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서 시스템의 보상을 기다렸다.
그야 31층에서 내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한 번쯤은 기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수백 년간 어쩌지도 못했던 미궁을 클리어했을뿐더러,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왕국의 쿠데타까지 훌륭하게 막아냈다.
이 정도면 보상을 기대해 볼 법도 했다.
아주 짧은 시간 차를 두고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총 업적 점수: 10,293점〉
〈신한별 플레이어는 31층의 등반자 중에서 누적 업적 점수 1등입니다.〉
〈랭킹이 갱신되며 보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띠링! 휴게 공간에 하늘 정원이 개방됩니다.〉
나는 시스템을 확인하자마자 의문이 떠올랐다.
“하늘 정원?”
평상시처럼 능력치의 상승이나 곧바로 지급되는 아티팩트에 비하면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는 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에 지급된 보상은 휴게 공간에 직접 가 봐야지만 알 수 있는 종류였으니까.
혹시 몰라 커뮤니티를 검색해 봤지만,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건가.’
나는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돌렸다.
시스템의 설명에 의하면 랭킹이 갱신되며 업그레이드된 보상이라고 했다.
그 의미는 31층에서 1등에 달성한 자만 받을 수 있는 보상.
암만 그래도 탑이 보상 같은 걸로 남의 등을 쳐 먹는 일은 없었으니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겠지.
‘그나저나 내 이전에 1등이었던 플레이어는 누구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시스템을 조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31층의 랭킹이 쭉 나열되었다.
나열됐다고 해 봤자, 1위에서 10위까지의 랭킹.
그거면 충분했다.
더 많다고 해도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흔히 말하는 인싸 짓을 하며 인맥을 다져 뒀으면 몰라도, 지금까진 탑의 최상층에 다다르는 것을 목표로 쉴 새 없이 등반만 했다.
그렇다 보니 탑에서 아는 지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실제로 10위권 중에서도 익숙한 이름은 두 명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유채아의 이름이었다.
- 3위: 유채아 (5,460점)
“역시는 역시네.”
확실히 유채아의 실력이라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채아의 랭킹은 2위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비로 전까지 1위였던 인물은…
- 2등: 골리엇 (9,019)
명실상부한 탑의 최강이자, 역대 플레이어 중 가장 많은 업적을 쌓았다고 여겨지는 인물.
그의 업적은 타인에 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나조차도 관심을 기울이게 할 정도로 만들었다.
지구에 있을 적부터 골리엇에 대한 소문은 흔히 들어왔으니까.
“그래도 9,000점이나 될 줄이야.”
나는 랭킹을 바라보며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유채아도 남 부럽지 않을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치를 아득히 넘어선다.
까놓고 말해 나와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점수.
물론 탑의 최강이라 불리는 녀석도 지금은 내 밑이지만 말이다.
실제로 나와 맞먹을 만한 적수가 될지 안 될지는 직접 겨뤄 보면 알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탑을 등반하는 것뿐.
‘골리엇이라… 꽤 재밌어 보이네.’
나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누가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될진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다.
아참, 그건 그렇고 다음 층에 가기 전에 드워프왕한테 부탁해서 보물이나 두둑하게 챙겨 달라고 해야겠다.
갈 땐 가더라도 두둑하게 챙겨서 나가야지.
〈31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곧이어 32층으로 이동합니다.〉
* * *
〈채널3〉
- 님들 그거 들음? 있잖아 31층에서 있잖아.
⤷ 몰?루
⤷ 아니 씹ㅋㅋㅋㅋㅋ 말할 거면 전부 말하고 가라고
- 세상에서 가장 짜증나는 거는 말하다가 끊는 거고 두 번째로는
- 아 ㅈㅅㅈㅅ 맨드레이크 때려잡는다고 늦었네. 31층에서 랭킹 1등 바뀜 골리엇에서 신협으로
⤷ 엥? ㄹㅇ?
⤷ 신협? 이 새끼 신협단이네 딱 걸렸음. 올려치기 ㄴㄴ
⤷ ㅋㅋㅋㅋㅋㅋ 아무리 신한별이 쎄다고 해도 갓리엇에 비비냐 구라도 적당히 하셈
- 갓리언 앞에 가면 아무 말도 못할 찐따들이 왜 이렇게 나댐
⤷ 아ㅋㅋ 담당 일찐 어디갔냐고ㅋㅋ
⤷ 이게 찐들의 유쾌한 반란 그런거임?
- 정보: 현재 31층 1등 신멘이다.
⤷ 못 믿겠으면 첨부함 .JPG
- 어? 이게 왜 ㄹㅇ임??
진실에 대한 공방이 점점 커져 가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뿌린 사진 한 장에 커뮤니티의 싸움이 일축되었다.
그 사진 안에는 31층임을 증명하는 내용과 함께 랭킹이 찍혀져 있었다.
