 백숙처럼 쓰러진 둘리의 모습을 보고도 거짓말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그냥 이번 층에서는 둘리의 말을 전적으로 믿자.
더 이상 둘리에게 말을 했다간 본전도 못 뽑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어서.
나야 이대로도 괜찮았지만, 둘리는 한계인 듯 보였다.
적당히 쉴 만한 장소를 모색하려는데, 머리 위에 있던 둘리가 갑자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으… 으악! 하, 한별! 발밑! 발밑 조심해라!”
“발밑?”
다급하기까지 한 둘리의 외침에 고개를 내려 지면을 확인했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다리 전체가 모래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기에.
게다가 빠지는 속도도 상당했다.
서둘러 발을 빼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쏴아아악!
모래 속에서 수십 발의 사슬이 솟아 나오는가 싶더니, 내 몸을 단단히 옭아맸다.
이대로 못 움직이게 만들어 모래 속에서 익사시키려는 작정.
“하, 한별! 둘리가 모래 속에서 빼내 줄 테니까. 걱정 마라!”
어느새 모래 속에서 얼굴만 삐죽 나온 모습에 둘리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쩜 이렇게 믿음직스럽지 않은 말인지 모르겠네.
마음은 고맙지만, 도와줄 필요는 없다.
“됐어, 내 힘으로도 충분해.”
나는 거절하며 양쪽 팔을 옭아맨 사슬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집어 당기자, 땅속 깊숙이 박혀있던 사슬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사슬의 끝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져서 지면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우레 같은 괴성과 함께 녹색의 피가 튀었다.
피가 살에 닿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는 냄새가 났다.
꽤나 강한 위력의 독이었지만, 이런 정도 독성 가지고는 쉽게 중독되진 않는다.
“그에에에엑!”
한 방에 죽을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아무래도 비켜 맞은 모양인지 괴수는 소리를 내질렀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괴성.
괴수는 독액을 공중으로 뿌리며 다시금 모래 밑으로 파고들었다.
투두두둑!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독을 검으로 베어 가른 뒤, 나는 모래 속을 유심히 살폈다.
원래라면 이런 수고를 들일 것도 없이 기감을 통해 특정한 뒤에 괴수를 쓰러뜨렸을 텐데, 감각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보니 모르겠다.
원래였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직전에 알아차리고 미연에 방지했을 텐데.
감각이 차단됨으로서 인해 괴수에게 먹히기 직전이었음에도 깨닫지 못했다.
이제서야 감각이 사라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겠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도사릴지 모른다.
그런 공포감 속에서 보내는 15일.
이번 층을 등반하는 플레이어한테는 굉장한 공포감일 것이다.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얻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산되니까.’
경험치나 장비와 같이 플레이어들이 등반하면서 쉽게 간과한 요소들
하지만 탑에서도 간과한 점이 있었다.
“예외가 있다는 거지.”
단지 그뿐이라고 여겼으면 곤란하지.
나는 지면을 즈려밟고는 자세를 잡았다.
허리를 꼿꼿이 고정한 채, 지면을 향해 있는 힘껏 우수를 때려 박는다.
모든 감각이 차단된 지금으로선 어줍짢게 힘조절을 하려했다간 제대로 된 위력도 내지 못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전력으로 주먹을 날리면 되지.’
간단한 일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데, 오히려 신체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면 머리가 고생할 일이 생기지 않잖아.
최대 위력으로 내두른 주먹이 지면에 쏘아지자, 강력한 풍압과 함께 파공성이 발생했다.
쏴아아아아악!
지면에 있는 모든 모래가 사방으로 흩뿌려지면서 그 영향으로 인해 나를 중심으로 엄청난 크기의 모래 폭풍이 일어났다.
가공할 만한 위력의 강권에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괴수는 종이짝처럼 구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다.
나는 자욱한 모래 폭풍 속을 뚫고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미세한 모래 입자가 총알처럼 피부를 파고들었지만, 신경 쓸 것까진 아니다.
다만.
“아, 이건 좀 심했나.”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모래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움직이는 것 자체는 문제는 없지만, 이래선 시야가 차단된다.
