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채널21- 29층 전용 커뮤니티]
- 야야, 지금 막 술래 떴다
⤷ ㅋㅋㅋㅋ 술래 딱 대. 바로 잡으러 간다
⤷ ㅁㅊ 술래 신한별이라는데?
⤷ 엥? ㄹㅇ??
⤷ 이왜진???
- 이름만 똑같은 동명이인 아님?
- 아님, 지금 전광판에 떴는데 얼굴 보니까. 신한별 맞는데?
- ^^ㅣ팔, 신협단들 행복회로 오지게 돌리겠네
- 아니 그전에 신한별이 술래면 우리 이번 층 절대로 못 깨는 거 아님? 걔 ㅈㄴ 세다고 하던데
⤷ ㅉㅉ 그걸 믿냐? 신협단들이 올려치기 한 거잖아
⤷ 임마. 과.대.포.장 그것도 모르냐?
- 앜ㅋㅋㅋㅋ 질소값만 얼만데
술래가 선정된 직후, 커뮤니티는 평상시처럼 활활 타올랐다.
화젯거리만 보이면 일단 물고 보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최근 들어 활약상이 들리지 않아 사그라들긴 해도 신한별이라는 네임드는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일부 플레이어들은 퇴물이라며 깎아내리는 자도 있었지만, 그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압도적인 주류였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여론의 방향을 완전히 바뀌어버릴 만한 사건이 터진 것은.
- 야야, 미친. 갑자기 룰 바꿔서 신격들도 참가한다는데?
⤷ 구라도 적당히 봐가면서 치셈ㅇㅇ;;
⤷ 요즘 어그로도 그렇게는 안 끔ㅋㅋㅋㅋ
⤷ 구라가 아니고 진짜라니까. 확인해 보던가
- 어? 구라 아닌데
- 진짜네…? 갑자기 신격들은 왜 29층에 참여함???
⤷ 형냐들 나만 능지 딸림?
- 룰이 그렇게 바뀌면 애초에 우리가 신격을 고른 이유가 뭔데
⤷ 몰?루
- 술래가 신한별이라서 탑에서 밸런스 조절한 거 아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각종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모든 논란거리의 중심에서 나는 가볍게 몸을 풀며 하늘 위의 유성우를 바라봤다.
추락하는 신격.
제삼자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저것이야말로 재앙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글쎄?
내 눈에는 그보다도…
“통쾌하네.”
나는 낄낄거리며 신격의 권위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꼴을 구경했다.
이 자리에 팝콘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다.
나만 엿 될 수는 없지.
처참하게 무너지는 신격을 구경하던 도중이었다.
〈탑에서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히든 미션: 필드에 난입한 신격 전원을 쓰러뜨리시오.〉
〈보상: 29층 클리어, S급 아티뽑기 뽑기권〉
“어?”
귓가를 파고드는 시스템 음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탑의 제안에 나는 제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제안.
게다가 보상 리스트도 하나 같이 매력적인 내용뿐이다.
보상 리스트를 쭉 읽고는 입가를 쭉 늘어뜨리며 옅은 웃음기를 띄웠다.
이만한 보상을 보고도 그냥 넘어갈쏘냐.
고민은 짧았다.
나는 흔쾌히 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제안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내 눈앞으로 사방에 떨어진 신격들의 위치 정보가 GPS처럼 떠올랐다.
친절하기도 하셔라.
하긴 내 신상과 위치도 시스템에 의해서 죄다 까발려졌는데, 마찬가지로 상대방 역시 알려지지 않은 건 없지.
‘어디 보자.’
내 위치를 기준으로 주변에 있는 빨간색의 점은….
“……!”
생각을 전부 잇기도 전에 갑작스레 느껴진 살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뻗었다.
채애앵-!
검격을 날림과 동시에 묵직한 감각이 검 끝을 강타하며 손목을 진동시킨다.
찌릿한 감각이 온 몸을 전율시킨다.
찰나의 순간에 일격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격?’
그것도 상당한 원거리에서 쏘아진 것이다.
궤적의 끝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상당한 높이의 건물이 있었다.
