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숲의 외각에서 일어난 불길은 삽시간에 전체로 퍼졌다.
아무리 숲 전체가 타기에 좋은 땔감으로 가득하다곤 해도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엔 비정상적인 속도였다.
분명 누군가 손을 써뒀을 터.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시야가 가려질 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행동 범위조차 제한된다.
그러고 보니 모비딕의 몸은 건조한 것이 약점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보던 간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몄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천사들의 소행은 확실하네.’
그렇다면 문제는 어째서 이런 짓을 꾸몄냐는 것이다.
32층에서 천사가 모비딕을 납치한 것은 어디까지나 어둠의 정기가 힘을 얻기 위한 소행이었다.
당시에는 그렇다고 쳐도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음…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꼬여가는 듯한 기분에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어쨌건 나한테 중요한 건 시스템에서 말한 흑막을 찾아내는 것뿐.
‘일단 그것만 신경 쓰면 되겠지.’
정황상 시스템에서 가리키는 흑막은 천사 중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기에.
“둘리야. 넌 어떻게 생각해?”
“음? 뭐가 말인가?”
“시스템에서 말하는 흑막이 누구인 거 같아.”
내 질문에 둘리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을 구기며 머리를 에어 싸맸다.
필사적으로 고민하던 둘리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찌르며 외쳤다.
“으으으음…… 둘리가 생각하기에는 천사 중에 나쁜 놈이 있는 거 같다! 이건 정확하다!”
“그래?”
둘리의 반응에 나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반응이면 몰라도, 완전 찰떡같이 똑같은 반응이라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둘리의 감은 지금까지 맞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니까.
예전에도 천사를 처음 봤을 때도 수상쩍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둘리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방향성만큼은 맞았다는 것이니 소득은 있었다.
과연 이걸 소득으로 쳐도 되는진 의문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니까.”
나는 중얼거리며 나무와 나무를 즈려밟고는 높은 고지대에 올라섰다.
‘이제야 좀 보이네.’
탁 트인 장소라서 그런지 모비딕과 천사들의 전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
그렇지만 승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천사들에게 기울었다.
넓고 강력한 공격이 주특기인 모비딕에 비해 천사들은 작은 몸으로 확실한 타겟팅이 특기다.
당연히 이런 어지러운 전장에선 후자가 확실히 유리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런 막강한 마법을 아무렇게 쏘아냈다간 아군까지 전부 피해를 입을 테니까.
아무런 행동도 없이 전투를 방관하고 있자, 이를 불안하게 여긴 둘리가 자켓을 잡아당기며 되물었다.
“하, 한별 누구든지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게. 도움이 필요해 보이긴 하네.”
다급한 둘리의 목소리에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딱히 누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도 그럴 게.
원한이 있으면 있었지, 딱히 도와줄 이유가 없는데?
또 돕는다고 한들 메리트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저들의 싸움을 보고 있어도 별다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방관만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방관만 하고 있어선 흑막이 제 발로 나타날 리도 없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서 나타날 거였다면 시스템에서도 흑막이라고 정의하지도 않았으리라.
결국 흑막이 자처해서 나타나게 만들려면 그만한 판이 필요했다.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드는 판이 말이다.
그리고 그 판은……
“여기에 있잖아?”
눈 앞에 펼쳐진 치열한 전투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천사들이 모비딕을 꿰어내기 위해서 갖은 수를 총동원해 짜낸 판일 것이다. 그것도 효과를 입증한 완성본이지.
이제 와서 판을 짜기 위해 복잡하게 계획을 짤 것도 없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남이 만든 판이긴 한데, 같이 써먹어서 나쁠 건 없잖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숟가락만 올리자.
* * *
천사들의 습격으로 인해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언뜻 보면 팽팽한 대결 구도가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흐를수록 전장은 점차 기울고 있었다.
이대로면 패배하고 마리라.
섬뜩한 기분에 모비딕의 장로는 서둘러 마법을 연산해 천사들을 쓰러뜨렸다.
그렇게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무렵.
적과 아군의 시선이 전장이 아닌 이상한 방향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둘이던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늘어났다.
문득 느낀 묘한 기류에 장로는 위화감을 느꼈다.
장로는 눈앞의 적을 마법을 사용해 섬멸하고 나서야, 시선을 옮겼고.
전장의 한가운데, 그러니까 드높은 하늘 위로 뚱뚱한 돼지처럼 보이는 검은 생명체를 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잠시.
장로는 뒤늦게 떠오른 기억에 남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신한별?”
너무 급작스럽게 벌어진 천사들의 침략에 미처 챙길 겨를이 없어서 알아서 몸을 피해라고 조언까지 해줬는데, 아니 저 인간은 다른 곳도 아닌 왜 전장의 중앙에 있는 거지?
