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78화 (78/175)

제78화

[채널21]

- 하… 랭킹 뭐냐? ㄹㅇ 이 정도면 주작 아님?

⤷ 또또, 주작무새들 올라오네. 왜 니네가 1등 못 하면 다 주작처럼 보이제

- ㅋㅋㅋㅋㅋ 아니 이번엔 좀 그렇긴 해

- 하긴 주작 의심할 만하긴 하지

- 상식적으로 대형 길드 루키 다 제치고 1등이 4명 파티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 그니까. 이 정도면 킹리적갓심이지

⤷ 찾아보니까. 유명한 애들도 아닌 거 같던데

⤷ 드래곤의 엄니 네이밍 센스 ㅆㅅㅌㅊ

- 그것보다 더 ㄹㅈㄷ는 2등도 신협단

⤷ 이정도면 3대 길드 말고 신협단 합쳐서 4대 길드 아니냐

⤷ ㄴㄴ 그건 좀;; 솔직히 광대단이 어떻게 거기에 끼냐

⤷ 틀딱임? 왤케 진지충이냐

- 솔직히 난 이번엔 좀 통쾌한데ㅋㅋㅋㅋ 대형 길드 나락

⤷ 대형 길드 빠돌이 빠순이들 개같이 멸망ㅋㅋㅋㅋ

26층의 랭킹이 발표된 직후,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는 그와 관련된 화젯거리로 활활 타올랐다.

당연하게도 커뮤니티의 주된 내용은 랭킹 1위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 시각, [드래곤의 엄니]의 파티장은 전혀 상상치도 못한 파급력을 바라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26층 당시 그는 여느 플레이어처럼 달려드는 괴수를 막기에도 급급하기만 했다.

그렇다 보니 사실상 별 활약 따윈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었다.

하지만 막상 까 보니, 결과는 그의 상식을 벗어나기엔 충분했다.

모든 파티를 통틀어 전체 1등.

“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물론 플레이어다 보니 등수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26층까지 악착같이 등반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1등을 할 줄은 몰랐지.’

기껏 해봐야 중간에서 하위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1위라니.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그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는 그것도 잠시, 이전에 있었던 일을 불현듯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플레이어!”

26층이 시작하기 직전에 신원 불명으로 파티에 들어온 멤버가 있었다.

당시에는 상황을 유추해 신한별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 플레이어가 진짜로 신한별였다고?’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대형 길드에서 작정하고 달려들어도 안 되는 점수를 신한별 혼자서 냈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게 분명할 텐데… 모든 정황이 그가 신한별 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에 사고회로가 우뚝 멈췄을 즈음, 한편에서는 같은 팀원들로부터 쉴 새 없이 쪽지가 날아왔다.

〈띠링! 띠링! 띠링!〉

〈개인 쪽지가 왔습니다! 개인 쪽지… 개인…〉

쉴 새 없이 계속되는 알람에 그는 쪽지를 확인했다.

〈팀원1: 헐? 1등?? 오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팀원2: 미친…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거야? 이거 오류인가 하는 그건 아니지?〉

〈팀원1: 아까 전부터 커뮤니티에 우리 얘기 나오는데ㄷㄷ〉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반응대로 팀원들에게 쪽지가 와 있었다.

대충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그조차 그렇게 놀랐는데, 다른 팀원들은 오죽했을까.

한나절 만에 층의 모든 플레이어 입에서 파티의 오르내리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순순히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면 복잡할 거 없다.

신한별의 이름을 댄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넘어갈 테니까.

그러나 남자는 신중했다.

분명 신한별은 신원을 숨기고 파티에 들어왔었다.

‘역시 이름을 숨기고 들어온 데에는 사정이 있겠지.’

기나긴 고민 끝에 그는 신한별의 정체에 대해서 함구하기로 했다.

평생 탑을 등반해도 얻지 못할 은혜를 입었는데, 그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순 없었다.

만약에 신한별이 없었다면 팀은 하위권에 안착해 탑에서 쫓겨났을지도 몰랐으니까.

남은 팀원에게는 적당한 변명거리로 얼버무린 그는 눈을 번뜩였다.“이렇게 받은 은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야겠지.”

그는 의지를 활활 태우며 중얼거렸다.

팀으로 같이 활동하는 내내 자신이 발악한다고 해도 받은 은혜를 갚을 방법은 없다.

그러기에는 압도적인 무력 차이였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신한별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만 해도 용한 일이다.

결국엔 그 이외의 방법으로 은혜를 갚을 수밖에 없다.

“분명 신한별이라고 하면 신협단이었지.”

이제는 신한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명이 된 집단.

탑의 제일가는 화젯거리임과 동시에 많은 플레이어의 원성을 산 그곳.

남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시스템창을 켰다.

‘우선 신협단에는 어떻게 하면 가입할 수 있을지 찾아볼까.’

기나긴 고민 끝에 은혜를 갚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신한별에게 있어 은혜와는 가장 거리가 먼 선택지였다.

* * *

달칵!

손아귀에 가볍게 힘을 줬을 뿐인데 간단하리만치 자물쇠가 박살 났다.

