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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104화 (104/175)

제104화

나는 난장판이 된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공중 도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지면으로 추락하고 있었으며, 도시의 한쪽 에리어는 흔적도 없이 무너져 있었고.

땅에서 솟구치는 암흑 물질로 인해 도시는 점점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그중에서도 문제는 저놈이겠지.”

나는 시선을 돌려 이 상황을 일으킨 원흉을 바라봤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촉수는 사방으로 난무하며 도시를 철저히 붕괴시켜 나갔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압박감.

확실히 시스템에서 정의한 대로 재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상대다. 물론 내가 부추겨서 이런 상황에 다다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썩은 부위가 있다면 뿌리부터 뽑아내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재앙을 불러일으켰을 테니까.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번개의 정기 때도 상당히 위험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

이전과는 달리 어둠의 정기는 고도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

놈은 천사를 세뇌한 후, 고래를 사로잡아 마력을 뽑아내기까지 했다.

당장 목격한 것만 그 정도인데, 내가 모르는 것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뽑아 먹었는지 감이 안 잡힐 정도다.

솔직히 내가 봐도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솔직히 어둠의 정기가 내뿜던 기운은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의 마나량이니까. 적어도 드래곤 성체인 둘리의 마나통조차 훌쩍 뛰어넘었다.

“시발, 어지간히도 처먹었나 보네.”

얼마나 배를 채웠길래, 이렇게까지 웅장한 스케일인 거야.

누구는 배고픈 걸 참으면서까지 탑들 등반 중인데, 단순히 여기에서 터를 잡는 것만으로 이만큼 성장할 수 있다니.

이런 게 바로 사촌이 땅을 샀다고 들으면 배가 아픈 느낌인가.

아,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넌 내가 책임지고 족칠 테니까. 잠깐 얼굴 좀 보자.”

지면을 박차고 놈을 향해 도약, 곧바로 검을 휘두른다.

채애앵!

태산과 같이 묵직한 검이 횡으로 그어졌지만, 붉은 스파크가 튀며 몸이 튕겨 나갔다.

그대로 지면에 고꾸라질 뻔한 걸 서둘러 중심을 잡아 서둘러 잔해 위로 착지했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손아귀가 찢어진 모양인지 아릿한 고통이 손바닥 안을 머무른다. 상당한 충격이었으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중얼거렸다.

“열두 겹… 아니, 열다섯 겹이었나.”

놈의 목을 베기 직전, 앞을 가로막은 촉수의 개수이었다.

딱 한 끗.

조금만 더 힘이 실렸으면 정확히 베어냈을지도 몰랐을 텐데. 아쉬움이 혀 위를 감돌았으나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직 기회는 많다.

그리고.

“어떻게 상대할지 대충 감도 잡혔고.”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앞으로 발걸음을 뻗었다.

방금 전의 일격을 막고 나서, 정면에서 직접 상대하는 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뒤로 물러서는 놈의 모습.

쏴아아아악!

한 찰나의 고요함 끝에 놈은 수십, 수백 발의 촉수를 쏘아낸다.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상당한 속도.

나는 짧게 검격을 내두르는 것으로 촉수를 걷어낸 후 놈의 배후로 파고든다.

그대로 끝내버릴 생각으로 검을 내찌르려는데, 일순 놈의 몸이 슬라임처럼 흐물흐물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액체가 되어 지면을 향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멀쩡한 놈이 왜 액체 괴물이 돼서 흘러내리는 거야?

혹시 몰라 남은 검은 액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물을 베는 듯한 감촉과 함께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검은 액체가 솟아오르면서 형태를 지닌 괴수들이 나타났다.

방금 전의 괴수를 수천 분의 일, 수준으로 분리한 것 같은 비쥬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수십에서 수백 체인데,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전부 세면 얼마나 많을까.

“숫자도 징글징글한데 또 생긴 것도 존나 징그럽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부여잡았다.

하나로는 안 될 거 같으니까. 이런 얄팍한 수를 써?

이 중에서 본체는 하나밖에 없다.

제한 시간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한가로이 지체할 순 없었다.

〈히든 미션〉

- 재앙을 막으시오.

- 실패 시: 32층의 폐쇄 및 사망

※ 공중 도시의 추락까지 남은 시각- [42:59]

남은 시간은 40여 분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로운 시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었다.

이걸 어쩌지? 본체 하나를 찾는다고 여기에 있는 놈들을 전원 상대하고 있으면 날 시간도 안 날 거 같은데.

어차피 땅에 추락해서 없어질 도시라면 카운터다운만 유야무야(@수정/하염없이) 기다릴 바에는 본체를 찾는 희생양으로 내가 반쯤 박살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지 않을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검은 그림자가 하늘 위를 가렸다.

도시 전역까지는 아니라도 꽤나 거대한 규모.

“뭐야, 안 그래도 골치 아픈데 또 무슨….”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올리자, 하늘 위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둘리야?”

“어? 한별!” 무심결에 이름을 부르자, 하늘을 날던 둘리는 선회를 해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분명히 공중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바깥에 대기시켜두고 왔을 텐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게다가 성체화 한 모습이다.

또 다른 일이 터진 게 아닐까 싶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자, 둘리는 명랑한 어조로 대답했다.

“한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에서 큰 게 떨어져서 나도 와 봤다!”

난 또 뭐라고, 그런 사소한 거였나.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멀쩡한 도시가 하늘에서 추락하는데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가.

여기에 와서 하도 일이 많아서 그런지 어지간한 일은 벌 거 아닌 거처럼 느껴졌다.

“그건 알겠는데 뜬금없이 성체화는 왜 했어?”