한 번 저격에 실패했으니 내게 위치가 특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리를 옮겼을 터.
원래였으면 몇 번이고 놈의 저격을 회피하여 상대방의 위치를 특정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시행착오를 들일 필요는 없었다.
몇 번의 도약 끝에 어느 건물의 옥상에 다다른 나는 주먹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쿠구구궁!
강렬한 충격에 의해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잔해 속을 파고들어 놈의 배후를 점한 뒤, 주저 없이 검을 등에 꽂는다.
“크윽, 어… 어떻게….”
피할 새도 없이 검격에 당한 이름 모를 신격은 두 눈을 부라리며 피를 울컥 토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듯이 이쪽을 노려보는 놈.
놈의 반응에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방긋 지었다.
“글쎄? 근데 네가 그걸 신경 쓸 처지는 아니지.”
힘을 불끈 주자, 놈의 등에 파고든 검은 관통해 가슴팍 위로 솟아오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신을 비틀며 그대로 머리를 향해 치켜올렸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반항할 새도 없다. 놈의 몸은 허무하리만치 절반으로 쪼개지며 숨을 잃었다.
한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일격.
나는 희게 웃으며 검신에 묻은 붉은색 피를 손끝으로 훑었다.
“우선 한 놈.”
* * *
사냥이 시작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로부터 필드 위에서 수많은 신격을 사냥하고 다녔다.
물론 수많은 신경을 사냥하는 동안, 놈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뭐, 그래봤자 피라미지만.
이제 남은 신격의 숫자도 절반.
신격들도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파악한 모양인지, 몇몇 신격을 주축으로 한데 뭉치는 양상을 보였지만.
“오히려 좋지.”
그 말은 일일이 찾아갈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이 일망타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니까.
나는 전황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로써 마지막 차례다.
사냥당하길 두려워하며 잔뜩 움츠린 놈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 와중에도 신격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고개를 꼿꼿이 든 모습은 비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대할 가치도 없겠네.’
차라리 튜토리얼에서 싸웠던 괴수들이 훨씬 낫겠다.
적어도 괴수는 죽음 따윈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용맹하게 덤볐으니까.
이걸로 29층도 끝.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이변이 벌어진 것은.
콰앙!
고막을 강타하는 강한 폭발음과 함께 새빨간 화염이 수십 미터가량 치솟아 오른다.
폭발은 정확히 신격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직격했다.
내가 꾸민 계획에는 전혀 없는 양상.
“둘리!!”
당황한 나는 다급히 둘리의 이름을 불렀고.
품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과 동시에 얼굴만 삐죽 튀어나온 둘리와 눈이 마주쳤다.
“한별, 내 이름은 왜 불렀나?”
“어? 둘리 네가 왜 거기에서….”
나는 의아스러운 목소리로 부르다 말고, 쎄한 감각을 느꼈다.
잠시면 이 녀석이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서 일어난 폭발은 대체 누가 벌인 짓이야?
불행히도 내가 가진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크하하하! 보았느냐! 우리들의 저력은 저딴 이교도하고는 다르다!”
공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누군가의 외침.
고함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십여 명의 남녀로 이뤄진 무리가 당당히도 서 있었다.
‘플레이어?’
무기부터 시작해 복장, 직업까지 통일감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집단.
허나 그들의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에서는 탑을 등반하는 동 층 대의 누구보다도 강력한 저력이 느껴졌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기행에 나는 가장 먼저 당황함을 느꼈다.
이번 층의 히든 요소를 아는 나와는 달리.
신격을 포함한 다른 플레이어는 그 사실을 모른다.
저들이 아는 정보라곤 술래인 나를 사냥하지 않으면 이번 층은 멸망을 맞이하리라는 것뿐.
오히려 믿을 만한 전력인 신격과 가세해서 나를 쓰러뜨리는 편이 더 효율적일 텐…… 어?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다 말고, 나는 벙찐 얼굴로 넋을 잃었다.
통일감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정도로 가지각색인 그들이었지만, 단 하나.
그런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것은 팔뚝을 두른 묘한 디자인의 두건.
‘자, 잠깐만?’