원래 이렇게 쉽게 열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으나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

손쉽게 부서지는 거였다면 바로 직전에 시스템창도 뜨지 않았으리라.

역시 내 손으로 직접 문을 부순 건가 보다.

이거 이대로 들어가도 불혜택 같은 건 받지 않으려나.

일순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사념을 지웠다.

탑을 등반하면서 내가 언제 그런 것까지 따졌다고.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질 거였으면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았을 텐데 뭘 새삼스럽게.’

조소를 머금으며 문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문의 입구는 투명한 막의 형태로 막혀 있었다.

비유하자면 조금 단단한 비울 방울 같은 촉감.

막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기도 잠시, 팔을 힘껏 뻗었다.

그러자 몸 일부분이 거품 안쪽으로 쑤욱 들어간다.

이윽고 스펀지에 흡수되듯 막의 안쪽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파아앗!

바닷물로 이뤄진 바깥과는 달리 막을 통과하자 상쾌한 바람과 함께 청량한 공기가 느껴졌다.

얇은 막을 통과하자, 상쾌한 바람과 함께 청량한 공기가 느껴졌다.

“후우우.”

간만에 느끼는 상쾌한 공기에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 그래도 슬슬 산소가 다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잘됐네.

나는 부족한 숨을 들이쉬다 말고 주변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여긴 뭐하는 곳이야.”

얼핏 보기에는 공들여 만든 신전.

어딜 보나 세세한 부분까지 공들여 만들어진 장식물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다.

명망 깊은 신전임을 증명하듯 곳곳에 전시된 천사상과 성기사 모형은 당장에라도 살아 움직여도 이상할 것 없는 비쥬얼을 자랑했다.

봐라, 얼마나 진짜 같으면 천사상에선 후광이 보이며 성기사 모형은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했다.

“어? 잠깐만.”

저건 또 왜 움직여?

아무래도 조각상을 제작한 장인이 얼마나 신앙심이 높은지 임팩트까지 확실하게 구현…

끼이익! 철컥!

“씹…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이번 층에서는 유난히도 재수가 좋다더니만, 어째 불안한 예감은 하나도 벗어나는 게 없지.

나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조각상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게 도대체 개수가 몇 개야.

얼마나 많은지 두 손, 두 발을 전부 동원해도 꼽지 못할 정도다.

덕분에 상당히 귀찮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바다 깊숙이 숨겨진 신전에 이만한 전력이라니.

“대체 얼마나 귀한 물건이길래 이렇게 꽁꽁 싸매둔 거야.”

나는 욕망이 그윽한 눈길로 천사상과 성기사들을 노려봤다.

누가 신호하기도 전에 조각상들이 머리 위해서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각 조각상의 배후에 있는 후광이 엄청난 광량으로 숨을 불어일으킨다.

한순간 새하얀 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나는 심드렁히 검을 뽑았다,

본격적으로 맞서 싸우려는데, 바로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별! 여긴 둘리도 같이 나선다!”

짤막한 검은 날개를 휘적거리며 나타난 둘리가 시꺼먼 흑염을 내뿜었다.

그러자 천사상의 후광에서 빛이 굴절되며 빠르게 쏘아 보낸다.

흑염과 신성이 깃든 빛이 만나며 폭발을 일으켰다.

카아앙!

그 영향으로 새하얀 연무가 일어난다.

흩어진 연무가 피부에 닿자, 순식간에 살점이 일어나더니 부식되듯 바스러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서둘러 검을 앞으로 앞세워 공기 중에 넓게 퍼진 연무를 막아냈다.

짧은 찰나에 상황을 분석한 나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빛이 직접 살에 닿으면 그대로 석화가 되는 건가.”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데.

나는 포션을 피부에 끼어얹으며 공중에서 맞서 싸우는 둘리를 지켜봤다.

나와는 달리 둘리는 천사상의 후광 앞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했다.

〈TIP. 혼돈 속성인 블랙드래곤은 신성력에 면역을 지닙니다.〉

- 신성력이 히어로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이런 유감이네요. 세상에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답니다!

뒤늦게 뜬 시스템창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둘리가 혼돈 속성이라는 것은 완전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일단 그건 둘째치고, 닿자마자 신체를 부식시키는 저 빛이 신성력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보통 신성력이라고 하면 약자를 치유하는 빛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신성력은 개뿔.”

하긴 탑에 와서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지면 뭘 하냐. 그거야말로 가장 의미 없는 짓인데.

나는 욕지거리를 입에 담으며 천사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상당한 위력의 풍압이 한 번에 쏟아지며, 조각상은 처참하게 박살 났다.

저것들이 천사니, 신성력이니 해도 결국 몸뚱어리는 돌덩이로 이뤄져 있다.

기껏 해봤자 돌멩이라는 소리인데 긴장할 것까진 없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난 조각상을 발로 으깬 다음, 신전의 중심부를 향했다.

그렇게 둘리와 나는 한참을 걸어 신전의 중심부에 도착했고.

이윽고.

신전의 심장. 경건하기를 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단상에 모셔진 아티팩트를 보고는 지금까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에게? 겨우 이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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