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여,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천사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꽤나 당혹스러워 보이는 눈치. 오죽하면 항상 하던 존댓말 컨셉도 때려치운 모양이다.
위에서 그 소동을 일으켰는데도 침입한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을 보니, 다시금 결계의 성능이 감탄스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자 그녀의 얼굴은 점차 굳어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혹은 결계에서 이상이 일어났나?
아니면 그 밖의 사건이 일어난 걸까?
그러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복잡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에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포켓에서 재액의 가면을 꺼내 들자 그녀는 잔뜩 경계한 눈빛으로 이쪽을 훑어본다.
“그, 그건 뭐지? 일단 움직이지 마! 마음대로 허튼짓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 그 손을 당장 잘라버리기 전에…….”
“쫑알쫑알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닥쳐 봐.”
딱 잘라 말하며 재액의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도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빠르다.
곧바로 아티팩트의 능력을 발동시키자, 내 얼굴은 한순간에 그녀의 것으로 바뀌었다.
심지어는 체형부터 목소리까지.
마치 도플갱어를 보는듯한 광경에 그녀는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했다.
“……!”
내내 물음표였던 그녀의 얼굴이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윽고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날 속였구나.”
“속인 건 아니지. 잠깐 몸만 빌린 건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깐깐하게 그래.”
조금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는데, 더욱 정확하게는 얼굴만 빌렸을 뿐이다.
되려 당당한 자세로 나서야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까지 뻔뻔한 자세로 나설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자, 잠깐만 도시에 들어온 건 그렇다 쳐도 결계 안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얼굴을 숙이는 것만으로는 못 들어올 텐데?”
그것도 잠시, 그녀는 결계에 대해 뒤늦게 떠올랐는지 퍼뜩 질문을 던졌다.
한발 늦은 의문에 나는 입가에 씨익 웃음을 걸쳤다.
“아, 그거? 쉽게 부서지던데.”
파앗!
말이 끝맺음과 동시에 그녀는 총알처럼 뛰쳐나왔다.
미처 방심했다면 눈 뜬 채로 당하기에는 충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훤히 보인다.
그녀가 내찌른 스틸레토를 한 끗 차이로 회피한 후, 다리를 걸어 넘어뜨림과 동시에 오른팔을 등 뒤로 젖히는 것으로 제압했다.
이 모든 게 단 3초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
“으윽!”
지면에 왼쪽 뺨이 쓸린 채, 그녀는 신음 소리를 흘렸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에 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도, 도대체 어떻게?”
“네 실력으로는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하지, 그랬어.”
이렇게 곱게 넘어가는 것도 한 번뿐이다.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그녀는 순간적인 힘으로 손을 뿌리째고는 왼손으로 허벅지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정확히 내 목을 노린 회심의 일격.
노림수는 좋았으나 움직임이 커서 눈에 훤히 보인다.
나는 경동맥에 닿기 전에 서둘러 손날을 날려 검을 떨쳐냈다.
챙그랑!
그녀가 놓친 검이 바닥을 구르며 차가운 금속음이 일어난다.
단검을 코팅한 막이 벗겨지면서 내재한 검은 액체가 바닥에 길게 흩뿌려졌다.
흩뿌려진 액체로 인해 지면은 부식되어 타들어 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술수까지 들킨 그녀는 새파래진 안색으로 손을 덜덜 떨었다.
“왜? 내 관심을 끈 다음에 독으로 중독시키려고? 괜찮은 수법이긴 한데 경고했잖아, 안 통한다고.”
이미 경고했으니까. 후회는 하지 마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등을 짓밟은 채, 붙잡고 있던 오른팔을 등을 향해 있는 힘껏 접었다.
뿌드득, 콰득!
강렬한 파육음과 더불어 그녀의 팔뚝은 관절 채 빠져 반대편 방향으로 고이 접혔다.
맨정신에 팔뚝이 빠지는 고통에 그녀는 지면을 구르며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내, 내 파아아알!”
그녀는 자신의 어깻죽지를 움켜쥐며 콧물과 눈물을 흘린다.
안쓰럽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아직 안 끝났어.”
“히익! 자, 잠깐…!”
“그러게, 수작 부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잖아. 자업자득이네.”
나는 공평하게 남은 팔뚝도 방금 전과 같이 역방향으로 고이 접어뒀다.
양팔을 잃은 천사는 고통에 물든 비명을 내지르다 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고통을 못 이기고 기절한 것이었다.
이걸로 귀찮은 날파리도 한 마리 처리했고.
이제 남은 건……
나는 고개를 돌려 시꺼먼 어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파지지직⎯
어둠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번개의 정기는 더욱 강렬한 공명현상을 일으켜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코앞, 조금만 더 가면 이번 사태의 원흉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바로 뒤에서부터 무언가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아, 좀비 새끼도 아니고,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내가 말했지? 다음에 또 방해하면 뒈진…….”
울컥 솟아오르는 짜증에 앞머리를 걷어 올리며 몸을 돌리려다 말고, 나는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양팔을 뽑아서 다신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뒀을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당장 느껴지는 기척은 천사의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결단은 짧았다.
