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갑작스레 나온 신협단의 이야기.
커뮤니티를 통해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신협단이 일종의 밈이 된 사실은 알고 있었다지만, NPC의 입에서 직접 들을 날이 올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길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신협단이라면 정말로 무슨 일을 벌이든 이상할 건 없어서.
“그래? 우연이네. 나도 그런 집단에 대해선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어땠어?”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그래도 난동이나 테러 같은 것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곧이어 천사의 발언에 입을 다물었다.
“신협단을 자처하는 플레이어들이 얼마 전에 저희 도시에서 난동과 테러를 일으켰거든요.”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악운일진 몰라도 내 예상은 완벽하게 틀어 맞았다.
천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 일 때문에 도시에는 안 들어오시는 걸 추천해요. 등반자에 대한 민심이 떨어질 때로 떨어졌거든요.”
“그렇다면야.”
그녀의 언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렇게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 되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천사는 침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신협단이라는 단체는 신한별이라는 플레이어를 주도로 움직인다고 하던데 혹시…….”
곁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의심이 가득한 눈빛.
그러니까.
방금 전에 대답한 내 이름을 듣고 동일 인물이 아닌가 의심하는 건가.
안타깝게 된 일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거 내가 이끄는 거 아냐, 신협단 그놈들이 제멋대로 추앙할 뿐이지.
하지만 진실을 말한다고 순순히 믿어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항변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퍽이나 믿어주겠다.’
방화범이 불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봤자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다.
“아, 그거 동명이인이야,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NPC 사이에서도 종종 오해받고 그래.”
내가 너스레를 떨자 천사는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 이를 증명할 것도 마땅히 없어서인지 적당히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아무쪼록 조심하길 바랄게요.”
천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아한 발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친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고, 고래의 존재를 뒤늦게 떠올리고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그 고래, 내가 대가리를 후려친 덕분에 혼수상태지 않던가?
가뜩이나 신협단으로 인해 등반자에 대한 인상이 최악을 달리고 있는데, 여기에서 내가 고래를 때려죽였다?
논란이 되기에는 딱 좋은 소재였다.
“어, 잠깐만…….”
천사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한발 늦었다.
손을 뻗기도 채 전에 천사는 고래의 앞에 다가섰다.
“휴, 정말 다행이네요. 하마터면 놓칠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어요.”
그녀는 고래의 상태를 대충 훑어보는가 싶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미소를 짓는다.
고래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뭐지? 조금 부상을 입어도 상관없는 거였나.’
다행이네.
여러모로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나쁠 일은 아니었다.
별다른 트러블 없이 간단히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마음 한 켠에서는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으나 나는 간단히 무시했다.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다.
또 굳이 파고들어서 겪게 될지도 모를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일도 아니기도 하고.
천사가 정면을 향해 손을 뻗자, 이마에 박힌 보석에 붉은빛이 깃들며 고래는 다시 활기를 되찾으며 일어났다.
곁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표정을 읽었는지 천사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별 건 아니고 단순한 도핑 같은 거예요. 천사들은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거든요. 비슷한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해서 말이지.”
“운이 좋으시네요. 흔히 보기 힘든 건데, 아무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네요. 다음에 또 연이 생기면 뵀으면 좋겠네요.”
천사는 그 말을 남기곤 고래와 함께 공중 도시를 향해 훌쩍 날아갔다.
그렇게 악연일지 인연일지 모를 첫 만남은 싱겁게 끝이 났다.
* * *
한편, 공중 도시의 입구에 도착한 천사는 혀를 차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칫, 거기에서 둥반자와 만나게 될 줄이야.”
방금 전과 비교해 180도 달라진 태도.
그녀는 얼굴을 악귀처럼 구긴 채, 고래를 째려봤다.
쫘악!
손바닥에서 나온 채찍이 고래를 타격하며, 등에 기나긴 자상을 남긴다.
상처에서 피가 질질 흘렸지만, 고래는 비명은커녕 공허한 눈으로 있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채찍을 휘두르던 천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나서야 손을 거뒀다.
“에잉, 재미도 없긴.”
