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바로 그 시각.
커뮤니티는 화젯거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건 바로 29층에서 있었던 신한별과의 팬미팅.
10층 대에서 진행했던 단체층에서도 신한별과 직접 대면한 플레이어는 있지만, 그건 극소수일뿐더러 그때는 신협단이 화제가 되기 전이라 큰 이슈라 할 것은 없었다.
이슈라 해 봤자 저층에서 활약을 떨치는 수많은 루키 중 한 명이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상황이 제법 달랐다.
지금에 이르러선 신한별이라는 네임드는 상위 플레이어조차 주목할 정도.
그런 가운데 커뮤니티에서는 신한별의 목격담이 계속 화제가 되었다.
[채널2]
- 와… 신한별 실물로 첨 봤는데 개 잘생김
- 얼굴로 기강 씨게 잡네
- ㄷㄷ 싸움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 있다?
⤷ ㅅㅂ…… 오늘부터 신협단 탈퇴한다 ㅅㄱ
- 까악! 오빠가 내 티셔츠에 사인해 주시면서 웃으셨다(덜렁)
- 진지하게 신협단 길드는 어떻게 들어감? 나도 입단하고 싶은데
⤷ 신협단 길드 아님;;
⤷ 엥? 길드 아니라고 그럼 뭔데?
⤷ ㅋㅋㅋ 놀랍게도 팩트, 원하면 다 들어갈 수 있음
- 씹ㅋㅋㅋ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점 하나.
신협단이 길드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크게 놀랐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은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길드가 아닌 단체에서 이만한 파급력을 가져온 것은 최초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도 댓글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 야 잠만 그거보다도 속보 진짜임?
⤷ ㅇㅇ
⤷ ㅋㅋㅋ 신협단 그 미친놈들 말을 어떻게 믿음? 그걸 믿냐
- 신협단 말고도 들은 사람 많다던데
- 근데 3대 길드에서는 발표문 떴음?
- 3대 길드는 신경도 안 씀ㅋㅋ
⤷ 팩트: 저런 거에 도발 당하는 건 3류 길드다
- 도발 ‘100배’
- 광역 도발 효율 ㅆㅅㅌㅊ
- 얼굴로 여심도 도발하더니만ㄷㄷ
⤷ 여심만 도발했겠음?ㅋㅋㅋㅋ 남심도 ‘도발’했지
그렇게 한창 커뮤니티가 식지 않고 달아올랐을 때.
나 역시도 그에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쪽팔림과 황망함으로 인해서.
“아니,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을 거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극단적일 거라곤 꿈에도 몰랐지.
물론 탑을 클리어하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1도 안 들었으나.
커뮤니티 말마따나 졸지에 탑에 있는 모든 길드에게 도발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안 그래도 신협단 때문에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 이런 폭탄이라니.
가끔 보면 나를 암살시키려는 건지 헷갈린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커뮤니티에 인증글을 올리려던 그때였다.
〈믿기지 않는 성과를 달성한 당신에게!〉
〈칭호: 만인의 엔터테인먼트를 획득하셨습니다.〉
- 탑 역사상 이렇게 열렬한 관심을 끈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 당신의 명성에 비례해 큰 폭으로 행운이 상승합니다!
“…….”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칭호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칭호.
탑에서 칭호가 어떤 의미인가.
탑에서 엄선하고 엄선해 경이로운 업적을 세운 플레이어한테만 주는 보상이다.
전해 듣기론 상위층에 있는 랭커들에게는 자존심을 넘어서 강함의 측도로도 통한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칭호는 얻기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나도 탑을 등반하면서 지금껏 얻은 칭호는 두 개밖에 안 되고.
그런데 겨우 이런 소동 하나 때문에 칭호를 준다고?
‘아니지. 겨우라고 치부할 건 아니지.’
그동안 받은 정신적인 충격을 ‘겨우’라고 일컫기에는 너무 억울하니까.
그렇다면 이번 일은 탑에서 직접 칭호를 줄 정도로 엄청난 이목을 끌고 있다는 말인데.
칭호와 커뮤니티 인증글을 번갈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나는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커뮤니티에 올리려고 했던 인증글을 삭제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탑에서 직접 좋은 게 좋은 거라니까. 나도 이번에는 즐겨야지.
“하하…… 이젠 탑에서도 억까하네.”
엄청난 속도로 치솟는 게시물들의 좋아요 숫자를 보며 나는 눈물겨운 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빨리 등반이나 하자.
* * *
〈31층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번 층의 클리어 조건은 제한 시간 내에 일정 이상의 업적을 세우는 것입니다.〉
휴게 공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직후.
곧바로 31층으로 향한 나는 시스템 창을 확인하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업적이 무얼 뜻하는진 뒤로 제쳐 놓기로 하고.
“일정 이상이라는 조건은 또 뭐야.”
나는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누가 봐도 애매한 조건.
기준치가 확실히 정해져 있으면 보다 간편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조건이 추상적이다 보니 영 감이 안 잡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나 나는 시스템을 무시하며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탑이 하는 짓이 그럼 그렇지.”
새삼스러울 건 없다.
벌써 30층이나 경험했으면 탑에 대해선 충분할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니까.
