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년만에 귀환한 고인물-76화 (76/175)

제76화

[채널21- 26층 전용 커뮤니티]

- 지금 26층 등반 중인 사람?

⤷ ㅋㅋㅋㅋㅋ이 새끼 뭐함?

- 아죠씨 여기 26층 전용 커뮤니티에요

- 그래서 누가 실시간으로 1등임? 궁금해 미치겠네;;

⤷ 긍까ㅇㅇ 탑 개에바라니까. 26층 끝날 때까지 점수를 왜 안 알려줌?

- 1등? 뻔하잖아. 3대 길드의 루키들이겠지

⤷ 이번에 3대 길드에서 루키들한테 지급한 무기 보니까. 개사기던데 이거 장비빨 아니냐??

⤷ ㅋㅋㅋ그거 탐나면 개추

⤷ 루키들하고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고?ㅋㅋㅋㅋ

- 그렇긴 해ㅋㅋㅋ

한창 커뮤니티에서는 1등에 대한 추측이 플레이어 사이에서 난무하고 있었다.

26층부터는 팀으로 이뤄진다고 한들.

실질적으로는 개인 층에서 점수를 모아 집계하는 방식이라 플레이어들의 커뮤니티 사용량은 자연스레 증가했다.

비단 그런 이유뿐이 아니다.

탑을 등반하는 모든 플레이어라면 20층부터 개인 층만을 겪었다.

처음이면 모를까.

무식하게 반복되는 일상은 사람을 심심하게 만든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의 지루함이 극에 다다랐을 찰나.

갑자기 떨어진 경쟁 심리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플레이어들의 의욕을 불태우기에는 충분했다.

- ㅉㅉ 설레발치긴

- 이번 층에 유명한 사람들도 많다던데?

⤷ 역배 가즈아!!

- 이번에 보면 평균적으로 강한 애들 많음

- 응~ 적어도 너흰 아니야~

⤷ 딜 폭격기 무냐고!!!

- 하긴 신협단인가 하는 애들도 있잖아

- 아;; 그건 좀…

- 그 새끼들은 논외지. 걔넨 찐으로 미친놈들이잖아

⤷ 영상 보니까. 걷기 귀찮다고 딸랑 팬티 한 장 입고 진흙을 헤엄치던데

⤷ ㅗㅜㅑ

- 신협단 그 미친놈들이라도 대형 길드 지원받는 루키를 이기는 건 불가능함

- 그럴리는 없지만 26층에 신한별 본인이 있으면 모르긴 하겠네ㅋㅋㅋㅋㅋ

⤷ 신협X신협단 콜라보 가슴이 웅장해진다.

- 신⎯⎯멘

커뮤니티에서는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고 있을 무렵.

26층의 클리어를 목전에 둔 나는 두 눈을 시퍼렇게 빛내며 괴수를 노려봤다.

곁으로 보기에만 수십 미터를 훌쩍 넘는 덩치.

단순히 덩치뿐만이 아니다.

괴수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NPC들이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허나.

“딱 좋네.”

나는 손끝으로 검신을 가볍게 훑으며 씨익 웃었다.

자잘한 놈들을 상대한다고 손맛이 영 없었는데, 이 정도면 싸울 만은 하겠지.

이러는 와중에도 괴수와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검에 쥔 손에 힘을 쥐자, 뒤에서부터 누군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자, 자네 설마 저길 뛰어들 생각은 아니지?”

“그런데?”

“아니, 그게 무슨….”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하자, 나를 붙잡아 세운 NPC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자네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저길 뛰어드는 건….”

“왜, 자살 행위라고 말하려고?”

“…….”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NPC는 할 말을 잃었는지 멀뚱히 이쪽을 바라본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고 했던가.

NPC는 제정신이냐는 듯 추궁하는 얼굴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몰라라 하면서 회피하는 것보단 낫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층에서 확실하게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남에게 넘겨줄까 보냐.

“도와줄 거 아니면 방해하지 말고 보고만 있어.”

손을 털고 바로 앞까지 맞닥뜨린 괴수에게 다가간다.

길게 늘어뜨린 검이 바닥과 마찰하며 쇳소리가 일어난다.

거기에 손가락을 튕기자,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자줏빛의 권능이 검신을 뒤덮었다.

묵직한 무게감으로 인해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땅바닥이 움푹 들어간다.

“크르릉! 캬릉!”

그에 맞서 괴수는 완전히 겁을 상실한 모양인지.

꼬리를 지면에 박는 것과 동시에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달려들었다.

큰 몸뚱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체시력으로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

하지만 내 앞에서는 소용없다.

씌잉! 촤아아악!

괴수의 어깨가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 팔뚝에서 끈적끈적한 푸른 피가 울컥 쏟아져나온다.

일반적인 괴수였다면 일격으로 쓰러졌을 테지만, 이 와중에도 놈의 눈빛은 형형히도 빛나고 있었다.

한 방을 노리는 짐승의 것.

‘대충 뭘 노리는 건진 알겠는데 소용없어.’

뒤돌아볼 것도 없다.

헛웃음을 흘리며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자, 지면이 뒤집히며 지하 깊숙이 파고든 괴수의 꼬리가 노출되었다.

처음부터 팔을 희생할 생각이었다.