당당하게 적혀 있는 1등의 이름에 커뮤니티의 반응은 역전되었다.
- 이왜진?
- 오빠 나 정신 나갈 것 같아(덜렁)
- 엄마나커서신협이될래요!엄마나커서신협이될래요!엄마나커서신협이될래요!엄마나커서신협이될래요!엄마나커서신협이될래요!
- 골리엇이 퇴물인 다섯가지 이유……
⤷ 퇴물은 선 넘었지ㅡㅡ
⤷ 솔직히 골리엇도 최근 2개월 동안 공식석상에 나타난 적도 없잖아. 그게 퇴물이지ㅋㅋㅋ
- ㄹㅇㅋㅋ 신협 코인 안타고 뭐함?
⤷ 극-락
- 암만 그래도 31층 따리가 비비는 게 맞음? 갓리엇은 36층인데
⤷ 곧 따라잡힐 예정
- 근데 신한별도 대단하네. 이 정도면 자랑할 만도 하지 않냐?
- 상남자특) 자랑 안 함
신협단과 골리엇의 팬덤으로 난장판이 된 커뮤니티를 바라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여긴 왜 또 개판이 된 거야.”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커뮤니티를 켰는데, 벌써 이 난리라니.
이마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뗐다.
적지 않은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난입했다간 어그로만 잔뜩 끌고 원하는 것은 못 얻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커뮤니티를 끄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와아! 한별, 몸이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그러게.”
둘리의 감탄사대로 우리는 32층, 구름으로 된 필드에 떠 있었다.
구름 밑은 반투명한 상태로 훤히 비쳤기에 마치 신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넓게 펼쳐진 장천은 가슴 속을 뻥 뚫리게 만든다.
말로는 이루 설명치 못할 정도의 절경이었으나.
우리의 시선을 뺏은 건 따로 있었다.
구름 위로 부유한 거대한 공중 도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풍경에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씌이잉!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저 멀리에서부터 검은 형체가 이쪽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
시력을 집중하자, 그곳에는 거대한 형체의 고래가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지구에서 봐 왔던 고래와는 달리 특이한 점이라면 이마 끝에 붉은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점이랄까.
그 뒤로는 네 쌍의 날개가 인상적인 천사가 울상이 된 채로 쫓아가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다급해 보이기까지 한 광경.
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곤 숨을 길게 내뱉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적당히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고래가 지나는 경로가 이쪽이다.
저렇게 다급해 보이는데 모르는 체, 넘기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하, 한별 저거 잡아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그냥 넘기는 게…….”
“나도 알고 있으니까. 엄살떨지 마.”
나는 재킷의 끝을 당기며 안절부절못하는 둘리를 진정시키곤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짧은 도움닫기 끝에 도약!
순식간에 풍경이 변하는가 싶더니, 고래의 대가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상당히 떨어진 상공이었지만, 나한테 걸리면 식은 죽 먹기다.
‘적당히 제압하는 수준이면 되겠지.’
하긴 고래와 천사의 관계도 모르는데, 있는 힘껏 때렸다가 즉사시키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막말로 산책 중인 애완동물을 놓친 걸지도 모르잖아.
애완동물이라고 치기에는 과한 것 같이 보이지만.
나는 짤막한 상념 끝에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득! 쿵!
주먹에 얻어맞은 고래는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향해 나가떨어진다.
무사히(?) 구름에 안착한 고래는 기절한 것 같이 보였다.
입에 거품을 문 채, 힘없이 혀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보니 어째…….
‘아니, 저거 뒈진 거 아냐?’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데 설마 저게 사후경직인가 뭔가 하는 그건 아니겠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방금 전에 타격할 때, 주먹에 힘이 좀 들어가긴 했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고래를 훑어보고 있을 무렵.
고래의 뒤를 다급하게 날아오던 천사는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허억…….”
“괜찮아?”
“가, 감사합니다.”
내가 건넨 말에 천사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 모습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냐. 괜찮아.”
저거 곁으로 보기엔 뒈진 거 같은데, 오히려 내가 사과해도 모자랄 판이야.
애써 고래한테 가는 시선을 몸으로 막아서고 있자, 이를 의아스럽게 여긴 모양인지 천사가 질문을 던졌다.
“등반자분이신 거 같은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내 이름? 신한별이라고 하는데 그건 왜?”
어딘가 모르게 가시가 돋친 대답.
하나 천사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신…… 한별?”
무슨 이유에선지 내 이름을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천사.
이내, 천사는 불현듯 기억을 떠올렸는지 손뼉을 마주치며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저 알아요! 요즘 등반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고 있는 단체가 있다고 했는데 분명 이름이 뭐였더라… 혹시, 신협단 맞으시죠?”
“…….”
천진난만한 천사의 의문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