불평을 내뱉으며 툴툴거리기도 잠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전 층이 멸망이라는 컨셉으로 인해 황폐한 환경이라 치면, 31층은 평화라는 단어가 썩 어울릴 법한 환경.
저잣거리는 상업으로 활기가 넘치며 잘 정돈되었고.
거기를 거니는 근위병에게선 정돈된 체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평화의 상징.
다만 지금까지 겪어 왔던 여타 층과는 달리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었다.
“드워프?”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커뮤니티를 통해 들은 정보를 머리에 떠올렸다.
인간의 허리쯤까지 올 법한 작은 키와 짧고 뭉툭한 팔과 다리.
특히나 길게 늘어뜨려진 우락부락한 수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런 곳에서 드워프를 만나게 될진 몰랐는데 신기하네.’
나는 호기로운 눈빛으로 생각했다.
물론 인간들 역시 섞여 있었지만, 거리에 있는 대다수의 종족이 드워프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말고 내 시선은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으음?”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었다.
깃발의 문양을 유심히 쳐다보던 나는 뒤통수를 긁었다.
“저거 어디에선가 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지?
어? 그러고 보니까…….
왠지 모를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나는 이전에 수납해 둔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은 6층에 머무를 당시에 영감님한테 건네받았던 목걸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깃발과 비교하면 다소 빛바랜 느낌이 있었지만, 안에 새겨진 자수는 틀림없었다.
‘분명… 그 노친네가 헤어질 때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아씨, 꽤 지난 일이어서 기억도 희미하네.
한참 동안 기억을 찾아 헤매던 나는 문득 떠오른 사실에 손뼉을 쳤다.
“아! 그 영감님 그래 봬도 토벌 대장이라고 했었지?”
그때 소속되어 있던 나라가 바로 여기였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었다. 인연이 이렇게 돌고 돌아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는 목걸이를 손에 쥐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웬 떡이야.’
쓰라고 줬는데 묵혀서 똥으로 만들 이유는 없지.
나는 목걸이를 손에 쥐고는 곧바로 위병소를 향했다.
토벌대장이라는 명성답게 물건의 진가는 병사들이 더 잘 알아볼 테니까.
위병소의 앞에 다다르자, 병사 두 명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턱짓했다.
“무슨 일이지? 여긴 외부인은 출입이 불가한 곳이다.”
병사는 매서운 눈빛을 한 채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실소를 흘리며 손가락으로 뒷목을 훑었다.
‘어쭈? 이것들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이 새끼들이 돌았나.
평소 내 성격 같았으면 일단 예절 교육부터 하고 시작할 테지만, 이번 한 번만 참기로 했다.
영감님의 증표만 보여 주면 알아서 해결될 터.
그때는 콧물, 눈물을 짜며 사과해 봤자 늦었다.
나는 최대한 안색을 꾸미며 그들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별 건 아니고, 그쪽한테 이걸 건네주면 될 거라고 들어서.”
“이건 목걸이? 자네 이거 아나?”
“아니? 처음 보는데?”
병사들은 목걸이를 곁눈질로 살펴보는가 싶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의아스러운 투로 말했다.
“토벌대장이 이걸 보여 주면 분명히 알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을 잇자, 그들 사이에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루 형용치 못할 분위기가 흐르기도 잠시.
그 침묵을 깬 것은 병사들이었다.
“후하하하! 태어나서 이런 개떡 같은 농담은 첨 들어 보네.”
“토벌대장님이라니 농담도 정도껏 하지. 이보슈, 이 나라가 건국된 지가 벌써 이백 년이 되었네. 토벌대장님은 이 나라가 건국될 당시에 살아있던 분인데 어디서 장난질이야. 장난치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순순히 말할 때 꺼지쇼.”
병사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목걸이를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목걸이는 바닥을 뒹굴며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이백 년.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은 영감님이 죽고 나서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세상이란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 노망난 영감이 자기가 죽고 이백 년이나 지난 세상에서 나더러 잘해 보라고 말했던 거지?’
당장에라도 6층으로 내려가서 잘잘못을 따져 묻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나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것만 해도 빡치기에는 충분했으나. 나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병사들을 마주 봤다.
그들은 검집 끝으로 내 어깨를 툭툭 밀치며 건들거렸다.
“어이, 형씨. 자네 같이 어쭙잖은 지식을 갖고 와서 한 푼 벌어 보려고 하는 놈은 안 그래도 넘치니까. 좋을 말 할 때 꺼져.”
“하하핫, 아니면 바라는 대로 한 푼이라도 주면 꺼지랴? 캬악… 퉤!”
병사는 한 닢짜리 동화를 바닥에 던지며 가래가 섞인 침을 내뱉는다.
누가 봐도 이쪽을 무시하는 기색이 훤히 보였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뒤지려고 환장했나.’
그래, 영감님의 얼굴을 생각해서 한 번만 참자.
그래도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노인인데, 설마 이런 일이 펼쳐질 걸 예상하고 목걸이를 건네줬겠어?
그러니까.
“야, 목걸이 다시 주워.”
노인네의 얼굴을 생각해서 죽이진 말고, 반쯤 죽여 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