“멋져지지 않을까 싶어서…… 한별이 하는 방식대로 따라 해봤다!”

“따라 했다고?”

“응! 그렇다!”

어디에서 구라를 치냐는 말이 턱 끝까지 나왔다가, 순수하게 웃는 둘리의 얼굴에 다시 쏙 들어갔다.

저런 미소를 앞에 두고 탓하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아무튼 그런 거라고 치자.

어쨌거나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었는데 하나 더 늘어나면 훨씬 일이 수월해질 테니까.

“넌 저걸 처리하고 있어.”

“알았다! 나한테만 믿겨달라!”

둘리는 제 가슴을 두들기곤, 날개를 활짝 뻗어 상공으로 올라갔다,

가슴을 잔뜩 부풀리더니 녀석의 입에서부터 칠흑과 같은 흑염이 뿜어져 나온다.

짙은 유황 냄새와 함께 괴수의 몸이 타며 시꺼먼 재가 하늘 위로 흩날린다.

멀리서 보고 있자니, 도시 전체가 화마 속이 된 거 같지만, 원래 계획대로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단 나으리라.

‘천사들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최선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최악보다는 차악이 그나마 나을 테니까.

둘리가 가세하면서 괴수들은 빠르게 죽었다.

방금 전처럼 액체가 되어 회피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흑염은 한 번 붙기 시작하면 꺼지지 않는 불꽃.

몸의 형체가 변하더라도 흑염은 꺼지지 않은 채, 괴수를 끝까지 불태운다.

“처음부터 둘리한테 시킬 걸 그랬네.”

이렇게 편할 줄 알았다면 말이지.

하나, 둘씩 쓰러져 가는 괴수들 사이에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황폐화된 도시 속, 만약 내가 쫓기는 입장이라면 어디에 숨어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남은 시간상 더는 여유는 없다. 이번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소모한 힘을 다시 비축할 수 있으면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

머릿속으로 도시 전역을 떠올리다 말고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아무래도 찾은 거 같은데?”

조건에 부합하는 장소는 한 곳밖에 없었다.

* * *

목적지를 정하고 난 뒤, 나는 서둘러 움직였다.

그리고 장소에 다다른 순간, 내 예상이 정확히 틀어 맞았다는 사실에 안도함과 동시에 한탄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놈을 확실하게 끝낼 수 있어서 안도했고.

또, 비극은 언제나 옆에서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한탄했다.

“시부럴.”

나는 걸쭉한 욕을 내뱉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도착한 장소는 공중 도시의 중앙 공원.

원래였으면 순백의 도시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장미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공원이었을 테지만, 그 시절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피폐함의 끝을 달리는 풍경만 있을 뿐.

“설마 했는데, 진짜로 벌어졌을 줄이야.”

[재액의 가면]을 통해 도시에 잠입했을 당시, 나는 도시 전역에 있는 천사들의 기억을 살펴봤었다.

그 결과는 처참하게도 어둠의 정기로 인해 기억은 조각조각 난 상태였다.

‘처음부터 정기로부터 세뇌를 당한 상태였지.’

만약에 상황이 막장에 다다르면 세뇌한 천사들을 써먹지 않을까?

무심코 들었던 의문점.

그리고 그 의문은 아주 정확하게도 틀어 맞았다.

“미친놈이라고는 생각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막돼먹은 놈이었네.”

공원의 한켠에는 천사들로 가득했다.

아름답던 외모는 어디 가고, 천사들의 눈은 초점이 없었으며 생기 넘치던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둠의 정기는 천사들로 통해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본 어둠의 정기는 어눌한 어조로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크흐흑… 이제야… 알았… 구나.]

“얼씨구, 이젠 말도 할 줄 알아?”

놈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대꾸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고작 이거야?”

[고작… 이거라고 하기… 에는…… 얕보다간 큰일 날 텐데…]

“새끼가 말할 거면 똑바로 해. 뭐라고 씨부리는지 못 알아듣겠네. 이래서 어쭙잖은 놈하고는 상대하기 싫다니까.”

[……]

내 말에 어둠의 정기는 침묵했다.

그것도 잠시, 놈은 딱딱한 어투로 말한다.

[후회하는…… 쪽은 누구인지 보면…… 알게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천사들의 눈이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세뇌가 발동한 모양인지 천사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 들며 이쪽을 향해 쇄도한다.

이전에 상대한 괴수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전투력.

마음 같아선 봐줄 것 없이 전부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순 없었다.

- NPC입니다.

- 합당한 이유 없이 NPC를 건들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한 명뿐이면 모를까. NPC 여럿을 건드는 것은 나조차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놈도 이 점을 노리고 저질렀을 것이다.

고작 해봤자 아티팩트 주제에 이렇게까지 머리가 잘 굴러갈 줄이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넌 처음부터 날 자극해선 안 됐어.”

[잘난… 척은 소용없다.]

“잘난 척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그리고 누가 더 어리석은지도 말이다.

나는 이쪽을 향해 쇄도하는 천사들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직업: 이터]의 권능이 발동합니다.〉

- 모든 상태 이상을 잡아 삼킵니다.

손아귀에서 흘러나오는 연보란 빛이 총알처럼 뻗어져 나가 천사들의 몸을 직격한다.

총알은 천사의 몸에 붙어있던 암흑 기운를 먹어 치우며 섬광이 번뜩였다.

파아앗!

강렬한 섬광이 가시자, 원 상태로 되돌아온 천사는 기절한 채로 지면에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손바닥에 깃든 암흑물질을 권능으로 파쇄하며 놈을 향해 바라봤다.

“이제 보니까. 우리 궁합이 아주 잘 맞았나 봐. 천적 관계로 말이야.”

이걸로 체크 메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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