묘하리만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내 얼굴은 희게 질렸다.
언제였을까.
과거에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한때 커뮤니티에서 밈이 되어 오래도록 유행하던 굿즈.
당시에는 한 번 본 뒤에 트라우마가 되어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 버렸었는데,… 트라우마가 현실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어떻게든 부정하려 했던 상황에 나는 턱을 툭 떨어뜨렸다.
말리고 싶어도 이젠 걷잡을 수도 없다.
내가 절망에 빠진 틈을 타, 대표로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깃발을 지면에 내리꽂으며 그들의 정체를 용맹하게 외쳤다.
“신⎯⎯⎯멘!!! 감히 우리의 신협을 위협하려 하다니! 이제는 우리가 사랑과 애정의 힘으로 신협님을 지킨다!”
“신멘!!!”
“신멘!!”
“신멘!”
그의 선언에 뒤이어 사람들이 복창하기 시작했다.
흡사 광신도 같은 모습에 나는 새파랗게 지린 얼굴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저들의 정체?
뻔하지.
내가 모르면 탑의 누가 저들을 알까.
요즈음 탑에서 가장 핫한 세력임과 동시에.
29층에서 두 번째로 많은 점수를 획득한 정예 중에도 정예.
‘신협단.’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이제는 현실로 닥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직전에 폭발이 일어난 불구덩이 속에서 가공할만한 살기가 물씬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신협단은 당황한 티를 드러냈다.
그들이 일으킨 폭발은 최상층의 랭커라고 해도 어지간해선 버텨내지 못한 위력.
혹시를 대비해 화력을 최대로 때려 박은 건 좋은데.
“너무 힘을 과신했네.”
저들의 실력 자체는 동층 대의 플레이어를 전부 씹어먹는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그건 29층의 기준.
미안하지만 내 눈에는 한참 모자란 위력이다. 신격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괜히 신경질만 자극한 셈이겠지.
그런 내 추측이 정확하게 틀어 맞았는지, 활활 불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진화됐다.
불구덩이 속에서 신격은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나타난다.
“모자란 하등 생물들이 거추장스럽긴 만들긴.”
“안 그래도 신한별인가 하는 새끼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인데 날파리가 끼고 있어.”
신격은 가소롭다는 듯 불길을 손으로 날린 다음, 멍한 눈으로 무리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그는 께름칙한 미소를 지었다.
“분풀이할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됐네. 방해하는 새끼들의 머리를 깨는 것도 묘미지.”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플레이어들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곧이어 쏘아 보낸 화염이 플레이어들에게 직격하기 바로 직전.
한달음에 그의 정면을 막아선 나는 한 손으로 화염을 튕겨냈다.
허무하리만치 파훼 당한 공격에 놈은 믿기지 않다는 듯 눈을 빤히 떴다.
그것은 내 뒤에 있던 신협단도 마찬가지.
다만 신격과는 다른 이유에서인 거 같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목 뒤를 손으로 풀며 말했다.
“이거 뜻하진 않는데, 그 의견에는 나도 동감인걸.”
“동감? 크흐흐, 별 시답잖은 소리를 다 보겠네. 곧 뒈질 놈이 왜 이렇게 혀가 길어!”
그는 머리카락을 뒤로 슥 넘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손바닥을 활짝 펼쳐 들며 이쪽을 향해 쇄도했다.
동체 시력으로 따라잡기는 어림도 없는 속도.
언뜻 보면 제자리에서 사라진 듯 느껴졌으나, 나는 끌끌 혀를 찼다.
이것도 신격의 종특이라고 하면 종특인가 보다.
지금까지 내 손에 뒈진 놈들을 보면 죄다 같은 패턴이야.
정면을 향해 손을 펼치자, 사라졌던 놈의 머리가 내 손에 쥐어졌다.
“뭐, 뭐가….”
“뭐긴 뭐야. 곧 뒈질 놈이 뭐 이리 혀가 길어.”
콰드득!
손에 힘을 주자, 놈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다.
나는 손에 묻은 척수액을 털며 남아 있는 신격들을 향해 물었다.
“멀뚱히 뭘 보고 있어? 너희들도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