나는 반대편을 향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일대를 시꺼먼 폭풍이 휩쓸었다.
내가 봐도 놀랄 정도의 위력.
과연 아무것도 모른 채 저기에 서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잠깐만 여기에는 천사밖에 없었을 텐데 갑자기 어디에서….”
그런 고민조차 허락지 않겠다는 듯, 찢어들 듯한 굉음이 고막을 때린다.
그리고는 섬찟한 감각이 등 뒤로 드리운다.
그 감각을 느끼자마자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몸을 내던졌다.
씌잉!
공간이 단절되는 감각과 함께 파열음이 들려왔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정말로 공간이 잘려 나갔어?”
미친, 이게 무슨 난이도야.
마음 같아선 적을 특정해 당장에라도 쓰러뜨리고 싶지만, 너무 어두워서 그런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믿을 거라곤 수백 년간 튜토리얼에서 구르고 구른 야생의 감뿐이었다.
탑이 일으켰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난이도.
어지간한 등반자였다면 방금 전의 일격에 반응도 못 하고 쓸려나갔으리라.
‘이거 어디에서 한 번 겪어본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집중하면 떠오를 거 같다.
그렇지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강력한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헤집는다.
동물적인 감에 의지해서 한 끗 차이로 회피하는 게 고작이다.
언제까지고 피할 순 없다.
피하기만 해선 이래선 싸울 것도 제대로 못 싸운다.
또 한 번, 공격을 회피하다 말고 머릿속에서 문득 어떠한 아티팩트가 떠올랐다,
고민할 틈은 없었다.
“일단 해보면 알겠지.”
조용히 나직이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내가 언제 복잡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나.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도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떠올린다. 그것마저 안 되면 몸으로 직접 때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튜토리얼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온 방식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똑같이 하면 되지.
다시금 몸을 던지면서 포켓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은빛의 로자리오(B)〉
- 성신 카르텔의 갸륵한 은혜가 깃들어 있는 아티팩트. 삿된 힘을 물리친다.
- 카르텔의 은혜가 맞닿아 있는 층에서 유용하게 쓰일 거 같다.
손에 쥐어진 로자리오의 권능을 곧바로 발동하자.
딸랑!
청명한 방울 소리가 고요하게 울림과 동시에 새하얀 섬전이 어둠으로부터 영역을 넓혀갔다.
- 삿된 어둠을 물러내리라.
사방을 뒤덮는 어둠이 걷히고 주변 풍경이 드러났다.
주변을 둘러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칠흑이 걷어지고 먼저 보인 광경은 생기를 잃고 삐쩍 말라비틀어진 고래들의 사체였다.
숨을 잃은 고래들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으나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풍경만이 아니었다.
‘마나가 없어.’
분명 전에 마주쳤던 고래는 상당한 마나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고래는 마치 ‘마력 자체를 강탈해간 듯’ 체내에는 마나 자체가 텅 비어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양의 마나.
고래의 사체를 바라보며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 빠직!
로자리오에 달리 방울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찾아온 정적과 함께 금이 쩌저적 갈라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
벌어진 상황과는 달리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로자리오를 포켓 속에 수납했다.
아티팩트가 고장난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B급 아티팩트로는 감당도 못 할 상대가 나타났다는 거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지면에서부터 가공할만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대로면 휩쓸린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자.
그와 동시에 지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거무죽죽한 흑염이 간헐천처럼 솟아오른다.
콰과과광!
단 한 방.
그저 놈이 나타났을 뿐인데 공중 도시의 절반이 붕괴했다.
한순간에 기동력과 부력을 상실한 공중 도시는 45도로 기울어진 상태로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시꺼먼 화염이 불기둥처럼 솟아올랐다.
지면을 향해 추락하는 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꽃이 도시 전역을 타오른다. 그야말로 아포칼립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으나 나는 눈을 돌렸다.
왜냐면 도시의 몰락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
지면을 향해 추락하는 카운터다운만을 남긴 가운데, 공중 도시의 상공으로부터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어둠의 정기가 당신을 적으로 규정합니다.〉
〈허락받지 못한 접근으로 인해 히든 미션이 발생합니다.〉
- 재앙을 막으시오.
- 실패 시: 32층의 폐쇄 및 사망
※ 공중 도시의 추락까지 남은 시각- [54:12]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고 나서야 내내 추측만 했던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은 바로 7개의 정기 중 하나라는 것을.
게다가.
‘히든 미션이라…’
실패하면 32층이 폐쇄될 뿐만 아니라 사망한다.
어마어마한 페널티였으나 사태의 심각성과는 반대로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일반적인 클리어 조건이 아닌 히든 미션인 만큼 이번 층을 클리어한 보상 역시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건물의 잔해를 즈려밟고 상공을 향해 뛰어오르자, 이 사태를 일으킨 괴수의 눈동자… 아니, 어둠의 정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압박감.
나는 놈을 바라보며 입가에 능글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많이 기다렸지? 걱정 마, 나도 기다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