저래서는 적들에게 자기는 여기에 있으니 저격해달라고 선전하는 꼴이 아닌가.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에 그는 조소를 머금었고, 뒤이은 신한별의 행동에 그는 제자리에서 멈칫한 채 경악을 토했다.
신한별은 검을 뽑음과 동시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지면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장로인 자신마저 경악할 만한 힘.
그리고 가공할 만한 일격은 지면을 향해 세차게 떨어졌다.
“자, 잠까⎯”
일격을 막기 위해 서둘러 마법을 준비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검격이 지면에 맞붙이 치면서 거대한 크레이터가 일어난다.
그의 힘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천사들의 침략은 약과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수… 숲 전체를 베었어.”
장로는 토사에 반쯤 묻힌 상태로 아찔함을 느꼈다.
신한별이 내찌른 검은 말 그대로 숲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눈에 보이는 건 거친 토사뿐, 단 한 방에 숲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이만한 위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입은 자는 있을지언정 목숨을 잃은 자는 없었다.
그건 모비딕 뿐만 아니라 천사들 또한 마찬가지.
‘이만한 공격을 하면서도 조절한 건가.’
보면 볼수록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 인간을 봤을 때는 무시하고 있었다. 원래 인간은 약한 마법에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날파리 같은 존재이니까.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신한별이라는 인간의 저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렇기에 더더욱 공포감이 짙어졌다.
설마 저 검이 우리를 향하지 않을까 싶어서.
만일 숲을 가른 검의 끝이 모비딕에게 향하게 된다면⎯
“⎯그땐 끝이다.”
결심은 금방이었다.
전에 봤던 신한별이라는 인간은 말이 통하는 자였다.
이해타산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합리성에 비중을 두고 움직이는 인간의 유형이다.
그럴 거면 어째서 저 악독한 천사들까지 같이 살려뒀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장로는 애써 외면했다.
어쩌면 대화로 잘 풀어나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장로는 욱신거리는 몸을 애써 이끌고 신한별을 향해 다가갔다.
“한별 공! 어, 엄청난 힘이시군요. 저희들을 구하… 시기 위해서…….”
장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다 말다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불길함이 엄습했다.
신한별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그는 이를 꽉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물러설 순 없었다.
“보고만 계시지 마시고,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조금만 더 하시면 저 악독한 천사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예?”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그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럴 리가 없다. 필히 잘못 들었으리라. 그렇게 되새김질하며 그는 되물었다.
“저희를 구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준 것도 없으면서 구해주긴 누굴 구해줘. 포유류 새끼가 꿈도 야무지네.”
신한별은 비릿한 미소와 동시에 검을 어깨에 걸쳤다.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에 장로는 제 귀를 의심했다. 혹여나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다른 이들도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게다가 이전까지만 해도 강렬한 기운이었지만, 검을 뽑아 든 순간부터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저건 못 이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숫제 괴물.
신한별은 양측을 번갈아 보는가 싶더니 검을 앞으로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뭐해?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반사적으로 의문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마저 하라니 무엇을?
뜬금포에 의아스러워하는데, 신한별은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왜, 고작 환경이 바뀐 거 하나 가지고 서로 싸울 용기가 안 나나 봐? 그런 의미에서 걱정 하지마. 둘 중에서 이긴 쪽하고는 내가 직접 겨뤄줄 테니까.”
자세한 설명을 끝으로 신한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승부를 내.”
* * *
“그러니까 어서 승부를 내.”
내 경고에 천사와 모비딕, 양측은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내 힘을 직접 보고 반항할 생각은 싹 가신 모양인지, 반항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협박한다고 해서 흑막이 나타날 거라고 확신할 순 없다.
‘그렇지만 가장 가능성이 크지.’
만약 흑막이 천사 측에 있을 경우에는 이런 상황을 두고 내버려 둘 리는 없을 터.
자신의 동료가 내 손에 죽거나 혹은 귀중한 자원이 될 모비딕이 죽더라도 계획이 틀어진다. 그런 이유에서 흑막은 나타날 것이다⎯라는 게 일단 계획한 전제조건이긴 한데.
과연 여기에 낚여서 나타날진 두고 봐야지 알 일이긴 했다.
그렇게 전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천사 중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듯 얼굴이 마주쳤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본 것처럼 낯이 익은 얼굴.
골똘히 고민하다 말고 천사의 정체를 금방 떠올렸다.
‘아아, 32층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났던 그 천사인가.’
그러고 보니 어둠의 정기와 싸울 당시에 공격에 휘말린 이후로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도 멀쩡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던 그때, 나는 제자리에서 멈칫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천사를 바라보자.
나와 간만에 재회한 천사의 눈빛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