내가 이겼다고 확신하는 사이에 사각지대를 이용해 기습을 할 작정이었으리라.

괴수치고는 꽤나 그럴싸한 작전이다.

“상대가 안 좋았을 뿐이야.”

적당히 눈짓을 주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둘리가 브레스를 내뿜었다.

칠흑 같은 화염이 괴수의 외갑을 뚫고 살갗에 파고든다.

고통에 괴수는 비명을 내며 숨을 거뒀다.

제아무리 강한 괴수라 하더라도 드래곤의 브레스를 직통으로 맞고 살아남을 리는 만무했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마무리.

이를 증명하듯 괴수의 심장박동이 끊어진 직후, 시스템 창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일정 기간 생존하는 조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점수를 집계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27층으로 이동합니다.〉

지긋지긋한 26층도 이걸로 끝이다.

나는 재만 남은 괴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무형의 기운이 괴수의 시체를 휘감더니 단번에 먹어 치운다.

아주 미약하지만 스텟이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기지개를 활짝 켜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신한별!”

“아씨, 간 떨어질 뻔했네. 갑자기 남의 이름은 왜 불러.”

멍멍한 귀를 후비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링링과 하늘섬에서 우연히 만났었던 남자가 얼굴을 한껏 붉힌 채 서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괴수랑 같이 저쪽도 같이 왔었지?

하도 존재감이 없다 보니 잊고 있었네.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들은 머쓱한 기색을 보였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만 미안하네.”

“그건 됐고. 사람을 불러 놓고 왜 이유를 안 말해?”

“아, 그랬었지! 여기에 오는 도중에 이 친구한테 대충 얘기를 들었네. 듣자 하니까. 자네가 구름섬에 있는 벼락 생성기를 처리했다던데….”

링링은 말꼬리를 흐리며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정말 은혜를 입었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샘물을 되찾는 것은커녕 이곳에 도달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테니.”

그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

하긴 내가 없었다면 이곳을 사수하는 것은 꿈에도 못 꿨을 테니 과한 건 아니지.

그간 NPC의 모습으로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에게 있어 샘물이라는 장소의 중요성을.

언제나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곳보다는 안전한 샘물의 주변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런데.

“무슨 사정인진 알겠는데. 맨입으로?”

나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링링을 바라봤다.

내 표정을 보고 불안을 감지한 링링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맨입이라면?”

“뭐긴 뭐야. 명색이 NPC들의 대표라는 사람이 고작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려고? 요샌 은혜라는 말이 쉽나 봐. 가는 게 있으며 오는 게 있어야지.”

안 그래?

능청스럽게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보이자, 그 뜻을 퍼뜩 알아차린 링링은 손바닥을 마주쳤다.

“물론이네! 그 정도로 염치없는 쓰레기라 생각했으면 섭섭하지. 이렇다 할 거까진 아니라지만 자네가 원할 때마다 샘물에서 뽑아낸 포션을 공급해 주겠네.”

링링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단언했다.

보상으로 샘물의 포션이라….

‘나쁘진 않은데?’

지금까지 아눌드 공방에 공급하는 포션은 전부 유채아에게 부탁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유채아는 지금까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상관없이 말만 하라고 하긴 했으나.

“뭐가 어쨌건 그것도 빚지는 거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리라.

내 성격에 빚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26층에서 포션을 공급한다면 말은 달라진다.

유채아한테는 손을 빌릴 일도 없을뿐더러, 24층의 아눌드 공방과 26층의 NPC들을 내 이름으로 커넥션을 형성하면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아무리 봐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메리트가 더 컸기에.

결정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링링의 손을 마주잡았다.

“포션은 고맙게 받을 게. 그럼 그 사항에 관해서는 아눌드 공방 측에 얘기해 둘 테니까. 자세한 건 그쪽하고 얘기를 나누면 될 거야.”

“아눌드 공방이라… 알았다. 자세한 내용은 그쪽하고 조율하마.”

링링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걸로 26층에서 볼 일도 끝.

때마침 27층으로 올라가겠냐고 묻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눈치껏 내 상황을 알아차린 링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슬슬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가 됐나 보지?”

“아무래도 여기서 볼 일은 전부 끝났으니까.”

“그것참 아쉽네. 시간만 있었다면 거하게 파티라도 열었을 텐데.”

링링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것도 잠시, 그는 나를 마주 보며 양팔을 펼쳤다.

“다음에 이곳에 들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주게. 우리는 언제나 자네를 환영할 테니까. 그럼 앞으로도 건승하게나.”

뒤이은 링링의 말을 끝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섬광이 내 몸을 잡아 삼켰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 * *

〈27층입니다.〉

〈이번 층의 컨셉은 재해- 빙하기입니다.〉

〈27층의 고유 패널티로 인해 착용하신 무구나 지니신 아티팩트의 효과 및 플레이어의 힘이 60% 감소합니다.〉

〈3일 동안 생존 혹은 숨겨진 조건을 클리어하시면 됩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강렬한 섬광과 함께 27층에 올라오자마자, 관련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27층에 대한 설명을 천천히 읽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플레이어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내용이 잇따라 떠올랐다.

〈신한별 플레이어에 대한 26층의 점수가 집계되었습니다.〉

〈실시간 등수가 갱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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