천사는 손에 튄 피를 혀로 핥으며 숨을 돌렸다.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타고 입 안 전체에 퍼진다. 천사는 쌉싸름한 피를 음미하며 홀로 중얼거렸다.
“분명 신한별이라고 했었던가.”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도움을 받은 등반자는 가증스러운 신협단의 수장과 같은 이름이었다.
그의 말대로 동명이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시에 봤던 일격, 그 정도라면 등반자 중에서도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딱 거기까지겠지만 말이야.”
천사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지금까지 탑을 오르던 등반자는 월등한 천사의 외모를 보면 눈에 들기 위해 기회만 생기면 자신이 지닌 전력을 보여주기 마련이었다.
미련한 짓거리인 것처럼 보여도 우습게도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신한별이라고 해봤자 딱 그런 부류에, 그 정도의 수준이겠지.
마음 같아선 완전한 은폐를 위해 놈을 처리해두고 싶었지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움직일 순 없었다.
‘당장 신협단 그놈들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니.’
천사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불과 며칠 전부터 괴상한 이름을 대면서 나타난 등반자들.
그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뭐랄까.
미친놈들.
아니 그걸로도 한참 부족하다.
“죄다 순 또라이들이지.”
천사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고작 신한별이라는 플레이어를 입에 담았다고, 발작 스위치라도 누른 것마냥 날뛰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
신협단이 벌인 짓이라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방금전의 남자가 그 ‘신한별’이 맞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지.’
신협단의 수장이 그 실력밖에 안 되면 오히려 바라던 대로다.
원래 머리를 잃은 집단은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혹시 모르니까. 사람을 시켜 신한별의 뒤를 밟게 만드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려나.
천사는 그렇게 믿으며 중얼거렸다.
* * *
아마 지금쯤이면 사람을 시켜 내 뒤를 밟으려고 하지 않을까.
천사가 날아간 직후, 공중에서 펄럭이는 깃털을 낚아챈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다음에 또라…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천사와의 첫 만남.
탑에서 만난 이종족인 와이번이나 드워프와는 달리 색다른 느낌이었다.
뭐라 정확하게 딱 잘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단지 그 관심이 천사라는 종족에 관해서인지,
아니면 방금전에 조우했던 천사에 관해서인지는 두고 봐야지 알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둘리야.”
“음? 한별, 불렀나!”
내 부름에 줄곧 재킷 안쪽에 숨어있던 둘리가 얼굴을 불쑥 드러낸다.
그 모습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긴 또 언제 들어간 거야. 예전에 비해 살도 뛰룩뛰룩 쪄서 분명 비좁을 텐데 용하기도 하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녀석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그대로 잡아당겼다.
둘리는 거의 찌그러지다시피 한 상태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녀석의 모습에 나는 웃음기를 흘리며 되물었다.
“너도 천사랑 대화 나누는 거 봤지? 그래서 네가 보기에는 어떤 거 같아.”
“그 천사를 말하는 거라면 둘리는 그다지 마음에 안 든다!”
물음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둘리의 대답.
“둘리야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나쁜 습관이야.”
“아, 아니다! 하려고 했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장난스럽게 툭 던진 말에 둘리는 급격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피식거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둘리라면 그렇게 대답할 거 같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음… 모르겠다! 뭐라고 표현은 못 하겠는데 발 냄새 같은 구린내가 날 거 같다.”
내 질문에 둘리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외친다.
천사더러 발 냄새라니,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이도 탑에선 둘리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왜냐하면 그 의견에는 나도 적지 않게 동감하는 바거든.
천사와는 짤막한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바가 있었기에.
곁으로는 아닌 듯 내숭을 떨더라도 내 눈을 속일 순 없다.
‘분명 거짓말이었지.’
보통 거짓말을 할 땐 무의식과 의식의 괴리로 인해 신체 반응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천사가 타인을 회복시킬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발언했을 당시, 눈빛과 목소리는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수상한 점은 더러 있었다.
수상한 부분을 일일이 짚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 같고.
비록 종족은 다르다지만, 같은 동류로서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 앞에서 구라를 치고 있어.”
* * *
〈클리어 조건: 천사의 신임을 얻으시오.〉
※ 주의! 여건에 따라 조건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