평소라면 몰라도 기감을 느낄 수 없는 지금으로선 치명적인 일이었다.
여러모로 곤란해하고 있을 찰나, 모래 속을 뚫고 둘리가 나타났다.
“한별, 한별! 따라와 봐라! 둘리가 엄청난 곳을 찾았다!”
“나 참 이런 곳에 뭐가 있긴 뭐가 있다고 호들갑을… 어… 어라?”
둘리가 앞장서는 대로 뒤따라가자, 곧이어 나타난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규모의 조형물이 우뚝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익숙한 경치에 나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피라미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건축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전체적인 구조나 쓰임새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외견은 지구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크기.
‘원래 지면 속에 파묻혀 있던 게 내가 모래를 걷어내면서 나타난 건가.’
어… 이거 잘 된 거지?
모래 밑에 이만한 규모의 건축물이 숨겨져 있었다니,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건축물이 파묻혀 있는 깊이를 고려하면 더더욱 경악할만한 일이었고.
그런데 문제는 이 건물이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이곳에 세워졌냐는 것이냐는 건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보통 이런 장소에 도착하면 시스템이 부가 설명을 덧붙였겠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시스템의 반응은 없었다.
‘적어도 히든 미션이나 이런 건 아닌가 보네.’
하긴 그게 그렇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거였다면 죄다 히든 미션을 찾아다녔겠지.
“일단은 들어갈 수밖에 없나.”
나는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판단을 내렸다.
혹독한 사막 속에서 둘리의 체력도 많이 소모됐을 터.
나야… 음, 며칠 정도 밤새는 거야 몸에 지장은 가지 않을 테지만 일단 쉬어둘 수 있을 때 쉬어두는 게 낫겠지.
잠깐의 고민 끝에 우리는 피라미드 속으로 진입했다.
“끙차!”
둘리가 짤막한 의성어와 함께 피라미드의 외벽을 밀어내자.
쿠웅!
흙먼지가 나부끼며 입구가 열렸다.
피라미드를 향해 발걸음을 뻗자, 바로 옆에서 호들갑스러운 외마디가 들려왔다.
“으악! 춥다!”
“춥다고? 별로 안 추운…….”
아…! 난 아무 감각도 못 느끼지.
둘리의 말을 듣고 보니 안쪽에서부터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오는 거 같았는데, 아무래도 피라미드의 안에서부터 흘러나온 한기인 듯싶었다.
바깥은 조금만 나가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더위에 반면 피라미드 안쪽은 뼈가 사무칠 정도의 추위.
극과 극이었으나 둘리는 후자가 더 낫다고 판단했는지 이를 깨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피라미드의 문이 닫히고.
벽에 설치된 야광석에서 불빛이 일어났다.
딱 피라미드 내에서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밝기.
그렇게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움직이던 도중, 막다른 장소에 도착하자 경건한 분위기와 함께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샘물이 나타났다.
모든 걸 꽁꽁 얼려버리기에는 충분한 추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샘물의 물은 유유히 흐른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광경이다.
하지만 저 샘물을 이전에도 접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샘물(C)〉
- 성신 카르텔의 갸륵한 은혜로 지하로부터 성수가 흘러나옵니다.
-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니 오염되지 않게 주의 바랍니다.
성신 카르텔.
이전에도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샘물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풍경을 비친 수면에서 새하얀 섬광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윽고 섬광에서 나온 한 줄기의 빛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물이 표식을 연속으로 발견함으로써 우연이 아니라 간주합니다.〉
〈성물에 성신의 권능이 깃듭니다.〉
- 전체 수집률: 12%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과 함께 강렬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심장부부터 시작한 충격은 점차 전신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눈앞을 새하얀 빛으로 가득 물들인다.
마치 온몸에 쌓인 노폐물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
노폐물이 씻겨 내려간 자리에는 신성한 감각이 자리를 잡았다.
〈띠링!〉
〈성신 카르텔이 당신에게 가호를 부여합니다. 탑에서 부여한 저주가 씻겨 내려갑니다.〉
나는 잇따른 시스템 창에 눈을 번뜩였다.
“어? 이건…….”
34층에 도착하고서 차단된 감각이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